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화

[문화] 너 화장 외(않)헤? 1부 여자편

연희관공일오비 2017. 5. 15. 14:15

0.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1 

비비크림 특유의 회색기가 감도는 피부, 진한 일자 눈썹, 빠알간 입술을 한 남자가 지나간다. 자동으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마디 덧붙였다. ‘나 저런 스타일 진짜 싫어’. 친구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돌아온 말은 충격적이게도, ‘너 그거 혐오야.’였다. 띵-했다. 꽤 리버럴한 섹슈얼리티 감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온 내가 혐오자라니.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디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왜 ‘저런 스타일’이 싫은지, ‘저런’ 스타일은 도대체 어떤 스타일을 말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나는 혐오자가 맞다. 하지만 혐오인 줄 알면서도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거부감을 떨치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 

드럭스토어에 들렀다가 평소 같으면 손등에 몇 번 그어보고 말았을 것을 이것저것 얼굴에 테스트해본 날이 있다. 눈두덩은 온통 파랬고, 이마와 콧대는 광을 뿜고 있었으며 입술은 딥한 붉은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꽤 짙은 화장이었지만 묘하게 마음에 들었고 일탈하는 기분까지 들어 잔뜩 들떴었다. 그 상태 그대로 동네 도서관에서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마주치기까지는 말이다. 선생님께 반갑게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에 드럭스토어를 나서며 확인했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 꼴을 절대 보일 수 없다는 동물적인 판단 아래 내 쪽으로 다가오는 선생님을 애써 모른 척하며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드럭스토어에서 마음에 들었던 화장은 선생님 앞에서는 왜인지 머쓱하고 창피한 것이 되어 있었다.


1. 여자라면~


민낯을 보여주는 건 실례에요!

이 문구가 여성에게 화장을 강요하는 현실을 비꼬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출시된 화장품을 많이 팔아보려는 광고 카피라는 사실은 믿기 힘들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이런 빻은 생각을 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발설할 용기를 지닌, 더 나아가서는 그게 잘 팔릴 것으로 생각한 멍청이가 있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감상과 별개로 이 사건이 적어도 여성의 화장에 대한 사회 일부의 의식 수준을 반영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시선에서 여성의 화장은 여전히 예의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욕 참 많이 먹었다. 문제가 된 문구는 웹툰 속 다른 유행어로 교체되어 재출시되었다고.


여성의 화장이 예의와 결부되어 이야기된 것은 역사가 길다. 민낯으로 출근했다가 예의를 차리라며 직장 상사에게 한 소리 들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한 영화관은 민낯 금지, 또렷한 눈썹, 옅은 눈화장, 붉은 입술의 ‘자연스러운 화장’을 근무지침으로 정해두고 여자 알바생들에게 지키게 했단다. 립스틱이 지워지면 다시 바르고 오라고 지시하고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알바생에게 불이익을 주었다고 하니 이렇게 정성스러운 고나리도 없다. 화장을 예의로 만드는 이러한 간섭들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화장은 디폴트, 민낯은 일탈이 된다.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은 게으르거나, 바빴거나, 늦잠을 잤거나 특별한 신념을 가졌으리라고 예상되는 것처럼 말이다. 여성의 일상도 자연스레 영향을 받는다. 성인 여성이라면 외출할 때 - 출근이나 데이트는 고사하고 - 어느 정도의 화장은 당연히 할 것이라는 기대가 대표적이다. 하물며 집 앞 편의점에 가면서도 눈썹과 입술 정도는 칠해야 마음의 평안을 얻는 여성들이 많으니 말 다했다.


화장! 이렇게 하면 된다! -올바른 화장에로의 길

최신 간섭 트렌드는 ‘하느냐, 마느냐’가 아닌 ‘어떻게’에 대한 것이다. 일례로 뷰티 콘텐츠에서 찾아보기 쉬운 메이크오버 쇼를 꼽을 수 있겠다. 종전의 메이크오버 쇼들이 민낯의 여성에게 화장을 해준 후 예뻐진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잘못된 방식으로 화장하는 여성에게 올바른 화장법을 전수해주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다. ‘메이크업 진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러한 콘텐츠를 통해 특정한 방식의 화장이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규정되고 그 바깥의 것들은 진단이 필요한 병적인 것이 된다.

