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브래지어 했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브래지어는 일상 영역에서 ‘하’는 것에 해당한다. 브래지어는 더는 단순히 특정한 의류를 칭하는 명사에 국한되지 않고, ‘브래지어 입기’라는 동작 자체의 의미를 머금은 동사가 되어버렸다. 전체 여성 중 브래지어를 해본 적 있는 여성의 비율을 추산하는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여성이 브래지어를 해보았고, 했고, 하고 있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들에게 브래지어 하기란 일상의 영역이자, 당위의 차원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여성주의 명제에 따라, 브래지어를 해보았고, 했고, 하고 있고, 해야 하는 나 역시 개인적이고 내밀하지만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나의 브래지어 하기를 고백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 내게 브래지어..
제목은 현실문화에서 2015년에 나온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에서 따 왔다.[”남자가 어쩌다가...“]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람들에게 ‘남페미’ ‘버팔로’ ‘보빨러’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사람 중 하나다. 우선 그 배경부터 설명을 간략하게 해야겠다. 나는 15년에 메갈리아가 생기고 그 이후 일련의 사건들이 생기고 나서도 생각에 별 변화가 없던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에도 완전히 남자들만의 세상에서 살았고, 중고등학교는 모두 남학교여서 또래의 여성과 대화를 제대로 나눠 본 적도 손에 꼽는다. 비슷한 환경에 있던 남성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나 또한 성차별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이는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여성에게만 건네어지는 종류의 말들에 대한 인식이라도 하..
0나는 한남이다. 그것도 평범한 한남이 아닌 ‘특급’ 한남이다. 난 소위 TK라 통칭하는 대구/경북, 그중에서도 경상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19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남중/남고 코스도 수료했다. 남고가 붙어 있던 중학교는 1개의 반에 40명씩, 학년 당 총 11개 학급으로 이뤄진 큰 규모의 학교였다. 점심시간마다 남자들이 개떼처럼 새까맣게 뛰어다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6년이라는 기간 동안 나는 한남들과만 관계를 맺었고 한남들끼리만 생활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뛰어난 한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스스로의 한남스러움을 피력하는데 활용된 위 경험들이 지역이나 출신, 학력 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적과는 별개로 내 삶의 궤적을 한남이라는 단어로 의..
0. 들어가며 지금, 페미니즘은 뜨거운 감자다. 자신을 ‘페미니즘 지지자’로, 혹은 ‘페미니스트’로 명명하는 여성들을 주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고, 나와 다수의 내 지인들 역시 그중 하나다. 그리고 이처럼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페미니즘 실천’은 흔한 고민거리가 된다. “페미니스트라면 -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같은 것들 말이다. 페미니즘이 끼어든 후의 삶은 어쩌면 당연히, 페미니즘을 알지 못하던 때와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운동이라도 자연스럽게 그로써 변화된 삶의 모습, 행동으로 나타나는 무언가를 요구하곤 한다. 그리고 현재의 한국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스트로서의 to do 리스트가 등장하고 가장 많은 논쟁점이 탄생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
에브리타임이라는 ‘공론장’의 등장6월 28일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에서 게시판 이용이 정지되었다! 에 문제를 제기하는 댓글이 신고를 폭탄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던 때에 “학내 성폭력 사건, 남톡방 사건, A교수 사건 등등 님들이 그렇게나 사랑하는 양성평등 같은 건 없어요.”라고 게시글을 작성했던 다른 친구도 어그로 끌지 말라는 댓글과 함께 차단당했다. 에타는 ‘총여학생회 재개편 요구’를 골자로 한 학생총투표(이하 학생총투표)에 대한 논의가 거의 유일하고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페이스북이나 중도 앞 대자보에 비해 익명 기반, 짧은 게시글, 게시글에 주석처럼 달리는 댓글 등 쓰기도 읽기도 쉬운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간표를 짜기 위해 모두가 깔아두어..
