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사랑, 사랑, 사랑 눈을 뜨고부터 감기까지 세상이 사랑을 부르짖는 소리를 끊임없이 듣는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사실은 누워서) SNS를 확인하다가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필수적인 제품”이라는 문구를 내건 광고를 마주하기 일쑤다. 명절이 다가오는 시기에는 “연애를 (언제) 하냐”는 질문이나 “결혼은 (언제) 하냐”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연애한다는 것과 사랑을 한다는 것이 동의어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나 또한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랑을 하기 위해 연애 시장을 부유한다. 사랑을 말하는 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내게 '사랑'이란 단어는 언제나 무겁고 불편하기만 했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이야길 들으면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나는 사랑을 이야..
0. 갈림길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길을 따라 나아간다. 셀 수 없이 많은 갈림길, 그중 하나에 서 있는 우리는 정작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의 사정 하나하나를 알지 못한다. 모를 때도 있고, 알더라도 잊어버릴 때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오랜 시간 쟁여둔 무언가가 다른 이의 마음속에서도 살아있기를 바라는 건 종종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을 살아가며 나의 사정을 일일이 고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야만 하는 때에도 난처하다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 얘기를 해도 될지 고민이 되고, 나의 행동이 그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지 걱정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담긴 이 글은 나의 오래된 이야기다. 1. 한쪽 귀로 살아간다는 건 나는 한쪽 ..
유튜브를 열면 브이로그가 쏟아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자신의 일상을 영상과 소리로 담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올리는, 그런 시대 말이죠. 그에 반해 글로 자신의 일상을 편히 담아 빠르게 공유하는 일은 좀처럼 힘든 것 같습니다. 연희관 015B가 내놓는 한 학기에 한 번, 1년에 두 번 발간되는 긴 호흡의 글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015B 편집위원들이 브이로그를 찍듯이, 블로그에 포스팅 하듯이 글을 써보았습니다. 자신의 가벼운 일상과 설익은 고민들을 조금은 편하게 드러내 보이고 싶었달까요. 과거 한 독자 모임에서 나온 후 잠깐이었지만, 015B 내의 유행어가 되었던 “이 글은 블로그에나 싣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라는 발언과 완전히 대치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핸드폰 화면을 켜면, 이젠 201X가 아니라 2020이라는 새로운 숫자가 우리와 마주한다. 어릴 적 과학 시간에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무엇을 그렸던가? 우주 정거장이라든지, 바다 아래의 세상이라든지, 그런 귀여우리만치 허황한 것들을 야심 차게 그려내며 오른쪽 귀퉁이에 썼던 숫자가 바로‘2020’이었던 것 같은데. 여하튼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맞닥뜨리는 것은 사실 우리뿐만은 아니다. 우리 곁에는 현재의 모습이 완성된 지 벌써 6년 차에 이르는 공간이 있다. 신촌을 기준으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할 거리에 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대부분이 경험해보았을 이곳은 바로 송도 국제캠퍼스(이하 국캠)이다. 바다를 메운 땅, 그리고 그 위에 지어진 ‘국제’캠퍼스..
들어가며: 과정이 아닌 존재의 청소년에 대하여 ‘한국 영화’를 떠올린다. 깡패나 조폭은 꼭 있을 것 같고,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도 한 명쯤 나올 것 같고, 돈에 눈이 멀어 윤리의식 따위 개나 줘버린 기업 총수도 나올 법하고, 무모하게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 캐릭터도 그려지고…. 줄거리와 인물 소개, 출연 배우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훤히 보이는 틀에 박힌 영화들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것이 웃긴다고 생각할 때쯤, 문득 이러한 영화와 그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정의롭거나 악덕하거나 비열하거나 순수하거나, 그들은 모두 성인 남성이라는 사실. 그러고 보니 이제 나에게는 ‘성인 남성’이라는 주인공 디폴트값이 너무 깊게 박혀버려 더 이상 다른 인물들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부러 시선..
