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 돌던 교정을 위하여 - 송도기숙사노동권 문제를 생각하다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신다면 각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세요!) 0. 천막의 봄 - 현장스케치 벚꽃 한가운데서 바람개비의 흔적을 떠올리다 지난 11월부터 시작된 국제캠퍼스 기숙사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저하 없는 고용승계”를 외치는 투쟁이 오늘로써 막을 내렸다. 싸움을 시작한 지 5개월, 농성을 시작한 지 108일 만이다. 이는 학생과 노동자들의 강한 연대, 그리고 안팎의 뜨거운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5. 05. 01.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기숙사 청소/경비노동자 기자회견 낭독문) 매일같이 백양로를 지나는 연세대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백양로 삼거리, 언더우드 앞에 있었던 비닐천막을 목격하거나 지나친 적이 있..
지난여름은 내내 지독하게 더웠다. 지도로 보니 남인도는 적도와 닿을 듯한 곳에 있었다. 열 몇 살의 아이들과 아이를 벌써 셋 정도는 둔 내 또래의 여성에게 성교육을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성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조차 얼마 안 되는데도 주먹구구식으로 맡겨진 그 역할이 나는 퍽 마음에 들었다. 기세등등한 더위는 숨을 막히게 했지만 아이들의 머루 같은 눈망울과 통역을 채 할 새가 없게 열변을 토하다 울먹이는 여성들이 오히려 숨통을 터 주었기 때문이었다. 월요일마다의 성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 타면, 마음에 알 수 없는 불길이 일었다. 앞으로 이 불길에 끌려 다니며 살게 될 것만 같았다. 학교도 학번도 전공도, 2인 1실의 방 배정을 위해 두 번 뽑았던 제비도, 심지어 이름까지 같은 친구와 교육을 끝..
※ 이 글은 3호에 실린 글로, 2015년 초에 쓰여졌습니다. 대학에 들어온 후 항상 내 머릿속을 차지한 고민은 다름 아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철학자들이나 던질법한 심오한 질문이지만 대부분 20대들이 이런 생각을 달고 살지 않을까. 대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뭔가 특별한 삶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대학생1이 된 느낌만큼 괴로운 것이 없었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의 압박을 견디며, 이제는 직장인1이 되는 걸 두려워한다. 하지만 선뜻 다른 방향을 향해 과감하게 움직이진 못한다. 항상 특별함에 집착하지만 사실 그게 뭔지도 잘 모르겠으니까. 이런 참을 수 없는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오늘도 나는 스마트폰을 보며 학교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페이스북에 고충을..
2015년 4월 한국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두 명의 장그래가 서로 싸우고 있다. 한 명은 아이돌 가수 겸 연기자 임시완의 얼굴이고, 다른 한 명은 웹툰 작가 윤태호 씨의 손에서 탄생한 2차원 캐릭터의 얼굴이다. 임시완이 연기한 드라마 의 장그래는 2014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의 별칭인 이른바 ‘장그래법’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윤태호 씨가 그린 원작 웹툰 [미생]의 장그래는 비정규직 노동자 3,400명의 모금으로 실린 한겨레 신문 광고에서, 또 다른 장그래를 향해 하이킥을 날리며 일갈했다. [사진1] 드라마 의 주인공으로서 호연한 임시완의 배역 장그래는, 드라마의 선풍적 인기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청년 노동, 또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화두를 이끌어내는 계기였다. 그러..
* 힌두스탄: 인도 북부 지역. 히말라야 산맥과 데칸고원 북쪽의 인도 반도지역. 인도 최대의 농업 지대로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와 교통이 발달. 힌디어가 널리 쓰인다. ※지명은 ‘힌두의 땅’이라는 뜻. 필자가 여행한 지역. 공항에 내려 처음 들이킨 델리의 공기는 습습했지만 어쩐지 메마른 냄새가 났다. 안개를 잔뜩 먹은 주황색 대기는 애써 흥분하지도 않고 굳이 주눅 들지도 않은 사람의 표정 같았다. 여행이 시작된 첫날의 일도 아니었건만, 인도에서 처음 마주했다고 느낀 ‘얼굴’은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향하는 기차 안에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동행하여 패키지 여행으로 인도에 왔고, 사람들은 일행이라는 무리로 움직였다. 모든 구성원이 같은 칸에 배정되지 않았지만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일행은 한 데 모여 있었고 그 ..
