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뭐 그래 봐야 저도 일개 한남이겠지만. ‘왜 나한테 반성하라고 해~~!!!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에!!! 이 버팔로 새끼야!!’ 라고 빽빽대며 쿵쾅대지 마세요. 추하니까요. 그거 일일이 받아줄 에너지 없으니 억울하면 메일 보내세요. 답장 꼬박꼬박 보내드립니다. 에타 같은데 올려서 익명 댓글로 자위할 생각하지 마세요. 짜증 납니다. 더 이상 자신을 한심하게 만들지 마세요. 이미 충분하니까.”
- 공일오비 10호 <단톡밭의 한남꾼> 中
*
제안과 권유는 사실 질타, 야단과 그리 다르지 않다. 과거의 ‘가’라는 언행이 잘못되었으니 ‘나’라는 언행은 어떠한가에 대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분위기와 어조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 둘은 거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제안이나 야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한국 남성’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수많은 잘못과 ‘빻음‘을 지적하거나 그에 대한 대안을 제안하지 않는다. 이 글은 실제로 한국 남성들이 기존에 하지 못해온 작업을 부족하지만 직접 실천하고, 그 실천을 기록한다. 일종의 발표문이나 프레젠테이션이라 부를 수 있다.
‘한남’, ‘한국 남성’이란 단어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2017년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1, 2018년 『한국, 남자』 2 등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포함한 제목의 책들이 출판되었고, 주요 언론은 ‘한국 남성’에 대한 특집 기사를 쏟아냈다. 본 잡지 10호에서도 [한국남성展]이라는 주제로 한국 남성들의 온・오프라인에서의 저열한 성차별 문화 등을 지적한 바 있다. 최근 승리 ‘버닝썬’ 사태와 승리-정준영 단톡방 영상 공유 사태가 공론화되면서 한국 남성의 성폭력, 강간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불법 촬영물, 대학 내의 단톡방 성폭력이나 ‘여성품평회’ 등 너무나 많은 문제가 ‘한남’이라는 단어와 결부된다. 과연 ‘한국 남성’의 밑바닥은 어디까지인가.
글을 시작하며 밝힌 것처럼 필자인 두 ‘한국 남성’은 한국 남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제안, 호통이 아닌, 한국 남성으로서 해오지 못하거나 하지 않아도 됐던 작업을 실제로 수행했다. ‘저희 이제부터는 이렇게 살고 이런 걸 해볼 거에요’라는 아양 섞인 제안이 아닌, 구체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이 글은 철저히 개인적인 글이기도 하다. 독자가 아닌 필자들의 관점에 기준이 맞춰져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필자들은 동년배의 한국 남성 1인을 섭외해 3명의 ‘한국 남성’이 과거 자신이 한국 남성으로서 성장하고 양육된 경험에 대해 최대한 진솔하게 자기-인터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나아가 가족 내의 주 양육자인 필자들의 어머니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혹자에게는 자신의 과거, 어머니의 삶에 대해 물은 적이 없어 어색해하는 필자들이 낯설고, 어머니에 대한 인터뷰는 식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들은 그 작업이 ‘한국 남성’이 이제껏 못하거나 하지 않았던 작업이라 여겼고,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 판단했다. 그러니 이 글은 단순히 ‘한국 남성’의 과거나 어머니 여성의 삶에 대한 글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어머니 여성의 삶에 대해 묻는 ‘한국 남성’에 대한 글이다. 스스로가 특정 성별이라는 궤짝 안에서 어떻게 직조되어왔는지, 당신의 양육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당신은 얼마나 가까운가. 특히 이 글을 읽고 있는 한국 남성인 당신은!!
