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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비평

[들여다보기] 장애의 사정

연희관공일오비 2020. 10. 6. 09:53

0. 갈림길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길을 따라 나아간다. 셀 수 없이 많은 갈림길, 그중 하나에 서 있는 우리는 정작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의 사정 하나하나를 알지 못한다. 모를 때도 있고, 알더라도 잊어버릴 때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오랜 시간 쟁여둔 무언가가 다른 이의 마음속에서도 살아있기를 바라는 건 종종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을 살아가며 나의 사정을 일일이 고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야만 하는 때에도 난처하다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 얘기를 해도 될지 고민이 되고, 나의 행동이 그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지 걱정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담긴 이 글은 나의 오래된 이야기다.

 

1. 한쪽 귀로 살아간다는 건

 

    나는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어릴 적 받은 청력 검사표에는 좌측에 0이라 기재돼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처음부터 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는지는 나 역시 알지 못한다. 청각 장애는 시각 장애나 지체 장애처럼 신체 징후가 뚜렷하지 않다. 아직 언어를 쓰지 못하는 영유아는 자신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알릴 길이 없고, 그 이전에 청각 장애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할 수 없다. 세상의 소리는 원래 한쪽에서 들린다고 생각할 테다. 게다가 모든 영유아는 시시때때로 울어대며 식욕과 배설욕을 나타내는 게 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의 전부이다. 그러니 그를 다른 어떤 사람보다 세심히 지켜보는 부모라고 해서 이 아이가 다른 아이와는 다르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세간에는 양쪽 귀가 안 들리는 영아가 말을 못 알아듣고 자꾸 엉뚱한 행동을 하자, 자폐아라고 생각하고 몇 년간 그에 맞는 치료를 시도했던 부모의 이야기도 있다. 더군다나 나는 한쪽 귀는 잘 들렸기 때문에 장애를 발견하기가 더욱더 어려웠다. 가끔가다 왼쪽의 말을 못 듣는다고 해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기에 십상이었다.

 

    예상치 못한 발견은 심심한 일상과 우연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일어난다. 식당을 운영하던 조지 크럼이 못된 손님에게 봉변을 주려다 만들어낸 감자튀김이 그러했고, 내 청각 장애 역시 그러했다. 9살쯤 됐을까. 길을 따라 청록이 우거진 동네 하천 어딘가에서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다, 오른쪽 귀로. 왼쪽 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대면 스피커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건 어린 내게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전화는 왼쪽으로 받는데, 넌 왜 오른쪽으로 받니?[각주:1] 전화를 마치니 어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야 왼쪽은 안 들리니까요.” 내가 답했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어린이의 세계 속에 장애는 없었다. 하지만 어른의 세계는 달랐다. 자식의 귀가 안 들린다니. 패닉에 휩싸인 어머니는 나를 들쳐메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 소리 없이 고요한 병원 골방에 들어가 청력검사용 헤드셋을 썼다. 이어 패드 너머에서 의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내게 헤드셋에서 어느 방향으로 소리가 나는지 맞히면 된다고 말했다. 지루했지만 간단했던 청력 검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른들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의사는 어머니를 보더니, 내 왼쪽 귀를 담당하는 청각 신경이 죽어있다고 말했다. 아니, 진단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과 생활해온 원숭이는 자신을 자신이 보고 있는 이들과 같은 사람이라 자각한다. 만일 그에게 그가 다른 종이라 알려주면, 그는 그때부터 무엇이 다른지를 인지하고는 깊은 우울감에 잠긴다. 자의식 속 정체성이 급변하면 주변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리라 생각해오던 장애가 내 삶에서 어떤 불편을 초래하는지를 깨달았다. 검사를 마치고 오랜 시간 어머니는 내게 한쪽 귀는 멀쩡해 들릴 건 다 들리니 별문제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에는 진의가 담겨있었고, 내가 장애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게끔 안심시켜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터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들 역시 한쪽 귀는 잘 들린다는데 특별한 문제가 있겠는가 생각하고 넘겨짚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나 역시 그랬다. 나의 삶은 분명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장애를 명확히 인지하고 내가 마주하는 일상을 그 사실과 연결 지어보면서, 나는 내가 당장 겪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뚜렷한 형태를 그려볼 수 있었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깨우쳤고, 그 때문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내가 그와 같은 시선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해왔다. 그리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깊은 우울감에 잠겼다.

