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뭐 그래 봐야 저도 일개 한남이겠지만. ‘왜 나한테 반성하라고 해~~!!!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에!!! 이 버팔로 새끼야!!’ 라고 빽빽대며 쿵쾅대지 마세요. 추하니까요. 그거 일일이 받아줄 에너지 없으니 억울하면 메일 보내세요. 답장 꼬박꼬박 보내드립니다. 에타 같은데 올려서 익명 댓글로 자위할 생각하지 마세요. 짜증 납니다. 더 이상 자신을 한심하게 만들지 마세요. 이미 충분하니까.”

- 공일오비 10<단톡밭의 한남꾼>

 

*

 

제안과 권유는 사실 질타, 야단과 그리 다르지 않다. 과거의 라는 언행이 잘못되었으니 라는 언행은 어떠한가에 대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분위기와 어조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 둘은 거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제안이나 야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한국 남성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수많은 잘못과 빻음을 지적하거나 그에 대한 대안을 제안하지 않는다. 이 글은 실제로 한국 남성들이 기존에 하지 못해온 작업을 부족하지만 직접 실천하고, 그 실천을 기록한다. 일종의 발표문이나 프레젠테이션이라 부를 수 있다.

 

한남’, ‘한국 남성이란 단어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2017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각주:1], 2018한국, 남자[각주:2] 등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포함한 제목의 책들이 출판되었고, 주요 언론은 한국 남성에 대한 특집 기사를 쏟아냈다. 본 잡지 10호에서도 [한국남성]이라는 주제로 한국 남성들의 온오프라인에서의 저열한 성차별 문화 등을 지적한 바 있다. 최근 승리 버닝썬사태와 승리-정준영 단톡방 영상 공유 사태가 공론화되면서 한국 남성의 성폭력, 강간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불법 촬영물, 대학 내의 단톡방 성폭력이나 여성품평회등 너무나 많은 문제가 한남이라는 단어와 결부된다. 과연 한국 남성의 밑바닥은 어디까지인가.

 

글을 시작하며 밝힌 것처럼 필자인 두 한국 남성은 한국 남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제안, 호통이 아닌, 한국 남성으로서 해오지 못하거나 하지 않아도 됐던 작업을 실제로 수행했다. ‘저희 이제부터는 이렇게 살고 이런 걸 해볼 거에요라는 아양 섞인 제안이 아닌, 구체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이 글은 철저히 개인적인 글이기도 하다. 독자가 아닌 필자들의 관점에 기준이 맞춰져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필자들은 동년배의 한국 남성 1인을 섭외해 3명의 한국 남성이 과거 자신이 한국 남성으로서 성장하고 양육된 경험에 대해 최대한 진솔하게 자기-인터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나아가 가족 내의 주 양육자인 필자들의 어머니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혹자에게는 자신의 과거, 어머니의 삶에 대해 물은 적이 없어 어색해하는 필자들이 낯설고, 어머니에 대한 인터뷰는 식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들은 그 작업이 한국 남성이 이제껏 못하거나 하지 않았던 작업이라 여겼고,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 판단했다. 그러니 이 글은 단순히 한국 남성의 과거나 어머니 여성의 삶에 대한 글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어머니 여성의 삶에 대해 묻는 한국 남성에 대한 글이다. 스스로가 특정 성별이라는 궤짝 안에서 어떻게 직조되어왔는지, 당신의 양육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당신은 얼마나 가까운가. 특히 이 글을 읽고 있는 한국 남성인 당신은!!


필자들은 자기 자신인 한국 남성을 이해하고자 하지만, ‘그래, 우리도 이렇게 힘들어!’라는 식의 불만을 쉽게 용인하진 않을 것이다. 필자들은 어머니 여성의 삶을 추적하고 묻지 못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를 단순한 가부장제의 조력자나 피해자로 평평하게 그리지 않을 것이다. , ‘한남 비긴즈의 개막이다. 당신의 곁에 있는 한국 남성이 주연 배우인 시나리오가 미심쩍었다면 잘 오셨다. ‘한국 남성프리퀄을 기대해주시라.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다루기 전에 주요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자. 본 글을 작성하고 게재하는 데 있어 양육자인 인터뷰 참여자들에게 아들로서가 아니라, 인터뷰 면접자와 인터뷰 참여자로서의 동의를 구하였음을 확인해 둔다.


