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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서사] 크라쿠프, 그곳에서 내가 발견한 것

연희관공일오비 2017. 1. 5. 15:37

무작정 크라쿠프로 

*크라쿠프 :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고도

왜 하필 동유럽, 그중에서도 크라쿠프로 떠났나? 특별한 환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름에 여행하기에 덥지 않고(아시아 탈락), 내 비루한 통장 잔고가 감당할 수 있어야 하며(소위 ‘잘사는 동네’ 모조리 탈락) 동시에 무언가 새롭고 구미가 당기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하다 보니 나온 대안이 동유럽이었을 뿐이다. 동유럽은 막상 여행지로 결정해 놓고도 너무나 생경한 지역이라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막연한 궁금증을 끊임없이 유발하는 곳이었다. 가이드북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 하면 몸과 마음이 편했겠지만, 남들 하는대로 따라 하기는 싫은 괜한 고집이 생겨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작정 동유럽 지도를 펴 놓고 생소한 나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해가며 ‘심쿵’하는 곳들만 콕콕 집어 그렇게 ‘나만의 루트’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루트가 바로 가이드북에서 소개하는 ‘추천 핵심 여행코스’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여행 정보를 수집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진부함에서 벗어나려 발악(?)해 보았지만, 결국엔 통념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나의 안쓰러운 루트를 바라보며 “인간의 고유한 취향이나 욕망이라는 게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하는 고민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그나마 내가 고집스럽게 일정에 끼워 넣은 나름 독특한 도시가 하나 있었기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곳이 바로 크라쿠프다. 체코나 헝가리 같은 동유럽의 메인 관광지나 요즘 한창 뜨는 크로아티아와는 달리 폴란드, 그중에서도 ‘크라쿠프’라는 도시는 아직 아는 사람들이나 알음알음 방문하는 미지의 도시인 듯했다. 내 뻔한 루트에 크라쿠프를 살짝 끼워 넣으니 전체 동선이 미적으로도 아름다운 평행사변형을 이루었고, 무엇보다도 아우슈비츠(폴란드어로는 오슈비엥침)가 근처에 있어 꼭 한번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틀을 할애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극의 장소가 내뿜는 어두운 분위기와 슬픔을 나 홀로 마주할 자신이 없어 정작 당일 아우슈비츠 방문은 포기했다고 한다...) 이 짤막한 여행기는 크라쿠프라는 매력적인 도시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필자가 그곳에서 생각하고 경험한 것들을 소심하게 끄적여 본 가벼운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구시가 광장에서 있었던 일

사실 크라쿠프라는 도시 자체를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방문의 일차적 목적은 아우슈비츠 투어였지, 크라쿠프 시내가 메인 이벤트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크라쿠프 구시가에 들어서자 마치 중세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것과 같은 환상적인 느낌에 빠져들었다. 구시가를 둘러싼 성벽과 그 안의 교회, 성, 크고 작은 건물들은 칠팔백년 이상 된 것들이 많았으며 아직도 아름다운 형태로 보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크라쿠프 관광의 핵심인 시장 광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폴란드의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츠의 동상과 직물회관이 뿜어내는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자유롭게 거니는 사람들, 특히 비눗방울을 쫓으며 깔깔 웃어대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광장 안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흰 마차가 다녔고, 가장자리를 빙 둘러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해 있었다. 그 식당 중 하나를 골라잡고 앉아서 하염없이 눈앞의 광경을 담기만 해도 몇 시간이고 흘려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크라쿠프 구시가 광장의 동상

