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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취재] 사람이 산다. 홈리스야학에

연희관공일오비 2017. 9. 11. 02:03

모두에게 열려 있는 학교

여름방학이 끝나고 9월이 되면, 홈리스야학의 학기도 시작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을 찾는 학생들은 모두 홈리스[각주:1]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홈리스들은 경제적 자원뿐만 아니라 배움에 대한 접근으로부터도 소외된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홈리스야학은 홈리스들에게 문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2010년부터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생각보다 야학은 우리가 다니는 대학과 닮은 점이 많다. 야학에도 봄학기와 가을학기, 두 번의 방학이 있다. 매 학기 첫 주에 열리는 개강식에 참석한 학생들은 담당 교사의 커리큘럼 발표를 듣고, 손을 들어 수강신청을 한다. 수업은 홈리스 권리, 기초학문, 문화 · 취미의 세 종류인데, 먼저 홈리스 권리 수업은 주거권, 노동권 등 홈리스들이 꼭 알아야 할 권리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다. 기초학문 수업에서는 한글, 영어, 컴퓨터 등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익힌다. 물론 문화 · 취미 생활을 위한 수업도 있다. 그때그때 학생들의 선호도를 반영하여 건강 교실이나 만들기 교실, 요리 교실 등 다양한 수업들이 열린다.

학생들에게 야학의 교실은 무언가를 배우는 장소이기도 하면서, 친구를 만나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동료 홈리스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 생활에서는 만들 수 없었던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수업이 없는 날에도 야학을 찾는다. 이곳에 오면 늘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홈리스야학 교사&학생 모집 포스터

이곳의 학생이 되는 데 별 조건이 없듯이, 교사도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평소 이런 활동에 관심 있었던 사람도 있지만 우연한 기회로 야학을 찾은 사람도 많다. 3년 전에 두 학기 동안 교사를 했던 나도 후자의 케이스다. 홈리스야학의 독특한 점은 보통 교사가 학생보다 젊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학에는 서로를 별명으로 불러야 하는 규칙이 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뻘의 학생을 다람쥐같은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어색했지만, 공동체 안에서 나이에 상관없이 평등한 관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7월 한 달간 출근한 장소에 대한 간략한 소개다. (출근이라고는 하지만 순수한 봉사활동이었다. 복지기관에서 실습 160시간을 이수하는 것이 졸업요건이다. 이쯤 되면 과를 짐작 가능하다) 사실 이곳의 진짜 이름은 홈리스행동이지만, 학생들이 친근하게 부르는 야학이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든다. 스스로 이 공간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뻘의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쌓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홈리스들이 내 옆에 사는 이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구성원으로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과 이제 어떻게 하면 함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실습을 하며 그동안 홈리스들의 삶에 대해 내가 잘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홈리스를 한 명의 사람으로 보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것들이 많다.

 

홈리스를 가로막는 편견

실습 기간에 맡은 업무 중 하나는 언론 모니터링이었다. 언론 기사들이 홈리스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를 살펴보고, 긍정적인 기사와 부정적인 기사 모두를 홈리스행동의 홈페이지에 업로드하는 것이다. 기사도 사람의 눈과 손으로 작성하는 것이기에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 모니터링을 하면서 느낀 편견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로, 홈리스들은 종종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지만, 오히려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선 빈곤 상태에 놓여있다 보니 돈을 주겠다는 말에 잘 속는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모르는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는 일도 많다. 법률 지식이 부족하고, 가족이나 친지 등 아는 사람이 없으니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그래서 홈리스를 이용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홈리스의 명의를 도용해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을 만드는 범죄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도 처벌을 받지만, 범죄인 줄 모르거나, 돈을 준다는 말을 믿고 범죄에 가담하는 것이다.[각주:2] 기사를 조금만 검색하다 보면 홈리스의 범죄피해의 빈도와 심각성을 금방 알 수 있다. 최근에는 홈리스의 명의로 폐업 직전인 마트를 인수해 고의로 부도를 내는 마트 사냥꾼이 검거되었다. 이들이 지난 5년간 챙긴 돈이 78억 원이라고 한다.[각주:3]