 

2. 소란 속의 침묵

 

    한쪽 귀를 막아보면, 양쪽 귀로 들을 때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물론 나는 모른다. 의학 전문 기사에서 그렇다고 한다. 단순하게 한쪽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양쪽의 귀가 열려있다면 각 측에서 들어온 소리는 청신경에서 합쳐져 더욱 커지고 명료해진다. 이러한 효과는 당신이 의사소통을 할 때 듣는 말소리를 이해하기 편하게 돕는다. 이는 시끌벅적한 소음이 있는 곳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사람이 가득해 시끄러운 카페에 당신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함께 있는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양쪽 귀로. 그렇게 흘러들어오는 청감각은 듣지 않아도 될 잡다한 소리는 억누르고 눈앞의 상대가 말하는 유의미한 소리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만든다. 이를 의학계에서는 칵테일 파티 효과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렇게 이야기는 당신과 상대 사이를 수월하게 오간다. 나였다면, 칵테일 파티에서 한 문장도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쪽 귀로만 소리를 들으면, 소음 속에서 말의 의미를 알아채는 분별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비단 시끄러운 카페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라이브 콘서트, 학생들이 담소 나누는 강의실, 주방 소리가 요란한 식당 등 나의 일상에는 한쪽 귀만을 가지고는 발들이기 망설여지는 공간들이 꽤 있다. 소음 속에서 소통해야만 하는 상황은 내게 불능과 불편을 안겨준다.

 

    입학하기 전에 가진 대학 OT 날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신입생 무리 안에서 재학생들이 이야기하는 대학 생활을 듣고, 뒤풀이로 지금은 신촌에서 사라진 새벽집이라는 술집에 갔다. 서른 명 정도였을까. 초면인 낯선 이들 사이의 인사와 자기소개, 술잔을 들 때마다 점차 사라지는 어색한 분위기, 경쾌한 웃음과 떠들썩한 술 게임.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 보통의 뒤풀이 자리였다.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고 다 함께 순조롭게 친해지는 자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 사이에서 나는 홀로 커다란 당혹감에 휩싸여있었다. 옆자리에 있는 동기, 맞은편에 앉아있는 과대, 또는 다른 누군가의 말소리 중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옆 테이블에서 펼치는 술 게임 소리, 술집을 찾은 또 다른 학교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거쳐 나의 고막까지 겨우 도달한 거라고는 혼돈에 가까운 웅웅대는 소란 뿐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겠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랴. 남들의 눈에는 OT까지 와서 말을 무시하는, 싹수없는 신입생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4년 정도 먼저 입학한 선배가 건네는 말에서 내가 가까스로 이해한 첫 문장이 왜 아무 말도 안 하냐는 질문이었을 때는, 차라리 술에 취해 아무 말 없이 잠든 척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모두가 즐겁게 떠들고 있는 그 자리에서 침묵을 지킬수록 자세는 움츠러들었고, 내가 괜히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무거운 죄책감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는 대학에 막 발을 들인 신입생이 감히 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또 남들의 경삿날에 갑작스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사실 나는 귀가 안 들려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모르겠다고 고백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과 새내기의 신분으로 섣불리 자리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날의 술자리는 내게는 감옥과도 같았다.

 

3. 오른쪽으로 좀 와주세요

 

    나는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상황이 어색하다. 나란히 서서 함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내 오른쪽으로 와달라 말하는 일은 특히나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갑작스레 네 왼쪽으로 가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위치를 옮겨달라는 까다로운 부탁에 그가 적잖이 당황하지 않게 하려면, 먼저 나의 장애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그가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이라면 장애를 말하기조차 난감해진다. 타인에게 장애를 말한다는 건, 숨겨진 비밀을 고백하듯 나와 그 사이에 허물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게 느껴진다. “나 사실 왼쪽 귀가 안 들려서, 오른쪽에 있어야 얘기하기 편해라는 문장을 꺼냄과 동시에 상대가 내게 쏟아낼 반응은 어떠한가. 딱하다는 반응, 어쩌다 그렇게 됐냐는 반응, 진작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반응. 그중 무엇이 되었든 부담스럽고 성가시게만 느껴진다. 난 그저 오른쪽으로만 와줬으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장애가 대화의 단상에 오르고 사뭇 진지한, 원치 않던 분위기가 둘 사이에 형성되고 만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이야기가 만들어낸 괜한 부담감과 거기서 비롯된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를 묘하게 흐르는 게, 요즘 매일같이 오는 재난 문자보다도 지긋지긋했다. 게다가 겨우 말을 꺼내도, 어떤 이는 다음번에 만나면 새까맣게 잊고 자연스럽게 내 왼편에 왔다. 또다시 말하기도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오른쪽으로 와달라는 부탁을 애써 하지 않게 되었다. 왼편에서 들리는 이야기가 잘 안 들려도 잘 들리는 척했다. 누군가 내게 무언가를 물어본 것 같으면, 무언지 몰라도 이라는 대답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그 이후 대화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궁으로 빠질 수도 있겠지만, 당장에 내가 느낄 뻔한 불편함을 피할 수 있었고 침묵을 모면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방편도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을 만나면, 내가 먼저 왼쪽에 자리를 잡아놓는 것이었다. 누군가와 걷기 시작한다 싶으면 슬쩍 왼쪽에 섰다. 영화관에 가면 재빠르게 앞장서서는 왼쪽 좌석을 먼저 차지했으며, (광고가 나오는 시간에 옆 사람이 왼쪽에 귓속말을 하면 마음이 참 아프다. 그가 재밌는 이야기라도 했는지, 혼자서 웃으면 더욱더 그렇다) 여러 명이 식당에 가면 누군가 착석하기 전에 왼쪽 구석 자리에 어떻게든 먼저 앉아야 했다. (식당이 시끄러울수록 나는 더 절박해졌다) 하지만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통을 피할 수 없는 때는 종종 찾아왔다.

