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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올해 내 신년 목표는 헬스장(혹은 피트니스 클럽) 다니는 거야

 

    새해가 밝아오면 주변에서 적지 않게 들려오는 말이다. 헬스장 혹은 피트니스 클럽, 그 명칭과 관계없이 온갖 운동 기구가 진열된 상업 시설에 주기적으로 가겠다는 다짐, 그 목표가 건강한 몸”, “보기 좋은 몸”, “단순 자기만족무엇에 있든 간에 바람직해 보인다. 피트니스 클럽은 어느새 우리의 인식 속에서 자기 계발의 장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이곳은 우리에게 우리의 몸을 보기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주겠다고까지 말한다. “살을 빼준다”, “어깨를 넓혀준다”, “근육을 길러준다무엇이든 말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는 것은 하나의 소비로 변모한다. 우리가 돈을 써서 원하는 물건을 사듯, 피트니스는 지속적으로 하는 운동보다도 돈을 주고 사는 일종의 상품에 가까워졌다. 그 안에서 우리의 몸은 고장 난 스마트폰 정도로 취급되고, 우리는 피트니스 클럽이 제공하는 애프터 서비스를 구매한다. 피트니스 클럽은 무엇을 팔고 있는가. 그 안에서 우리의 몸은 무언가.

 

1. 자기 계발하는 몸


MBC <나혼자 산다> 방송 캡처 몸을 만들기 전의 기안84는 “자기관리를 못 하는 평범한 남성” 이미지였다.

 

 

    최근 MBCTV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서 웹툰 작가 기안84가 화보를 촬영하기까지 준비한 과정이 큰 관심을 받았다. 이전의 기안84는 상을 펴기 귀찮아 바닥에서 식사하거나, 이미 라면을 끓인 냄비를 씻지 않고 재사용하는 등 자신의 느슨한 생활 스타일을 방송에 내비치었다. 그에게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은 건, 대중이 지금껏 바라본 그의 이미지가 어떠했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그랬던 그가 불과 몇 달이 채 안 되는 시간에 피트니스 강사의 지도 아래서 근육이 선명하게 보이는 몸을 만들고 패션 화보를 촬영했다. 그러자 기안의 환골탈태따위의 제목이 붙은 방송 영상과 사진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혼자산다> 방송 장면 캡처



 

유튜브 <〔주간예능연구소〕기안84 화보촬영! 기가 막힌 턱선과 복근 – MBC 예능핫코너 #71> 댓글 캡처


 

    기안84의 성공적인(?) 몸만들기를 기점 삼아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180도 바뀌었다. ‘자기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하던 웃긴 인간이었던 그의 자리를 노력해서 멋진 모습을 쟁취해낸 사람의 이미지가 완전히 꿰찼다. 놀라운 일이다. 단기간에 한 사람의 이미지를 이렇게까지 반전시킬 힘을 가진 것이 우리 주변에 몇이나 될까. 그 어려운 일을 피트니스는 해냈으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신들도 이를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자꾸만 속삭인다. 물론 무엇을 어찌하건 기안84가 할리우드 스타인 기안99가 될 수는 없듯, 그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이미지만 바뀐 게 아니라, 방송에서 거울을 보며 자신의 근육이 드러나는 모습에 심취해 하는 기안84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그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점도 크게 달라졌다.

 

 

 

좌측부터 개그콘서트 코너 <헬스 보이>, <헬스걸>, <라스트 헬스 보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헬스타임!”

 

