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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서사] 평범하게 사는 꿈

연희관공일오비 2017. 3. 13. 21:59

이미지 출처 : 뮤직비디오, <넬-청춘연가>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무서웠다. 눈을 뜨면 취업준비생이란 신분이 주는 부담감과 마주해야 하고, 오늘도 취업하지 못하면 대출이자처럼 오늘치의 자괴감, 무기력함 그리고 사람들의 눈치가 늘어날 일이 뻔하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자랑하면서도 제 앞가림하기가 가장 어려운 지금의 청년 세대는 그야말로 처연하다. 그중 내 처지가 가장 슬플 때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내 집을 마련하는 너무도 평범하고 당연하(게 보고 자라며 컸던)다고 여겼던 꿈들을 포기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 취업준비생으로 살면서 내가 아파하고 고민했던 시간의 흔적, 그 일부다.

동생 친구의 누나는 삼성에 입사했다고 한다.’ 건너 아는 07학번 선배는 오랜 취업준비 기간 끝에 현대로템에 입사했다고 한다.’ 자주 가는 미용실 실장님의 동생은 복지가 좋은 한 외국계 기업에 입사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취업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주변의 많은 취업 성공 사례를 비웃듯 올해 미취업 인구가 45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청 자료가 기사로 났다. 취업준비생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면접에 가면 심심치 않게 받는 질문은 정말 취업하기가 그렇게 어렵냐?’는 물음이고, 명절에 마주치는 가족들은 주변에서는 취업준비 얼마 안 하고 다 됐다는데 그렇게 취업 준비하는 애들이 많으냐?’고 묻는다.

카공족’, 공시족등 취업준비생을 대변하는 단어들은 많지만, 취업준비생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취업준비생이라는 독특한 계급이 안고 있는 선입견을 피하고자 자꾸 어디론가 도망가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고, 카페나 도서관으로 숨어든다. 그도 아니면 인턴이나 각종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려고 방어막을 쌓아간다. 그래서 취업준비생들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들은 취업난을 공감하지 못하고 취업준비생들을 쉽게 마주치지도 못한다.

드러나는 취업준비생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물을 때, 취업준비 중이라는 말만으로 내 처지를 설명하는 것은 어딘가 찝찝하다. 그래서 내가 어떤 직장에 어떻게 취업하기 위해 뭘 준비하고 있는지 상대가 이해할 만한 변명을 꼭 덧붙이게 된다. 자신을 취업준비생이 아닌 잠재적 취업자로 분류하기 위해서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취업준비생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상황, 취업준비생이란 신분의 유지기간이 곧 그 사람이 덜 노력하고 덜 치열하게 살아온 증거라고 여기는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취업준비생이라는 처지가 사무치게 아프다.

 

난 제법 괜찮은 사람이(). 누군가에겐 좋은 친구고 선후배고 가족구성원이(). 학생 때, 커닝 해본 적 없고, 조별 과제에서 무임승차를 한 적도 없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타인의 말과 고민을 가벼이 여긴 적도 없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내 품행을 항상 신경 썼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난 퍽 괜찮은 사람이(). 그런 내게 취업준비생이란 이름표가 붙은 후로 줄곧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러움이란 떳떳하거나 내세울 수 없는 무언가를 감추고픈 마음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죄책감과도 통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죄책감 때문에 이토록 부끄러워하는 걸까? 더는 학생이라는 면죄부를 받을 수 없는 졸업생이지만 아직 취업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학생-경제력이 있는 독립된 어른의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생애주기를 비껴갔다는 부끄러움, 취업 시장에서 팔리지 못한 낙오된 상품이 되었다는 부끄러움……. 이건 누가 나를 등 떠밀어 느낀 부끄러움이 아니다.

이 감정은 취업준비생으로서의 삶이 나의 예상에는 없던 모습이기 때문에 느끼는 당혹감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비슷한 감정을 대학 입시 때에 이미 경험했다. 어릴 때는 자신이 당연히 대학에 들어갈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대입이 다가올수록 자신이 기대했던 모습과 다른 현실에 당황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아마도 나는 이처럼 취업이 대학 졸업과 당연하게 이어지는 삶의 한 과정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취업준비생이란 신분은 머릿속으로 그렸던 생애주기에는 거의 비중이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이 모습이 너무나 어색하고 이질적이어서 자꾸 숨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왠지 내가 비정상적인 것만 같아서.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끄러움의 깊이는 깊어간다. 어쩌면 이 상황이 내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취업준비생이다. 나는 사회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이고 사회가 낳은 잘못된 불량품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많지 않다. 나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좋은 아들로 살고 싶(). 그게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범하게 일을 하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런데 평범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취업준비생의 시기를 겪으면서 내 삶은 처절하게 소박해졌다. 난 이제 내 손으로 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다. 그래서 난 오늘도 자소서를 쓴다.




글 영문09 꾸꾸(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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