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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학교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의례가 있다. 입학식, 졸업식, 연고전... 또 하나, 청소노동자들의 시위도 추가해야겠다. 2011년에는 용역업체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있었다. 2014-2015년에는 고용승계 요구가 담긴 바람개비로 본부 앞 잔디가 뒤덮였다. 2017-2018년에는 정년퇴직자 결원 충원을 요구하며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두 달 가까이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구체적인 쟁점은 달랐으나 불합리한 노동조건과 비인간적 처우에 대한 문제제기, 더 근본적으로는 노동자의 유연성을 강제하는 비정규직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사회현상을 다루는 많은 교수들이 문제로 연구하고 강의해 온 주제다. 직제개편 과정에서 교직원들도 심각하게 직면해야 했던 주제다. 명문사립대의 학생들마저 졸업과 동시에 감당해야 할 주제다. 그럼에도 학교의 일상적인 의례처럼 모두가 무심히 지나치는 사안이 되었다. 백양로의 붉은 현수막을 지나치고, 점심시간마다 학생회관에서 열리는 집회를 지나친다. 생각은 때로 기계적인 알람처럼 떠오른다. 용역업체 소관이라며 학교는 법적 책임이 없다 하겠지, 그래도 더 싸우면 재정문제를 꺼내겠지, 그래도 더 싸우면... 생각은 여기서 멈추고 각자는 분주히 제 갈 길을 간다. 각자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싸움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캠퍼스에서도 어떤 집단은 결국 투명인간으로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 아코디언을 만들고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학내 자치언론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아코디언아직도 반복되는 청소경비 노동자 문제와 코비 컴퍼니 사태의 해결에 디딤돌이 되길 바라는 언론모임의 준말이다. “아직도 반복되는문제지만 무관심 속에 반복되는 의례로 놔두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의지가 담겼다.

 

올해 핵심 쟁점은 우리 대학 청소 업무를 계약한 용역업체 7곳 중 코비 컴퍼니’(이하 코비)라는 업체의 노사문제다. 코비는 백양누리, 4공학관, 경영관, IBS관 네 곳의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업체로, 비용 절감을 위해 하루 서너 시간의 쪼개기 노동을 강요하고, 안전장비 없이 정화조 소독까지 시키는 등 열악한 처우를 반복해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는 회사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코비에 속한 청소노동자 20여 명은 지난 7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 분회에 가입했다. 노조 가입은 민주주의 국가의 노동자가 갖는 당연한 권리임에도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행한 일들은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건장한 청년들로 구성된 감시단이 청소 상황을 조사한다며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만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이들이 청소를 끝낸 쓰레기통을 촬영하고 노동자들의 발언을 녹음했다. 4시간 업무 중 30분 휴식은 당연한 권리임에도 매시간 10분이 아닌 30분을 한꺼번에 쉬는 것도 문제를 삼았다. 강의실 4, 연구실 11곳을 다 청소한 뒤 간식을 먹으려던 여성 노동자는 등 뒤에 버티고 있던 감시단에 가슴이 서늘했다고 한다.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과 미가입 노동자들을 이간질 하는 상황이 수시로 벌어졌다. 조합원 노동자는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노동 강도를 높이고 매사에 더 예민해져야 했다.

 

현재 시위 중인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올해 12월 연세대가 코비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다. 명문대학에 걸 맞는 보다 인간적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해달라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 등록금 동결 등 여러 난제가 겹치면서 대학의 재정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만성화된 위기에 임시변통으로 대처하는 의례에 종지부를 찍고 (더 늦기 전에) 21세기 새로운 대학을 위한 초석을 제대로 다질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보다 대학의 기본을 갖추는 작업이 긴요하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회혁신, 스타트업 등 현재 우리학교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다양한 활동과 사업 역시 기본이 갖춰지지 않으면 한 철 불꽃놀이처럼 명멸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학과에 정식 직원을 두는 대신 연구에 매진해야 할 대학원생에게 변변찮은 장학금을 지급하고 행정을 위임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청소노동자를 포함해 대학의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는 캠퍼스 환경을 만드는 대신 인건비를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 하는 20세기의 셈법만 반복한다면, 혁신과 창의는 일상화된 불안과 분노에 쉽게 잠식되고 말 것이다.

 

용역업체 코비는 2017년부터 12월 한 달간 청소노동자들에게 빨간 산타 모자를 쓰게 했다. “학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사장이 직접 제안했다고 한다. 산타가 된 노동자들은 인증샷을 찍어 회사에 보내야 했다. 이마에 땀이 차 모자를 벗었던 여성 노동자는 학생들도 지나가던 복도에서 젊은 사장에게 꿀밤을 맞았다. 문제를 제기하니 사장님이 물어요. 교통신호등 빨간 불이면 서고 파란 불이면 가는 거죠? ‘라고 답하니 그럼 시키는 대로 하래요.” (1113일 아코디언이 주최한 연세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 공개 간담회에서 들은 내용) 12월 우리학교의 입찰은 노동자를 어린 아이 취급하는 업체에게 대학이 어떤 장소여야 하는가를 확실하게 상기시키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기고 조문영(문화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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