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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워너비 덕후들의 범람
정말이지 덕후 1가 넘쳐난다. SNS에서 유명 연예인이 컴백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며 ‘입덕 2 주의’(또는 ‘휴덕 3들을 소환 시킨다’)라는 코멘트를 아무렇지 않게 달고 있는 포스트를 어렵지 않게 접한다. 포털 메인에 ‘덕후 용어’를 친절히 풀어주는 기사마저 버젓이 등장하고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 어쨌거나 덕후와 그들의 흔적은 조금씩 양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돌고 돌다 너무 당연해져 신경도 안 쓸 때 쯤 법석을 떨곤 하는 지상파 tv에서만 다뤄주게 되면 예상 제목으로는 ‘덕후’를 아십니까? 라던지(..) 덕질은 숨은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덕후라고 정의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거주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지만, 확실한 것은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덕후가 되기를 욕망한다는 현상이다. 우리는 덕후가 되고 싶어 한다. ‘취향 저격’이라는 말이 흔하디흔한 표현이 되고 본진 4과 부진, 최애 5와 차애 6 사이를 넘나들며 인터넷 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덕후들의 등쌀에 머글 7들은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는) 갈 곳이 없어 보이기마저 한다. 엑소는 군대나 가라는 댓글이 괜히 포털에서 1등하는 게 아니다. 이제 일정한 그리고 꽤나 집요한 취향을 가지고 이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더 이상 부끄럽거나 두려운 일이 아니다. ‘한 분야에 (머글이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열중하는 사람’ 8이야 덕후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은 자명할 터. 그렇다면 ‘덕후’의 이름을 가진 이 종족들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타고 와서 2015년 한국 땅에 발을 내린 것일까.
1. 오타쿠는 오덕후가 된다
필자의 학창시절 때까지만 해도, 오타쿠라는 단어는 주로 학교 사회에서 괴리된 채 일본 애니메이션과 같은 특정(주로 비주류) 창작물에만 탐닉하여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을 일컫는, 일종의 부정적 뉘앙스가 담긴 채로 사용되었다. 이는 이 어휘의 기원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의 맥락이 유사하다.
オタク/ヲタク
1970년대 등장한 일본의 신조어.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의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넓게는 특정 분야의 취미에 심취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전자의 의미로 쓰일 경우 그냥 오타쿠라고 부르고 후자의 경우 XX 오타쿠라는 식으로 수식어 형태로 표현한다. 즉, 오타쿠라는 개념에서는 앞서 말한 일본 애니메이션/게임 오타쿠가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9
라고 오타쿠/덕후들의 성지 엔하위키 미러 10는 말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오타쿠라는 단어와 그렇게 지칭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시궁창이다. (중략) 일본에서는 미야자키 츠토무 11 등의 범죄사건 때문에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이며 오타쿠에 대한 인식 중 하나가 "야겜 12 중독자"다 보니 이성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짐승이라는 인식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90년대를 드러나지 않은 각종 모방 및 표절 사례에 비례하여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던 수많은 문화 창작물과 함께 오타쿠의 어휘와 문법도 현해탄을 건너왔다. 2015년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세대에게 ‘오타쿠’는 열도에 존재한다는 상상 속 개념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였다. 오타쿠는 매일매일 발도장을 찍어야했던 10대 시절의 교실 뒤 켠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실존 인물들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관찰자 입장에서의 이야기다. 본인이 오타쿠라고 생각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누군가에게 오타쿠라는 단어는 애증 13의 자기정체성인 동시에 취향공동체의 이름 아래 똘똘 뭉친 동지들이 지닌 ‘연결고리’였을지도 모른다.