옥수수.

1958년 충청남도의 농가에서 출생. 24살에 결혼해 슬하에 2명의 아들을 둠. 결혼 이후 배우자의 직장에 따라 옮겨 살았으며 가사노동과 양육에 전념. 30대에는 옷 장사를, 40대에는 읍사무소 사무보조 업무에 종사. 건강 정보에 관심이 많으며 매일 아침 동네 앞산을 등산 중. 마을 노래 교실, 산악회를 즐기며 건강을 챙기는 중.

도토리. 

1965년 경상도의 소도시에 출생. 25살에 결혼해 슬하에 3형제를 둠결혼 이전부터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해 작은 옷 가게에서 시작해여러 종류의 자영업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냄인테리어나 소품 등에 관심이 많은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함현재는 골프 연습에 매진하는 동시에 종종 여행을 다니며 지내는 중.


보리.

1994년 경기도 도농복합도시(?) 출생늦둥이로 태어난 탓에 형과는 유대감이 적었고어머니 옥수수에게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받음어려서부터 줏대가 없어 남이 하자고 꼬시는 걸 해왔고정치외교일본을 공부하다가 정당(녹색당활동에 발을 담금현재는 연희관 B015에 기거하며 한 치 앞도 모르는 고민을 써대고 있음.

잣. 
1994년 도토리의 고향에서 3형제 중 둘째로 출생한 도토리의 아들. 그림과 책을 좋아하며 말 잘 듣고 눈치 빠르던 잣은 고민과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함. 현재는 사회학과 인류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졸업을 코앞에 둠. 신랄하지만 울림 있는 글쟁이로 벌어먹으며, 까칠하지만 따뜻한 사람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드문드문 이어가고 있음.
 콩.

1994년 가을 어느 늦은 밤 출생. 2형제 중 둘째로 항구 도시와 시골을 전전하다 서울에 상경동물과 자연책을 좋아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침잠함졸업을 앞두고 교직 이수에 정진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음학부 시절의 생각과 고민들을 삶의 현장에 녹여내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나상은 술자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함.

 


 

 

 

 

 

 

 

 

 

 

 

 

 

 

 

 

 

 

 

 

 

 

 

 

 

 

 

 

 

 

 

 

 

 

 

 

 

 

 

 

 

응애!

 

 

 

 

 

 

 

 

 

 

 

 

 

 

 

 

 

 

 

 

 

 

 

 

 

 

 

 

 

 

 

 

 

 

 

 

 

 

 


Q. 어린 시절 양육자에게 남자답게혹은 남자애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컸나요? 가족 내에서 이뤄진 에 대한 교육은 어떠했나요?

 

보리: “남자니까 이래선 안 된다라기보다는 남자니까 저 애 마음대로 하면 되지”, 이런 식의 아이디어를 더 많이 받아온 게 아니었나 싶어. “밤늦게까지 놀면 안 돼라는 이야기를 남자한테는 하지 않고, 너는 남자니까 좀 늦게 들어와도 되고, 밖에서 많이 뛰어놀아야 좋고. 게임 좀 해도 되고, 이렇게 허락하는 식으로 많이 커왔던 것 같아. 가사노동도 마찬가지고.

 

: 명절에는 그런 게 확실히 느껴지는 게 있지. 돌이켜 보면 내가 하려고 하면은 아휴, 그런걸 뭐 하러 해, 남자가 뭐 하러 해혹은 아휴 기특하네, 남자가 이런 것도 하고”. 뭐 이런? 여자에겐 이런 말 전혀 안 하니까. 여자는 오히려 하는 게 당연하고.

