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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학러였다. 밤낮으로 신촌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연희관까지 오고 가는 일상이 몇 개월간 이어졌다. 신촌역에서 연대 앞 횡단보도까지 매일 걷던 나는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별 시선이 가지 않았다. 이미 인간들끼리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매너, 어차피 다들 피곤한 상태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뭐하러 눈을 맞추겠는가. 나는 오히려 항상 그곳에서 기다리는 비둘기를 바라보았다. 바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옆에서 종종 냉대의 시선을 받는, 검게 찌들어 버린 도시 비둘기. 조금이지만 비둘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생긴 걸까?
비둘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비교적 한결같다. 비둘기 날갯짓 한 번에 셀 수 없는 세균이 떨어진다는 낭설이 돈다.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없는 검은색 물질에 물들어버린 비둘기들을 좋아해 줄 사람은 별로 없다. 비둘기는 천대받는 동물이다. 아니, 천대의 대상을 넘어 박멸의 대상이 된 동물이다. 2009년 환경부령 1으로 비둘기는 유해야생동물로 분류되었다. “유해야생동물”이란 환경부령으로 지정한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로서, 현행시행규칙에서는 망라하는 7개 항목・14개 종 중 가장 늦게 추가된 것이 ‘비둘기’다. 비둘기는 어쩌다가 ‘유해한’ 동물이 되었을까. 그리고, 비둘기가 유해동물이 된 것이 우리네 삶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길바닥에서 치이는 비둘기에게 약간의 경의를 담아, 이 질문에서부터 글을 출발하려 한다.
1. 두 종류의 비둘기.
잠시 비둘기의 생물학적 종(種) 분류를 얘기해야겠다. 우리가 흔히 부르고 접하는 비둘기, ‘비둘기과’에는 총 289개의 종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통 6~7개의 종이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우리가 흔히 접하는 종은 멧비둘기와 바위비둘기, 그리고 집비둘기다. 그러나 도시공간의 많은 비둘기는 야생종이 아닌 ‘혼종’으로, 이들의 엄밀한 생물학적 구분은 거의 불가능하다.
<빌링슬리관의 멧비둘기>
<썬유도의 바위비둘기? 집비둘기?>
위에서 유해야생동물에 대해 언급했지만,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도록 하자. 유해야생동물을 환경부에서 처음 지정한 때는 2005년으로, 전년도에 [야생동・식물보호법]이 제정되면서다. 2 이 법은 “야생생물과 그 서식환경을 보호・관리함으로써 이들의 멸종을 예방하고 다양성을 증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생물의 영역을 유해야생동물로 규정해 이들을 포획, 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바꿔말하면, 생물다양성과 생명의 존엄을 보호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는 인간의 이익이라는 기준 내에서 진행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2005년 규정된 6가지의 유해야생동물 가운데 2개 항목이 농・림・축・수산업에 피해를 주는 동물을 명시하고 있는데, 3 여기에 ‘멧비둘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일부 지역에 서식밀도가 너무 높아 농・림・수산업에 피해를 주는 꿩, 멧비둘기, 고라니, 멧돼지, 청설모, 두더지, 쥐류 및 오리류(오리류 중 원앙이, 원앙사촌, 황오리, 알락쇠오리, 호사비오리, 뿔쇠오리, 붉은가슴흰죽지는 제외한다.)”・
명시된 다른 동물들을 미루어 볼 때, 멧비둘기가 제정된 배경에는 농사일을 망친 농부의 목소리가 반영되었음을 쉬이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일부 지역에 서식밀도가 너무 높아’라는 단서에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동물에게 가하는 위해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동물 학대’가 나쁜 것이라는 개념은 J.벤담에서 P.싱어에 이르는 근대 권리 담론의 진척과 함께 정착되어왔다. 동물 학대가 법으로 처벌받기 때문에 비로소 ‘유해한’ 동물을 따로 명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논밭에서 살아온 새들은 그렇게 인류의 법 속으로 편입되었다.
멧비둘기는 주로 침엽수림이나 낙엽수림에 둥지를 틀어 생활하기 때문에 도시 공간에서 곧잘 보이지 않는다. 연세대라는 공간에서는 북쪽 안산 자락으로 올라갈수록 멧비둘기를 만날 수 있지만, 중앙도서관 아래에서 멧비둘기를 만나기는 어렵다. 우리가 흔히 도시에서 마주치는 것은 집비둘기로, 이에 관한 환경부령 ‘유해야생동물’ 조항은 다음과 같다.