‘메이크업 진단’ 전과 후

왼쪽의 진한 화장을 하고 등장한 게스트에게 시청자는 물론 방송을 진행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조차도 난감함을 주저 없이 표현한다. ‘세다’, ‘무섭다’, ‘(메이크업 기법을) 너무 많이 합치신 것 같은데…’ 등의 평가가 쏟아진다. 메이크오버를 위해 게스트가 화장을 ‘흘려보내[각주:1]’러 간 사이,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부분은 짚어내서 다시 수정해드리는 방향으로’ 그 날 방송을 진행할 것임을 안내한다. 그 결과물이 오른쪽의 After다. 잘못된 화장을 수정한 것이니 오른쪽의 화장은 올바른 화장일 텐데 사실 특별하거나 새로울 것이 없다. 길에서, 지하철에서, 강의실에서, 어디서나 보던 그 화장, 매일 아침 하던 바로 그 화장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도 ‘데일리 메이크업’이라는 키워드로 비슷한 화장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관련 튜토리얼을 몇 편 보다 보면 자연스러움[각주:2]을 기조로 몇 가지 요소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데일리 섀도우의 대표 격으로 꼽히는 맥의 소바와 아리따움의 진저파우더, 그리고 몇 년간 인기를 끌고 있는 MLBB 립. 자연스러움을 온몸으로 외치고 있다.

결점 없는 흰 피부와 자연스러운 눈썹, 순한 눈매와 적당히 붉은 입술이 그것이다. 흰 피부에 대한 선호는 유별난데, 오죽하면 ‘21호[각주:3]의 신화’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한때 공고했던 일(一)자 눈썹의 입지는 요즘 유행하기 시작한 아치형 눈썹이 가로챌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왕왕 볼 수 있는 서양의 ‘eyebrows on fleek’에 비하면 그 둘은 자연스럽고 또 자연스럽다. 일(一)자 눈썹/아치형 눈썹으로 완성되는 순한 인상에 대한 열망은 아이 메이크업에서도 비슷한 경향으로 드러난다. 브라운 계열의 섀도우로 음영 정도만 잡고 아이라인은 점막만 채우거나 꼬리를 살짝만 빼서 그린다. 입술은 붉은 계열로 적당히 칠하되, 입술 가득 칠하지 말고 안쪽부터 발색해서 자연스럽게 그라데이션 하는 것이 좋다.

한데 모으면 이렇게 된다. (진짜다) 한국에서 잘 팔리는 게 뭔지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쯤 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모두가 비슷하게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것이 과연 간섭에 의한 것인지, 그렇게 하는 것이 그저 모두의 눈에 그게 예뻐 보이기 때문은 아닌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화장이 예뻐서 하는 걸 수도 있잖나.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하고 다니는 데일리 메이크업이 온전히 각자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적어도 빡센 브론징과 검정 립스틱이 잘못되었다는 평가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데일리’를 벗어난 화장에 대한 지적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데일리’가 보편으로 자리 잡은 것을 단순한 개취의 합이라고 보는 것은 나이브한 현실 도피일 뿐이다. 파란 아이섀도우를 칠하고 새빨간 립을 입술 가득 칠하고 싶다면 불특정 누군가에게 한 소리 들을 걱정 없이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원한다면 할 수 있어야 한다.


민낯은, 센 화장은 외않됄까?