 

: 나한테 직접적으로 뭐가 있었다기보다는, 주 양육자인 엄마랑 아빠의 역할분담이 가시적으로 보이니까. 우리 집은 두 분 다 엄청 오랜 기간 계속 일을 하셨고. 주로 자영업을 하셨는데.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주도적으로 끌고 가신다고 생각했지. 근데 내가 한 스물셋, 넷 돼서야 알게 된 거야. 사실은 엄마가 학원을 시작했고, 아빠가 숟가락만 얹은 거라는 걸. 20 몇 년 동안 전혀 몰랐거든? 근데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의 분담은 완전히 뭐 거의 95:5? 9:1?


(중략) 나는 남중 남고를 나와서 초등학교 이후에는 아예 성별 분리가 아주 원천적으로 됐고. 그래서 아예 여성들을 만날 일이 없었어. 근데 인상 깊었던 기억이 옛날에 우리 가족이 모여서 봉준호의 마더를 봤어.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서. 근데 아무도 그게 청불이라는 걸 인지를 못 한 거야. 집에 와서 틀었는데, 내 동생은 그때 초등학생이었거든. 내가 중학생이고, 형이 고등학생이었으니까. 마더에 보면 진구가 청소년과 섹스를 하는 신이 있는데. 그 장면이 딱 나오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엄마가 바로 끄라고. 끄라고 하고는 다 방으로 들어가서 자라고

 

: 나는 중학생이었나, 초등학생이었나 영화 실미도를 우리 가족이랑 동네 형들이 같이 볼 일이 있었는데, 거기도 성폭행하는 장면이 나오거든. 근데 그 장면 나올 때, 갑자기 아빠가 잠깐 나갔다 오라고. 이렇다 보니 남성들이 자연스레 야동을 통해서 성문화를 접하는 것 같아. 그게 굉장히 체화되는 거니까 왜곡된 성인식을 만드는 게 있는 거 같고. 어쨌든 성을 터부시하는 문화?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봤을 때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전무하니까.

 

보리: 난 중학교 때 포르노를 내가 보고 있는 걸 어머님이 보신 적이 있는데, 그냥 약간 쉬쉬하고 그럴 수 있지, 남자애가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 분명히 알아. 엄마가 내가 봤다는 걸 알아. 근데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문을 닫고 나가는 거야. 그러려니...?

 

: 나는 처음에 야동이나 포르노를 어떻게 접했냐면, 나보다 세 살 많은 형이 있어. 형이 숨겨놓은 거를 발견한 거지. (중략) 집에 컴퓨터 고치는 수리기사가 왔어. 컴퓨터를 고치다가 갑자기 엄마를 불러 가지고, 음흉한 표정으로 실실 쪼개면서 아니 근데 여기 집에 애가 쟤밖에 없어요?” 이러는 거야. 날 가리키면서. 근데 내가 그때 중학교 1학년인가 그랬거든? 그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좀 어렸나 봐. 그러니까 엄마가, 얘 말고 세 살 많은 형 있다고 하니까, 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아휴 뭐 그럼 그렇지”, 뭐 이러더라고.

 

보리 : “남자애들은 좀 막 커도 된다와 같은 부류의 생각들이 분명히 있었던 거 같아.

 

: 우리 고등학교 때 이상한 선생이 한 명 있었는데 (중략) 벌을 준다고 애들 성기를 잡는 거야. 그걸 세게 잡으면 아프잖아. 그걸 벌이랍시고 애들이 숙제 안 해오거나 말을 안 들으면 장난식으로 그랬어. 남자아이들에게 성이 되게 묘하게 남자들인 너네들은 이런 거 별로 거리낌 없이 얘기해도 돼, 되게 터부시되는 게 동시에 있었던 거 같아.

 

 



Q. 당신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나요? 양육에 있어 아버지의 비중 등은 어느 정도였나요?

 

보리 : 지금 20대를 이루고 있는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 남성이 양육의 역할을 거의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오히려? 거의 아무 역할을 안 하지 않았나?