“일부 지역에 서식밀도가 너무 높아 분변(糞便) 및 털 날림 등으로 문화재 훼손이나 건물 부식 등의 재산상 피해를 주거나 생활에 피해를 주는 집비둘기”
이제부터 다루려고 하는 것은 ‘7번째 항목’으로 추가된 이 집비둘기의 특수성이다. 2009년에 이 ‘집비둘기’가 유해동물로 지정된 맥락은 전적으로 도시와 관련된 것이었다.
2. 내게 유해한, 내게 유해해진 둘기
<서울 도심의 집비둘기?>
서울에서 집비둘기의 개체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계기는 인간이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3,000마리를 날린 데 이어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 각각 1,000여 마리의 비둘기를 날렸다. 4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각각 3,000여 마리의 비둘기를 날렸다. 행사를 빛내줄 비둘기들은 해외에서 수입되거나, 관 주도 아래 진행된 ‘모이 주기 운동’, ‘집 지어주기 운동’ 등으로 태어났다. 이들은 방사를 위해 구속되고 훈련되었기 때문에 야생동물로서의 이동 감각을 상실했고, 대다수를 차지했던 집비둘기들은 서울 어딘가로 날아가 자리를 잡았다. 집비둘기는 월등한 번식능력, 상위포식자인 매・독수리 등의 부재, 그리고 도시환경에서 풍부하게 주어지는 음식물 쓰레기・구토물 등 먹이로 인해 개체 수가 급증했다. 환경부가 집계한 서울시 내 비둘기 개체 수에 대한 마지막 통계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던 2009년. 당시 35,000마리였으나 정확한 집계라고 보긴 어려우며, 그 이후에는 이렇다 할 통계가 없다.
비둘기를 법적으로 ‘유해한’ 존재로 규정하려는 감정적 징조는 이미 90년대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5 첫 번째는 야생 비둘기들이 독극물을 먹고 집단 폐사한 사건으로, 이는 90년 중반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빈발하기 시작했다. 6 두 번째는 법령에 제시된 문화재에 관한 것인데, 특히 탑골공원에 위치한 원각사지 십층 석탑이 산성비, 매연, 조류 배설물 등으로 심한 부식이 진행되면서 1997년 철골 유리 보호막을 설치한 것이 컸다. 7 세 번째는 90년대 중반부터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AI). 1996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이후, 2003년~2004년에 5백만 마리, 2006~2008년에 1,300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조류가 옮기는 전염성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8 비둘기는 점점 인간과 인간이 만든 문화에 ‘유해’하다고 여겨졌고, 비둘기 살해는 개인의 산발적 테러에서 사회가 용인하는 통제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독극물을 먹고 폐사한 서울의 집비둘기> (출처: SBS)
2009년 환경부는 [유해 집비둘기 관리방안]이라는 연구용역 보고서를 내고, 이를 토대로 비둘기를 유해동물로 지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미 비둘기 체내의 유해물질에 대한 학계의 연구들은 축적되어 있었고, 9 해당 입법예고에 대해 네티즌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는 참가자의 83%가 환경부의 개정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10 당시 동물자유연대 등 동물권 단체들이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였으나, 큰 반발 없이 비둘기는 유해동물로 지정되었다. 환경부는 비둘기를 포획해 죽이기보다는 먹이 제공을 막고 알과 둥지를 제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 공원관리과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라는 현수막을 달기 시작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비둘기 개체 수가 감소한 것으로 파악하는 곳은 없다. 오히려 비둘기 퇴치 전문업체에 돈을 주고 에어컨 실외기에 둥지를 튼 비둘기를 퇴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시에 걸려 있는 플랑> (출처: 서울신문)
3. 도시 비둘기, 더러운 괴물아!