2013년에 불법 요양병원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 요양병원들은 홈리스를 직원으로 고용해 서울역 등지에서 동료 홈리스들을 유인해온 뒤, 나가지 못하게 감금과 폭력을 행사했다. 또 홈리스들을 치료하는 대신, 오히려 술과 담배를 제공했다.[각주:4] 애초부터 치료 목적으로 입원시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목표는 오로지 병원의 환자 수를 채워서, 환자 한 명 당 지급되는 매달 150~200만 원의 요양급여를 가능한 많이 타내는 것이었다. 가장 규모가 컸던 병원의 경우, 2013년 한 해 동안 입원시킨 홈리스가 약 200명이었고, 병원이 올린 수익은 8억 원이 넘었다.[각주:5]

이 사건은 일차적으로 병원의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했지만, 근본적으로 홈리스를 위한 복지가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다. 요양병원의 실체를 알고서도 자발적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다. 당장 잘 곳이 없는 홈리스들에게는 거리보다 병원이 더 나아 보였을 것이다. 요양병원 사건으로부터 4년이 지났지만 홈리스들은 여전히 복지와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두 번째는 홈리스들이 노력하지 않아 빈곤하다는 편견이다. 그런데 야학에 와서 본 대부분의 학생은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 이삿짐을 옮기고 와서 늘 근육통을 호소했던 꺽쇠님이나, 홈리스를 고용하는 기업에서 몇 년간 일했던 다람쥐님처럼 말이다. 장애나 질병이 있어 일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금씩이나마 저축도 하면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삶과, 하루하루 생존하는 삶은 다르다. 홈리스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중에는 오랜 거리 생활로 몸이 약해진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이삿짐센터나 공사장의 일용직이다. 하지만 공공일자리라고 해서 빈곤 탈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복지가 가장 잘 되어 있다는 서울시의 특별자활근로사업도 비슷하다. 최저시급으로 15시간, 연 최대 6개월 근무를 조건으로 하는 특별자활근로의 급여는 582300(월차 포함)에 불과하다. 더구나 고용되기 위한 조건 중에 주거지 진입이 있어 월세 25만 원 가량을 지출하고 나면 생활비를 제외하고 남는 것이 없다. 계속 홈리스로 살아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립·자활과 탈 노숙을 돕겠다는 원래 취지와는 동떨어져 있다.[각주:6]

낮은 급여와 더불어, 대부분의 공공일자리가 1년 이하의 단기인 것도 문제다. 그나마 소득을 올리던 6개월, 혹은 1년이 끝나고 난 뒤에는 소득이 끊기는 것이다. 아마 자활근로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렵게 들어간 집에서 나와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게 홈리스들은 거리에서 쪽방으로, 쪽방에서 거리로 이사를 반복한다. 50만 원 가량의 수입으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주거는 고시원이나 쪽방이다. 비좁은데다 여름이면 덥고 겨울에는 춥지만, 그래도 비를 피할 지붕과 몸을 누일 공간이 있다. (이것조차 20~30만 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 그다음은 여관, 찜질방, 피씨방, 만화방, 다방 순이고, 가장 열악한 것이 거리노숙이다. 이렇게 홈리스의 주거는 그때그때 주머니 사정에 따라 계속 바뀌어, 최소한의 안정성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편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학생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대답이 있다. 자신이 지금까지 가장 높이올라 가본 경험이 고작쪽방인데, 어떻게 의욕이 생기겠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홈리스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아도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는 힘들다. 꿈을 꿀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지는 않고, ‘노오력하라고만 말하는 사회. 홈리스들도 헬조선에 살고 있다.