    이 외침이 기억나는가이는 2007년 개그콘서트에서 방영되었던 코너 헬스보이의 시그니쳐 구호다. ‘헬스보이는 일명 개그맨 12주 몸짱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당시에 신선한 컨셉을 들고나와 큰 관심을 받았다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필자는 여전히 마지막 회차를 시청할 때가 생생하게 기억 난다이상민이상호 쌍둥이 개그맨이 갈라진 복근과 선명한 팔근육을 장착한 채 몸짱이 된 모습으로 등장하자소파에 앉아계셨던 어머니가 자기관리를 어떻게 저렇게 잘했냐정말 멋있다라 말하며 감탄사를 내지르셨다해당 코너는 몸짱 개그맨이라 불린 이승윤을 중심으로 2011년에는 헬스걸, 2015년에는 라스트 헬스보이로 3탄까지 이어졌다어느 시기든 이 코너 안의 모든 개그맨은 처음에는 관리가 필요한 몸으로 대중 앞에 섰고마지막 회차가 다가올수록 가꿔진 몸으로 변화하며 필자의 어머니를 포함한 대중에게서 자기관리에 성공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들었다신기하게도, 2019년에 회자된 기안84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부유·가난·능력·건강 따위의 상태를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만들어왔다. “네가 취업을 못하는 건 너가 학창 시절에 공부를 남들보다 안 했기 때문이야”, “네가 집이 없는 건 네가 직업을 갖지 않고 게으르게 지냈기 때문이야등 흔히 들리는, 개인에게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문장들에 위화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에 따라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술과도 같은 자기계발 담론이 보편화 되며 취미 역시 개인의 자기계발로 이어져야 한다는 문장이 자연스레 대중적인 인식 속에 들어왔다. 피트니스 클럽은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운동이라는 건전한 취미를 지니는 동시에 직관적으로 보이는 몸매를 만들어주며 탁월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홍보에 녹여냈다. 그로써,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는 개인은 자기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자신을 자기 계발하는 주체로 바라보게 된다. 피트니스 센터는 기안84를 사례와 같이 위의 내용을 종합하는 정체성을 소비자에게 팔아왔다.

 

    또한, 여기에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데에는 개인의 선천적 재능이 필요치 않다는 인식도 한몫을 해냈다. 이는 많은 전통 스포츠들과 피트니스 사이에서 큰 차이점으로 짚여온 지점이다. 쉬운 예시를 들어보자. 세계적인 무대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두는, 이를테면 축구의 박지성 선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선수 등 프로 운동선수는 아무나 쉽게 될 수는 없다. 그들이 다해낸 전심전력의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다만 그에 앞서 뛰어난 운동신경, 넓은 시야, 날카로운 판단력, 재빠른 순발력 같은 선천적인 재능이 갖춰져야만 한다. 반면, 보디빌딩을 목표로 둔 피트니스 클럽에서는 강사를 따라 꾸준히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연예인 못지않은 몸매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기정사실화 되어있다. 개인마다 그 속도는 다를 수 있어도, 꾸준함만 갖춘다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능이 배제된 맥락 위에서 개인의 몸 관리는 성실과 의지의 증거 그리고 자기 관리와 동일하게 여겨진다. ‘자기 계발’, 이 네 글자의 단어가 배드민턴, 조깅, 배구보다는 피트니스에 더 잘 어울려보이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글의 첫 문장에서 헬스장이 다른 스포츠를 위한 시설들보다 잘 어울려 보이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2. 수선해야만 하는 몸

 

    피트니스는 보기 좋은 근육질 몸매를 만드는 것, 보디빌딩자체가 운동의 유일한 목적이 될 수 있는 스포츠이다. 이런 경우는 다른 어떤 스포츠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무거운 중량의 바벨로 몇 시간을 운동하고, 퍽퍽한 닭가슴살로 단백질을 섭취하고, 소위 근 손실이 난다고 일컬어지는 행위는 자제하며, 어쩔 때는 수분 음용까지 제한하는 날들을 몸을 만든다는 명목 아래서 매일같이 감수해낸다. 이렇게까지 수고스럽게 몸을 만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몸짱이라 불리는 연예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탈의했을 때 각종 매체와 SNS에서 쏟아지는 각광을 떠올려보면 그런 목적을 가지는 게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도 않는다. 기안84의 사례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이런 목표 자체를 문제시할 생각은 없다. 누구에게나 본인의 체형을 택하는 기호와 자유는 있지 않겠는가. 이를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본능(?)에 충실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본론은 이게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그런 목표가 일반적으로 변하며 이상적인 형태의 몸을 벗어나는 이외의 을 배타하는 태도도 일반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피트니스 클럽의 상술과 그에 영향을 받은 대중 인식을 연유로, 예쁜 몸을 만든다는 보디빌딩이 피트니스 클럽을 다니는 소기의 목적이 되어 거기서 벗어나는 형태의 몸은 벗어나야 하는’, ‘보기 안 좋은’, ‘극복해야 할대상으로 치부되고 있다. 피트니스 클럽 안에는 사람들 각자가 지닌 고유한 자체에 대한 존중은 없다.