예상치 못한 크라쿠프의 매력에 빠져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구경하고 있을 때 웬 여행자 하나가 나에게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그 여행자는 자신을 A라고 소개했고, 혹시 저녁을 먹지 않았으면 같이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사실 저녁값을 아낄 심산으로 대충 빵으로 때운 직후였지만,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지는 상황에 대해 상당한 로망이 있기도 했고, ‘이것이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하며 그의 제안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A는 능숙하게 광장 근처의 맛집을 찾아 나를 안내했다. 그녀는 영어도 유창했으므로 나는 주문을 비롯한 모든 귀찮은 과정들을 그녀에게 맡긴 채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직업이나 전공, 여행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A가 추천했던 음식들도 매우 맛이 있었다. 나는 평소에 구운 생선 요리를 즐기지 않는데, 그곳에서 먹었던 생선 요리가 내가 유럽에서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이 좋아 지금까지도 기억이 날 정도다. 게다가 크라쿠프의 물가가 워낙에 싸서 그런지, 관광지 한복판의 야외 테이블에서 와인을 곁들인 메인 코스 두 개와 샐러드를 먹었는데도 한 사람당 2만 원도 들지 않았다는 점도 아주 신나는 일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A와 구시가를 돌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해할까 봐 미리 짚고 넘어가지만, 전혀 로맨틱한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A는 내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기대했던 ‘여행지에서 만난 좋은 동행’이었다. A를 만난 덕분에 홀로 여행하느라 잘 찍지 못했던 사진을 서로 찍어주면서 괜찮은 여행 사진을 많이 남길 수도 있었다. 또 해가 진 구시가 광장에서는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삶이나 관심사, 취미, 페미니즘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만나기로 약속하며 각자의 숙소로 헤어졌다.

그러고는 다음 날 아침이 밝았는데 거짓말처럼 어제 A와 시간을 보내며 느꼈던 즐거운 감흥들은 사라지고,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나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계획했던 아우슈비츠에도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혼자서 그 광경을 마주할 자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크라쿠프 구시가가 예상외로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남은 하루를 더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세탁소에 들러 밀린 빨래들을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남은 하루를 혼자 보내고 싶은데, 아우슈비츠에는 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아우슈비츠에 가지 않으면 나는 좁디좁은 구시가에서 A와 다시 마주칠 것이고, 그러면 또 A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크라쿠프에서의 마지막 날을 나 혼자 보내고 싶었다. 결국, 나는 구시가 앞에서 폴란드 전통 빵을 사 먹으며 어색하게 맴돌다가 구시가 안으로 도둑처럼 숨어들었고, A와 마주치지 않기를 빌며 긴장 속에서 마지막 크라쿠프 여행을 마쳤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 일화를 곰곰이 되짚어 보면서, ‘여행지에서 만나는 동행’이라는 것이 누가 심어준 환상인지에 대해 다시금 되묻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평소에도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으며,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을 선호하는 독고다이형 인간이다. 그런데도 내가 ‘동행’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 것은 수많은 여행 블로거나 에세이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경험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모방하면 즐거울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던 것 같다. 혹은 나도 모르게 그런 여행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결국에는 아우슈비츠 투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어쩌면 내가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섬세하게 구분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크라쿠프 근처에 아우슈비츠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겠다는 거창한 목표 따위는 없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면서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자는, 아주 소소한 욕구들에서 비롯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여행의 본 목적에 아우슈비츠는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의식적으로 아우슈비츠를 내 여행 루트에 추가한 것은 그것이 타인이 보기에 내 여행이 좀 더 의미 있고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여행지에 가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느끼고 학습하면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어와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가진 막연한 환상이나 욕망을 점검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가진 욕망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뻗어온 것인지에 대해 조금 민감해졌다고 해야 하나. 그 덕분에 나는 이전에 비해 나에 대해 보다 솔직해진 것 같다. 타인이 만든 그럴듯한 기준이나 통념으로부터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하다보니 욕망의 군더더기를 쫙 빼버릴 수 있었고, 수많은 욕망 가운데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도 수월해졌다. 하지만 때때로 나의 욕망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일이 어렵기도 하다. 그것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든 어렵든 나의 고유한 감정과 욕망을 파악하고 그것에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삶 속에서 행복에 이르기 위한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크라쿠프,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 정말 평화롭다.