 

    한번은 미용실을 찾았다. 미용실을 간 적 있다면 당연히 알고 있듯, 고객과 단둘이 전신 거울에 갇힌 미용사는 어떻게든 고객에게 말을 걸어오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미용 시험에는 미용사에게 사회성과 대화 능력이 충분한지 평가하는 항목이 있는 게 틀림없다. 내 머리를 다듬어주던 분은 시험을 잘 통과했는지, 미용을 시작하고 머지않아 말문을 뗐다. “뭐 하다 왔어요?”, “머리 깎고는 뭐 해요?”, “집은 어디에요?” 여느 미용사든 그가 늘어놓는 질문들은 뻔하다. 모두가 같은 모범 답안을 참고하며 공부하는 걸까. 하지만 내 오른쪽 귀는 이미 그의 빠르고 날 선 가위질과 빗질 소리, 매장 안에 틀어놓은 시끄러운 음악 소리로 가득 찼다. 무슨 뜻인지를 당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지막 글자로 가며 문장의 음이 올라간 걸로 미루어보아, 그가 모종의 의문문을 늘어놓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물어봐야 똑같이 알아듣지 못할 게 분명하고, 오른쪽 귀에 대고 말해달라 부탁하자니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렸다. 별수 없이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라고 짧게 대답해봤다. 미용사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 아마도 주어와 서술어를 갖춘 문장으로 답해야 했나 보다. 그는 고객이 자신을 무시했다 생각했을 테고, 기분이 상했을 거다. 방금까지 머리를 어떻게 깎을지 (나름 조용한 카운터에서) 멀쩡하게 상담까지 한, 코앞에 있는 사람이 말을 못 알아들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테다. 그렇게 맥이 끊긴 대화는 침묵 속에 갇힌다. 어서 미용이 끝나기를 바랄 일만이 남았는데, 그런 날이면 이상하게도 시계는 느리게 돌아갔다.

 

4. 오해의 연쇄

 

    빈번하게 일어나지마는, 누군가에게 오해를 사는 일에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해를 하는 일에는 어느덧 익숙해져 있다. 오해의 본질적인 문제는, 스스로가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오해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인과에 있다. 우리는 당신 마음의 밀실을 결코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오해하고 오해를 풀고, 다시 오해하고 다시 오해를 풀고, 그 일련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만들어지는 이 기다란 연쇄는 당연하며, 한편으로는 무구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장애 때문에 오해를 받는 일에도, 미용사에게 못마땅한 눈초리를 받는 일에도, 대화를 회피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일에도, 왼쪽을 고집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일에도 이제는 익숙해질 때가 됐다고 종종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따금, 아무리 그래도 오해를 풀 기회는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게 마땅한 일이 아닐까.

 