그렇다면 여성에게 화장을 하게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친절히 지도해주는 이 간섭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것은 *surprise* *surprise*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가진 여성 혐오적 시선에 근거를 둔다. 그 시선에서 여성의 몸은 불완전함, 결함의 상징으로서, 화장을 비롯한 온갖 치장을 동원해서 가리고 보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꾸미기 전의 불완전한 여성은 화장을 통해 무결함과 아름다움을 성취해낸 후에야 비로소 공적인 영역에 나설 자격을 갖춘다. 그리고 치장 전과 치장의 과정은 철저히 여성의 사적인 활동으로 치부되어 공적 일상에서 지워진다. 이것이 과장 같다면 지하철, 버스, 카페에서 화장하는 여성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인터넷을 조금만 들여다보라. ‘못 배웠다.’, ‘혐오스럽다.’부터 ‘성적으로 문란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까지 나온다. 이런 평가들은 가루가 날린다거나, 역한 화장품 냄새를 풍긴다는, 여성의 화장이 주변에 주는 실질적인 피해들과 전혀 무관한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완수되어야 했던 것이 밖으로 드러나니 꼴 보기 싫은 거다.

한 듯 안 한 듯한 자연스러운 화장이 주류적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꾸밈의 과정을 삭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미묘한 모순을 포착할 수 있다. 불완전하므로 화장을 해야 하지만 화장한 것이 대놓고 드러나서는 안 되고 원래부터 화장 후처럼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그래 보여야 한다. 그러면서 ‘화장빨’, ‘화떡’은 욕이 되었다. 화장 전과 후가 많이 다르면 그건 사기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화장은 ‘지하철 화장녀’와 비슷한 종류의 욕을 먹는다.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화장에 대한 고집은 ‘센 화장’을 금지함으로써 여성이 힘을 - 그것이 화장에서 비롯되는 이미지 정도에 그칠지라도 - 갖게 되는 것에 대한 경계다. 도대체 언제부터 ‘세다’가 비하적인 의미로 쓰였던가. ‘세다’는 여성에게 쓰일 때, 특히 ‘화장’과 나란히 쓰일 때만 욕이 된다. 반대로 권장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순한 화장이다. 결국, 화장에 대한 규율들은 본연 그대로의 여성,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화장에 대한 혐오다.





다음 편에서 2부 남자편이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사진1. "“민낯을 보여주는 건 실례!” 조석 ‘마음의 소리’ 화장품, 여성혐오 문구 논란", 강푸름, 여성신문, 2016.10.31.

사진2. Risabae 이사배 유튜브 채널 (쁘티튜닝라이브 2회)

사진3-5. 맥(Mac) 공식 홈페이지, 아리따움 공식 홈페이지, 썸블리님 네이버 블로그

사진6. 왼쪽부터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공식 홈페이지

  1.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표현이다. 화장을 지운다는 표현 대신 사용하였다. 희화화의 뉘앙스가 있다. [본문으로]
  2. 이 자연스러움이 허울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본연 그대로보다는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티가 많이 나지 않는’을 뜻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을 위해 눈썹의 잔털을 깎아내고, 피부의 온갖 요철을 가리고 눈매와 얼굴 윤곽도 보정해야하니 애초에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본문으로]
  3. 21호는 한국에만 있는 개념으로 해외 브랜드들이 자체적인 색조 명칭을 쓰는 반면, 국내에서는 어딜 가든 21호와 23호가 공용어로 통한다. 사실 같은 21호도 브랜드별로 색상이 천차만별이지만 웬만해서는 21호를 쓰면 된다. 애초에 ‘21호’는 특정한 색상을 뜻하기보다는 밝고 화사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VDL에서 2015년 일 년 간 한국 여상의 피부톤을 조사한 결과 23호가 고객의 43%로 가장 많이 측정되었는데 막상 23호 파운데이션을 사가는 소비자는 15%에 그쳤다고 한다. (Vogue, "화장을 지운 한국 여자들의 진짜 살색은?") 최근에는 본인의 피부톤에 맞는 파운데이션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퍼지고 있는데 이마저도 흰 피부에 대한 열망을 막지는 못한다. 미샤에서 판매율이 저조했던 23호 쿠션파운데이션을 몇 톤 더 밝게 재출시 했더니 불티나게 팔렸더라지 않나.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