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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소설] 그녀가 말했다

연희관공일오비 2017. 2. 2. 00:47


그녀가 말했다. 

“난 둥근 것들이 좋아.” 

“동그라미는 완벽한 도형이지.” 

라고 말하며 나는 그녀를 끌어안아 얼굴을 부비고 그녀의 콧날에 키스했다.

“아니, 그런 결백하고 도도한 도형 말고.” 

나를 살짝 밀쳐내어 키스를 멈추고는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더니 다시 안기면서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몽실몽실한 둥근 것들... 크림이 가득 차 있지만, 한 쪽에만 차 있는 것 같이 부풀어 오른 단팥크림빵이나,  크고 복슬복슬한 삽살개가 누워서 자고 있는 모습, 그런 모습들...”

나는 나에게 안겨있는 그녀를 등부터 손바닥으로 쓸면서 그녀의 척추를 만져 내려갔다. 허리까지 내려가 그녀를 꽉 안자, 손 끝에 그녀의 툭 튀어나온 골반이 만져졌다. 그리고 그대로 내 어깨 밑에서부터 등으로 날 감싼 상태로 내 품 안에 안겨 있는 그녀의 뻗친 머리카락에 볼을 맞대었다. 스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금은 건조한 연한 갈색 머리카락에 내 볼이 닿는 느낌이 좋아 계속해서 부벼대며 눈을 감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의 발가락, 생크림을 잔뜩 올려서 구운 초콜렛 머핀이나 누군가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는 저 하늘 위의 구름 같은 것들을 말하는 거야?”

“아니, 누구나라도 좋아할 만한 귀엽고 사랑받는 것들 말고 조금 무시당하는 것들. 누군가는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거나 어딘가 결함이 명백하게 보이는 그런 것들을 떠올리고 있었어. 고양이가 발톱으로 다 뜯어놔서 부풀어버린 쿠션, 할머니의 주름 잡힌 손가락들, 몽글몽글하게 꿈틀거리는 하얗고 조그마한 구더기들....” 


그녀가 등에 있던 손을 내려 나의 허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나의 몸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고  나를 향해 깊게 쌍꺼풀이 진 눈을 크게 감았다 뜨면서 조그맣고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 그리고 너.”

그 순간 내 품에 안겨있던 그녀가 어딘가 모르게 무서워서 그녀를 안고 있던 손이 느슨하게 풀렸고 그녀와 나의 몸은 닿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옷만 바람에 날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로의 존재를 알리는 듯 했다. 그제서야 그녀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크고 날카로운 눈매, 턱과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높은 콧대, 마른 몸매를 돋보이게 만드는 툭 튀어나온 골반, 그리고 복숭아뼈. 그와 동시에 그녀의 허리에 걸쳐져 있는 나의 손가락의 살들과 그녀가 안겨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내 몸, 그 사이에 접혀있는 주름들이 보였다. 나는 주황색이었다. 


그녀가 내 이상형이라는 사실이 먹먹했다.


6시 40분. 새벽에도 꺼지지 않은 주황 가로등 불빛이 내 온 몸에 퍼져 있었다. 이 불빛이 나에게 비치는 게 싫다. 자꾸만 꿈에 나온 그녀가 아른거린다. 냉장고를 열어 물병을 꺼내면서 냉장고에서 나오는 백열등 같은 하얀 빛에 눈이 부시면서도, 긴장이 풀리면서 평온해졌다. 물을 한 잔 마시고서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찬물로 틀어놓고 내 온 몸에 발려있는 주황 불빛을 씻어냈다. 그리고 꿈에 보았던 잔상들을 생각했다. 나는 왜 그녀를 안고 있었던 손이 풀리면서 긴장이 되었을까. 그녀에게서 왜 이질감을 느꼈을까. 샤워기의 물이 따갑게 두피를 두드렸다. 물을 끄고 물기를 닦지 않은 채로 걸어 나와 식탁 의자에 앉았다. 


화장실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곡선 가득한 물기가 나는 도저히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스타벅스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506번 버스를 탔다. 다른 나날처럼 버스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으레 그런 날엔 혼자 앉는 자리만 꽉 차기 마련이었다. 맨 뒷자리와 두 명이 앉는 자리가 간간히 비어있긴 했지만 그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 여느 날처럼 나는 서서 아메리카노를 흘리지 않도록, 옆에 누군가를 치거나 옆에 누군가가 나를 칠까 조심하며 20분가량을 서서 갔다. 

