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걘 나에 대해 대체 뭘 알고 좋아하는 거야?” 뻔하게 연기하는 사람이, 함부로 가늠하는 사랑이 좀 별로다. 친구들은 연애를 시작할 때면 감탄형보다도 빈번하게 의문형의 문장을 뿌렸다. 분명 아직 그만큼 친밀해지지 않았는데 사귀기 시작하는 순간 ‘애인’이라면 수행해야 할 역할들을 연기하며 설렘을 쥐어 짜내는 사람을 보면 설득력이 없고 의아해졌다. 우리는 그 투명한 대본을 느꼈을 때 우리 안에 곧바로 생겨나는 엄청난 객관화 능력과 놀랍도록 차분해지는 마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이 관계에 집중하고 너의 마음이 진심이라고 믿기 위해서, 잡생각을 하지 않고 설레기 위해서는 무언가 더 섬세한 디테일이 필요했다. 네가 갈구하는 ‘로맨스’라는 고정된 의례의 대본집 속에 내가 그저 대체 가능한 연기자로서 배치된 것이..
아무도 없는 방,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는 요즘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이, 메이트와 같이 사는 또 다른 이도 어쩌면 자신이 혼자라고 느끼고 있을까요. 당신이 연희관 015B 12호를 집어 들어 이 글을 읽을 그때는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요. 도통 집 밖을 나가지 않다 보니 방문을 나서 계단을 내려가다 문득. 마스크가 걸리지 않은 귀를 발견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밥을 먹으러 오랜만에 들른 학교 앞 길거리에서 ‘아직도 사람이 많구나’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새삼 한해 농사를 망친 꽃가게, 학생들을 기다렸을 식당, 평소보다 유난히 비어있는 공간들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올겨울을 겪었을까요. 마스크를 낀 채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곤혹스러움, 학교로 돌아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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