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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화면을 켜면, 이젠 201X가 아니라 2020이라는 새로운 숫자가 우리와 마주한다. 어릴 적 과학 시간에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무엇을 그렸던가? 우주 정거장이라든지, 바다 아래의 세상이라든지, 그런 귀여우리만치 허황한 것들을 야심 차게 그려내며 오른쪽 귀퉁이에 썼던 숫자가 바로‘2020’이었던 것 같은데. 여하튼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맞닥뜨리는 것은 사실 우리뿐만은 아니다. 우리 곁에는 현재의 모습이 완성된 지 벌써 6년 차에 이르는 공간이 있다. 신촌을 기준으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할 거리에 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대부분이 경험해보았을 이곳은 바로 송도 국제캠퍼스(이하 국캠)이다.
바다를 메운 땅, 그리고 그 위에 지어진 ‘국제’캠퍼스라니! 대입에 시달려온 학생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낭만이 넘칠 것 같고, 가슴 설렐 공간이지 않은가. 물론 놀 거리가 넘쳐나는 것으로 유명한 신촌을 잠시 잊고 이곳에서 1년(또는 반 학기)을 살아야 하지만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처음으로 가지게 된 학생들에게는 애초에 공간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힘겹게 공부한 만큼 그에 대한 보상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버리리라! 는 행복한 의지 또한 당연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필자 또한 그런 학생들의 기대와 바람과 설렘과 희망과 다짐을 무참히 저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문제를 바깥으로 내보이지 않았을 때 이후 국캠의 모습을 보며 실망을 거듭할 미래의 얼굴을 상상하기는 싫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들, 학교가 방관하고 있는 지점들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또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 시기가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더더욱 이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거세진다.
완공된 지 6년 차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갑자기 인제 와서 왜? 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 물음에서부터 이 글이 시작된다고 답할 수 있다. 글의 초반에 말한 것처럼 현재는 재학생 대부분이 송도를 경험했을 정도의 긴 시간이 지난 상태이고, 국캠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또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하지만, 국캠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은 하나가 피어나면 또 다른 하나를 피워내듯 고쳐지지 않고 있다. 고쳐지기는커녕 오히려 방치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국캠은 서울의 본 캠과는 분리되어 떨어져 있으면서 학교의 국캠 설립 의도에 따라 ‘Residential College’(이하 RC)라는 자체적인 운영시스템을 가지고 굴러가고는 있지만, 과연 그 방식이 효과적으로 신입생들에게 도움을 주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더불어 그러한 운영시스템에 매몰되어 지금 드러나고 있는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 채 같은 내용의 불만만 쌓아가고 있다.
학생들이 송도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으니 문제 해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많다. 대부분 1년이라는 짧은 시간만을 보내다가 신촌으로 이동하게 되니 국캠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심 또한 그 기간에 한정되어 있다. 당시에는 불편한 상황을 인지하더라도 잠시 머물다가 떠날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때부터 입을 열 생각조차 사라지게 된다.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문제 제기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 불편한 것들을 바깥으로 터트리는 ‘이야기’ 그 자체다. 어느 한 곳에 뭉치지 못하고 힘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공기를 부유하고 있을 뿐인 목소리가 아니라 뭉쳐진 ‘하나’가 필요하다. 이 글은 이제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할 학생사회,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책임이 큰 학교 측을 위해 써 내려가는 글이다.
#포인트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니야?
