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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만에 휴게실 다시 방문해보니▽ 여전히 내부에 가득 쌓인 청소 비품▽ 환기구 미비해 답답▽ 필요한 물건은 직접 폐기장서 주워와 재활용 날씨가 무척 추워진 지난 16일, 연세대학교 제4공학관 청소노동자 휴게실에 들렀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것은 지난해 11월 11일이었다. 당시에는 ‘재활용 폐기물 보관실’이라는 명패가 달린 휴게실에 들어서자마자 “여기 있으면 진짜 큰일 난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약품의 독한 냄새가 코를 찔러대니, 휴식은커녕 잠깐 머무르는 것조차 어려웠다. 코비컴퍼니는 청소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쉴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았고, 따라서 노동조합 투쟁의 일환으로 꾸준히 휴게 여건 개선에 대한 요구를 받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코비컴퍼니..
인도의 문예학자인 가야트리 스피박은 물었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공고한 사회 내 위계 속에서 지배계급에 종속되는 하층민을 통칭하는 용어인 서발턴(Subaltern)은 스피박에 의해 계급, 계층, 인종, 젠더를 아울러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이 될 수 있었다. 서발턴, 즉 사회 하층민이 ‘말할 수 있냐’는 물음은 그저 그들이 혀를 굴려 입 밖으로 언어를 소리 낼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창작하는 자기 서사가 진정 사회에 반영되는가를 의심하는 물음이다. 한 개인이 서발턴일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를 둘러싼 수많은 정체성과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서발턴이 말할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누가 서발턴이고, 누가 서발턴이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8월, 오랜만의 교정. 동문에서 탄 셔틀버스에는 사람이 없다. 적어도 너댓 명은 늘 앉아있던 지난 방학이 떠오른다. 한동안 와보지 못했던 연희관 언덕은 풀이 많이 자라고 녹색 이끼가 나무 기둥을 뒤덮어 밀림같아 보인다. 가뜩이나 오르기 힘들었던 언덕길이 극성맞은 장마를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간 나뭇잎으로 뒤덮여 더욱 미끄럽다. 언덕을 오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회색빛 하늘 아래로 연세대학교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상경대학 건물, 대우관이 있다. 대우관 지하 1층 입구는 잠긴채 무언가가 유리창에 붙어있다. 입구 봉쇄 안내문이다. 어쩔 수 없이, 경사를 한번 더 넘어가기가 꺼려져 가지 않던 1층 정문으로 들어간다.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도 곳곳이 낯설다. 체온을 재고서야 그 안을 둘러볼..
몸 그리고 마음. 사람들은 종종 이 둘을 구분하여 생각한다. 마음과 생각이 진정한 ‘나’라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몸은 내가 세계를 만나는 가장 기본적인 틀, 나를 규정하는 첫 외곽이자 내가 감각하는 오롯한 현실이 된다. ‘나’를 이해한다는 것에는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알아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내 몸을 관찰하고 받아들이면서 몸과 친해지는 시간 또한 포함된다. 월경 기간에는 잠을 얼마나 자야 그나마 평소와 비슷한 수준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매운 것까지 탈이 나지 않고 먹을 수 있는지, 여행을 다닐 때는 얼마나 걸어야 지치지 않고 적당히 좋은지는 모두 ‘나’의 특성과 한계에 대한 중요한 앎이다. ‘습관’이랄 것은 거의 모두 몸의 영역이며, 친구의 발소리와 말투..
사랑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사랑, 사랑, 사랑 눈을 뜨고부터 감기까지 세상이 사랑을 부르짖는 소리를 끊임없이 듣는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사실은 누워서) SNS를 확인하다가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필수적인 제품”이라는 문구를 내건 광고를 마주하기 일쑤다. 명절이 다가오는 시기에는 “연애를 (언제) 하냐”는 질문이나 “결혼은 (언제) 하냐”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연애한다는 것과 사랑을 한다는 것이 동의어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나 또한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랑을 하기 위해 연애 시장을 부유한다. 사랑을 말하는 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내게 '사랑'이란 단어는 언제나 무겁고 불편하기만 했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이야길 들으면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나는 사랑을 이야..
온라인에서 만났습니다 온라인 만남 플랫폼을 처음 접했던 것은 학창시절 때였다. 그때부터 인터넷 헤비 이용자였던 나는(죽어도 ‘중독자’라고 하긴 싫었다) 넷상을 동네처럼 들쑤시고 다녔고, 온갖 커뮤니티와 SNS를 거쳤다. 그러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감추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쉽게 감출 수 있었고, 어쩌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난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이 틀 때까지 핸드폰을 쥐고 있기도 했다. 천성이 조금 느리고, 가벼운 농담을 제외한다면 말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데 한참, 눈앞의 사람이 이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상대인지를 고민하는 데 또 한참이 필요한 나는 이곳에서만 나눌 수 있었던 어떤 깊은 대화들과 어쩌면 ‘tmi’라 불릴 사소함들이 가장 즐겁던 때가 있었..
“와, 축제다” 경주 이(李)씨 상서공파 36대손의 장녀인 나. 우리 가족은 제사를 지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삼촌이나 아빠의 복장은 달라져도 꿋꿋하게 한복 바지와 저고리, 겨울에는 두루마기까지 다 꼼꼼하게 입고 절하시는 할아버지의 주도 아래,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최소 1년에 3번씩은 제사를 지내야했다. 6·25 전쟁 때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몹시 그리웠던 할아버지는 한평생을 바쳐 족보를 만들고 선산을 유지하셨다. 아빠는 원래 제사를 지낸 기억이 없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 갑자기 제사를 지내게 됐다며 어디서 족보를 사오신 게 분명하다고 추측하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으니 바로 할머니 댁에서 지내오던 모든 제사를 이제 우리 집에서 맡으라는 것이었다. 비상이었다. 우..
“너 브래지어 했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브래지어는 일상 영역에서 ‘하’는 것에 해당한다. 브래지어는 더는 단순히 특정한 의류를 칭하는 명사에 국한되지 않고, ‘브래지어 입기’라는 동작 자체의 의미를 머금은 동사가 되어버렸다. 전체 여성 중 브래지어를 해본 적 있는 여성의 비율을 추산하는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여성이 브래지어를 해보았고, 했고, 하고 있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들에게 브래지어 하기란 일상의 영역이자, 당위의 차원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여성주의 명제에 따라, 브래지어를 해보았고, 했고, 하고 있고, 해야 하는 나 역시 개인적이고 내밀하지만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나의 브래지어 하기를 고백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 내게 브래지어..
0. 갈림길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길을 따라 나아간다. 셀 수 없이 많은 갈림길, 그중 하나에 서 있는 우리는 정작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의 사정 하나하나를 알지 못한다. 모를 때도 있고, 알더라도 잊어버릴 때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오랜 시간 쟁여둔 무언가가 다른 이의 마음속에서도 살아있기를 바라는 건 종종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을 살아가며 나의 사정을 일일이 고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야만 하는 때에도 난처하다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 얘기를 해도 될지 고민이 되고, 나의 행동이 그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지 걱정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담긴 이 글은 나의 오래된 이야기다. 1. 한쪽 귀로 살아간다는 건 나는 한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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