여기까지의 줄거리로는 정부가 더러운 생물 종에 대한 민원을 받아 법령을 제정했지만 충분한 대응에 실패했다는 소동으로 읽힐 수 있다. 혹은 비둘기라는 생물 종의 생태적 습성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은 채 명분도, 효과도 없는 조처를 했다는 동물권 단체의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보다도 도시와 비둘기,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더러움’을 둘러싼 인간의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집비둘기가 ‘유해야생동물’로 추가된 명시적인 이유는 비위생적인 비둘기의 개체 수를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서울의 비둘기 개체 수가 증가한 것이 인간 때문인 것처럼, 서울의 비둘기가 더러워진 것 또한 서울이 그만큼 더러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울이 더럽다고? 이 이야기를 들으면 서울시 생활환경과 공무원분들이 역정을 낼지도 모르겠다. 2018년 환경부에서 발표한 <2017년도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서울시의 생활폐기물 관리제외지역은 0%다. 즉, 서울시는 관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를 관리하고 있다. 서울시의 1인당 폐기물 발생량은 경기도나 인천보다 낮다. 하지만 단위면적별(1km²) 폐기물을 살펴보면 ‘공간’ 서울시의 폐기물 발생량은 인천의 3배, 전국 평균의 20배에 가깝다. 건설폐기물을 제외한 생활폐기물만 계산해도 전국 평균의 9배다 11. 이는 ‘도시민’의 잘못이 아니라 ‘도시’의 잘못이다.
도시의 높은 인구밀도와 소비 습성이 오염을 뿜어낸다는 것에 더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겠다. 도시는 스스로 창조해낸 더러움을 외부로 전가해왔는데, 수도권 매립지를 둘러싼 케케묵은 갈등이나 2018년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12 그러나 도시가 쓰레기를 외부로 전가하는 과정에서도 더러움의 흔적은 남는다. 문밖에 내놓은 음식물쓰레기 봉투와 그것이 운반되는 길을 따라 새겨진 오염의 흔적을 비둘기가 쪼았다. 이를 먹고 자란 비둘기는 차마 인간의 영역에서 공존할 수 없는 괴물로 창조되었다. 이 점에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이전까지의 6개 항목과 마지막으로 추가된 7번째 항목의 맥락은 다르다. 기존의 유해동물은 영역 밖의 특수상황들에 대해 공존을 위해 ‘예외적으로’ 설정된 사항이었다면, 2009년의 집비둘기의 유해동물 지정은 자신이 ‘일상적으로’ 창조해내는 괴물에 대한 박해에 가깝다. 이쯤 되니 하나의 소설이 떠오른다.
“저주받을 창조자여! 당신조차 역겨워하며 외면할 정도로 끔찍한 괴물을 도대체 왜 만든 건가? 자애로운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 아름답고 매력적인 인간을 만들었어. 하지만 내 모습은 당신의 추악한 형상이며, 닮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더 끔찍해. 사탄에게는 존경하고 격려하는 친구나 악마 동료라도 있었지만 나는 외톨이고 미움까지 받고 있어.” 13
1818년 발표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주인공 비트겐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의 정수를 모아 생명체를 창조해내지만, 자신이 창조해낸 생명체를 감당하지 못하고 버려둔다. 피조물은 흉측한 외모로 태어났지만, 언어를 배우고 책을 읽으며 인간과 관계를 맺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의 외모로 인해 인간에게 ‘흉측한 괴물’이라 박해받은 피조물은 연속해서 살인을 저지르며 ‘끔찍한 괴물’로 변하게 된다. 이렇듯, ‘괴물’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성 결여에서 탄생한다는 점에서 타자성의 징후이자 표상이다. 괴물성(性)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병적인 특성이 아니라 죽지 않은 채로 기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등장한다. 14 비둘기가 죽지 않은 채로 기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을 서울은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비둘기는 더럽다. 그러나 더러움은 우리의 도시 생활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비둘기를 더럽게 느끼는 것은 그 더러움을 게워내고 얻어낸 깨끗한 삶을 ‘정상’으로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의 감각에서부터 이러한 위생과 청결의 반응을 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쉽게 이를 ‘사실’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감각에서 출발한 개념은 개체들을 하나의 총체로 대상화하고 격리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4. 비둘기에 대한 도시감. 동물에 대한 도시감.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비인간 동물이 인간의 목적에 의해 ‘유해’한 것으로 규정되는 것은 낯설지 않다. 애초에 돼지고기의 단백질이 우리에게 해롭냐, 소고기의 단백질이 우리에게 해롭냐는 일상적인 사고행위로부터도 멀지 않다. 인류는 1만2천 년 전부터 비인간 동물을 가축으로 키워왔고, 5천 년 전부터 운반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는 학대와 사랑, 더 넓게는 학살과 숭배 사이에서 위치했다. 그 가운데 도시는 얼마나 특별한가.