연세대 국캠의 핵심 키워드를 고르라면 당연히 ‘RC’, 그리고 그런 RC의 기반은 학생들을 수용하는 기숙사이다. 연세대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곧바로 찾을 수 있듯이 국캠은 선진 ‘정주형’ 대학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송도 국캠에 대규모 기숙사 시설을 구축했다. 1 그리고 총 12개로 나누어진 기숙사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각각의 특색을 반영한 자체적인 하우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RC 자기 주도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부여되는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학기별로 이 프로그램에 일정 시간 이상 참여해야 한다. 2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RA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회의를 거친 후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RC 교육원 자체에서 주관하는 강연이나 공연 등도 잦은 빈도로 열린다. 학생들은 여기에 참여한 뒤 포인트를 받거나 보고서를 작성해 나름의 인증시스템을 거친 뒤 학기 말에 학점을 받는다. 물론 학생들은 하우스 프로그램을 참여하도록 강요받진 않는다. 하지만 참여하지 않는다면 학점을 날리는 셈이니, 이는 학생들에게 1학년으로서 송도에서 치르고 가야 할 일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하우스 프로그램이 RC라는 특수한 형태의 대학시스템과 적절히 어우러지고 있는지가 이제 막 송도를 떠나보내게 된 필자가 던지고픈 첫 번째 질문이다. 하우스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존재하는 만큼 학생들 또한 적어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체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캠을 지나쳤던 학생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하우스 프로그램에 관하여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그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것들이 하우스 프로그램의 발전을 위해 유효한 의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의견들이 원활히 반영되고 있는지 혹자가 묻는다면 그에 대한 긍정의 답변은 쉬이 나오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우스 프로그램은 수 자체로도 다양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골라서 참여할 수 있어 큰 매력을 가진다. 실제로 RC 교육원에서 주관하는 특강 같은 경우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유명인사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보장되다 보니 학생들에게도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강연이 아닌 하우스 프로그램 그 자체의 퀄리티를 따지고 들어가 볼 때 실망스러운 감정이 들 때가 많다.
익숙한 이름으로 예를 들어보자. 지난해 국캠을 자주 오고 간 학생들에겐 눈에 익었을 하우스 프로그램, ‘애니팡’. 신청한 학생들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애니팡’의 주요한 활동 내용인데, 그 프로그램을 직접 참여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정말이지 당황스러웠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무엇인지, 오늘 본 영화에서 좋았던 장면은 무엇인지 등등. 이걸 유의미한 RC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난감할 정도의 활동지 물음을 채운 뒤 어색하게 헤어진 것이 끝이었다. 애초에 영화를 보는 것이 목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합리화를 하더라도,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서 아무 생각 없이 나오기 딱 좋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양한 학우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교우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관심사를 알아가고 타인의 관심사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설명이 좀 부끄럽지는 않은지. 3 기획 의도를 떠나서, 이런 프로그램들의 피드백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
하우스 프로그램, 그리고 이와 관련한 의견 등 글을 쓰기 위한 기초자료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함께 송도에서 지냈던 동기들을 인터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특히나 하우스 프로그램과 같이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야 하는 경우 나와 다른 의견들을 수렴하는 것 또한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호기롭게 질문지를 작성했다. 필자에게 도착한 동기들의 의견은 다양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정확했다.
“A: RC 프로그램이 충분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아무래도 프로그램마다 편차가 큰 게 문제인 것 같아. 프로그램 기획에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실제로 A는 자신이 참여했던 하우스 프로그램들을 떠올리며 위에 언급된 내용을 덧붙였다. A가 참여했던 에비슨 하우스의 ‘앰배서더’ 활동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장기간 참여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여 직접 본인들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A에게서 앰배서더 프로그램 같은 활동과는 다르게 단기 프로그램들은 너무 포인트 채우기에 급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의견을 얻을 수도 있었다.
“B: 하우스 프로그램을 돌이켜보면 유의미한 활동들도 있고, 아닌 것들도 있어. 근데 사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하우스 프로그램들보다는 RC 교육원에서 준비해주는 RC 특강들이 훨씬 더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
일전에 급하게 포인트를 채워야 했던 B는 늘 진행하는 하우스 프로그램 중 하나인 ‘독후감 제출’을 선택했다. (백양 독서 프로그램) 하지만 급한 마음에 써서 낸 독후감은 별다른 검토 없이 포인트와 맞교환되었고, B는 자신이 읽었던 책 내용 대부분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감 시간에 맞춰 빠르게 읽은 책, 빠르게 써 내려간 글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B에게서 잊혀갔다. 쉽게 내용을 잊은 학생을 탓할 게 아니다. 그만큼 학생에게 독서와 연관된 큰 의미 혹은 교훈을 줄 수 있는 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선 인터뷰에서 A가 언급했던 것처럼 B 또한 독후감을 제외하고도 하우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여럿 참여했지만, 프로그램마다 느꼈던 만족도 차이가 컸다고 말했다.