 

    비만은 그 안에서 두드러지게 배척 당해온 몸이다. 본래 비만은 일정 체질량 지수 이상의 몸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비만은 건강 문제를 넘어 자기통제력 상실과 동의어가 된 지 오래다. 이렇게, 비만인의 몸은 자기통제력과 결부 지어질 뿐만 아니라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지사람들에게 쉽게 단정 지어진다. 사람에 앞서 부터 바라보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한다. 개인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배제된 라벨을 몸에 마구마구 붙여대는 격이다. 쉽게 말해, 비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음식을 많이 먹고 나태하리라는 이미지 안에 갇혀버린다. 

 

 

‘비만인’ 이미지를 지닌 유명 개그맨 넷이 모여 진행하는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 뚱뚱하면 뭐든 잘 먹을 거라는 선입견 역시 ‘비만’에 붙는 라벨이다.


    클라이맥스는 피트니스 클럽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펼쳐진다. 피트니스 클럽은 비만을 수선이 필요한 신체로 바라본다. 가장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더 자세히 들어가면, 피트니스 클럽의 입장에서 비만은 위에서 말했듯 자기통제력의 상실의 명백한 증거이며 그렇기에 그는 의지가 부족하고 게으를 것이라 단언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당장 회원권을 구매해 철저한 자기관리의 대열 위로 올라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피트니스와 자기관리 사이 관련성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피트니스 클럽은 우리 모두가 도달해야 할 신체의 정상성이라도 있는 것 마냥 군다. 이런 정상성은 남성이라면 역삼각형의 근육질 몸매, 여성이라면 날씬하며 탄탄한 몸매 등 미디어가 규정한 신체의 이상향을 향해 당연히나아가야 한다는 골격 위에 있다. 개인이 지닌 고유한 몸에 수직 관계에 있는 계급의 꼬리표를 달아 좋은 몸나쁜 몸으로 구분 짓는다. 필자가 말하는 바는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방송에도 당당히 나오는데 그럴 턱이 없다.

 

“(기안84) 평균적인 근육량과 평균보다 많은 지방량을 가진 아주 일반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TV에 나오면 안 돼. 그냥 (길거리에) 돌아다녀야 돼.”


    양치승 트레이너가 기안84의 통통한 신체를 살피며 뱉은 위 문장은 피트니스 클럽이 개인의 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명실공히 드러낸다. 그의 입장에서는 대중의 앞에 서는 방송인을 위한 나름의 선의를 가지고 말한 것이겠다만 말이다. 우리는 모든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는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피트니스 클럽에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양치승 트레이너가 길거리나 돌아다녀야 하는 몸을 저토록 쉽게 규정짓고, 방송사는 그 장면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TV 화면에 송출할 수 있던 것이 아닌가.

구글에 ‘헬스장 광고’로 검색해 나오는 이미지.



올해 1월, 스브스 뉴스에서 게시한 유튜브 영상 이렇게 개인의 몸은 피트니스 클럽에 들어서는 순간 ‘고쳐야 할’ 문제투성이로 전락한다.

 

    비만을 제외하고서라도 피트니스 클럽 안에서 여러 형태의 몸이 비정상으로 치부되어왔다. ‘좁은 어깨’, ‘볼록하게 나오지 않은 엉덩이등 국소 부위부터 마른 몸’, ‘비율이 좋지 않은 몸등 신체 전반에 대한 가치판단은 무심하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개인에게 그의 몸에는 문제가 있어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넌지시 던져지면서, 피트니스는 해결을 용이하게 해주는 차원에서 경제적 상품으로 새로이 변모한다. 이후의 과정은 뻔하다. 문제적 신체를 정상적으로 가꾸었을 때찾아오는 행복한 삶과 지불하는 대가로서의 회원권 비용 얘기가 있는 전부, 있는 그대로의 몸을 존중해주는 몹시도 당위적인 이야기는 눈을 아무리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유튜브 영상 「80년대 육체미 체육관(現.피트니스클럽)

 

 

실내 운동 장소는 지난 70년대 육체미체육관에서

헬스클럽(80년대), 스포츠센터(90년대), 피트니스센터(200년대)로 바뀌었다.

(한국경제, 2002.05.17.)