새롭게 개장한 서울로. 하지만 사람길에 홈리스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각주:7]


야학에서 만난 사람들

이제 야학의 학생들에 관해 이야기할 차례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분은 당연 빠박이님이다. 아침에 가장 먼저 야학에 출근하는 50대의 학생분이다. 빠박이님이 야학에 나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좋아하는 티비 프로를 틀고, 명당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다 조금 있으면 싫증을 내고 새로운 재미를 찾아 돌아다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옆구리가 무방비 상태가 된다. 옆구리 찌르기에 당한 적이 하루에도 몇 번인지 모른다. 하루종일 쿡쿡 찔러대니 당할 수가 없다. 그것도 간지럼을 많이 타는 약점, 겨드랑이만 노린다.

귀찮기도 했지만 덕분에 친해질 수 있었다. 어느날 빠박이님이 거울을 보고 인상을 쓰더니 어딘가에서 염색 통을 찾아서 들고 왔다. 점점 흰머리가 늘어가는 게 보기 싫은 모양이었다. 한 군데라도 흰머리가 남아있으면 또 찌르기를 당할 것이 분명했기에, 정말 열심히 칠했다. 다행히 염색은 성공적이었고, 거울을 본 빠박이님은 환히 웃었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수급자에게 주어지는 문화 누리 카드는 카드 형태로 지급되고, 동사무소에 가서 일 년에 6만 원을 충전할 수 있다. 그것으로 영화, 도서, 공연 등 문화 소비에 사용하는 것이다. 학구열이 높은 학생들은 얼마 안 되는 돈을 쪼개어 영어책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빠박이님은 한글을 읽지 못한다. 대신 영화를 정말 좋아하셔서 실습 기간 동안 한 번 가자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용산 CGV에 가서 본 영화가 <스파이더맨 홈 커밍>이었다. 그런데 그 영화 선택은 한글을 모르면 자막도 읽을 수 없다는 걸 미처 생각 못 한 실수였다.

그래도 다행히 티비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많이 본 덕에 재미있었다고 했다. 또 보자고 일주일 내내 성화다. 그래도 실습을 하러 와서 영화만 보러 다닐 순 없으니, 다음 달에 보자고 설득해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웃으면서 인상을 쓰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 옆을 지나갈 때마다 또 쿡쿡. 2주 동안 버틴 끝에 실습이 끝나고 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하지만 찌르기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한 분인 다람쥐님은 이곳에 오래 다니면서 학생회장, 부회장, 총무 등 각종 직책을 맡은 분이다. 다람쥐라는 별명은 젊었을 적 날쌔서 붙은 것이다. 정확한 연세는 모르지만, 야학에서 거의 제일 연장자라는 것만 알고 있다.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경험에서 오는 지혜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중에서도 다람쥐님과의 대화는 특히 즐겁고 유익했다. 정부 정책을 칭찬하기도 하고, 급식 노동자를 밥하는 아줌마라고 무시한 정치인의 막말을 놓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번은 내 이름(별명이 아닌 본명)을 기억하시면 커피를 사드리기로 내기한 적이 있다. 교사를 했던 게 벌써 3년 전인데도 아직 기억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 기억력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씀이 야 내가 중학교만 나왔어도 세상을 평정했어일 정도다.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핸드폰 속 사진을 구경했다. 딸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딸과의 교류는 없는 것 같았다. 야학의 학생 중에는 가족과 멀어진 사람이 많다. 경제적인 문제, 개인적인 사정 등 이유는 다양하지만, 복지정책도 중요한 원인이다.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수급을 받지 못하는 규정 탓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 어려움에도 어떻게든 가족과의 끈을 유지하려 노력하거나, 매달 생활비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처럼 핸드폰에 고이 간직한 가족사진을 볼 때면 마음이 짠해진다.

학생들은 겉보기와 달리 말수가 많다. 평소에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도 한번 입을 열면 10분이고 20분이고 계속 말한다. 대부분 자기 자랑이지만 그래도 듣고 있으면 재미있다. 이분들에게 필요한 건 그게 누구든 얘기할 상대가 아니었을까.