A와 B의 지적은 정확하다. 6년째 학교는 RC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에게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체계적이라는 인식을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 하우스 프로그램은 RA 학생들의 자율적인 토의 후 구성되다 보니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프로그램마다 학생들의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현상은 얼기설기 짜인 이 애매한 상황으로부터 나온 결과다.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에 따라 하우스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가 크게 차이 나는 것 또한 하우스 프로그램의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잘 잡혀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RC라는 시스템은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개념의 교육이다. 당신들의 그 RC라는 게 여타의 기숙사와 무슨 차이냐는 물음에 확신에 찬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분명 RC 하우스 프로그램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학교가 늘 말하고 홍보하듯이 RC 하우스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고 자신의 ‘관심사’를 제대로 충족시킬 흥미로운 콘텐츠와 활동들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하우스 프로그램 중 학생들을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들은 충분히 유의미한 RC 활동이 될 수 있겠지만 다른 프로그램들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수정 혹은 과감한 철회가 필요하다.
“A: (피드백이 필요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별다른 의견이 없으니까 별생각도 없는 거야. 줄 만한 의견이 없는 거지.”
기대가 사라지는 순간 바라는 것도 사라진다. 고만고만한 하우스 프로그램들을 겪어온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 있는 이유다. 관심사를 충족시켜주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빨리 끝내버리기 좋으니 아무 고민 없이 신청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목격했다.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포인트는 재깍재깍 넣어주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학생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런 프로그램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지 묻고 싶다. 그저 할당된 시간 동안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그 공간에 함께 ‘존재’만 하는 것은 그 어떤 의미도 없고 학교에서 설명하는 RC 교육의 의의와는 분명 동떨어진 것이다.
국캠은 어쨌든 학생들을 한데 모아놓는 것에 성공했다. 오히려 그렇기에 그곳은 전형적인 교육시스템에서 벗어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본이자 중심이 되어야 할 RC 프로그램을 소모적인 콘텐츠로 야금야금 채우는 현상은 학교가 추구하는 인재상, 또는 이룩하려는 교육상과 분명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학생사회는 분명, 학교가 체계적이지 못한 현 시스템을 보완하여 훨씬 명확하고 효율적인 교육환경을 제공할 의무를 지녔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학교가 그 의무를 이행하고 학생들의 목소리에 응답할 차례다.
#송도에선 그냥 놀다 가면 되는 거 아니야?
국캠의 입구에서는 정해진 곳과 정해진 시간마다 한 줄로 길게 늘어선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신촌과 송도를 오가는 학교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학생들의 열이다. 한 시간 간격으로 셔틀이 오고 가고 이틀 전 미리 버스 탑승을 위한 온라인 예약을 받지만, 붐비는 시간대에는 예약 한번 하기도 어렵다. 수강신청을 방불케 하는 경쟁률 덕에 예약에 실패한 학생들은 결국 셔틀 출발 시각보다 일찍 나와 대기 줄에 합류한다. 그마저도 버스 좌석이 가득 차면 중간에 끊기는 경우가 있어 무료인 학교 셔틀을 포기하고 유료인 광역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학생들도 종종 보인다. 인터뷰를 진행한 동기들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토로했던 불편이 이 셔틀의 이용에서 합쳐질 만큼 많은 학생이 인지하고 있는 일들이다.
국제캠퍼스와 서울캠퍼스를 연결하는 학교 셔틀버스는 꾸준히, 정말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다. 2013년에 신촌-송도를 오가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스 중 하나인 M6724편의 티켓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등 학교 측에서 캠퍼스 간의 물리적 단절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는 현재 없어진 상태다. 4 동아리나 학회 활동, 아니면 그 외의 이유로 신촌캠퍼스를 오가는 많은 학생이 한정적인 학교 셔틀에 의존하기란 쉽지 않다. 이를 의식하는지 매번 총학생회 선거기간이 되면 공약집에는 꾸준히 셔틀 증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그것마저 계획대로 실행되고 있지 않다. 5
학교가 제공하는 송도-신촌 연결 서비스인 셈인 ‘셔틀버스’에 관한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이와 관련하여 말하고자 하는 더 큰 문제는 ‘단절’에 있다. 첫 번째 불만은 캠퍼스 내부의 문제에서 터트렸다면 이번의 두 번째 불만은 캠퍼스 외부, 즉 캠퍼스 간의 연결성 문제다. 다른 대학들과는 달리 연세대는 새로 입학할 학생들을 서울이 아닌 인천으로 옮겨 교육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新) 학번과 구(舊) 학번 간의 단절이 일어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왜 이게 심각한 문제이냐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같은 학번끼리 옹기종기 지내게 되니 더 재미있지 않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끈끈한 ‘동기애’를 만들어준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절은 단순히 함께 어울리는 재미로 극복될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동아리나 학회, 아니면 신촌캠퍼스에서 진행하는 강연 등에 참여하기 위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학생의 자치활동을 존중하고 보장해야 하는 학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나 많은 학생이 열심히 왕복 두 시간 거리를 오가며 움직인다니! 국캠-서울캠의 연결은 성공했어! 하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그 모습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라는 웅덩이 속으로 점점 빠져가는 모양새라는 걸.