사실 동유럽 곳곳을 여행하는 내내 정말 이름난 여행지나 누구나 추천하는 장소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나 억지로 좋은 척 가장했던 경우들이 많았다. 허탈하게도 게스트 하우스에 누워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거나, 저녁 식사로 곁들인 와인에 너무 취해버려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여행지를 과감하게 건너뛰어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크라쿠프처럼, 별다른 기대 없이 방문한 곳이나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리나 카페, 음식들이 나를 매혹하기도 했다.

사실 여행의 매력은 이와 같은 예측 불가능함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잔뜩 기대했던 곳에서 실망하고, 별것 아닌 것에서 기쁨과 흥분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는 경험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것에 끌리는가?’와 같은 질문의 답을 더 명확히 포착할 수 있게 해 준다. 홀로 하는 여행은 그 불확정성이 주는 예상치 못한 감정들에 더욱 솔직해질 수 있는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아우슈비츠에 가지 않은 것을, 마지막 날에 홀로 있기를 선택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가식 없이 현재를 즐겼던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있었던 일

이쯤에서 크라쿠프의 은혜로운 물가와 친절함에 대한 예찬을 잠시 늘어놓고자 한다. 동유럽은 서유럽, 남유럽보다 물가가 아주 저렴하여 ‘유럽의 동남아’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폴란드는 그중에서도 유독 물가가 낮다. 앞서 언급했듯이 식비도 아주 저렴하지만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도 가격대비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하룻밤에 2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숙박비임에도 시설이 전혀 낙후되어 있지 않았으며, 아침과 저녁까지 뷔페식으로 제공하는 고객 감동 서비스의 끝판왕이었다. 심지어 저녁에는 스테이크가 나왔다. 물론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무제한이다. 직원들도 너무나 친절했다. 종일 칭찬을 늘어놓아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가격이 저렴해서 좋았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아낌없이 나눠주는 그들의 후한 인심과 친절한 서비스가 큰 감동이자 위로가 되었었다. 사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유럽을 홀로 여행하는 동양인 여행자로서 그동안 남모를 고충(?)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나의 피부색과 관련된 경험들에서 비롯된 불편함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나는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항상 응시의 대상이 되는 ‘동양인’이었으며, 그것은 내가 평소에는 전혀 인식하지 않아도 되었던 나의 인종적 정체성이 나를 둘러싼 가장 특징적인 외피가 되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럽을 여행하는 동양인들이 쉽게 느낄 수 있는, 명백함과 흐릿함 사이를 오가는 다양한 층위의 인종차별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그것들을 민감하게 느끼곤 했다. 그런데 참 씁쓸한 것은, 여행이라는 비교적 짧고 한정적인 시간 동안 느꼈던 ‘소수자’로서의 경험이라고 해도, 그 크고작은 경험들이 너무나 빠르게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고 비추어보는 거울로 변해간다는 것이었다. 내가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그것이 무지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든, 혹은 뚜렷한 악의를 담고 있든-에 반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 전형적인 ‘동양인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으려 때때로 노력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동양인은 너무 조용하고 소심해서 재미가 없다’라거나,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고 예의가 없다’는, 지극히 서구의 관점에서 구성된 판에 박힌 이미지를 어느 정도 의식하며 그 반례가 되려고 의식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마치 소수자가 다수의 시선과 가치 기준을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하는 것과 비슷했다.


아시아인에 대한 흔한 편견 (출처: 9gag)

그러나 크라쿠프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직원뿐만 아니라 나와 같이 이틀을 보낸 유럽인 투숙객들 또한 아주 친절했다. 헝가리에서 만난, 잘 웃지도 않고 무뚝뚝하던 훈족의 후예[각주:1]들에게서 느꼈던 위압감과 거리감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문을 열고 지나갈 때 내가 뒤에 서 있는 것 같으면 친절하게 문을 잡아주고 눈웃음까지 지어주며, 종종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서구식 칭찬과 미소를 퍼부어 줄 것만 같은 스윗함을 마구 뿜어내었다. 마침 그 게스트하우스에는 커뮤니티 룸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도 굳이 내 방에만 콕 박혀서 궁상을 떨 필요도 없었다. ‘못 노는 동양인’이라는 편견도 타파하고, 다른 여행자들과 친해질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커뮤니티 룸에 발을 들였다. 그런데 그곳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조금 다른 고민들을 안겨주었다.