 

입을 모아 : 가사노동 아빠가 분담률 진짜 극. 1% 본다 우리 집은. 우리 집도 거의 비슷함. 우리 집은 점점 늘고 있는데, 좀 많이 넣어주면 한 5%? 우리 집도 아빠가 청소 빼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보리 : 가끔은 스톡홀름 신드롬 생각을 하게 되는데 (중략) 엄마가 지금 너희 아빠는 많이 나아진 거다”, 이런 말 진짜 많이 하시거든? 니 아빠 옛날엔 이랬는데 요새는 많이 다정해진 거야, 이런 얘기? 전에는 아빠 학교 갈 때마다 매일 도시락을 싸줬대.

 

: 아빠랑 친해? 엄마랑 친해?”하면 아빠랑 더 친했거든. 근데 그런 사람이 반에 한두 명 밖에 없더라구. 그것도 신기했어.

 

: 우리 삼형제한테 아빠가 엄청 나이스하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중략) 반대로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가 좋은 역할만 하려고 했던 거 같아. 룰을 만들고 그거에 대해서 언급하고 룰을 아들들한테 계속 얘기하는 건 다 엄마 역할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우리한테 엄마는 화내는 사람, 혼내는 사람이 된 거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부 사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돼.



*

 

남자들은 원래 그러고 크는 거야’, ‘역시 남자 새끼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과거 교육, 양육, 성장 경험에 대해 나누는 자리에서 3명의 한국 남성은 위와 같은 문장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나 페미니즘, 성인지 교육, 차별적이거나 혐오적이지 않은 양육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한국 남성으로 길러졌다. 학교 선생은 교육의 일환으로 남자아이들의 성기를 때렸고, 가족 내에서는 성이나 남성성에 대한 교육이 등한시됐다. ‘소년들에게 아버지는 아주 무섭거나, 아주 비겁한 존재일 때가 태반이었으며, 상당수의 어머니는 독박육아와 집안의 돈줄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과도한 무게에 삶을 짓눌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경험은 새로웠다. 3명의 한국 남성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시간과 경로를 통과해 그 자리에 도착했다. 그 시간과 경로를 말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적당히 보호하려 들거나,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뱉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고민만 이어가는 일과 부족하지만 어쨌든 발화하는 작업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던져진 말들 속의 검은색 자국에서 새로운 균열을 찾아내고, 출구를 만드는 과정은 그 차이에서 가능하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남성성을 고민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에게 위의 대화와 비슷한 경험을 권유한다. 당신에게 위의 3명 같은 친구가 없다면 메일로 연락해도 좋다. 만나서 어떤 이상한 인간인지 구경할 생각이라면 아쉽게도 사절이다.

 

 

 

Q. 당신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경험을 어떠셨나요? 임신은 계획적이었는지,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배우자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등이 궁금해요.


도토리: 3명 모두 계획을 전혀 못 했고.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 애가 안 들어섰어. 안 생겨가지고 오히려 (형아는) 생기기를 많이 바랬고 계획은 없었고. 그때는 결혼과 동시에 애가 생기는 거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양육 이런 거에 대한 생각도 전혀 없었고 굉장히. (그때는) 무계획이 계획이었어.


옥수수: 둘 다 계획은 못했어. 왜 그러냐면하는 사람은 했을 텐데, 엄마는 아빠가 일단 바깥으로 많이 돌으니까. 엄마도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자랐고, 지금 여자들처럼 똑똑하질 못한 거야. 그때는. 언제 하면 언제 임신이 된다, 이런 성교육이 없었어. 엄마 학교 다닐 때에는, 그런 성교육을 못 받아가지고... 계획 임신 이런 걸 생각을 못 했어.


