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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가 충격적인 사건들과 함께 난 데 이어, 20183월 보궐선거는 후보 등록 0’으로 모두의 무관심 속에 연기처럼 잊혀졌다. 보궐 선거조차 후보가 0명이라니! 이것은 이제 총학생회의 가치가 연세대 2만 학우 중 누구에게도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하다못해 총학을 스펙으로 정계에 스카우트될 찬스, 또는 각종 스폰과 협찬으로 어둠의 돈을 끌어모을 포부 등, 누구 한 명쯤은 충분히 고려해 볼 법한 언피씨한 노림수조차 가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말로만 듣던 학생회의 위기, 드디어 코앞에 닥쳐왔다!

 상당히 과장해서 한번 써봤다. 사실 소위 학생회의 위기는 최근 갑작스레 닥쳐온 것이 아니다. 과 학생회의 존재감이 새터 준비위원회보다 못해지고, 학생회 선배 따위 동아리 선배한테 밀린지 이미 오래다. 몇천 명의 학생이 모였던 학생총회들이 열렸던 지도 n 년이 지났으니, ‘학생총회를 기억이나 하는 사람이 학교에 100명도 안 될 거다.


백양로를 지나가는 연세인 여러분여러분의 1년을 결정하는 총학생회 투표입니다!” 

 선거철마다 백양로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당신의 달팽이관을 한순간 사로잡는다. 백양로를 지나가는 연세인 여러분!” 그러나 알튀세르의 저 유명한 일화에서와는 다르게, 당신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왜 당신은 뒤돌아보지 않는가! 당신은 백양로를 지나가고 있고, ‘연세인이지 않은가? 어쨌든 연세인 중 50%는 해마다 이 호명에 뒤돌아보지 않아 왔다. 왜일까? 난 당신이 아니라, 이 두서없는 호명을 탓하고 싶다.

 당신은 누구인가? 글을 쓰는 나를 우선 소개하자면, 졸업이 가까운 고학번이고(제발 졸업시켜줘!), 학점이 낮으며(학교 수업이 나의 잠재력을 가둘 수 없어), 공무원 시험을 알아봤다가(정권 바뀔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시작할걸), 결국 속세에 뜻을 접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으며(교수님, 부디 저를 거두어주세요), 그러나 금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시급 1만 원(이거 되게 높은 편이다)의 주1회 학원 아르바이트를 최근에 시작한 자이다.

 나의 지정성별(F), 나이(20대 후반!)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연세인의 평균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20대 후반 여성으로 말하자면 동기들뿐만 아니라 1~2년 후배들마저 이미 대부분 졸업한 지 오래이며, 그중 몇 명은 벌써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합격하여 근무를 시작했다. 로스쿨이 아닌 일반대학원 진학이라는 선택을 생각해봐도 좀 소수자스러운 감성이 있는 데다가, 사회적으로는 심지어 루저로 취급되기도 한다(부모님께 학업 정진을 위해 동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그럴 바엔 아버지 아는 데 경리로 취직하면 안 되겠냐고 그러셨다는 충격적인 일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루저가 맞긴 한 것이, 벌써 취직한 내 친구들 몇 명은 낮으면 연봉 2, 높으면 4천까지 버는 마당에, 나의 연봉은(학원에서 잘리지 않는다면) 2백 정도 될 예정인 데다가, 대학원 등록금으로 낼 1800만 원의 빚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레벨 차이 왜 이렇게 격심하냐고!). 이런 나의 개인사에 연세인이라는 호명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무엇보다 와 닿지 않는 건 다음 대목이다: 여러분의 1년을 결정하는 총학생회 투표...” 안타깝지만, 학생회는 내 인생의 1년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대학교가 그런 공간 아니던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면 말고! 학생회 선배들이랑 안 맞으면? 그냥 마음 맞는 친구들하고 같이 놀고, 과 활동은 안 하면 된다. 총학생회에서 하는 사업이 아무리 많아도 간식 행사 외에는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게다가 재수강 폐지, 송도캠퍼스 신설 같은 학교의 횡포는 어디 총학생회가 없어서 일어났더란 말이냐. 총학생회가 나의 1년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내 투표가 총학생회의 1년을 결정하는 거다. 결국 당신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거지, 나는 당신들이 필요하지 않다