2015년 1월 23일, 총‧총여학생회(이하 총여)에서 과/반 학생회장에 이르는 확대운영위원회원(이하 확운위원)들이 참여한 확대간부수련회(이하 확간수)에서 성폭력 및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성평등센터로 접수되었고,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 측에서도 별도의 대책위원회를 꾸려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이후 대책위는 중운위에 조치를 취할 것을 제안했고, 중운위는 사건 가해자에게 자진 사퇴 및 사과, 가해자 교육 이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요구안을 전달했다. 또한 중운위는 사건에 대한 공동 책임 및 유사 사건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피해자 의견에 따라 2월 8일, 사건에 대한 공식적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입장문을 두고 학내 여론에는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2월 21일 대책위 측에서는 추가 입장문까..
학내에 소문이 자자하다. ‘한국말 완전 잘하는 외국인’이란다. 사과대는 당연지사, 사학과를 거점으로 문과대를 넘어, 이번 학기에는 신과대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내 나이 만 23세, 그중 정확히 18년을 한국에서 살았음에도 나는 아직 ‘외국인’이다. 이쯤 되면 한국말을 못하려야 못할 수도 없는 것을 18년째 한국말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고 있다. 그래도 참 다행이지 않은가? 칭찬받을 만큼 잘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관심’에 익숙해진 탓에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쳐다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누가 자꾸 쳐다본다’며 불쾌함을 토로한다. 오히려 나는 1년에 한 번씩 터키공항에 내리는 그 순간의..
1. 왜 재일조선인인가한국 사회가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었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대는 지났다. 세계화의 물결에 힘입어(?) 다양한 문화권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살고 있다. 갑자기 다른 ‘그들’이 ‘우리’의 틈바구니에 끼어들어 살게 되면서 서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싸우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하고 마찰을 피할 것으로 추측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며 이러한 논의는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이에 관한 논의가 점차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같은 ‘우리’이면서 ‘우리’가 되지 못하고 다른 공간에서 소수로 사는 ‘그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해 보인다. 재일조선인이 대표..
‘샤를리 에브도’ 사건일지 2015년 1월 7일,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서 무장 괴한들이 만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에 쳐들어가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테러로 편집장을 포함해 열 명의 언론인과 두 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의 발단은 201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으로 비종교적이며 좌파적인 성향의 샤를리 에브도에서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몸으로 “내 엉덩이도 좋아?”라고 말하는 만평을 실었던 것이다. 사실 무함마드를 소재로 한 만평이 그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수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당시에도 이슬람권 국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프랑스 관련 시설이 문을 닫는 등 큰 논란이 불거졌던 터였다. 테러의 파장은 컸다. 프랑스 ..
0. 워너비 덕후들의 범람 정말이지 덕후가 넘쳐난다. SNS에서 유명 연예인이 컴백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며 ‘입덕 주의’(또는 ‘휴덕들을 소환 시킨다’)라는 코멘트를 아무렇지 않게 달고 있는 포스트를 어렵지 않게 접한다. 포털 메인에 ‘덕후 용어’를 친절히 풀어주는 기사마저 버젓이 등장하고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 어쨌거나 덕후와 그들의 흔적은 조금씩 양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돌고 돌다 너무 당연해져 신경도 안 쓸 때 쯤 법석을 떨곤 하는 지상파 tv에서만 다뤄주게 되면 예상 제목으로는 ‘덕후’를 아십니까? 라던지(..) 덕질은 숨은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덕후라고 정의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거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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