묵은 시간을 기왕 끄집어낸 김에 좀 더 뒤적여보겠다. 교실에서 오타쿠로 불리던 아이들은 주로 살집이 있고 안경을 쓰고 있으며 주류(10대 집단 사이에서도 엄연히 사회적 위계는 존재한다) 또래집단에 속하지 못한 채 오타쿠끼리 취향을 공유하곤 했다(또는 그런 이미지로 상상되었다). 오타쿠(오타쿠는 뭐고 오덕은 또 뭐냐. 라는 의문이 든다면 당신은 이 글을 잘 읽고 있는 것이다.)가 수입되었으니 그들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태도 역시 함께 학습되었다. 개인이나 집단은 왕따 내지는 적어도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은따’였다. 14 ‘일반인’들에게 오타쿠들의 욕망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음침하고 패배주의적인 일탈로 재단되었고, ‘불건전한 취미’라는 어른들의 혹평은 오타쿠들을 향한 혐오행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비록 딱히 위축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이런 주변 상황들이 오타쿠들에게 반가웠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오타쿠라는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라졌다기보다는 한국화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오타쿠는 오덕후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오타쿠라는 단어에서 연음 법칙을 이용해 ‘현지화’한 오덕후(줄임말로 오덕)라는 단어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15 오타쿠가 오덕후라는 ‘한국식’(?)이름을 획득함에 따라 사람들은 [오타쿠]를 경멸하는 대신 자신이 [오덕후]임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단어가 순화(?)되어서는 아닐 것이다. 오타쿠라는 단어가 오덕후로 대체되기 시작한 어느 즈음부터 기존 오타쿠에 포함되지 않던 취향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까지 ‘오덕’, ‘덕후’ 정체성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새로 부상한 덕후 정체성은 덕후를 자칭하는 사람들의 실천적 활동에 의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덕후’들의 실천적 활동 중 가장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으로는 취향의 전시를 들 수 있다. 색깔별로 신상품을 구비해 늘어놓은 코덕 16들의 화장대 사진, 아이돌 덕후들이 올리는 ‘내 새끼’들의 움짤 등을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선후관계를 명확히 할 수는 없지만 덕후라는 단어가 포괄하는 취향의 범위는 넓어졌다.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한 분야에 ‘열중’한다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그저 특정 취미에 심취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동시에 덕후라는 단어는 기존의 폄하적 의미를 벗어나 일상의 차원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SNS를 타고 취향의 전시는 더욱 활성화되었고,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덕후라고 자각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특이한(?) 취향을 공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개량된 덕후 정체성이 보다 넓은 범위로 확대된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새로운 취향들이 생겨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덕후라는 단어는 사실상 지극히 보편적인 맥락의 기존 취향까지 포괄하기 때문이다. 17 확실한 것은 자신이 정의상 오타쿠이든 아니든간에 그 단어로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이들이 오덕이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수용(또는 변용)했다는 점이다.
덕후와 관련 용어들이 인터넷에서 일종의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사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통용되지는 않는다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은어의 범주에서 벗어났다. ‘취향’ 그자체가 유행이 된 셈이다. 우리는 덕후라는 단어로 집약되는 ‘취향 찾기와 드러내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나는 일정한 취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아이덴티티는 확실히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취향을 향한 욕망으로 인해 오타쿠는 오덕후가 된다.
2. 오덕후는 (ㅆ)십(10)덕후가 된다(오덕후+오덕후=십덕. 씹덕)
오덕들은 더 나아가 스스로를 십덕으로 부른다. 흔히 오덕후 기질이 강한 사람들을 십덕후(십덕)라고 표현한다. 이들은 취향의 대상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나머지 사망에 근접한 지점까지 다녀오는가 하면(씹덕사) 그 와중에 취향의 대상이 자신을 ‘심쿵’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요소(씹덕 포인트)들을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다. 오덕이 남들이 보기에 과하다 싶게 취미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면, 씹덕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단계에 위치한다. 한 발 더 나아간다는 것에는 중의적 의미가 담긴다. 사실 씹덕이라는 단어가 발음부터 심상치 않다. 오타쿠 시절부터 내려온 오타쿠/오덕후 혐오 정서로 인해 씹덕은 이른바 오덕후를 비하하는 표현 18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오덕들 스스로가 이런 정서를 내면화 시켜 스스로를 자조하는 표현으로 씹덕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취미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고 온갖 정성을 쏟아 부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웃는 것이다. 통장으로 키운 새끼들 때로는 종속되다시피 취미에 함몰되고 있다는 것을 십덕후들 자신도 자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씹덕으로 정의하며 한숨 쉬는 덕후들의 자기 비하가 온전히 부정적 정서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비하의 탈을 쓴 정체성과 자아의 재확인에 가깝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더라도 나는 나만의 특정 분야를 계속 좋아해왔으며 앞으로도 좋아할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내게 (금전적, 시간적) 부담을 주더라도 정체성은 곧 나 자신이므로 지켜나가야 할 그 무엇이다.’ 이는 노상 연인과 티격태격하면서 친구에게 연애하기 정말 힘들다고 푸념하는 캠퍼스의 흔한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씹덕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취향의 격상된 위상을 반증한다. 바야흐로 취존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고 비하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상.
3. 허용되는 오덕의 범주
각종 분야에 걸친 오덕들이 합법적(?)으로 양산되고 양지로 고개를 서서히 치켜들고 있는 이 상황에서 취향의 천년왕국이 다가오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고 애쓰고 관심 분야를 알아가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경향이 점점 가시화 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신생 취향이 덕후들을 탄생시켰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분야의 덕후들이 등장함에 따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알리는 사람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영화 감상/ 음악 감상이 자기소개서 취미 공란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던 시절은 지났다.