그래도 너네들은 임신했을 때 엄마가 입덧을 심하게 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임신했을 때도 아빠는 맨날 뭐 친구 만나느라 12시였었지. 너 때는 막 여름에 쪄 죽어. 아후 더워가꼬. 그때는 지금처럼 매스컴에서 이런 건강에 대한 상식, 다이어트에 대한 상식 이런 게 별로 안 나왔어, 테레비서. 그래 가꼬서는 맨날 냉면 육수에다 냉면만 말아 먹은 거야. 더워가꼬. 그래서 너네들이 다 약한 것 같애...

 

도토리: 임신을 했을 때는 엄마가 기다렸던 임신이니까 엄마는 처음에는 굉장히 좋았지. (중략) 너 같은 경우는 예정일보다 한 15일 더 늦어졌어. 그래서 가서 유도분만을 했지. 유도분만을 해서 형 할 때보다는 좀 더 쉬웠는데. 그 출산을 할 당시의 고통이라는 건은 그냥 면도칼로 뱃속을 가르는, 뱃속을 면도칼이 시속 몇 킬로로 왔다갔다해. 진짜 한 백 킬로 이상으로 면도칼이 면도칼이 왔다갔다해. 이 통증이라는 거는 상상을 못해. 그 때 그 순간 그 있잖아. 후회스러움. ~~ 여자라서 너무 힘든 거. 진짜 그래 진짜 그 정도라.

 

옥수수: 형아 낳고... 한 두세 살쯤에 바로 임신이 또 됐어. 그때 왜 그랬냐면은, 지금처럼 아빠랑 대화가 없었어. 저렇게 맨날 바깥으로만 가니까. 어떻게 길러야 되겠다는 그런 대화도 없지. 지금은 자상한 거야 아빠가. 그때는 1365일이면 360일 술을 먹고 맨날 12시에 들어오니까, 얘기할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엄마 혼자 가서, 낙태를 시키고 온 거야. 지금은 엄마가 겁이 많은데, 그때만 해도 겁이 없었어. 어떻게 가서 혼자 했는지. 아마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 같애. 그래가 그때는 엄마가 아파가꼬 막 약을 먹었었어. 아빠한테 스트레스를 받아가꼬, 소화가 안되니까 막 위장약 같은 걸 먹었어 많이. 그래가꼬서는 임신은 됐는데 그런 약을 또 모르고 먹은 거야. 그러니까는 또 애가 기형아 나올까봐 그런 걱정 때문에도. 계획임신을 했으면 그런 약 같은 것도 일체 안 먹었을 텐데.

 

(중략) 너를 임신했을 때에도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맨날 스트레스 받고 그러니까, 소화가 안 돼서 위장약을 많이 먹었어. 위장약을 많이 먹어서 떼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 하니까, 아빠가 어휴 그렇게 신경 쓸 것 같으면 가서 지우라고 하더라고. 근데 가서 의사랑 상담을 하니까, 그런 약 먹었다고 해서 꼭 기형아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반반이라고 그래서. 남들한테 물어보니까 그래도 늦게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구. 그래서 낳은 거지. 너 임신했을 때도 아빠는 맨날 뭐, 12시였었지. 전혀 도와주는 것도 없고 그랬었어.


도토리: 형아를 1026일에 놓고 그 다음 해 7월 쯤에 애가 생긴 거야. 생겼는데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으니까 너무 부담스러웠던 거야. 형아를 낳아서 채 두 달도 못 키우고 할머니 집에 맡겼을 때거든. 갓난 애기 때 할머니 집에 맡기고 주말에 데리러 와서 토요일, 일요일 우리가 데리고 있다가 또 일요일 저녁에 데려다 주는 상탠데 임신이 된 거야. 굉장히 악조건이잖아? 계획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긴 거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중절을 했어. 그 당시에는 중절을 할 수밖에 없었어.


Q. 아들을 양육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남자답게또는 남자 애는이라는 말을 사용하신 적이 있었는지, 어떤 걸 걱정하고 신경 쓰시면서 아들을 양육하셨나요?