    피트니스 클럽은 처음부터 건강을 위해 조성된 시설이 아니었다. ‘피트니스 클럽’, ‘헬스장’ 등의 명칭이 익숙해지기 전에 이 시설들은 육체미 체육관’ 혹은 육체미 도장이라는 간판을 걸고 운영되었다당시 몸짱으로 유명했던 프로 보디빌더들의 사진이 내부 곳곳에 걸려있고 사람들은 육체미를 기르는즉 보디빌딩을 하는데에 전념하는 공간이었다. ‘육체미라는 단어가 건강(Fitness, Health)’으로 둔갑했다무척이나 오랜 시간에 걸쳐 피트니스 클럽은 외관에 근거해 신체를 평가하고 있었다.



3. 수선하지 못하는 몸

 

    세상에는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몸이 있다. 서울만 따져봐도, 이 안에 50,000,000이 넘는 몸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이 중 모든 몸이 피트니스 클럽에 입장할 수는 없다. 과포화 상태에 이른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피트니스 클럽은 애초부터 입장의 문턱을 높여 여러 몸을 배제 시켜왔다. 지금까지가 피트니스 클럽 안에 들어온 몸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 단락에서는 안에 들어오지 못한 의 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피트니스 클럽이 개인을 좋은 몸과 나쁜 몸으로 판별하는 동안, 그 내부에 포괄도 되지 않는 몸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위에서 피트니스를 수행하는 데에는 성실·의지·노력만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논했다. 그러나 실상은 인식과 다르다. 피트니스 트레이너는 클럽에 처음 입장한 개인과 상담을 통해 짜 맞춘 운동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그의 몸을 수선하기 위한, 이른바 피트니스 청사진이다. 바벨 스쿼트 X X 세트, 벤치 프레스 X X 세트거기에 클럽 안에서 운동을 하는 데에 필요한 신체 조건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이 청사진에는 불가결한 전제, 수선을 할 수 없는 몸에 대한 담론은 생략되어 있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초에 입장부터 할 수가 없는데, 거기까지 고려해가며 고객을 상대할 필요는 없을 터이니 말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피트니스 클럽에 입장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떠올려보자,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 피트니스 클럽 안에서 덤벨을 드는 모습을. 서울에서 헬스장을 세 번이나 옮기며 다녀본 필자에게도 본 적이 없는건 당연할뿐더러 상상도 잘 안 된다. 실제로 불과 작년까지도 장애인들이 피트니스 클럽을 이용하는 데에 차별을 받는다는 기사가 작성되었다. 피트니스 클럽에 휠체어를 탄 사람들에게 운동을 안내해주는 친절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그에 앞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길과 공간도 제대로 조성이 안 되어있다. 피트니스 클럽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그들은 비-이용자로서 취급되며 배제된 것이다. 이는 지체 장애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각 장애인, 지적 장애인 등 역시 유사한 맥락 위에 서서 피트니스 클럽에 선뜻 들어갈 수가 없다. 그 입구에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세워져 있었다.

 

    여기에는 피트니스 클럽에는 곤혹스럽지만, 본질적인 모순이 있다. 몸에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주는 해결사를 자처해온 피트니스 클럽의 논리에 따르면, 이런 고칠 수 없는 몸문제를 평생 떠안고 살아야 한다. 이렇게 피트니스 클럽의 담론에서 완전히 배제된 개인의 몸은 하나의 문제 덩어리로 환원된다. 피트니스를 통해 몸을 수선해야만, 문제를 소거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선된 몸을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대척점에 있는 수선하지 못하는 몸은 시야에서 제거해가며 좋은 몸이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피트니스 클럽에서 이들이 서 있을 자리는 사라져 간다.

 

4. 수선을 마친 몸

 

    피트니스 대회는 보디빌딩의 끝판왕들이 모여 최고를 가리는 자리이다. 국제 보디빌딩 연맹 IFBB의 피트니스 대회 사진을 보자. (아래 사진) 성별을 불문하고 하나같이 우락부락 거대한 몸집과 부위 하나하나가 보일 만큼 선명한 근육을 지닌 게 시야에 먼저 들어온다. 이들의 몸은 피트니스 클럽이 판매하는 몸만들기의 최종 결과물이다. 개인의 몸을 겉으로 훑고 비교하며 따지고 보는 피트니스 클럽의 체계에서 최상위의 자리는 이런 몸이 차지한다. 물론 제아무리 못된 강사일지라도, ‘몸을 수선해야 한다는 말을 이 정도의 큼직한 근육질 몸매를 목표로 하자는 의미로 한 건 필시 아닐 것이다. 대신, 이런 몸이야말로 피트니스 클럽의 관점에서 보면 ‘(몸의 계급상) 가장 높이 위치한 몸’, ‘수선할 문제가 전무한 몸이라는 것을 요지하고 넘어가자.