‘허용되는 취향’이라는 말을 꺼내면 누군가는 시대착오적 발언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덕들이 범람하는 2015년에도 취향의 위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모두가 취향 존중을 이야기하고 각자 좋아하는 걸 하자고 말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좀 더 꺼림칙한 타인의 취향영역이 존재한다. 취향존중이라는 것 자체가 서로의 취향이 다름을 전제하는 것이니 호불호의 반응은 당연히 존재한다. 용인 받을 수 있는 취향과 그렇지 못한 취향이 존재하고 이는 흑백의 이분법보다는 정도의 차이에 가깝게 인식된다. 즉, 나에게 있어 편하게 받아들여지는 정도에 따라 취향들을 계단식으로 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취향 판단에 있어 우열의 가치를 부여하고 이 기준에 기초한 취향 계단의 배열이 개인적 차이를 보이는 대신 암묵적이고 고착화된 사회적 동의로 존재할 때 발생한다.
취향 이야기를 하면 으레 언급되는 사회학자인 부르디외는 듣는 음악만으로도 그 사람의 교육수준과 소득, 성장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클래식과 락앤롤에는 고급 취향과 저급 취향이라는 (이는 부르디외의 개인적 소견이 아닌 사회적 상징체계에 가깝다) 꼬리표가 소리 없이 붙여진다. 취향은 자기표출의 측면을 지니고 하지만 온전히 개인적 표현일 수 없고 타인을 판단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먼 나라의 옛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대학생 독자는 주변 지인의 취향에 대해 한 번 떠올려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홍대의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양재동에서 코스프레와 동인지 제작, 판매에 참여하는 사람의 취미를 판단할 때 그저 다른 종류의 취미를 가진 것이라고 간명히 결론 내릴 수 있는가? 19 만약 호불호의 감정이 개입된다면 거기에 개인적 선호 이외의 위계체계가 정말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그 체계의 언어에 따르면 모든 취미는 존중되어야하지만 같은 정도로 존중해야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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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서 10여년 전의 교실에서 오타쿠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 아이들은, 이제는 어른이 된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있을까라고 질문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 같다. 이렇게 취존의 시대가 목전에 왔는데 그들의 취미와 커뮤니티는 이제 음지를 벗어났을까? 오덕후라는 새 옷을 입고 주변의 혐오로 인한 두려움이나 불쾌감 없이 여느 덕후들처럼 신나게 정체성을 여기저기에서 발산하고 있을까.
그 때 그 시절 오타쿠로 불리우던 사람들의 선에서만 논의를 한정지을 생각은 없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위계에서 안정적 위치를 보장받지 못한 취향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오덕후가 등장하기 전의 기준으로 치자면 오타쿠 쯤으로 분류되었을 확률이 높다. 취존이라는 단어가 보편화되어가는 지금, 그들은 그래도 명목적인 취존 정도는 보장받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편으로 적어도 한국에서는 오타쿠라는 단어가 죽어버렸고, 오덕후라는 새 이름으로 어휘를 전유당한 상태에서 ‘예전이었다면 오타쿠라고 불릴만했을’ 사람들이 온전히 취존의 범주에 포섭되었는지, 명목적 존중의 미명하에 소외 내지는 괴리의 영역에 머무는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할 일이다.
5. 덕후가 되고 싶어요
취미가 뭐에요?
흔히 초면인 상대를 앞에 두고 묻는 뻔한 질문이다. 그 뻔한 질문이 이제는 젠더나 섹슈얼리티, 계층, 인종, 민족과 같은 단위에 못지않은 의미를 지니는 정체성을 향한 물음이 될 수도 있다. 취향은 온전히 내 정체성으로 만들기까지의 시간과 경험으로 이루어진 개인의 사연이다. 이제 취향은 부르디외가 말한 것처럼 계급 내지 계층의 문제로 단순화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가 제시한 취향 사이의 위계 담론을 내팽개쳐버리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어쨌거나 자기 인생에 있어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사람보다는 덕후가 훨씬 매력적이다.
취향의 존재가 도드라지는 시기에 취향의 이름이 도리어 폭력이 되기도 한다. 먼저 무색무취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폭력이 존재할 수 있다. 자신에게 있어 무엇이 잘 맞고 좋아할만 한지, 그래서 더욱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점은 덕후 범람의 물결 속에서 간과되기 쉽다.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 용케 덕후가 되더라도 취미로 어떤 분야를 선택하는지가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사는 데 꽤나 영향을 미친다면 그 또한 무형의 폭력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취존이라는 단순한 어휘로 폭력의 존재가 가려지기도 한다. 누군가 주류 취향 덕후들에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달라고 훈계하는 데서 그칠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취향 찾기도, 취향 존중도 애초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진실에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가까운 사이(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라 할지라도 우리는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물며 나와 친밀하지도 않은 타인의, 법적/공적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개인적 취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사실 정말 어렵다. 어려운 일을 쉬운 일로 위장시켜 가볍게 넘겨버리는 취존 지상주의의 구호는 공허하다. 취존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것, 어려운 일이기에 어렵게 시작해보겠다는 시도 없이는 한정된 취향과 한정된 정체성,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전시가 허용되는 현상이 재생산될 뿐이다.