앞서 말한 OT 뒤풀이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동기랑 이때를 다시 떠올리며 얘기한 적이 있다. 그는 홀로 무언을 지키고 있는 내 모습이 시끌벅적한 술자리와 이질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들 함께 하는 시간이 내겐 재미가 없나 싶었다고 한다. 혹은 너무 피곤해 말을 아끼는가 생각하며 여러 질문에도 묵묵부답인 내 모습이 의아했다고 말하며 당시를 상기했다. 일상을 보내다 보면 이따금 그 자리가 떠오른다. 그날이 지나가고 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술자리가 두려워졌다.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 내가 받을 의아한시선이 두려웠다. 그 자리로 내가 되돌아갈 수 있다면, 거기서 나는 나의 장애를 말할 수 있었을까. 시끄러운 술집보다는 조용한 곳에 가자고, 내가 왼쪽 구석 자리에 앉아야겠다고 확실하게 말하며 내 동기와 여타의 사람들이 지녔을 오해를 별다른 걸림돌 없이 풀 수 있었을까. 확신이 없다. 오해를 풀며, 또 다른 오해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신나는 날에 왜 초를 치느냐고 누군가는 불만을 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걱정을 하느라, 또다시 말 한마디를 제대로 못 했겠지. 당신에게 오해라 얘기하기에 앞서, 당신의 마음속에 내 사정이 스며들 틈새가 있는지 살피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말이 들리지 않아 되묻고, 다시 묻고, 한번을 더 되묻자 어휴, 됐다. 그만 말할게라는 체념의 대답이 돌아왔다.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답답하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이 나를 땅바닥으로 내리꽂는다. 나의 비루한 장애 때문에 앞으로 이 자와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지 그 앞길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어떨때는 깊은 비애가 찾아온다. 상대가 자신과 같은 환경 속에 있으리라 단정하고서 그를 바라보는 건 분명 속 편하고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오해는 크고 무거운 바위와 같아서, 옮겨보려고 시도해보기도 전에 어차피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에 포기하게 만든다. 아무리 애를 써도 끝내 옮길 수가 없었던 바위들이 너무 많았기에, 엄두를 내기부터 큰 결심이 필요해졌을지도 모른다. 바위를 옮기는 위해서는, 바위보다 무거운 의지와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단단한 바위에 틈이 생기기를 고대하는 수밖에 없다. “OO한 사람이구나라는, 여지없는 그 문장에 내가 껴들 틈이 생기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언젠가 누군가와 시끄러운 식당에서 얘기하는데, 그가 내게 지금 이 자리에서 대화하는 게 어렵냐 물은 적이 있다. 어렵다 답하니 그는 지금은 우선 식사만 하고 나가서 조용한 장소서 이야기를 마저 하자고 하였다. 무신론자인 나는 그 몇 마디가채 안 되는 말에 구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놀라웠다.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지를 물었다. 내가 어떤지를 묻기에 앞서 내가 어떤지를 사려 깊게 보았다. 바위에는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겼고, 나는 주저앉고 나의 장애를 이야기하고 편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가끔 만나 걸을 때면 별다른 말 없이 내 오른쪽에 당연한 듯 서주는 모습에 앞으로 이 사람과 이어나갈 앞날을 그려볼 수가 있었다. 오해는 필연적으로 연쇄되며 불어난다고 생각했는데, 연쇄의 사슬은 물음표를 지날 때 쉬이 끊어지더라.

 

5. 당신의 왼쪽 귀

 

    모두가 고단하게 각자의 사정을 떠안은 채로 세상 속을 부유하고, 지나간 길 따라 생기는 바람과 물살과도 같은 오해를 헤쳐간다. 오해는 그렇게 참 쉽고 당연하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 그것을 다시 풀어내는 일은 바위를 들어낼 힘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데, 수지가 맞지 않으니 참 불공평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늘 공평하기만을 바라는 게 허망한 소망에 불과하다는걸 알고 있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고 그 수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뒤섞여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그 속에서 나 역시 누군가가 겪는 불공평에 관여하고 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우선 나의 형편부터 공평해지기를 바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니 나 역시, 나의 왼쪽 귀가 당신에게도 있으리라 상상해본다. 누군가와 함께 거리를 거닐고, 대화하고, 밥을 먹고, 그렇게 일상을 살아가며 눈앞에 있을 당신도 왼쪽 귀를 떠안고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장애처럼 눈에 띄지 않고, 관찰력이 아무리 좋아도 알아차리기 여간 쉽지가 않은 왼쪽 귀. 구태여 티를 내며 이목을 끌고 싶지 않기에, 자신의 너절한 일부를 가까운 이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기에, 혹은 당신만이 지닌 이유로, 그 남루한 사정을 포용한 채 살아가고 있겠다. 매일에 가까운 나날에 걸쳐 오해를 경험하지만, 나 역시 당신을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늘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나이고 우리이기에, 당신에 대한 모든 게 오해일 수도 있겠다고. 나도 내가 당신을 전부 이해하고 있으리라는 오만을 내려놔 본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필립 로스, 미국의 목가


편집위원 희 (woddlwodl2@naver.com)

  

 

  1. 글을 쓰며 오른손잡이는 전화하면서도 다른 손으로 일을 보기 위해, 많이들 전화는 왼손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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