2018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여러 학내 이슈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을 딱 하나만 고른다면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재개편’이라 할 수 있겠다. 학내 언론으로서 공일오비는 ‘총여 재개편’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을 겪으며 그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바로잡아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학내 구성원들의 권리, 학내 젠더 불평등, 소수자성과 대의민주주의까지 확장된 논의들은 2018년 1학기 연세대학교를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럽게 만들었고, 그 소란스러움의 흔적은 앞으로의 연세학생사회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 흔적이 반드시 바람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그어진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5월 19일 제29대 총여 페이스북 페이지에 제2회 인권축제 에서 를 주제로 한 강연이 열린다는 안내가 업로드되었다. 곧바로..
0.‘내 친구 돌멩이는 팽이버섯을 좋아한다. 내 친구 이파리도 팽이버섯을 좋아한다. 이 두 문장은 돌멩이와 이파리라는 두 친구만이 다를 뿐 팽이버섯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의미의 문장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두 문장은 항상 같은 의미일까. 그것이 모두 같다고 말하는 건 어떤 의미와 효과를 가지는 것일까. 능이와 싸운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분이 너무 안 좋다. 모르겠다. 머리가 아프다.’- 양송이의 일기 中 발췌 옛날 옛적에 버섯 한 송이가 살았어요. 아쉽지만 앞서 돌멩이와 이파리가 좋아한다고 했던 팽이버섯은 아니에요^^. 어느 깊은 숲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이 아니라 깡총 깡총 뛰어서 어디를 가느냐~도... 아니군요. 죄송해요. 여하튼 그 정도로 깊고 나무가 울창하게 드리운 숲속..
2년 전 지금보다는 덜 더웠을 이맘때 여름, 세간을 뒤흔든 ‘메갈리아 티셔츠’ 사건이 있었다. 한 성우가 메갈리아4에서 제작한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SNS에 사진을 올렸다가 ‘메갈’ 낙인이 찍히고,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출연했던 게임 에서 작업물을 삭제당했다.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메갈 낙인과 부당해고라는 측면에서 주목했기 때문에, 그 당시 이 사건이 게임업계에서 벌어졌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사건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게임업계에 휘몰아칠 어마어마한 페미니즘 백래시의 발단이 되리라곤. 단언컨대 게임업계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심각한 페미니스트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지난 2년간 게임..
탈코르셋이 새로운 화두다. SNS에는 ‘#탈코르셋_인증’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긴 생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거나 화장품을 깨부순 사진이 올라오고, 탈코르셋이라며 뷰티유튜버를 그만둔 유튜버도 나타났다. 그렇지만 탈코르셋은 최근 갑작스럽게 탄생한 용어는 아니다. 2015년에 생긴 사이트 메갈리아에서는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인 기제들, 특히 여성들이 자신도 모르게 체화해 온 억압 기제들을 ‘코르셋’이라 칭했다. 이를테면 ‘명품을 멀리하고, 조신하며, 더치페이하는 개념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을 개념녀 틀에 끼워 맞추려 하는 것은 코르셋을 조이는 행위이고, 그에서 벗어나는 것은 코르셋을 벗는 것이다. 그리고 2018년 현재, 탈코르셋이 다시금 화두에 오르게 된 것은 코르셋 중에서도 특히, 외모와 ..
“포르노를 자주 보시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의 성별에 따라 답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고 자주 본다고 답했다면, 당신은 당신이 보는 포르노에 만족하는가? 만약 자주 보지 않거나 아예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방영한 시트콤 에서 이순재가 대놓고 ‘야동’을 보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야동순재’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야동은 더는 숨겨야 할 것조차 아니게 되었다. ‘포르노’라는 말보다 ‘야동’이라는 말은 어쩐지 친근한 느낌마저 들게 하여 이제는 농담처럼 거론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야동에 관해 이야기하기 쉬워졌다 한들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남자가 야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심지어 ‘정상적’인 것으로까지 여겨지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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