국제 보디빌딩 연맹 IFBB 피트니스 프로 리그 대회 장면. 남성 부문(좌), 여성 부문(우)


    피트니스 클럽에서 취급하는, ‘몸을 만들기위해서 하는 운동은 위 사진 속 몸을 최종 목표에 두고 달려 나가는 레이스와 같다. 그 코스 위를 밟다가 멈춘 지점이 어디냐에 따라 몸의 형상이 다를 뿐이다. 유명 운동 유튜버가 영상에서 보디빌더가 될 생각으로 운동해야 근육 돼지 되는 거고, 근육 돼지가 될 생각으로 운동해야 몸짱 되는 거고, 몸짱 될 생각으로 운동해야 잔 근육이라도 올라옵니다라 한 말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목표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목표가 피트니스 클럽의 상술 안에 공고하게 들어와, 피트니스 클럽에 들어왔다면 몸을 만드는 레이스에 참가하는 게 당연시되고 몸을 만들수록 아름답다는 관념을 씌우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군살 없는 근육질 몸매는 피트니스 클럽 안에서 사람들이 몸을 만들도록 옥죄이는 일종의 코르셋이 되었다.

 

    16세기 프랑스에서 성행한 코르셋은 여성의 허리를 지나치게 옥죄이다 보니, 뼈를 부러뜨리거나 장기의 위치를 바꾸는 부작용을 낳았다. 피트니스 클럽의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선을 마친 몸을 멋지다고 바라보는 시선과 강압 아래서 자신의 건강까지 포기해가며 몸을 만든 이들이 있다.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는 대다수의 피트니스 선수들은 단백질 합성을 촉진해 근육을 키워주는 약물인 일명 스테로이드를 주기적으로 투여한다. 올림픽에서야 약물 도핑이 부정행위로 취급되지만, 이곳에서는 참가자 모두가 공공연히 아는 비밀이다. 도핑 없이는 다른 선수들보다 근육의 크기나 모양이 덜 두드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피트니스 대회 바깥에서도 다를 바 없다. 근육질로 가득한 좋은 몸을 만들겠다는 집념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약물을 투여한 일반인은 매우 많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난 2019년 초 자신의 몸에 스테로이드를 투여했던 사람들이 그 사실을 밝히고 자신이 겪은 부작용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약투였다.

 

유튜브에 ‘약투 부작용’을 검색해보면 관련된 영상이 줄을 지어 나온다.

    “약투의 중심에 선 사람들은 대중 앞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개중 큰 관심을 받은건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겪어내야 했던 괴로움과 투여 행위에 대한 후회에 대한 허심탄회한 토로였다. 부작용은 끔찍했다. 성 기능이 퇴화하고 목소리가 변하고 우울증이 찾아오며 심장병이 발병하는 등 여느 하나 맘 편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후, 사안의 심각성을 느낀 대중은 약물의 존재를 인지하고 국내 피트니스 계가 감추고 있던 어두운 뒷면을 들춰냈다. 거대하고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하고 있던, 피트니스 클럽의 언어로는 수선할 문제가 전무한 몸은 약물로 망가지고 있었다. 몸을 만드는 레이스는 죽음의 레이스로 변한 지 오래였다.

 

    약물 투여 자체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어째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스테로이드에 손을 댔는지에 대해 말할 때, 피트니스 계와 거기서 비롯된 코르셋은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더 나아가, “약투사태는 개인이 부작용을 분명 알고 있으면서도 어떤 압박감 속에서 약물을 투여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며,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야기할 수 없다는 몸을 수선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개인을 세워놓고, ‘멋진 육체미라는 명목 아래서 개인의 몸이 망가지도록 방치한 기행은 가히 폭력적이며 무책임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각자의 몸을 뜯어 고쳐내야 이 암울한 죽음의 레이스는 끝나는가.

 

 


    19세기 말독일계 영국인이었던 오이겐 산도는 현대 보디빌딩을 창시하였다그는 당시의 보디빌더들중에서도 가장 멋진 육체미를 지닌 사람으로 손꼽히며 아름다움의 극치로써 평가 받았다많은 이들이 그를 롤모델로 삼아 보디빌딩을 위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그의 몸은 당시의 코르셋이었다.


