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만났습니다 온라인 만남 플랫폼을 처음 접했던 것은 학창시절 때였다. 그때부터 인터넷 헤비 이용자였던 나는(죽어도 ‘중독자’라고 하긴 싫었다) 넷상을 동네처럼 들쑤시고 다녔고, 온갖 커뮤니티와 SNS를 거쳤다. 그러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감추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쉽게 감출 수 있었고, 어쩌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난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이 틀 때까지 핸드폰을 쥐고 있기도 했다. 천성이 조금 느리고, 가벼운 농담을 제외한다면 말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데 한참, 눈앞의 사람이 이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상대인지를 고민하는 데 또 한참이 필요한 나는 이곳에서만 나눌 수 있었던 어떤 깊은 대화들과 어쩌면 ‘tmi’라 불릴 사소함들이 가장 즐겁던 때가 있었..
0. 나는 통학러였다. 밤낮으로 신촌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연희관까지 오고 가는 일상이 몇 개월간 이어졌다. 신촌역에서 연대 앞 횡단보도까지 매일 걷던 나는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별 시선이 가지 않았다. 이미 인간들끼리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매너, 어차피 다들 피곤한 상태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뭐하러 눈을 맞추겠는가. 나는 오히려 항상 그곳에서 기다리는 비둘기를 바라보았다. 바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옆에서 종종 냉대의 시선을 받는, 검게 찌들어 버린 도시 비둘기. 조금이지만 비둘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생긴 걸까? 비둘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비교적 한결같다. 비둘기 날갯짓 한 번에 셀 수 없는 세균이 떨어진다는 낭설이 돈다.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없는 검은색 물질에 물들어버린 비둘기들을 좋아해 ..
0. 회색 도시 어느 날 회색 양복을 빼입은 신사들이 도시에 등장한다. 매일 숫자가 불어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들의 노골적인 침투를 알아채지 못한다. 회색 신사들은 “시간 절약. 나날이 윤택해지는 삶!”과 같은 포스터들을 사방에 붙이고, 도시 사람들을 하나둘 꼬드겨 시간 절약 거래를 체결하더니, 이윽고 도시를 장악해버린다. “대도시의 모습도 차츰 변해갔다. 옛 구역은 철거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모두 생략하고 꼭 필요한 부분만 살린 새로운 집들이 지어졌다. 그 안에 살 사람들에 맞추어 집을 짓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면 제각기 다른 모양의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모양의 집을 지으면 돈이 훨씬 적게 드는 데다 무엇보다 시간을 절약하는 이점이 있었다. (...) 다른 점이..
서울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간다. 바쁠 수밖에 없다. 서울은 긴 시간 동안 한반도 내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굳히며 형성된 한국의 심장과 같은 공간이다. 그리 넓지 않은 땅을 가진 서울에는 약 1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우리나라 총인구의 약 20%에 달하는 숫자다. 그리고 동시에 약 1500여 개의 공공청사 및 복지시설이 존재한다. 국회의원들은 저 멀리 바닷가의 공기 좋은 마을이 아닌 ‘서울’에 모여 열띤 토론을 나눈다. 대통령의 집무실과 거주공간 또한 당연하게도 서울에 있다. 만일 영화나 소설 속에 흔히 등장하는 재난 사태가 서울까지 퍼지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기능은 마비될 테다. 이런 특수한 상황조차도 서울이 배경이라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한국의 심장이 과연..
얼마 전 영화 이 개봉했다. 영화가 거둔 상업적 성공과는 별개로, 영화가 6월 민주항쟁을 재현한 방식에 대해 여러 비판이 제기되었다. 우선 독재에 맞서 투쟁하는 캐릭터 대부분이 남성이다.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는 ‘연희’ 역시 운동에는 관심 없는 새내기로 나오는 탓에, 영화를 보며 당시에 거리에서 함께 싸웠던 여성들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또 기자와 검찰, 중앙정보부 등 몇몇 조직 내부의 시선으로 6월 항쟁을 다루는 탓에 노동자와 빈민 등 많은 역사의 주역들이 스크린에 등장하지 못했다. 거기에 2018년을 살아가는 ‘학생’으로서 나도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80년대를 그린 영화에는 독재에 맞서 싸우는 학생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그 당시 학생들은 무엇 때문에 그..