내가 버스에서 자리에 앉는 것을 포기한지는 한 5년 됐다. 버스에 탄 모두를 위한 그 자리는 나를 고려하지 않은 듯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내 옆에 앉으려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내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그 자리는 나 혼자만 앉기에도 벅찼다. 모르는 사람과 여름 더운 버스 안에서 땀이 났다가 소금기만 조금 남고 증발해버린 후끈한 살을 마주치는 건 미묘하게 기분 나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순간 아무런 이유 없이 나보다도 불쾌해하는 표정과 그 표정이 담긴 공기를 읽어내는 순간에는 그보다도 더 깊은 종류의 감정의 잔향이 남았다. 분노를 느끼기보단 그들에게 격렬하게 공감했다. 나 같은 몽글몽글한 것과 마주쳤을 때 그들이 느낄 혐오감이나 추에 대한 생각이 어떤 것이고 얼마나 불쾌한지 누구보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괴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지금 내가 느끼는 자기혐오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다른 형태이다. 나는, 내가 몽글몽글한 것이어서 자괴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몽글몽글한 나를 나조차 좋아하지 못하는 것, 그러니까 지극하게 나의 취향이 몽글몽글한 것을 싫어한다는 점에서 자괴감을 느꼈다. 그게 뭐가 다르냐고? 내가 나의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과 부딪히면 달라진다. 나는 그러니까 지극히도 게으른 존재다. 나는 나를 바꾸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모습을 가졌지만 그런 나조차도 어디선가는 사랑스러운 둥근 것이기를 바라는 욕심쟁이다. 

이 모순은 극복할 수가 없다. 내가 살을 뺀다면, 이 둥글고 혐오스러운 모습은 정말 재활용도 안 되는 게 되어버린다. 나는 그게 싫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이 피하는 것이라도 누군가는 사랑해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웃기게도, 이것은 피상적으로 단지 내 존재에 관한 것이 아니다. 미와 추에 관한 나의 신념이다. 피카소의 그림이 비웃음거리가 아니라 감상할 가치가 있는 예술이라면 둥근 것들도 어디선가는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 황금비율, 사람들이 절대적인 미라고 찬양하는 황금비율도 시대마다 다르게 존재했다. 사람들은 예쁜 사람보다 매력 있는 사람을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무언가가 추를 안으면, 추는 미의 전체 질서를 관장하는 매력이 된다. 그러니까 둥근 것들, 묘하게 사람들을 찡그리게 만드는 그것들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야 한다. 절대적인 추는 없다. 추는, 누군가에겐 사랑을 받는다. 그게 내 신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신념을 지키는 일을 내가 하지 못한다는 게 절망스러웠다. 난 역시나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 모순을 끌어안으려면 그녀가 필요했다. 정말 간절하게 그녀가 필요했다. 나의 추를 매력으로 봐줄 사람, 동시에 절대적인 미를 가진 사람. 절대적인 미는 없다고 믿는 나지만, 내 취향만큼은 절대적 미를 표방했다. 이상화된 얼굴과 몸매의 비율. 취향이라니, 어찌나도 고상한 말인지. 타인의 취향은 존중해야 한다. 모든 편견과 고집, 차별은 취향이라는 말 속에 참 쉽게 녹아들어가 많은 것을 용인한다. 나는 ‘취향’ 이 단어를 가장 교묘하고 유용하게 쓰는 사람일 것이다. 취향은 사랑과 연애에서 가장 큰 자유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그녀들을 찾아왔고 몇몇과 사랑을 나누었다. 이런 몽글몽글한 나를 매력으로 봐주는 그녀들.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 안정감과 일체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랑은,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다. 나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사랑은 이렇게 사용되어 왔다. 부족한 나를 사랑해주는 완벽한 미, 곧 ‘선’과의 사랑의 태초는 예수의 사랑이다. 우리는 그의 사랑을 모방해왔다. 완벽해 보이는 미의 여신을 찾아 연애했고 그 여신은 부족한 나조차도 완벽하다고 말해주었다. 그 동력으로 나는 살아갈 수 있었다. 나의 가치는 전체 질서를 위한 ‘아름다운 추’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아름다운 추’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가정은 모두의 ‘취향’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취향이 같으면, 누구도 사랑을 하지 못한다. 완벽한 미가 있다한들, 모두가 완벽한 미를 추구한다면 어떤 사람이 부족한 사람과 사랑을 하겠는가. 그들은 나의 존재를 필요한 존재, 곧 ‘아름다운 추’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6시 40분. 해가 지면서 창문으로 황혼 빛이 사무실 책상을 덮는다. 몸이 주황색 빛에 물드는 게 싫어 블라인드를 쳤다. 옅은 주황 빛이 사라지자 하얀 백열등이 나를 안심시킨다.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 김 대리는 인터넷으로 연예 가십 기사들을 보고 있다. 힐끔 쳐다보자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이 여자, 내 스타일이란 말이지.”

꿈속의 그녀다.


이젠 왠지 더 이상 사랑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버스의 이인석 자리와 함께 사랑도 포기하고 있다.



글 소우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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