학생들의 이러한 모습은 곧 사그라드는 국캠의 열기를 의미한다. 학생들의 자치활동이나 자치단체는 그들이 모이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하지만 국캠에서는 그런 것들이 이뤄지기가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최근 당선된 총학 MATE는 공약 중 하나로 ‘국제 캠퍼스 학생대표위원회’ 활성화를 내세웠다. 이는 2015년 처음 발족 뒤 활동을 한 후 2017년 구성이 무산되어 조용히 사라진 위원회다. 국캠의 목소리를 대표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구마저 무산되는 이러한 현상은 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와 맥이 닿아있다. 자치활동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 학생들, 또는 관련된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국캠에 머물러있지 않는다. 그들의 시야는 훨씬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보장되고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신촌으로 움직인다.
위와 같은 문제는 학교 측의 방관으로 인해 더욱 심각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국캠을 학내 이슈나 학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상황에서 배제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학교가 아닌 학생들이 하고 있다. 신촌에서 진행하는 동아리 활동을 송도에서도 진행한다던가, 특정 이슈와 관련된 대자보나 플래카드를 게시하는 등의 활동은 모두 학생들의 몫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를 모두 자치활동으로 치환하여 ‘우리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활동에 손대지 않을 뿐이다’라는 식의 입장은 그저 변명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송도와 신촌의 단절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학생에게만 있다. 그리고 그런 극복 방식의 일종이 될 수 있는 여러 자치 활동을 하고자 하는 신입생, 또는 국캠에 있는 학생들은 신촌뿐만 아니라 송도에서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신촌으로 지속해서 유출되어 결국 국캠은 학내 공론장으로부터 동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자치활동이 국캠에서 유독 적은 이유를 학생들에게 찾아야 하는 건 아닌지 묻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애초에 국캠의 ‘정주형’ 시스템은 외국의 선진대학의 모습이 아닌 한국의 고등학교 기숙사처럼 시작되어 잡음이 많았다. 이 글을 작성하기 전 사전조사의 목적으로 이루어진 RC 교육원 행정팀과 서면 인터뷰에서, 담당자는 초기에 국캠은 단순한 기숙사가 아닌 ‘Residential College’이기에 불만 사항과 변경요청사항이 많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에 개선을 통해 RC형 기숙사로 변화해갈 수 있었다고 말을 덧붙였지만, 실제로 그러한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든다. 또한, 캠퍼스 내의 학생들을 관리하는 방식이 여전히 통제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하는 물음이 동시에 피어오른다.
