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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에 소문이 자자하다. ‘한국말 완전 잘하는 외국인’이란다. 사과대는 당연지사, 사학과를 거점으로 문과대를 넘어, 이번 학기에는 신과대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내 나이 만 23세, 그중 정확히 18년을 한국에서 살았음에도 나는 아직 ‘외국인’이다. 이쯤 되면 한국말을 못하려야 못할 수도 없는 것을 18년째 한국말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고 있다. 그래도 참 다행이지 않은가? 칭찬받을 만큼 잘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관심’에 익숙해진 탓에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쳐다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누가 자꾸 쳐다본다’며 불쾌함을 토로한다. 오히려 나는 1년에 한 번씩 터키공항에 내리는 그 순간의 느낌이 낯설고 어색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허걱! 내가 설마 관심종자였던 것인가?” 그렇게 사람들의 ‘無관심’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또 한동안은 익숙하디익숙한 거리에서의 낯설디낯선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해야만 한다.
원고를 부탁받고 한동안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공식 지면에 실릴 만큼 대단한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아닌데, 나의 이야기가 과연 015B가 생각하는 문제의식에 대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을까? 결국, 너무나도 뻔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애써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그냥 사람 냄새나는 투박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겠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특별한 것 같아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느 쪽도 아닌, 그저 ‘나’가 되기까지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꾸역꾸역 끼워 넣는 ‘레퍼토리’가 있다. 이 글이 자기소개서는 아니지만, 마땅히 이야기를 시작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가지의’ 성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향 자체를 ‘아는 것’이다. 즉 한 사람이 같은 영역에서 두 가지 이상의 성향을 가질 수도 있으며, 그 사람이 그러한 자신의 성향을 안다면 충분히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 복잡한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것이 물리적 공간으로의 법적 예속, 즉 국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 나는 터키인인 동시에 한국인이기도 하다.
7살 때 아버지의 회사 발령으로 한국에 정착하면서 일반 한국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학창 시절 내내 학교에서는 ‘타자’로 집에서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반항아’로 지냈다. 터키인이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따돌림을 받아들여야만 했고, 한국인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과의 갈등을 견뎌내야만 했다. 내 스스로 터키인이기도 하고 한국인이기도 하다고 믿고 싶었지만, 때에 따라서 나는 터키인이지도 한국인이지도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무뎌졌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내 기억의 한 자락에는 내 스스로가 ‘틀린 존재’라는 자괴감에 빠져 고개도 못 들고 다녔을 만큼 의기소침했던 때가 있다. 지금은 너무 뻔해서 아무 감동도, 호소력도 없는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틀림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당시의 내게는 얼마나 따뜻하고 향기로웠는지 모른다.
여전히 나는 내 스스로가 터키인인 동시에 한국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종종 터키인도, 한국인도 아닌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무뎌졌다는 표현을 썼듯이, 더 이상 예전만큼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는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 내게 요구되는 것들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최소한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대놓고 나를 ‘틀린 존재’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 어느 쪽도 아닌, 그저 ‘나’라는 사람이 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10분짜리 매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난 이게 좀 그렇다니까요. 다들 호기심을 느껴요. 다르게 생겼으니까. 네 저 터키 사람이고 한국말 잘하고, 아 이건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아서 이런 거긴 한데, 암튼 뭐 그래요……. 그런데 다르다는 것에 호기심은 느껴도 정작 거리는 두고, 나라는 사람을 궁금해하지는 않는 거예요.
2011년 2학기, 사회과학대 극회 토굴에서 50회 정기공연으로 ‘정다운 환송회’라는 제목의 동문 합동공연을 올렸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만든 창작극이었는데, 위의 독백은 극 중 나의 대사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대개의 경우 나는 그냥 ‘신기한 외국인’일 뿐이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말 왜 이렇게 잘해요?” “와 신기하다.” 이 3마디의 말이 오가는 동안 그저 그런 나의 인생 이야기가, 나의 매력과 함께 순식간에 바닥나 버리고 만다. 정확히 10분. 10분짜리 매력이 사하고 나면 나는 ‘신기한’ 자를 떼고, 그저 그런 ‘외국인’이 되어버린다. 정다운 환송회의 독백 그대로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호기심을 가질 뿐, 나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 10분짜리 매력은 수업시간에도 종종 확인된다. 어떤 토론 수업에서는 의견을 말하고 때 아닌 박수까지 받았다. 의견의 내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한국말을 잘해서 받은 박수였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그저 웃기만 했다. 모두가 내 한국어를 들어주느라 의견을 듣지는 못한 듯했다.
물론 한편으론 다른 사람들에 비해 10분이라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게 기대되는 것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질문을 모두 받고 나면, 그런 단순한 정보로 나의 모든 것이 정의되고 만다.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다름을 보지 않는다는 미덕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학내의 외국인 유학생들 모두를 대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한국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한 단순히 ‘소수자’라고 하기에는 아주 많은 권력이 주어지는 ‘한국에 사는 터키인’이라는 점에서(국적이 터키라는 이유 하나로 한국에서는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이 느낀 소외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런 내가 감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공존이라는 너무 뻔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지금 우리는 다름을 다름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서, 다름을 ‘보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앞에서 나는 나조차도 내 스스로를 타자화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 20살이 되어서야 가능했다고 말했다.(적어도 문화적인 의미에서의 정체성을 따지거나 재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20살 때였다.) 20살이 되기까지 내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의 다름은 그냥 다름일 뿐이지 절대로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20살이라는 반환점이 지나고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가장 상처가 되는 말 또한 ‘틀리지는 않지만 다르다’는 바로 그 말이다. 나는 틀리지도 않지만 다르지도 않다. 나는 자기 자신이 평범하다고 믿으며, 또는 특별하다고 믿으며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관용이라는 ‘미덕’에는 이처럼 폭력적인 평가의 잣대가 내포되어있다. 진정한 의미의 공존을 위해서는 그 누구도 단순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다름과 같음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다. 이제는 타인을 관용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수고로움을 덜고, 있는 그대로를 궁금해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그가 단순히 외국인이기 때문에 궁금해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호기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글 베튤 준블(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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