0.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쓸 기회가 있었다. 낙제점을 받은 ‘자소서’를 낼 수 없었기에 빈 화면을 띄워 두고 쓸 것들을 생각한다. 처음 던져야 하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나를 향했다. 그래,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답을 낼 수 없어 어려웠던 것 같다. 늘 누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묻는다면 나는 몇 분이 지나도 확신하며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아마 입 밖으로 꺼내기 두려웠을 뿐, 정말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현재진행형의 기쁨을 여러 번 무시하고 진짜는 따로 있을 거라고 최면 걸었다. 내가 ‘좋아해도 되는 것’들을 질문하고 살았다. 피곤하게 눈치 봤다. 미성년의 나는 무서운 게 많아서,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해댔으나 자신에게 한 마디도 물어준 적 없었다. 좋아하지 않으면 진심일 수 ..
장에 가지런히 걸린 옷을 마주하고 서서 무엇을 입어야 할지 생각한다. 그러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청바지와 체크 무늬 남방. 흔하되 무난한 선택이다. 시도해보지 못한 상위와 하위의 조합, 곧 새로움에 관한 상상은 한없이 빈곤하다. 서둘러 옷을 꿰어 입고는 밖으로 향한다. 거울은 확인하지 않는다. 설령 본다 하더라도 의례적인 행위에 그칠 뿐이므로. 단, 향수만큼은 주의를 기울여 고르려고 노력한다. 여름에 어울리는 ‘우드세이지 앤 씨솔트’ 를 뿌릴까 하다가 결국 ‘스타워커’ 를 집어든다. 다소 중후하긴 하나, 우디계열의 나무열매 향인 middle note와 달달함이 섞인 base note가 매력적인 녀석이다. 그러고 보면 향은 아침마다 내가 오로지 나의 의지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패션 아이템이다...
“서울 지하철 4호선은 이주노동자의 ‘서울’ 안산과 이슬람교 서울 중앙성원이 있는 이태원을 잇는다. 안산에서 쭉 올라오다 삼각지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고 두 정거장 지나면 이태원에 이른다. 가끔은 시험에 드는 순간이 닥친다. 어느 주말 오후 한산한 지하철, 4호선 사당역쯤에서 지하철을 타면 적잖은 이주민들이 앉아 있다.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과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의 옆자리가 동시에 비었다. 아니, 한두 자리가 비었다면 그건 이주민 옆자리일 가능성이 크다. 자, 어디에 앉을까? ‘저는 차별하지 않아요’ 몸으로 말하듯 이주민 옆자리에 앉는다. 되도록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애쓴다. 한참이 지나면, 깨닫는다. 다르긴 다르다. 냄새가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 이 불편함, 너무 익숙하다. ..
0.당신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해 ‘나는 곧 내 몸’이라는 답을 던지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몸은 특별하다. 그리고 특별한 만큼 당연하다. 나라는 존재는 평생 단 한 번도 몸과 분리되지 못하고, 그 몸이 아닌 다른 몸으로 살 수도 없다. 따위의 매우 흥미로워 보이는 부제에 끌려 이 글을 펼친 독자들이라면 당황스러운 도입부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누가 보더라도 타투에 대해 이야기할 것처럼 보였던 글의 시작이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곧 내 몸’이라니.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다행스럽게도 이 글은 분명 타투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몸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전통적이고 중요한 질문이지만, 이 글..
이성애만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회에 퀴어커플이 내는 균열들 이상한 나라의 호모연애 몇 년 전, A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하나 이상의 성별에 성적, 감정적 끌림을 느껴요. A는 많은 것을 물었다. 그냥 남자만 좋아하면 안 되겠니. 동성애인과 동성친구를 어떻게 구분하니. 그 당시에 나는 이 모든 질문에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답하기 위해 애썼다. 이것을 증명해내고 그래서 A를 설득해야만 내 존재가 인정받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혼란스러웠다. 선뜻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을 당장 뱉어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나를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 확신 없는 것들에 대해 마치 그것이 정답인 체했다. 그리고 올해, 남자친구가 생겼냐고 묻는 A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여자사람친구 말고 ‘여자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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