일례로, 몇 달 전 공일오비에서는 지난여름에 발간된 11호를 국캠에 배포하기 위해 각 강의동에 들렀던 바가 있다. 하지만 이는 생각만큼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각 건물에 상주하고 있는 경비원분들의 말에 의하면 ‘학교에서 허락한’ 간행물만을 배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촌에서는 이렇다 할 허락을 구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언론지를 배포할 수 있었기에 공일오비의 편집위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방식으로 허락하는지 제대로 전달받지도 못한 채 보름 넘도록 책이 남아있을 경우 폐기처분 하겠다는 말을 들으며 우리는 어영부영 책들을 내려놓고 나왔다. 6
자치활동이 제대로 장려되고 있지 않은 데다가 학생들의 자율적인 활동의 결과물을 배포하는 것마저 누군가의 허락을 받은 뒤 실행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며 국캠의 ‘침묵’이 과연 학생의 탓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활발한 자치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도 모자라, 제대로 된 장려방책도 미비한 상황에서 국캠의 학생들에게 비슷한 수준의 생기 넘치는 자치활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진짜 ‘슬기로운 송도 생활’을 위해서
2019년이 모두 지나가기 딱 하루 전, 포털사이트에는 연세대학교의 새로운 계획에 관한 기사가 올라왔다. 곧 국제캠퍼스의 2단계 조성사업을 시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세브란스병원을 건립하고 첨단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을 위하여 대학원생, 박사 후 연구원 등의 연구인력을 1000여 명 이상 유치시킬 것이라는 꽤 구체적인 계획이 적혀있었다. 7 기사를 읽고 나면, 연세대학교가 인천시와 맺어나가는 협약을 바탕으로 국캠은 화려하고 멋들어진 모습으로 변화해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본문에서 숨 쉬듯이 지적했듯이 여전히 캠퍼스에 방치되고 있는 문제들이 존재함을 잊어선 안 된다. 글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아니고도 현재의 국캠은 다양한 고질병을 안고 가고 있다. 이것들이 먼저 고쳐지지 않는 이상 삐걱거리는 거대한 기업형 캠퍼스만 탄생하는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억, 소리 나는 단위의 돈이 학교와 지역사회를 오가는 동안, 정작 가장 중요한 캠퍼스의 발전과 학생사회가 방치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학교가 자본과 손을 꽉 마주 잡은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들이 내부사정을 둘러보지 않은 채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것은 그냥 넘어가선 안 될 사항이다. 캠퍼스의 규모를 늘리고 구조를 확장하는 것은 내부에 존재하는 소음을 처리하고 문제가 많은 시스템을 재정비한 뒤에 진행해도 늦지 않다.
글의 서론 부에서 2020이라는 낯선 숫자를 꺼냈었다. 이 숫자가 국캠에 의미하는 바는 분명 크다. 단순히 국캠이 지어진 지 얼마가 되었네, 를 따지는 용도가 아니다. 이제는 여타의 학교에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형식을 도입 및 정착시킨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는 시기임을 암시한다. 공간의 단절이 극대화되어 생긴 문제 많은 이원화 캠퍼스가 아니라, 단절을 새로운 방식의 연결로 승화시킬 기회를 잡아 RC 교육의 진가를 톡톡히 발휘하는 시기 말이다. “연세는 할 수 있다!”라는 뻔하고 당혹스러운 말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직접 그 공간을 경험한 학생들이 한두 마디씩 내뱉는 의견을 학교가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협박과도 같은 메시지로서 이 글을 정의해보려 한다. 앞으로 들어올 20학번의 학생들, 그리고 별일이 없는 한 비슷한 숫자로 찾아올 미래의 모든 학생이 만족하고, 충분히 의미 있는 RC 교육을 받은 후 신촌으로 넘어올 수 있는 날을 위한 쓴소리 가득한 글을 여기서 마친다.
글 편집위원 두별 (jhanstar@hanmail.net)
- 연세대학교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자 : https://www.yonsei.ac.kr/sc/ (검색 일자: 2020.03.11) [본문으로]
- 한 학기에 12점 이상을 모아 총 두 학기를 이수하면 1학점을 부여한다. 활동이 끝나고 포인트를 부여하는 형식이 아니라 보고서를 제출하는 형식의 하우스도 있다. [본문으로]
- 학부대학 RC 교육원 홈페이지 > RC 교육 > RC 교육과정 > 하우스 프로그램 https://yicrc.yonsei.ac.kr/main/ (검색 일자: 2020.03.11) [본문으로]
- 학교는 M6724 편의 무료 탑승 티켓을 학생들에게 제공했으나 이는 2015년 2학기부터 사라졌다. [본문으로]
- 셔틀버스 증차는 최근 취임한 서승환 총장의 공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연? [본문으로]
-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신촌에 배포된 책들이 모두 사라진 반면 송도에 배포된 책은 종강할 때까지 남아있었고 그 누구도 폐기처분 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 2단계 조성사업 내년 본격화」, 헤럴드경제, 2019.12.31.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91231000462 (검색 일자: 2020.03.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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