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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 너 화장 외(않)헤? 2부 남자편

연희관공일오비 2017. 5. 15. 14:24

2. 남자라면 ~

가깝고도 먼 남자의 화장

어쩌면 가까운 남자의 화장 1 : 립스틱 프린스

최근 온스타일에서 방영된 ‘립스틱 프린스’는 화장을 아는 섹시한 남자, 일명 화섹남을 내세웠다. ‘프린스’인 남자 아이돌들이 ‘프린세스’인 여성 게스트에게 화장을 해주는 것이다. ‘프린스’, ‘프린세스’라는 단어 선택은 둘째 치고, 내 눈을 잡아끈 것은 바로 남자와 화장의 조합이었다. 아이돌뿐만 아니라 TV 속의 남자 연예인들은 모두 화장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현무는 BB크림을 발랐는데 수염이 너무 빨리 자라 턱 부분이 허옇게 뜬 것을 가지고 개그를 치고, 김구라는 라디오스타에서 기름이 너무 많이 올라온다며 파우더를 바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뷰티 제품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도, 또 실제로 잘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립스틱 프린스’는 남자 아이돌이 뷰티를 대하는 모습을 기성 미디어가 남자의 화장을 다루던 방식과는 다르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Onstyle '립스틱 프린스' 12회 中

출처: CJ E&M 홈페이지

어쩌면 가까운 남자의 화장 2 : 안정환이 컬러 로션을 광고하던 게 10년 전이라뇨

2002 월드컵이 만든 축구 스타, 안정환의 ‘꽃을 든 남자’의 컬러 로션 광고를 기억하고 있는가? ‘피부가 장난이 아닌데?’라는 카피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컬러로션 광고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배우 옆에 서도 꿀리지 않는 안정환의 외모와 꿀피부가 뭇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아래와 같은 반응들로 그 광고가 당대 남성들에게 미친 영향, 더 나아가서는 남성의 미용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에 미친 영향을 가늠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10년도 더 전에는 이렇게 *수줍게* 컬러 로션을 어떻게 사야 하는지 질문했다면, 이제는 여러 매체에서 남자 소개팅 화장 꿀팁이라거나 남자 눈썹 다듬고 그리는 법을 소개한다. 남성 화장품 전문 브랜드들이 전국 주요 드럭스토어 매장에 입점해있기도 하고, 일상에서 남성 전용 화장품 광고를 접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익숙하게 지나치기도 한다. 여러 부분에서 남자의 화장은 대중화되었으며 실제로 남성 화장품 시장의 성장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규모로는 이미 2012년에 시장 규모 1조 원을 돌파했으며, 전 세계 남성 스킨케어 시장으로만 볼 때는 한국이 매출의 40% 정도를 차지해 업계에서 가장 시장으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인구수를 고려한다면 매우 놀라운 수치이다.

출처: “치장하는 남자들… 쇼핑 주류로 부상”, 김남인, 조선비즈, 2012.03.09.

자기를 꾸밀 줄 아는, 꾸미려고 노력하는 남자들에게 사회는 ‘메트로섹슈얼’, ‘그루밍족’ 등 여러 명칭을 부여하며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주목했다.

1 메트로섹슈얼은 사회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자기 안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킨 남성으로 특히 오래 동안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외모 꾸미기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감각과 개성적인 스타일을 뽐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메트로섹슈얼 [metrosexual] (대중문화사전, 2009., 현실문화연구)

2 여성의 뷰티(beauty)에 해당하는 남성의 미용용어로,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을 시켜주는 데서 유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루밍족 [grooming, -族] (두산백과)

이들은 공통적으로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화장을 이제 남성이 수행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젠더규범이 해체되기 시작한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자도 화장을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일까?

사실은 아직 먼 현실

그런데 이렇게 결론짓기엔 석연찮은 점이 있다. 화장하는 남자들은 많다는데, 막상 주변에 당당하게 화장을 했다고 말하는 남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개적으로 화장에 관심을 보이거나 자신이 화장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남자_뷰티유튜버_악플_대잔치.jpg

화장을 대놓고 해 벌이면... 모... 이런 말을 들어 벌여

출처: 준이(JUNE), 김기수 유튜브 채널

‘립스틱 프린스’도 다시 보자. ‘립스틱 프린스’를 불편함 없이 예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여자'에게 화장을 ‘해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안에서 남자들은 아이돌 경력으로 체득한 뷰티 지식을 은근히 자랑하는데, 여기서 강조점은 자랑보다는 ‘은근히’에 찍힌다. 그들은 아이라인을 그리면서도 과장되고 익살스러운 태도를 보이면서 화장하는 행위와 자신을 분리한다. 남자 아이돌들이 뷰티제품에 관심이 있고, 실제로 화장을 꽤 잘할 수도 있지만, 그 사실은 적어도 아직은 결코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립스틱 프린스는 표면상 ‘화장을 아는 남자’를 내세우지만 결국 남자의 화장에 대한 기존 미디어의 시각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립스틱 프린스’ 역시 남자의 화장을 개그의 소재나 직업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립스틱 프린스’도 화장을 남성의 영역 밖의 것으로 은근히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립스틱 프린스’가 뷰티에 적극적인 관심이 있고 거기다 전문성까지 갖춘 남자 아이돌들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아마 남자 뷰티 유튜버들이 당하는 수모를 피해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 뷰티 유튜버들은 눈썹을 다듬고 립밤을 바르기도 하며 새로 나온 립스틱의 예쁨에 감탄하고 눈두덩에 올리는 아이섀도우의 영롱함을 찬양한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화장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본인의 얼굴에 직접 화장을 한 결과, 그들은 욕(이 아니라 사실상 인신공격)을 들어먹는다. 이들에 대한 거부반응은 꽤나 격렬한데, 이러한 대중의 시선을 반영하듯 대부분의 남성 화장품 광고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스러움, 티 나지 않음을 강조한다.

