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오랜만의 교정. 동문에서 탄 셔틀버스에는 사람이 없다. 적어도 너댓 명은 늘 앉아있던 지난 방학이 떠오른다. 한동안 와보지 못했던 연희관 언덕은 풀이 많이 자라고 녹색 이끼가 나무 기둥을 뒤덮어 밀림같아 보인다. 가뜩이나 오르기 힘들었던 언덕길이 극성맞은 장마를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간 나뭇잎으로 뒤덮여 더욱 미끄럽다. 언덕을 오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회색빛 하늘 아래로 연세대학교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상경대학 건물, 대우관이 있다. 대우관 지하 1층 입구는 잠긴채 무언가가 유리창에 붙어있다. 입구 봉쇄 안내문이다. 어쩔 수 없이, 경사를 한번 더 넘어가기가 꺼려져 가지 않던 1층 정문으로 들어간다.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도 곳곳이 낯설다. 체온을 재고서야 그 안을 둘러볼..
짧은 영상이 있다. “나오라고 씨발년아.” 사람을 밀쳐 바닥에 쓰러뜨린다. 막으려는 사람들을 밀고 짓누른다. 그렇게 넘어진 사람들을 발로 밟는다. 깨진 유리가 바닥에 나뒹군다. 머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비명소리가 가득하다. “야 사람 죽는다. 사람 죽어.”, “그만 때리란 말이야.”, “경찰, 경찰”. 도움을 호소하지만 경찰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영화 속 이야기일까? 아니, 7월 12일 노량진수산시장 신시장 이전을 거부하는 구시장 상인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을 담은 영상이다. 노량진역 7번 출구로 나오면 깨끗하고 세련된 시장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온갖 계고장이 덕지덕지 붙은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이하 구시장)이 있다. “출입 시 형사 고소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위협은 구시장을 외부와 분..
홈리스 행동 사무실에서 ‘개대장’이라 불리는 홈리스(homeless) 당사자분과 나란히 앉아 을 읽고 있는데 개대장님이 책표지에 적힌 글을 보고 한마디 하신다. (표지에는 “내게 돈은 중요하지 않아/ 그러면 뭐가 중요하지/ 사랑.”이라고 적혀있다.)- (단호하게) 사랑은 중요하지 않아요.나도 짐짓 진지해져 물어본다.- 그러면 뭐가 중요한데요?- 목숨.순간 말문이 막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왜요?”하고 묻는다. 그 후로 개대장님의 부당했던 불심검문 일화를 듣지만, 안전지대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저 잠깐 생각할 뿐이다. 홈리스와 마주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홈리스는 단일한 모습이기 쉽다. 집이 없어 불쌍한 사람들 아니면 게으르고 폭력적인 사람들로만 말이다. 그렇기에 홈리스 ..
모두에게 열려 있는 학교 여름방학이 끝나고 9월이 되면, 홈리스야학의 학기도 시작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을 찾는 학생들은 모두 홈리스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홈리스들은 경제적 자원뿐만 아니라 배움에 대한 접근으로부터도 소외된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홈리스야학은 홈리스들에게 문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2010년부터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생각보다 야학은 우리가 다니는 대학과 닮은 점이 많다. 야학에도 봄학기와 가을학기, 두 번의 방학이 있다. 매 학기 첫 주에 열리는 개강식에 참석한 학생들은 담당 교사의 커리큘럼 발표를 듣고, 손을 들어 ‘수강신청’을 한다. 수업은 홈리스 권리, 기초학문, 문화 · 취미의 세 종류인데, 먼저 홈리스 권리 수업은 주거권, 노동권 등 홈리스들이..
매년 초여름이면 누군가에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지만 누군가에겐 1년에 단 한 번뿐인 소중한 날이 다가온다. 바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올해로 제18회가 된 퀴어문화축제는 본래 스톤월 항쟁을 기리는 의미로 매년 6월에 열리지만, 올해는 서울광장의 사용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차질이 생겨 7월 15일에 열리게 되었다. 흔히 축제의 메인 이벤트인 퀴어퍼레이드의 줄임말인 ‘퀴퍼’로 불리는 이 축제는 성소수자들에게 있어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드러내고 서로 연대하며 이날만큼은 소수가 아닌 다수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날이다. 그런 성소수자들의 축제에,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인 내가 가기로 했다. 나는 작년에 퀴어문화축제에 처음 가보았고 올해 두 번째로 다녀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 ..
이전의 풍경을 꺼내는 데 나무들이 쓰이는 것은 이들이 뿌리 내린 자리의 주인이기에 함부로 베일 수 없었던 까닭이오, 그렇기에 언제나 늘 있을 것만 같은 그 자리에 누군가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 박만수, 「나무 헤는 밤」 중에서 장마의 끝에서 백양로를 걸으면서 길 가운데의 잔디밭을 유심히 보았다. 얼마 전까지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잔디들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가 쳐져 있었는데 다시 보니 사라졌었다. 많이 내린 비 덕분에 잔디들은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마찬가지로 학교의 다른 풀들도 무성하게 자라서 대대적인 제초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잘려나간 풀밭에서는 평소보다 풀내음이 많이 난다. 본관 앞의 정원 역시 그런 풀내음으로 가득했다. 냄새를 맡으며 걷던 중에 둥그런 정원수들을 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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