    사진 속 그의 몸은 현대 보디빌더와는 사뭇 다르다현대 보디빌더의 몸은 울룩불룩한 근육과 그 안의 결이 하나하나 보이지만오이겐 산도는 비교적 근육의 크기가 작고 덜 선명하다시간이 흐름에 따라 피트니스 계의 코르셋은 거대하고 단단해지며 개인의 몸을 더 조여왔다.




5. 마치며

 

    인간이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춰 몸을 수선해온 역사는 깊다. 중국서 1000년이 넘게 여성의 발을 자라지 못하게 한 전족·미얀마 카렌족 여성의 목을 기다랗게 만들어 온 황동 고리·앞서 언급한 프랑스의 코르셋까지. 2020년을 맞이한 지금도 역사는 별반 다르지 않게 이어지고 있다. 지하철 내부와 도심 곳곳을 가득 장식한, 눈을 키우고 코를 높여 자신 있는 얼굴로 거듭나라는 성형외과 광고·여름을 맞이해 수영복을 입어도 부끄럽지 않을 몸매를 가꾸라는 피트니스 클럽 광고.

 

    그렇게 이어진 역사에 익숙해진 탓일까. 타고난 몸을 사회적인 시선에 맞추라는 메시지가 저토록 당돌하게 우리를 맞이하는 데에 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꾸만 돈을 써서 몸을 수선하라 하는데, 그게 타당한 이야기로 받들어진다. 도리어 몸을 수선하지 않는 자들에게 자기관리를 못 한다는 쓴소리가 돌아간다. 어떨 때는 몸의 수선이 새로운 사회적 강령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미 되어버린 지도 모르겠다.

 

    피트니스 클럽은 강령의 선봉장이다. 광고판에 내걸린 몸을 열심히 좇아가라 얘기한다. 그리고 좇는 과정을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포장한다.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런 당위만으로 외모 지향적인 역사를 끊어내기에는 역부족임을 안다. 그렇기에 필자의 글은 주제넘은 구석이 있다. 그러나 국내에만 만개 가까이 세워지며 피트니스 클럽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동안에 놓치고 있던 맹점을 짚어내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싶다.

 

    이 글은 몸매를 다지기 위해 피트니스 클럽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이들을 표적 삼아 쓰이지 않았다. 개인의 기호와 자유의사를 저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피트니스 클럽이 몸 수선소가 된 현실과 거기에서 비롯된 문제의식들을 나열해 적어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만약 당신에게 이 글이 불편했다면, 어쩌면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하고 수선한 몸만을 좋게 바라보는 인식에 길든 탓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 글이 당신을 평소에 대한 위화감과 내용에 대한 납득 그 사이 어딘가로 데려다주었기를 바란다.

 

편집위원 희 (woddlwodl2@yonsei.ac.kr)

 

참고문헌

1) 남상우, “피트니스 클럽의 사회학”,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2018)

2) 장승현, 이근모, “피트니스클럽 공간의 생산: 일상적 공간으로서 실천, 재현, 전유. 한국스포츠 사회학회지”, (2014)

3) 이윤정, 권순장, “남성의 근육 만들기와 신체 이미지”, 한국심리학회 학술대회 자료집,(2007)

4) 이소은, 김정영, 박찬경, 이성민, “몸과 관계맺기, 자기를 상상하기”, 언론과 사회, (2013)

5) 김대희, “크로스핏 피트니스 클럽의 공간특성과 운동실천 분석”,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2019)

6) 울룩불룩 멋진 근육을 선망하는 시대의 뒤안길, 한겨레 미래&과학, 2018.10.08. (http://www.hani.co.kr/arti/PRINT/864864.html)

7) 휠체어 타고 운동하면 민폐?공공체육시설 이용 차별, 세계일보, 2018.05.13. http://www.segye.com/newsView/20180513001738?OutUrl=naver

8) 주민센터 헬스장 뇌병변장애인 등록 거부, 에이블 뉴스, 2019.05.14. http://m.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13&NewsCode=001320190514115419066129

9) '나혼자산다' 기안84, '환골탈태' 화보 촬영신입회원 OT 시작, 뉴스원, 2019.12.21.http://news1.kr/articles/?3798545

10) 호텔 개설 잇따라...젊은층 중심 '인기몰이' .. 피트니스센터, 한국경제, 2002.05.17.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509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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