 2013년 소망화장품에서 출시한 ‘맨즈밤’. CF 속 싸이는 '왜 클럽엔 여자들이 많은데 너한테는 접근하지 않을까?', '왜 저 여자는 너한테 왔는데도 술만 얻어먹고 갈까?' 라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해결법으로 'MAN을 MAN답게' 만들어주는 맨즈밤(Man's Balm)을 바르라고 한다. 이어서 맨즈밤을 사용한 남자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한 인터뷰이는 오래 사귄 여자친구도 화장한 사실을 절대 모른다며 맨즈밤을 강력 추천한다. 즉 'MAN을 MAN답게'를 구구절절 풀어서 말하자면 '원래 남자는 화장하면 안 되지만 맨즈밤을 바르면 티가 절대 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게' 쯤 되겠다.

출처: '맨즈밤' CF "선수학 개론 1"편

외 화장했다고 말을 못헤?!

그러니까 남자의 화장은 ‘특정한 범위(=티가 나지 않는 선) 안에서만’ 인정되는 것이다[각주:1]. 남자가 해도 되는 화장은 조금의 피부 보정과 눈썹 정리가 다이고, 이것은 ‘그루밍’일 뿐 절대로 화장은 아니다. 그리고 이 경계를 감히 넘어버린 남자들은 모진 매타작을 각오해야만 한다. 이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계집애 같이 뭐하는 짓이냐’, ‘꼬추 떼라’ 등에서 너무 명확하게 드러난다. 화장을 하는 것이 남성성의 훼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여성혐오가 자리하고 있다. 이거슨 데자뷰..? ‘띠용 남자가 화장하는 게 싫은 건데 여성혐오라니 무슨 소리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남자의 화장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1부 <여자라면~> 편에서 다루었듯이 화장을 여성이‘나’ 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자신을 가꾸는 정도의 화장은 좋지만 지나치게 티가 나는 화장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은 결국 ‘남자는 화장을 하면 안 돼’를 관용해준 것에 불과하며, 이는 남성성의 해체라기보다는 스펙트럼 변화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므로 현상적으로는 남자의 화장이 대중화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중요한 구분점-화장이 여성의 것이라는 것-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할 수 있다.

3. 그래서 어쩌자고?

여자는 화장을 안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한 티가 나서도 안 된다. 여자에게 권장되는 화장은 순하고, 어려 보이고, 자연스러운 화장뿐이다. 각진 눈썹, 관자놀이를 향하는 스모키한 아이 메이크업, 풀로 채운 레드립을 보면 ‘누구 하나 잡아먹을 일 있냐’며 혀를 찬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각진 물건이고 까맣고 빨간 것들인데 그게 여자 얼굴에만 올라가면 공포심을 느낀다니, 일상이 호러 무비의 연속일 그 누군가가 참 안쓰럽다. 남자에게 권장되는 화장 또한 남성성의 틀 안에서만 허락된다. 남자는 화장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우므로, 즉 화장하지 않아도 아무도 손가락질 하지 않으므로 여성이 경험하는 제한들과는 그 결이 사뭇 다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화장은 남성에게도 역시 금기이다. 그렇기에 당신이 여자든 남자든, 아니면 다른 것으로 정체화한 사람이든 당신의 화장에 드리워지는 잣대는 적어도 ‘자기표현으로서의 화장’은 아니다. 사전에 결정된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을 그저 재현해내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마음대로 규정하면서 또 일관성은 하나도 없는 간섭들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고 있는가? 근데 그거 다 부질없다. 황당무계하고 실체 없는 틀 안에서 이대로 평생 아등바등하며 살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작년 여름부터 노 메이크업 운동이 한창이다. 할리우드 셀럽들이 민낯으로 화보를 찍거나 시상식과 같은 공식 석상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이 #nomakeup, #makeupfree로 동참했다. 단지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방법으로 화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주요한 취지이다. 이로써 다 같이 민낯으로 다니자는 것은 이제 조금 뻔해졌으니 우리는 ‘너 화장 외(않)헤?’를 계속 마주하다 결국 지쳐버린 어느 날 모두 피카츄 화장을 하기로 하자. 여자는 겨털이 없어야 하고 남자는 너무 무성해도, 아예 없어도 안 된다기에 겨털을 염색해버린 그이들처럼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면 피카츄가 되어버리자. 노란색이 잘 안 받는다면 핑크색도 좋고, 녹색도 좋다.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가 그리너리라니 과감하게 녹색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너 화장 외(않)헤?’를 남발하고 다니던 게 혹시 본인이라면 거 간섭 좀 그만하자. 보라색 아이섀도우를 칠하건 시뻘건 틴트를 바르건 피카츄 화장을 하고 다니건 다 내 맘이다.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라지 않나. 메이크업의 해방을 꿈꾸며 다 같이 부르자. 자 이제 시작이야~ 피깟츄!

출처: 핀터레스트 코리아


글 편집위원 진, 시옷

  1. 여자의 화장 역시 티 나지 않는 것을 추구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으나 남자의 화장은 아예 화장 자체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여자의 화장과는 다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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