 분명 글을 쓰는 내가 처한 상황이 연세인중에서도 너무 특수하긴 하다. 모든 연세인들이 이렇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투표라는 이벤트 자체가 민주주의 교육을 착실히 받아온 사람들의 양심을 잘 건드리는 표현인지라, 총학생회가 내 인생과 그다지 관계없을지라도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훌륭한 일이고, 좋은 행동이고, 모두에게 장려할만하다. 나는 총학생회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 하지 않는 사람 누구도 비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사람들의 양심에 기대어 유지되는 지금의 학생회는 지겹다. 투표율 낮아서 개표 못할까봐, 혹은 참여 인원 부족으로 총회 못 열까봐, ‘학생회를 걱정하는 착한사람들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학생회. 이렇게까지 하면서 우리들의 대의제를 수호할 가치가 있을까?

 

나를 불러줘

 우리, 인민WE, PEOPLE)은 통일성을 전제하거나 통일된 것이 아니라, 누가 인민이며, 인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내거나 토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주디스 버틀러


 우리들의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퇴색된 이유에 대해, 나는 우선 연세인이라는 호명에 이어 학생이 대체 누구를 부르는 건지 묻고 싶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학생이라고 검색하면 웃지 못할 예문들과 함께 정의가 뜬다. 바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이다(스스로 마음에 손을 얹고 나는 공부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인정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세상은 우리가 학교안에 기입된, ‘공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멍청한 덩어리로 개념화되어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의 당신은 덩어리가 아닌, 살아 숨 쉬며 제멋대로 움직이는, 모두가 다르고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총학생회가 부르는 연세인은 나에게 마치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호명과 같다. 당신들의 연세인에 나는 없다. 당신들의 학생회라는 학생은 없다. 우리를 부를 때 학생이라는 정체불명의 덩어리로 부르기보다, ‘의 인생에 대해, ‘의 존재함에 대해 불러주기를 원한다. 당신들에게 필요한 유권자로 날 부르기보다, 당신들이 먼저 가 들어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2017년의 당신들은 분명 그러지 못했다. ‘당신들이 명백히 나를 우리라고 생각했다면, 당신들이 에게 소통하겠다며 실체 없는 약속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가 돌아섰다고 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 투표하지 않냐며, 왜 총회에 오지 않냐며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이길 포기한다. 우리가 아직 우리를 우리라고 불러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우리를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폄하하지 말자. 우리 서로 궁금해하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학생이 되었는가? 나에게 학교란 어떤 곳인가? 나에게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뭘 하고 싶은가? 마음껏 나눠야, 우리는 드디어 우리로 만날 수 있다.

 부끄럽지만, 글을 쓴 내가 원하는 우리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201836, 29대 총여학생회 <모음>에서 개최한 여성의 날 토크쇼에 특별한 분을 만났다. 연세대 청소노동자 이경자 씨다. 엄마, 아빠는 잘 모르는 학교 이야기, 취준 이야기를, 이경자 씨는 매일 만나는 학생들인데, 다 알지!”라며 공감해주셨다. 학생들, 공부 열심히 하는데 깨끗한 환경 만들어 주고 싶다. 학생들, 이제 곧 노동자가 될 건데 기본적인 노동권이 있는 나라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 학생들, 여성 노동자로 일하면서 성차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생들과 함께 있는 연세대학교, 더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이 꿈들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서 나를 연세인이라고 불러준다면, 나는 기꺼이 함께 연세인이 되고 싶다. 나는 함께 꿈꾸는 사람이고 싶다. 연고전이 이기고 지는 데만 웃고 울지 않고, 우리들이 잘 살아가는 것에 같이 웃고 울고 싶다.


기고 깐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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