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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서사] 일탈의 봄

연희관공일오비 2017. 3. 4. 16:34



일명 피냐 콜라다 송으로 유명한 Rupert Holmes‘Escape’라는 노래는 오래 사귄 여자친구에게 싫증을 느끼던 한 남자가 신문에서 한 개인 광고를 발견하는 것을 시작됩니다.

 

 If you like Pina Coladas, and getting caught in the rain

 If you’re not into yoga, if you have a half-a-brain

 If you like making love at midnight, in the dunes of the cape

 I’m the love that you’ve looked for, write to me, and escape

 

당신이 피냐콜라다를 좋아한다면, 갑자기 비를 만나는 걸 좋아한다면

요가에는 관심이 없고, 단순한 사람이라면

바닷가 언덕에서 사랑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면

저는 바로 당신이 찾던 사랑이에요. 내게 답장해줘요, 그리고 같이 떠나요

 

그래서 그는 곧바로 답장을 쓰죠. O’Malley라는 바에서 설레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기다리던 그는 마침내 운명의 여인이 다가옴을 알아챕니다. 웬걸! 뜻밖에도, 그녀는 바로 그의 오랜 연인이었어요. 그는 익숙함에 젖어 그동안 몰랐던 거에요. 오랫동안 함께해왔던 그녀가 그토록 순수하고 로맨틱한 사랑을 꿈꿔왔는지를 말이죠. 그리고 그가 찾던 사랑이 바로 옆에 있었음을.

 

제목이 ‘escape’인 것처럼, 이 노래는 보통 일탈에 대한 노래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칫 맞바람(?)이 될 수 있었지만 과감한 일탈을 통해 가슴속에 숨겨진 사랑의 원형에 대한 갈망을 되찾았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사실은 그가 잊고 있던 것을 찾았다기보다, 오랜 시간동안 그도, 그녀도, 서로 조금씩 변화한거에요. 그런데 계속 옆에 있으니까 그 사람의 변화도,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나의 변화 과정에도 무감각해진 거죠.

 

어제 칵테일 바에 갔다가 피냐 콜라다를 발견했어요. ‘파인애플 언덕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열대과일의 상큼함이 코코넛의 이국적인 향과 어우러지는 이 맛은 이 노래의 제목에서도 나오듯이, ‘일탈을 생각나게 했어요. 신촌에서의 4번째 봄을 맞이하는 것을 앞둔 시점에서,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칵테일의 베이스가 되었고, 그래서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일탈에 대한 감정이 더욱더 커졌어요.

 

참 이상하죠? 중고등학교 시절 새학기를 기념으로 새 공책을 살 때, 노트북 장만하는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참 부러웠는데, 어쩐지 새학기를 맞이하는 떨림은 10대의 그것보다 못해요. 처음에는 취업준비와 졸업 등 눈앞에 닥친 막연한 미래가 두려워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은 토익준비, 자격증, 시험 준비에 바쁜데 그동안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무엇을 한 걸까, 무서우리만치 어두운 그림자가 저를 드리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려움과 무기력함의 원인은 그런 취준이나 시험, 자격증같은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동안 변화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죠.

 

우리는 타의에 의해서도, 자의에 의해서도 변화를 요구받는 삶을 살고 있어요.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사실 변화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데, 어느 순간부터 변화라는 말은 얼마나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얼마나 더 따뜻한 사람이 되었는지, 얼마나 더 가슴시린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외면해버리고 있어요. 대신 눈에 보이는, 숫자로 환산될 수 있는 것들에 주목하죠. 특히 대학생이라는 신분에서 1학년부터 4학년으로의 변화는 얼마나 기업에 더 적합한 사람이 되었는가가 그것을 결정해요. 그래서 토익이 몇점에서 몇점으로 올랐고, 학점이 몇점 더 올랐고, 자격증은 몇개 더 취득했는지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변화죠. 이런게 변화라면, 저는 대학을 다니는 4년동안 변화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무기력하고, 두렵죠.

 

지난 3년간의 등굣길을 함께했던 백양로의 나무들은 매년 더 단단해지고 뿌리들은 그 근원을 더 뚫고 나아갔으며 여름에는 더 시원해졌을텐데 옆에 있을 때는 그걸 깨닫지 못했어요. 잘려나간 후에야 그들도 변화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곁을 떠난 게 아닐까, 미안해요.

 

사실 우리도 모두 변화하는 존재들이에요. 이제는, 변화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길 희망합니다. 저는 변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그가 그녀와 자신의 변화를 쉽게 눈치채지 못했던 것도 어쩌면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들에는 민감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가치에 대해서는 둔감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변화라는 말을 통해 옆에 있던 친구들의 취향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나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어떤 사람이 되어왔는지, 밤하늘의 달은 오늘 어떤 모양인지 발견할 때, 우리에게 더이상 일탈은 필요하지 않아요.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날마다 새롭고 익숙하지 않을테니까요.

 

올봄에는 이런변화도 발견할 수 있게 될까요?

 

 


글 편집위원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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