학기를 마치면 받는 야학의 수료증.종강식에서의 노래 공연. 핏대를 세운 열창이 인상적이다.


나가며

실습이 끝난 뒤인 8, 오랜만에 야학을 찾으니 모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제 출근 안 하니 좋으냐는 말에 멋쩍게 웃었다. 어느샌가 곁으로 다가와 옆구리를 파고드는 손길도 여전하다. 다들 이제 가면 언제 또 오는지 물어본다. 다행히 가을학기 교사를 자원했다. 무슨 수업을 맡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난 뒤 여기로 오게 될 것이다. 수업만 듣기는 어딘지 아쉬웠던 학기가 이제 좀 더 풍성해질 것 같다.

여기까지가 야학과 야학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다.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이야기, 사람 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홈리스의 존재를 색안경을 낀 채로 보지만, 홈리스도 우리와 같은 사회에 살아가는 시민이다. 좋든 싫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홈리스를 우리와 다르다고 단정하고 들어가지 말자. 선입견을 갖고 보기 전에,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10분의 대화로도 이 사람의 숨겨진 의외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장난기가 많은 귀여운 모습, 학구열에 불타는 모습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기에 만남의 장소인 야학은 필요하다. 홈리스에게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야학은 교사와 학생 모두가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교실이 북적대면 좋겠. 그러니 야학에 관심이 생겼다면, 언제든 메일 주시고, 찾아오시길! 새로운 교사는 언제든 환영이다.


글  편집위원 화영


  1. 홈리스와 노숙인은 혼용되어 쓰이지만, ‘홈리스’가 더 적절한 용어이다. 먼저, ‘노숙인’이라는 용어가 가진 부정적인 어감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노숙인’은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만을 뜻하는 반면, ‘홈리스(homeless)’는 거리 노숙뿐만 아니라 불안정하고 부적절한 주거 상태에 놓인 사람 모두를 포함하는 용어다. 실제로 2011년에 실시한 ‘비주택 거주민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거리와 시설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는 2만 명 정도인데 비해, 집이 없이 쪽방, PC방, 사우나 등에서 거주하는 홈리스는 23만 명에 달한다. 소수의 거리노숙인만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면, 이들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용어가 필요하다. (출처 : 김유미, 「홈리스 운동을 일구는 부지런한 발걸음 :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를 만나다」, 『오늘보다』 2015/08 제 7호) [본문으로]
  2. 김기용 기자, 2017.07.19., 「'신용도' 있는 노숙자만 골라 합숙…대포통장 일당 기소」, 『노컷뉴스』 [본문으로]
  3. 최성욱 기자, 2017.07.02., 「폐업 직전 마트 매입해 현금만 챙기고 부도내는 '마트사냥꾼' 일당 검거」, 『서울경제』 [본문으로]
  4. CBS 시사자키, 2014.07.19., 「"노숙인 감금하고 15억, 이런 게 요양병원?"」, 『노컷뉴스』 [본문으로]
  5. 배지영 기자, 2017.06.19., 「저질 요양병원 퇴출시킬 방안 강구를」, 『백세시대』 [본문으로]
  6. 김빛이나 기자, 2017.04.26., 「“한 해 노숙인 300명 숨지는데 집 2000채 가진 사람 사는 ‘헬조선’”」, 『뉴스천지』 [본문으로]
  7. 올해 5월 문을 연 서울로에 관한 '서울로 7017 이용 관리 조례' 13조의 2항과 5항은 '눕는 행위'와 '심한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홈리스를 겨냥한 조항들이다. ‘심한’ 악취, 그리고 ‘혐오감’은 누가, 어떻게 판단할 문제일까? 찻길 대신 생긴 사람길에는 홈리스의 자리가 없는 대신, 홈리스에 대한 혐오만이 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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