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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서사] 자소서를 잘 쓰는 팁

연희관공일오비 2017. 1. 25. 20:29


시간에 떠밀려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취준이었다. 대입과 입대가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것처럼, 생애 첫 번째 취업 준비도 그랬다. 슬프게도,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은 늘 이런 방식으로 다가왔다. 언론고시를 한 번 봐보겠다는 핑계로, ‘여봐라 나 신문 본다!’하고 똥폼 잡다가 보니 어느새 공채 시즌이 돌아왔고, 졸업을 앞둔 여느 대학생이 그렇듯 조급한 마음이 번져 벼락같이 자소서를 몇 개 씩 써냈던 것이다.


덕분에 부모님의 사랑과, 술로 개가 된 추억과, 몇 없는 친구들과의 사건을 빼고 나면 빈곤할 대로 빈곤한 나의 대학생활을 꽤 진지하게 돌이켜 볼 기회를 가졌다. 반성시켜주어 고맙다. 나는 그렇게 황량한 과거에서 몇 없는 친기업적 일화를 쥐어 짜 반죽을 냈고, 갓 구운 빵처럼 부풀렸다. 한껏 부푼 빵 속에 숨구멍이 뽕뽕 나있는 건, 하릴없이 내 자소서의 모습이기도 했다.


5개 혹은 6개 쯤 자소서를 써냈다. 그래도 ‘자기소개서’라는 걸 처음 쓸 적엔, 그게 무료한 일상에 진동을 주는 신통한 경험에 속했다. 주어진 분량에 사실 반, 구라 반, 아니 사실과 구라 적당히 섞어 나에 관하여 쓰고 상대를 유혹해보는 것. 그 짓을 하다보면 어떻게든 여자와 함께 술을 마셔보려고 한 여름의 새벽 바닷가를 쏘다니며 허풍을 떨던 친구들의 진중한 작업이 떠올라 피식했다. 한편으론 내가 싼 똥이 과연 통과할 것인가, 아니면 막힐 것인가를 방관자처럼 가늠해보는 일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그리고 반복해 자소서를 싸낼수록, 유쾌함은 곧 불쾌함으로 변했다. 설사를 계속해도 시원하기는커녕 자꾸 복통만 커져오는 상황이랄까, 그런 느낌 비슷한 게 몸에서 떠나질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하면 이 짓이 결국 자기부정의 연속이었던 탓이다.


‘얼마나 자기 삶에 충실했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자기 삶을 배신했느냐’가 성공한 자소서의 기준이었다. 이건 단순히 뻥과 진실을 글 속에 어느 정도로 배합할 것인가, 또는 뻥을 얼마나 진실답게 포장하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그런 차원에 속하지도 않는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은, 말하자면 전면적인 삶의 부정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친구들의 자소서를 종종 봐줬을 때, 그 때에는 못 느끼던 이 깊디깊은 모멸감을 내 자소서를 쓸 때에서야 알아채게 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남 인생에 내가 몇 줄 덧붙이는 게 그를 부정하는 일인지 아닌지 나로서야 알 수 없지만, 스스로를 부정하는 글쓰기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알 수밖에 없으니까.


어린 날 길거리에서 먹었던 뽑기 생각이 났다. 속이 깊게 파인 쇠숟가락에 설탕과 소다를 섞어 적절하게 열을 가하면, 단내가 나면서 갈색 빛으로 녹는다. 완전히 검게 타버리기 직전에 적당한 철판에 숟가락을 뒤집어 내리치고는, 별 모양이라든가 하트 모양이라든가, 어쨌거나 그렇게 생겨먹은 쇠틀로 완성된 뽑기를 찍어 누른다. 보통은 힘주어 찍어도 틀 밖에 부분이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아저씨가 찍어준 모양대로 뽑기가 부스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잉여를 떼고, 틀 모양에 맞춰 뽑기를 완성하면 하나를 더 만들어주곤 했다.

 

자기부정이란 뽑기 파는 일 같은 것이다. 틀로 찍어 잉여가 아니었던 내 삶의 일부를 잉여로 만들고, 나를 부수지 않은 모습으로 팔아야 한다. 기업도(그리고 나 역시) 기어코 틀에 맞는 사람이기를 원했다. ‘얼마나 자사에 관심을 갖고 살아왔는지’를 주로 본다고들 하는데, 대학생이 한강물 온도 체크하는 주식 개미도 아니고서야…라는 생각도 해보다가, 헌데 요즘은 살아가는 일이 점점 팍팍해졌으니까, 따져보면 애초에 자기 인생을 뽑기 틀에 맞춰 살아보려 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해서, 또 그런 사람들이 해온 노력도 무척 애달프다는 걸 알고 있어서, 아닌 척 해보지만 사실 그게 내 일이기도해서, 속이 무척 쓰라렸다. 어쨌든 나처럼 별 생각 없이 대학생활을 보낸 사람은 자기 인생 지지고 볶고 뒤집고 업어 쳐 틀로 찍어야만, 그렇게 자기부정에 부정을 거듭해야만 좋은 자소서를 써낼 수 있다.


따라서 붙어버린 나의 자소서는 기만과, 거짓과, 부정의, 점철이었다. 내가 술을 마시면 개가 되고, 몇 시간 담배를 못 피우면 곧장 초조해지는 골초에다가, 잠이 너무 많아 새벽까지 공부해놓고 시험을 못 치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 기만이다.(그런데 이 기만이 사실상 나의 핵심이다.) 내가 조금 발 담근 일들을 목숨 바쳐 했던 일인 양 부풀리고, 확인 불가능한 경험을 지어내는 일이 구라다.(그런데 이 구라는 실상 내 인생에서 미미했거나 없던 것이다.) 이 기만과 거짓을 지탱하는 게 자기부정인데, 이는 곧 니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내가 니 입맛에 딱 맞게, 그렇게 인생을 송두리째 잘 살아왔다고 수줍은 척 고백하는 일이다.





글 편집위원 real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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