모두가 덕후가 되어야하는 건 아니지만, 되고 싶어 한다면 모두가 존중받는 덕후가 될 수 있는 시점이 취존의 완결이 될 것이다. 2015년이 취향에 있어 일종의 시민혁명 상태에 도달했다고 말 한다면 여태까지의 성과와 앞으로 남겨진 대화의 과제가 좀 더 와 닿을 수 있을까. 그 완결이라는 게 가능하기나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딱히 거기에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나는 좀 더 유쾌하고 편안한 덕후가 되고 싶을 뿐이다.
글 편집위원 sol
사진출처
코덕 http://www.instawebgram.com/i/hkgood6
씹덕사 http://theqoo.net/jdol/5683289
폭간율 http://www.sosiz.net/index.php?mid=org_data&document_srl=8572646
철덕 http://newe.tistory.com/entry/118%EC%9D%BC-%EC%8A%A4%EC%83%B7
덕후진단법 http://egloos.zum.com/ironbullk/v/5672332
- 오덕후.(동의어: 덕후, 오덕) 사전적 차원에서의 정의는 본래 기원이 되는 단어인 오타쿠의 의미로 갈음하겠다. 수없이 남발되고 있는 이 단어의 의미를 고정시키기보다는 앞으로 전개될 글의 내용과, 독자들이 평소에 수없이 마주하고 있을(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이미 그럴 확률이 높다) 인물들의 사례가 개념의 상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본문으로]
- 덕질(덕후의 취미활동)에 입문한다는 뜻 [본문으로]
- 덕질을 쉬는 행위. 또는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 [본문으로]
- 기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나 취미분야, 인물. 글에서 바로 이어지는 부(본)진과 비교한다면, 부진의 대상을 한창 파다가도 결국에 본진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덕후가 되겠다. [본문으로]
- 가장 아끼는 인물/캐릭터. [본문으로]
- 최애 다음으로 아끼는 인물/캐릭터. [본문으로]
- 덕후가 아닌 사람. 속칭 ‘일반인.’ 덕후를 대신해서 계를 타는 사람.(아이돌 덕후 사이에서 주로 통용되는 말로, 덕후가 아닌 사람이 스타를 직접보거나 티켓팅을 성공하는 반면 덕후는 그러지 못한다는 표현) [본문으로]
- (괄호 친 부분 제외) ‘오타쿠’의 사전적 정의,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 엔하위키 미러, 항목 ‘오타쿠.’ [본문으로]
- 엔하위키 미러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가능하며, 항목의 작성과 수정이 가능한’ 오픈 백과 형식의 사이트이다. 각종 서브 컬쳐에 능통한 네티즌들이 유저로 활동하고 있으며 하이퍼링크가 발달되어 정신없이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끼자루 썩히는 데 유용하다. 최근 영리화 문제로 유저들이 떠나가면서 데이터를 삭제시키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본문으로]
- 일본의 아동 연쇄살인범으로 1980년대 말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의 범인. 검거 후 집에서 5천개가 넘는 비디오테이프가 발견되고 그 안에 높은 수위의 호러 영화와 로리콘 성인물 몇 편이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를 근거삼아 당시 일본 언론은 대대적으로 오타쿠를 잠정적 범죄자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본문으로]
- 야한 19금 게임. [본문으로]
- 물론 모든 오타쿠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쿠들의 정체성은 그들이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대상 분야에 기반함과 동시에 주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변부로 ‘당연히’ 밀려나야 하는 일종의 당위성을 함께 수반했다. [본문으로]
- 이런 사례를 집약하는 대표적 혐오어휘로 안여돼(안경 여드름 돼지의 줄임말)를 들 수 있다. [본문으로]
- 엔하위키 미러, 같은 항목 [본문으로]
- 코스메틱 덕후의 줄임말. 화장품에 열광하고 종류별로 사 모으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 회사의 아이섀도우를 색깔별로 사 모아 보관하고 있는 사람을 코덕의 예로 들 수 있다. [본문으로]
- 일례로, 열성 아이돌 팬은 분명 전체 인구 중 소수이겠지만 HOT시절부터 계보가 형성되어온 전통적인(!) 취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본문으로]
- ‘씹덕 냄새 나는 애니’ 정도의 표현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본문으로]
- 필자의 지인(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과 세대를 공유할)으로부터 나온 실제 증언에 기반. [본문으로]
- 표준어로는 ‘불리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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