필자들은 자기 자신인 ‘한국 남성’을 이해하고자 하지만, ‘그래, 우리도 이렇게 힘들어!’라는 식의 불만을 쉽게 용인하진 않을 것이다. 필자들은 어머니 여성의 삶을 추적하고 묻지 못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를 단순한 가부장제의 조력자나 피해자로 평평하게 그리지 않을 것이다. 자, ‘한남 비긴즈’의 개막이다. 당신의 곁에 있는 한국 남성이 주연 배우인 시나리오가 미심쩍었다면 잘 오셨다. ‘한국 남성’ 프리퀄을 기대해주시라.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다루기 전에 주요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자. 본 글을 작성하고 게재하는 데 있어 양육자인 인터뷰 참여자들에게 ‘아들’로서가 아니라, 인터뷰 면접자와 인터뷰 참여자로서의 동의를 구하였음을 확인해 둔다.
옥수수. 1958년 충청남도의 농가에서 출생. 24살에 결혼해 슬하에 2명의 아들을 둠. 결혼 이후 배우자의 직장에 따라 옮겨 살았으며 가사노동과 양육에 전념. 30대에는 옷 장사를, 40대에는 읍사무소 사무보조 업무에 종사. 건강 정보에 관심이 많으며 매일 아침 동네 앞산을 등산 중. 마을 노래 교실, 산악회를 즐기며 건강을 챙기는 중. | 도토리. 1965년 경상도의 소도시에 출생. 25살에 결혼해 슬하에 3형제를 둠. 결혼 이전부터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해 작은 옷 가게에서 시작해, 여러 종류의 자영업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냄. 인테리어나 소품 등에 관심이 많은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함. 현재는 골프 연습에 매진하는 동시에 종종 여행을 다니며 지내는 중. |
보리. 1994년 경기도 도농복합도시(?) 출생. 늦둥이로 태어난 탓에 형과는 유대감이 적었고, 어머니 옥수수에게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받음. 어려서부터 줏대가 없어 남이 하자고 꼬시는 걸 해왔고, 정치외교・일본을 공부하다가 정당(녹색당) 활동에 발을 담금. 현재는 연희관 B015에 기거하며 한 치 앞도 모르는 고민을 써대고 있음. | 잣. 1994년 도토리의 고향에서 3형제 중 둘째로 출생한 도토리의 아들. 그림과 책을 좋아하며 말 잘 듣고 눈치 빠르던 잣은 고민과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함. 현재는 사회학과 인류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졸업을 코앞에 둠. 신랄하지만 울림 있는 글쟁이로 벌어먹으며, 까칠하지만 따뜻한 사람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드문드문 이어가고 있음. | 콩. 1994년 가을 어느 늦은 밤 출생. 2형제 중 둘째로 항구 도시와 시골을 전전하다 서울에 상경. 동물과 자연, 책을 좋아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침잠함. 졸업을 앞두고 교직 이수에 정진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음. 학부 시절의 생각과 고민들을 삶의 현장에 녹여내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나, 실상은 술자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함. |
|
|
한국 남성을 주춧돌 삼아, 다른 삶의 조각으로
대부분의 ‘한국 남성’은 여성에 의해 양육됐다. 많은 여성은 ‘한국 남성’을 양육했다. 지레 겁을 먹은 채 반복해 경고하지만, 앞서 두 문장은 ‘한국 남성’에 대한 수많은 문제 제기를 어머니 여성 속으로 욱여넣어 정당화하지 않는다. 양육자로서의 여성은 아들인 ‘한국 남성’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엄마’가 ‘아들’을 그따위로 키웠으니 ‘한국 남성’인 저 치가 그 모양, 그 꼴이란 말은 온전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한국 남성’이라는 말을 통과해 포착하고자 한 여성의 삶은 섣부른 판단과 평가나 책임 같은 단어 앞에 놓이기 이전 그것 그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한국 남성’을 양육했다는 사실을 잠시 그대로 둔 채로. 수많은 차별과 폭력, 고된 시간을 겪어내며 살아온 존재, 여성이며 가난의 당사자이며 끊임없이 평가 절하되어 온 존재로서의 그 삶은 존귀하다. 그러니 미리 정답을 정한 채 단죄와 비난의 갈고리를 걸기 전 그 삶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 당신의 엄마, 당신의 배우자, 당신의 언니이자, 고모이자, 이모, 할머니의 삶이 자아낸 조각조각을 천천히 주워, 조금씩 깁는 작업에 동참해주기를 요청한다.