도토리: 당연하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했지. 아무래도 형아는 장난감도 조금 더 동적으로 지가 좋아하기도 했고. 근데 잣 너 같은 경우는 아가 때 좀 더 예뻤어. 예뻐서 엄마가 형아는 좀 더 남자답게 키우고 싶어 했는데. 너는 이게 애기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크레파스를 좋아하고, 그래서 이게 옷 같은 것도 너는 좀 더 칼라를 주고 이랬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 내면에 보상 심리 같은 게 있었을 수도 있어. (중략) 엄마가 할머니한테 그거를 거의 듣고 살았으니까. 너는 여자니까 일을 해야 돼. 너는 여자니까 대학 못 가. 너는 여자니까 희생해야 해. 너는 우리 집 기둥, 살림밑천이야 그런 거 있잖아. 엄마가 그렇게 대접을 못 받았기 때문에.


(중략) 그나마 남자애들은 그래도 우산도 남자가 우선이고, 크레파스도 우선이고, 피리도 우선이고. 엄마는 학교 다닐 때 피리도 못 샀어. 안 사줘. 그래가 외삼촌이 안 가지고 가는 날 가지고 가고. 피리를 우대 가지고 가노 못가지고 가지. 그 정도였었어. 그 건반 같은 거도 (못 가지고 가고), (중략) 늘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너무 학대하다시피 강하게 키웠으니까. 험하게 키웠으니까. 내 자식은 그렇게 안 키워야지. 내 자식은 어디가도 대접받게 키워야지 하는 생각이 엄마 머리에 남아있었던 거 같애. 그게 딸이었어도 엄마는 또 그렇게 키우지 않았겠나 싶어. 딸이었더라도 좀 더 이렇게 내가 희생을 함으로 얘들이 좀 더 대우받는 게 되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그렇게 자꾸 이렇게... (그런데 그게) 오히려 나쁜 습관을 들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옥수수: 신기한 게, 00(보리의 사촌누나)이 같은 애들은 맨날 고기만 먹고 비계만 먹는 거야. 근데 너네들은 입이 짧았어. 우유도 막 200을 못 먹고. 안 먹더라고. 너도 그렇고 형아도 그렇고 태어날 때부터. 근데 걔네들은 막 비계도 잘 먹는 거야. 막 비계만 먹고 그랬어 00이는. (중략) 어렸을 때는 네가 활달하고 그러니까 남자답게 길러야 된다는 생각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 활달하고 잘 하니까. 근데 그게 인제 고기 안 먹으면서 그 성격이 없어질 까봐 걱정을 한 거지. 그래두 그냥 그때는 또 씩씩했으니까, 너무 발발거리고 튼튼하고 뛰어놀고 막 하니까. 잘 크고 있는 거지 (싶었지).


(중략) 엄마는 너가 결혼은 했으면 좋겠어. 늙어서 아프거나 그랬을 때도, 그래도 서로 배우자가 챙겨주고 그러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봐서. 그래서 여자를 너무 배우고 똑똑하고 막 그런 여자보다는 차라리 좀 없는 집에서 좀 그런 사람이 더 낫지 않나. 배우자로서는 연애상대 말고. 배우자로서는 그런 상대가 낫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 엄마들끼리는. 서로 자기 고집만 부리면은 안 되고 그런 사람을 결혼상대로 했으면 좋겠다 이거지. 너도 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그 사람도. 그렇다고 네가 무조건적으로 그렇게 다 하면 안 된다 이거지 엄마는. 여자가 우선 그렇게 내조, 내조 아닌 그런 게 있어야 된다 이거지. 좀 옛날 사람인가? ?

 

도토리: 학교에서 너들 초등학교 때 시청각실 이런데서 프로그램이 있다고 공문이 와 그러면 아 다행이다라는 생각들. 오히려 성교육 같은 그런 것들을 조금씩 시켜주는 게 도움이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았지. 이렇게 남자애니까 오히려 아빠한테 책임 전가를 많이 시켰지. 남자애들이니까 당신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얘기를 해라.


