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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일 오후 여섯 시 경에 나는 경복궁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내 옆에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한 사람은 의경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옆 사람에게 한심하다는 말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위 나가는 사람 중에 자기가 왜 나왔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뭐 자랑이라고 과잠까지 챙겨 입고 나오느냐. 얼마 전에 한 어머니가 와서 우리 딸은 잘못이 없다, 놓아 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뭐가 잘못이 없어? 법을 어겼으니까 잘못한 거지. 고작해야 스무 살 스물한 살 돼 보이는 여자 애 더라.’ 그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이 빨개졌다. 과 점퍼에 이어 어려 보이는 여자 애까지 나오자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차마 한소리 하지는 못하고(욕하며 싸우면 어떨까, 그러다가 한 대 맞으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으로 반복 재생)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는데 신경이 쓰인 건지 내가 보이지도 않은 건지 눈길도 안 주더라. 나는 역에서 내려 친구들과 합류할 때까지 너무 슬픈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만약 건장한 체격의 20대 남성이었어도 저런 말을 바로 옆에서 들어야 했을까?

 

나는 그날 오후에 씻지도 않은 채로 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눈곱만 떼고 학교에 볼일이 있어 갔다 온 후 남은 할 일을 해치우려고 하던 차에 게으름을 피우던 중이었다. 페이스북에 접속하자 뉴스피드를 통하여 친구들이 나에게 실시간으로 민중총궐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달해주었다. 정말 뭔가 일이 날 것만 같았다. 나 빼고 모두가 세상이 나아지는 데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 또한 자기 이득 챙기기에 급급하고 국민을 기만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만 했던 정부에 화가 난 상태였는데, 무임승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어쨌든 과 사람들과 합류하기로 하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경복궁역에서 내리자 이미 정말 많은 사람이 입구부터 들어차 있었다. 광화문 광장까지 가면서,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앰프 하나를 놓고 자유 발언을 하며 그 주위를 동그랗게 감싼 사람들,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 촛불을 들고 줄지어 걷고 있는 사람들. 그 속을 뚫고 일행을 찾아 나도 광화문 광장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앞쪽 무대에서는 사람들이 발언하기도 하고,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축제 같은 분위기의 집회가 좋았다.

 

그날의 집회는 박근혜나 최순실을 비롯한 관련 사람들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인권, 노동, 빈곤 등 다방면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다. 다 같이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칠 때는 오랜만에 느끼는 모르는 사람들과의 연대감이 느껴졌다. 무대에 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같이 귀 기울여 주고, 열심히 호응해 주는 모습을 보았으며 그것에 동참했다. 각자가 서로 다른 곳에서 개인으로 존재할 때는 의견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한곳에 모여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자 더욱 소리 높여 외칠 수 있었다. 권력이 없는 개인은 집단에 속할 때 의견을 피력할 힘을 가지게 된다. 어떠한 결합이나 정치조직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박근혜를 향한 비난이 도리어 집단 내의 소수자를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연대하는 것의 중요성만을 강조하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분명 이번 촛불집회 때의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집단에 속함으로써 같이 경험했고, 목소리를 모아 권력의 상층부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표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참가자들에게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등장했던 것은 여성 혐오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간 남성 정치인들이 듣지 않아도 되었던 이래서 여성이 정치하면 안 된다, 성격처럼 얼굴도 못생겼다, 드라마나 보는 아줌마들이다.’ 등의 성차별적 발언들로 비난받았다. ‘정신병자나 다름없다, 정신병원에 쳐넣어야 한다등 장애인 혐오도 등장했다. 잘못을 한 사람들이 본질을 벗어나 이러한 비난을 받는 것은 결국 힘없는 이들이 뭉쳐 만든 집단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소수자들을 다시 한번 소외시키는 것과 같다. 박근혜와 최순실을 향한 비난이 도리어 집단 내의 사람들을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수자 혐오는 연대의 목적을 무색하게 한다. 아이러니하다. 모여서 연대하자는 집회에서 도리어 소수자를 소외시키고 혐오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혹자는 이러한 지적을 두고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고 말하며 대의를 생각한다면 작은 불편함은 묻어두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이 해일이고 무엇이 조개인지를 정하는 것도 결국 지배층이며 주류 집단이다. 자신에게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무엇이 중요한지 규정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이며 소수자이다. 그러나 분명히 이 사회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배제한다면 아무리 대의가 중요한들 그 의미는 퇴색된다. 집회를 열고 모여서 같이 구호를 외치는 이유가 바로 소외되고 힘없는 목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순실과 정유라의 외모를 서슴없이 지적하며 욕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포를 느꼈다. 나 또한 여성으로언제든지 그들 앞에서 대상으로 마구잡이로 해체되고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지하철에서 남자 의경에게 느꼈던 위협과 다를 바 없었다.




글 편집위원 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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