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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및 목차

015B 12호 여는 글 및 목차

연희관공일오비 2020. 5. 3. 15:56

아무도 없는 방,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는 요즘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이, 메이트와 같이 사는 또 다른 이도 어쩌면 자신이 혼자라고 느끼고 있을까요. 당신이 연희관 015B 12호를 집어 들어 이 글을 읽을 그때는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요. 도통 집 밖을 나가지 않다 보니 방문을 나서 계단을 내려가다 문득. 마스크가 걸리지 않은 귀를 발견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밥을 먹으러 오랜만에 들른 학교 앞 길거리에서 아직도 사람이 많구나속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새삼 한해 농사를 망친 꽃가게, 학생들을 기다렸을 식당, 평소보다 유난히 비어있는 공간들에 눈길이 닿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올겨울을 겪었을까요. 마스크를 낀 채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곤혹스러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해 이제까지와 다른 시간을 겪어 내고 있을 이들의 당황스러움을 상상해봅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볼 2020년은 유난히 길었던 혼자만의 시간과 반쯤 비어버린 수많은 마음으로 채워져 있을 것만 같습니다. 연희관 015B도 독자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발간을 미뤘습니다. 연희관 015B가 작업 속도나 내부 사정이 아닌, 타의로 발간을 미루게 된 것은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의도치 않게 생긴 시간 동안 015B의 편집위원들은 때로는 온라인 공간에서, 또 때로는 인적이 드문 공간에서 만나 마스크를 낀 채 머리를 맞댔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과해 이 글을 펼친 당신에게는 015B 편집위원들이 들인 정성과 노력이 어떻게 전해질까요.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015B의 구성원들에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 스스로가 옭아매는 것, 잦은 악몽으로 찾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형태와 색깔의 그것들은 취향, 취미, 선호, 지향 등으로 불리며 때로는 그를 힘들게 하기도, 또 때로는 그를 찬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번 12호는 편집위원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가까운 존재들이 도드라지는 호입니다. 부지런히 자신의 안과 밖을 오간 편집위원들이 스스로를 지치게 하거나, 힘 빠지게 만들고, 다시 행복하게 하거나, 다시 걷게 만드는 것들을 어떻게 그러모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총 세 묶음으로 나뉜 이번 12호의 첫 번째 묶음엔 마주침, 맞울림이라는 이름을 달아보았습니다. 재찬은 홈리스 추모제라는 공간을 통과하며 겪은 시간을 나무에 빗댄 두 나무’, 소설이라는 경로를 경유해 타인과 고통이라는 키워드를 풀어내려 애쓴 갈림길을 지나-’까지 두 편의 글을 썼습니다. 응팡은 어떤 근황에서 홈리스 야학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이어진 자신의 근황을 꾹꾹 눌러 담아 전합니다. 노랑은 트라우마의 목소리에서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축으로 어떤 고통들이 이성과 합리의 거름망을 통과하며 들리지 않게 되었는지 보여주고, 그 틈을 메웁니다.

 

너 그거 좋아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묶음은 희의 수선소 피트니스 클럽’’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몸, 정상과 비정상, 성실과 게으름 등이 피트니스라는 단어에 어떻게 녹아있는지를 살피며 문을 엽니다. 베개는 한 덕후의 변명에서 덕질이라는 단어로부터 출발해 아이돌 팬덤을 둘러싼 여러 주장과 갈등, 편견들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덕후들을 옭아매는지를 묻습니다. 노랑은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예의 바른 사랑, 섬세한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아름다운 겨울과 타오르는 모닥불을 배경으로 그려냅니다.

 

마지막 묶음은 연세대학교의 Y를 따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YYY’라 이름 붙였습니다. 나루는 작년 연세대학교의 류석춘 교수가 내뱉은 발언을 기록하고, ‘위안부라는 단어를 에워싼 채 이어지고 있는 비뚤어진 도전들을 갈무리해 류석춘의 도전을 썼습니다. 두별은 슬기로운 송도 생활에서 작년 한 해 국제캠퍼스에서의 생활을 되돌아보며 현재 RC라는 거창한 미명 아래 운영되고 있는 국제캠퍼스에 사이렌을 울립니다. 마지막 묶음이자 12호를 마무리하는 연자의 빗자루로 바위 치기는 노동자와 학생들 사이의 새로운 연대를 희망하며, 과거와 현재 연세대학교 내의 노학연대의 물줄기를 그려봅니다.

 

015B에 두 해 동안 머물며 총 4권의 잡지를 함께 만든 저희는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칩니다. 015B를 만들며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를, 그리고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일임을 깊게 여러 번 깨달았습니다. 다른 편집위원들과 서로가 서 있는 자리, 처한 상황, 당시의 입장에 따라 부딪치고 싸우며, 마음 상하는 일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을 수많은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불편함과 생경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 테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까끌대는 불편과 어지러운 생경이 서로를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르다는 감각에서 멈추지 않기를, 나와 너라는 단어 앞에서 끊어지지 않기를, ‘사랑보다 먼저 넌, 나를 사랑하라 했잖아, 너도 그거 못하잖아, 우리를 돕고 싶어라는 노랫말을 빌려 한 번 더 바랍니다. 어쩌면 그 바람이 당신에게도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편집장 응팡 (mate517@naver.com), 재찬 (paperlifer@naver.com)

 

 


 

<목차>


마주침, 맞울림

두 나무 / 재찬

어떤 근황 / 응팡

트라우마의 목소리: 산산이 부서진 영혼의 조각들을 끌어 모아 / 노랑

갈림길을 지나 끈질기게 지속되는 숨 고르기 / 재찬


너 그거 좋아해?”

수선소 피트니스 클럽’ / 희

한 덕후의 변명 : '유쾌한' 덕질을 위하여 / 베개

예의 바르고 섬세한 사랑의 노래 : <윤희에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노랑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YYY

류석춘의 도전 / 나루

슬기로운 송도 생활 / 두별

빗자루로 바위 치기 / 연자


B-log / 공동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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