옥수수: 성교육 좀 시켜야 된다, 시켰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했지. 근데 아들이라 그런지 그런 건 별로 안한 것 같아. 딸이었으면 조금 했는데. 엄마는 옛날부터 남자는 좀 막 자라도 되구, 여자들은 그 순결을 지켜야 된다는... 그런 거가 배어 있어. 남자들은 막 커도 된다는 게 있어서. 딸 같으면 늦게 들어오고 그러면, 일찍 오라고 밤에 어디가 외박하지 말라고 교육도 시키고 했겠지.

 

 







Q. 당신에게 남편은 무엇이었나요? 가족 내에서 그는 무엇을 했는지 등에 대해 나눠주세요.

 

옥수수 : 그때는 1365일이면 360일 술을 먹고 맨날 12시에 들어오니까. 전혀 도와주는 것도 없고 그랬었어. 그게 아빠는 맨날 12시에 와버리니까. 형아가 12시까지 1시까지 게임을 해도 모르는 거지.


(성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다) 성교육을 하는 집도 있을 거야. 근데 우리는 가정에서 아빠나 나나 뭐 이렇게 가족끼리 그런 대화가 나누어지는 거는 아닌 것 같애. 아빠는 관심이 없고. 지들 일 지들이 알아서 하니까 아빠는 내버려 놔두라야. 아빠랑도 몇 번 뭐 그런 얘기 인저 얘기할까 그러면 아빠는 내버려 놔두라고.


도토리 : 너희 아버지는 고집이 정말 세. 막내 아들이라 그런지. 너네 할머니도 어릴 때 니네 아빠가 얼마나 고집이 센지 얘기를 많이 해줬어. 심지어 할머니가 엄마 결혼할 때 니가 앞으로 고생이 많겠다라고 . 너네 아빠는 최근에는 좀 낫지만 엄마가 밥상도 다 차려야 밥을 먹고, 빨래고 설거지고 안 시키면 전혀 안 하고. 요새도 맨날 그래그래 해줄게라고 하는데 그 해줄게가 말이 (안 되지). 담배 같은 경우도. 엄마가 담배 냄새 맡으면 머리 아프고 토할 것 같다는 걸 30년 동안 얘기 했는데 안 끊어 그 자존심 때문에.

 

 

 

 

 

 

 


 

*

 

여자니까 희생해야 했던이들이 있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너는 우리 집 살림 밑천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했고, 집에서 살림만 하다 시집을 가면 그 집 귀신이 되어 죽으라는 이야기를 듣던 이들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이들보다 두 배 이상의 삶을 여성으로 살아온 그들은 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마치 체념을 넘어 체화해버린 듯.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한국 남성을 키웠던 양육자들과의 인터뷰는 그저 아들과 배우자 관계에 좁게 국한되지 않고 그들의 삶 전반으로 넓어졌다.

 

어머니아들이 자신이 받지 못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살기 바라고, 여성이기에 자신이 받은 차별과 억압을 남성인 아들은 받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아들만 둔 2명의 인터뷰 참여자는 아들과의 대화를 한편으론 반가워하면서 또 한편으론 어색해했다. ‘어머니아들의 관계는 귀하게 큰 아들이 잘 커서 어머니의 부르튼 발을 닦아드리는, 아 아니, 잠깐만... 닦아드리는 며느리를 데려와 대리 효도하는 식으로만 사유 되곤 한다. ‘한국 남성이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 중 하나는 어머니이며, 어머니에 대한 사유는 한국 남성이 여성을 사유하는 바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응석 부리는 아들에서 든든한 아들로 성장하는 한국 남성’, 나아가 모자 관계는 효도나 애정이 아닌 분명한 문제의식으로 다시 쓰여야 한다. 당신이 한국 남성이라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어머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이 글을 통해 그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동시에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저렇게나 쥐뿔도 모르는 한국 남성들도 순진하게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나라고 못 할쏘냐 하고 말이다. 어머니와의 대화, 여성을 향한 당신의 질문을 응원한다