조소 혹은 성찰. 그사이의 단절된 이야기 속에서 많은 ‘소년’은 ‘한국 남성’이 된다. 그러나 그 수많은 조롱과 지적들을 잠시 보류한 채 ‘소년들’을,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분명 유효하다. ‘소년에게는 우유 박스가 너무 무거웠다는 말’보다는 좀 더 진지하고 면밀하게 말이다. 글을 시작하며 밝힌 것처럼 이 글은 앞으로 ‘한국 남성’에 대한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지 않는다. 제안이 아닌 손에 잡히는 실제 작업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려는 글이다. 이미 누더기가 되어버린 단어 ‘한국 남성’이 가진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골머리를 썩이지 않고 한국 남성이라는 단어를 도구로 쥔 채 당장 가능한 작업을 직접 수행하려 애썼다. ‘우리’끼리 둘러앉아 추억이나 ‘옛날 썰’ 몇 조각을 꺼내는 ‘농담 따먹기’로는 그 작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이 글은 양육이나 돌봄 등의 연결고리를 빌려 어머니 여성을 마주한다. 어머니와 한국 남성은 아들과 양육자, 남편과 배우자라는 역학으로 인해 많은 경우 단절된다. 대부분의 여성에게 ‘한국 남성’의 서사는 여성과 가장 먼 어느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에게 성교육이나 남성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 익숙한 한국 남성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추측이 그 단절을 뒷받침한다.
이 글은 제안과 고민에 사로잡혀 끙끙 대기만 하던 ‘한남’들이 시도한, 일종의 지치지 않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결국 남성이 페미니즘과 젠더,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하는 일은 타자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자신의 이야기로 끌고 오기 위해, 필자들은 ‘한국 남성’인 필자 자신들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에 더해 부족하지만 한국 남성을 주춧돌 삼아 다른 서사에 가닿으려 노력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이 작업은 가소로울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씩 이름을 붙여 갈 작업들을 궁리하고 직접 몸으로 옮기는 이전의 작업을 통해 다음의 작업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오늘 당신 앞에서 한국 남성 프리퀄, 한국 남성 비긴즈가 개봉했다. 당신의 감상평을 궁금해하며, 이 글과 이 작업이 당신에게 조금의 흔적이라도 남기길 조심스레 희망한다.
편집위원 나루(qeq0822@gmail.com), 재찬(paperlifer@naver.com)
'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여다보기] 가족 꾸리고 싶어요, 근데 그 가족 말고: 어느 K-장녀가 꿈꾸는 가족 (0) | 2020.10.06 |
---|---|
[조각조각 쓱싹쓱싹] 東方女人 (0) | 2019.09.29 |
[조각조각 쓱싹쓱싹] 내가 사랑하는 당신들, 우리가 살아가는 우울 (1) | 2019.09.27 |
[015B (10세)] 호별 베스트글로 훑어보는 역대 공일오비 (0) | 2019.03.27 |
[서사] 평범하게 사는 꿈 (0) | 2017.03.13 |
- Total
- Today
- Yesterday
- 죄많은소녀
- 몸
- 공일오비10호
- 공일오비6호
- 연희관공일오비
- 공일오비
- 코비컴퍼니
- 연희관015B
- 10호특집
- 공일오비4호
- 총여학생회
- 공일오비12호
- 퀴어
- 영화비평
- 홈리스
- 공일오비9호
- 페미니즘
- 공일오비7호
- 공일오비8호
- 연세대학교
- 여행
- 신촌
- 공일오비3호
- 너 화장 외(않)헤?
- 공일오비13호
- 책방
- 윤희에게
- 도시
- 사회과학교지
- 공일오비11호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