2. 남자라면 ~가깝고도 먼 남자의 화장어쩌면 가까운 남자의 화장 1 : 립스틱 프린스최근 온스타일에서 방영된 ‘립스틱 프린스’는 화장을 아는 섹시한 남자, 일명 화섹남을 내세웠다. ‘프린스’인 남자 아이돌들이 ‘프린세스’인 여성 게스트에게 화장을 해주는 것이다. ‘프린스’, ‘프린세스’라는 단어 선택은 둘째 치고, 내 눈을 잡아끈 것은 바로 남자와 화장의 조합이었다. 아이돌뿐만 아니라 TV 속의 남자 연예인들은 모두 화장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현무는 BB크림을 발랐는데 수염이 너무 빨리 자라 턱 부분이 허옇게 뜬 것을 가지고 개그를 치고, 김구라는 라디오스타에서 기름이 너무 많이 올라온다며 파우더를 바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뷰..
0.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1 비비크림 특유의 회색기가 감도는 피부, 진한 일자 눈썹, 빠알간 입술을 한 남자가 지나간다. 자동으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마디 덧붙였다. ‘나 저런 스타일 진짜 싫어’. 친구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돌아온 말은 충격적이게도, ‘너 그거 혐오야.’였다. 띵-했다. 꽤 리버럴한 섹슈얼리티 감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온 내가 혐오자라니.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디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왜 ‘저런 스타일’이 싫은지, ‘저런’ 스타일은 도대체 어떤 스타일을 말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나는 혐오자가 맞다. 하지만 혐오인 줄 알면서도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거부감을 떨치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2 드럭스토어에 들렀다가 평소 같으면 손등에 몇..
관상에 대하여 최근 허영만의 을 읽고 있다. 처음에는 틈틈이 재미 삼아 읽던 것인데 나중에는 그 나름의 논리에 푹 빠져 버렸다. 이를테면 코는 ‘나’를 상징하는데, 그래서 코가 높고 클수록 자의식이 강하며 그렇기 때문에 서양인은 동양인에 비해 이기적이라는 논리가 있었다. 서양인이 개인주의적인 것이 큰 코 때문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어쩐지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아님에도 ‘왠지 그런 것 같아’하는 감상이 모여 관상학은 묘한 신빙성을 갖게 되었다. (물론 백 프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고, 반쯤 재미로 반쯤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별자리나 혈액형처럼.) 관상을 접하고 나서의 가장 큰 변화라면 그동안은 사람의 얼굴을 볼 때 “예쁘다”와 “못생겼다”로 평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하소설 . 토지는 외국에 얼마나 많이 알려져 있을까? 안타깝게도 토지의 번역 출간 현황은 만족스럽지 않다. 영어와 독일어, 일본어 등 5개 언어로 번역본이 나와 있으나 이조차도 5분의 1 정도가 번역돼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작년(2016년) 일본에서 드디어 토지의 첫 완전판 간행이 시작되었다. 일본 유학에 오른 뒤 그대로 정착해 1인 출판사 ‘CUON’(쿠온)을 차린 김승복 대표가 시작한 것이었다. 이미 토지 1, 2편을 출간했고 올해는 3, 4, 5편이 나올 예정이다. 김 대표는 (한강)를 비롯해 (김연수), (김애란), (김언수) 등을 한국 문학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차례차례 출간하며 일본에서 한국 문학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그는 책방 주인이기도 하다. 2015년, 160여 ..
0. 워너비 덕후들의 범람 정말이지 덕후가 넘쳐난다. SNS에서 유명 연예인이 컴백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며 ‘입덕 주의’(또는 ‘휴덕들을 소환 시킨다’)라는 코멘트를 아무렇지 않게 달고 있는 포스트를 어렵지 않게 접한다. 포털 메인에 ‘덕후 용어’를 친절히 풀어주는 기사마저 버젓이 등장하고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 어쨌거나 덕후와 그들의 흔적은 조금씩 양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돌고 돌다 너무 당연해져 신경도 안 쓸 때 쯤 법석을 떨곤 하는 지상파 tv에서만 다뤄주게 되면 예상 제목으로는 ‘덕후’를 아십니까? 라던지(..) 덕질은 숨은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덕후라고 정의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거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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