한국 남성을 주춧돌 삼아, 다른 삶의 조각으로

 

대부분의 한국 남성은 여성에 의해 양육됐다. 많은 여성은 한국 남성을 양육했다. 지레 겁을 먹은 채 반복해 경고하지만, 앞서 두 문장은 한국 남성에 대한 수많은 문제 제기를 어머니 여성 속으로 욱여넣어 정당화하지 않는다. 양육자로서의 여성은 아들인 한국 남성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엄마아들을 그따위로 키웠으니 한국 남성인 저 치가 그 모양, 그 꼴이란 말은 온전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한국 남성이라는 말을 통과해 포착하고자 한 여성의 삶은 섣부른 판단과 평가나 책임 같은 단어 앞에 놓이기 이전 그것 그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한국 남성을 양육했다는 사실을 잠시 그대로 둔 채로. 수많은 차별과 폭력, 고된 시간을 겪어내며 살아온 존재, 여성이며 가난의 당사자이며 끊임없이 평가 절하되어 온 존재로서의 그 삶은 존귀하다. 그러니 미리 정답을 정한 채 단죄와 비난의 갈고리를 걸기 전 그 삶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 당신의 엄마, 당신의 배우자, 당신의 언니이자, 고모이자, 이모, 할머니의 삶이 자아낸 조각조각을 천천히 주워, 조금씩 깁는 작업에 동참해주기를 요청한다.

 

조소 혹은 성찰. 그사이의 단절된 이야기 속에서 많은 소년한국 남성이 된다. 그러나 그 수많은 조롱과 지적들을 잠시 보류한 채 소년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분명 유효하다. ‘소년에게는 우유 박스가 너무 무거웠다는 말보다는 좀 더 진지하고 면밀하게 말이다. 글을 시작하며 밝힌 것처럼 이 글은 앞으로 한국 남성에 대한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지 않는다. 제안이 아닌 손에 잡히는 실제 작업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려는 글이다. 이미 누더기가 되어버린 단어 한국 남성이 가진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골머리를 썩이지 않고 한국 남성이라는 단어를 도구로 쥔 채 당장 가능한 작업을 직접 수행하려 애썼다. ‘우리끼리 둘러앉아 추억이나 옛날 썰몇 조각을 꺼내는 농담 따먹기로는 그 작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이 글은 양육이나 돌봄 등의 연결고리를 빌려 어머니 여성을 마주한다. 어머니와 한국 남성은 아들과 양육자, 남편과 배우자라는 역학으로 인해 많은 경우 단절된다. 대부분의 여성에게 한국 남성의 서사는 여성과 가장 먼 어느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에게 성교육이나 남성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 익숙한 한국 남성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추측이 그 단절을 뒷받침한다.

 

이 글은 제안과 고민에 사로잡혀 끙끙 대기만 하던 한남들이 시도한, 일종의 지치지 않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결국 남성이 페미니즘과 젠더,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하는 일은 타자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자신의 이야기로 끌고 오기 위해, 필자들은 한국 남성인 필자 자신들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에 더해 부족하지만 한국 남성을 주춧돌 삼아 다른 서사에 가닿으려 노력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이 작업은 가소로울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씩 이름을 붙여 갈 작업들을 궁리하고 직접 몸으로 옮기는 이전의 작업을 통해 다음의 작업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오늘 당신 앞에서 한국 남성 프리퀄, 한국 남성 비긴즈가 개봉했다. 당신의 감상평을 궁금해하며, 이 글과 이 작업이 당신에게 조금의 흔적이라도 남기길 조심스레 희망한다.


편집위원 나루(qeq0822@gmail.com), 재찬(paperlifer@naver.com)


  1. 권김현영 엮음,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교양인, 2017 [본문으로]
  2. 최태섭, 「한국, 남자」, 은행나무, 2018.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