다양한 크기의 소파와 카우치로 가득했던 그 방안에는 백인과 비-백인의 비율이 8:2 정도로 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 광경이 조금은 민망했는데, 백인들끼리만 동그랗게 둘러앉아 신나게 이야기하고 나머지 비-백인들은 그 원 주변을 멀뚱히 맴돌면서 어떻게든 끼어들기 위해 애를 쓰는 구도였기 때문이다. 나 또한 구석 자리 소파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고, 그 백인들의 대화를 조용히 들으며 몇 가지 사실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다 다른 나라에서 왔으며, 그런데도 모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자기들끼리 문화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그 문화 자본을 공유하지 못한 나나 다른 비-백인들이 끼어들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 스윗한 백인 친구들이 나와 다른 비-백인들을 의도적으로 따돌리려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보기에도 그 광경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씁쓸했다.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자라온 사람들끼리 ‘같음’을 공유하며 더 쉽게 통하고, 그래서 다른 이들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그들이 굳이 나에게 손을 내밀 이유가 없어 보였다. 사실 나 또한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굳이 다른 문화권의 유학생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고, 챙겨주고 싶다가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로 이해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서글퍼졌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분리라니!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무런 악의를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이런 구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데 ‘같음’이라는 게 얼마나 강력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지, 또 그 요소가 얼마나 당연하고 상식적으로 다가오는지 통감하는 경험이었다. 나 또한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다름’들의 공존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같음’의 세계에서 내부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편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당연한 말과 행동의 귀결점이 이처럼 상식적이고 깨끗한 ‘분리’로 나타남을 본 것이 내가 느낀 가장 큰 아이러니였다.


그곳에서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내가 크라쿠프라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에서 이틀 동안 머무른 후 남기는 이 기록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일반적인 감상은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100명의 여행자가 있다면 그들이 마주하는 경험들의 가짓수도 100개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크라쿠프가 최악의 도시였을 수도 있고, 나처럼 다양한 기억들과 감정들을 가지고 그곳을 추억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풍경에 대해 저마다 각기 다른 감상과 느낌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맥락 속에서 바라본 크라쿠프를 느꼈고, 그곳에서의 경험들을 나만의 렌즈로 의미화했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여행기로서의 구색은 갖춰야 하므로,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할 만한 크라쿠프의 매력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첫 번째, 구시가의 시장광장은 정말 아름답다. 두 번째, 크라쿠프는 놀랄 만큼 물가가 싸서 배터지게 먹어도 당신의 지갑은 안전하다. 세 번째, 구시가와 유대인 지구에서 이루어지는 공짜 가이드 투어는 매우 재미있으며 퀄리티가 높으므로 강력히 추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자는 가지 않았지만 아우슈비츠를 꼭 여행 루트에 넣어두기를 권한다. 나처럼 가지 않는 결정을 하게 되어도 좋지만, 그 장소가 주는 역사적 의미나 상징을 진심으로 느끼고자 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투어일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이 뜬구름 잡는 여행기를 읽고도 크라쿠프라는 도시에 관심이 생긴 독자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길. 아는 만큼 답장해 드리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러분 각자의 ‘크라쿠프’에 대한 기억들을 만들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 편집위원 엔우

  1. '헝가리’라는 국명은 우리가 잘 알고있는 그 ‘훈족’에서 유래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이름을 말하는 방식은 동양과 마찬가지로 성-이름 순이며, 날짜도 일월년이 아닌 연월일로 읽고, 주소도 국가와 도시명부터 밝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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