도시에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은 묘하게 격리되어 있다. 개와 고양이처럼 인류와 비교적 오랜 기간 관계를 맺고 정서적으로 교류해온 동물들은 인간의 배수시설에서 씻기고,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인간의 식탁에 올라오는 돼지나 소, 닭이 얼마나 더럽게 살다가 죽어가는지는 우리는 거의 평생 보지 못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아주 깨끗이 다듬어진 고기다. 정확히는 더러움을 우리가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더러운 고기’를 먹기 싫은 우리의 위생에 대한 감각 때문일 수도 있고, ‘더럽게’ 자라나는 비인간 동물의 비루한 삶이 너무도 비참해 우리 눈으로 목격하기 싫어서일 수도 있다. 비둘기에 대한 ‘닭둘기 괴담’도 비슷하다. 우리는 닭을 먹지만, 그 닭은 축산공장에서 깨끗하게 정돈되어 식탁에 놓인 것이어야 한다. 비둘기와 같이 ‘더러운 괴물’이 식탁에 올라와서는 안 된다. 괴담은 이러한 몰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도시에서 비인간 동물과 관계를 안/맺으면서 생성된 우리의 감정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관계는 유해와 무해의 계산대 위에 존재를 계속 올려놓고, '감정 없음'을 주입하여 우리를 연루의 감각으로부터 둔하게 만든다. 만약 비둘기에 대해 만들어진 도시감(都市感)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비둘기를 몰개성화하여 하나의 ‘더러운 비둘기’의 상을 만들어 배제해나가는 과정 위에 있다.
그러나 -마치 프랑켄슈타인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유대감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도시민의 비둘기에 대한 감정 역시 단일하지 않다. 2017년 설치된 서울시 야생동물센터는 각종 질병 및 부상을 입은 야생동물을 구조・치료하고 있는데, 여기서 발표한 2018년도 야생동물 구조 현황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집비둘기다. 한편에서는 비둘기를 퇴치하기 위해 돈을 쓰지만, 한편에서는 비둘기를 구조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먹을 수도 없는 더러운 비둘기이지만 죽이지 않고 신고한 그 누군가. 그가 전화번호를 누른 까닭은 ‘비둘기도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라는 생각보다는 단순한 연민이지 않았을까.
5. 마치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쨌든 비둘기는 더러워. 지금 비둘기보다 내 신세가 더 불쌍한데, 이제는 저 더러운 비둘기에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내게는 도시보다 둘기가 더 유해해.”
이런 말을 할 독자에게 해명하긴 어려우니, 잠시 다른 동물에게 눈을 돌려보자. 비둘기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가 다른 운명에 놓인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과거에 ‘쥐잡기’ 역할을 수행해 인간에게 이로운 생물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유기로 인해 개체 수가 급증하고, 도시의 쥐를 잡을 필요성이 줄어들자 고양이는 ‘더러운 길고양이’가 되었다. 이에 많은 길고양이가 안락사의 대상이 되었지만, 지역구민과 캣맘/캣대디, 지자체 등 여러 행위자가 공존의 연결망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TNR이라는 공존의 방식을 찾아냈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감정을 둘러싼 하나의 정치과정이 성공한 셈이다. 15
275만의 유튜브 지원군, 16 각종 인터넷 카페, 그리고 연냥심&고고쉼이라는 집사클럽까지 가진 사랑받는 종과 비둘기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연세대의 노랑 고양이에게 ‘모짜’라는 이름을 붙이는 행위 역시 도시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에는 주목하고 싶다. 계속 ‘도시’에 책임을 돌렸지만, ‘비도시’나 ‘전원’에 답을 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비도시 소싸움에서 인간과 소의 ‘관계’나, 집에서 기르던 백구를 복날이 되면 먹어버리는 식의 ‘관계’ 역시 경악스럽다. 도시가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를 바꿔놓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리고 바뀌어버린 상황에서야 비로소 생겨나는 감정과 관계가 있다. 이곳은 폭력으로 그득하지만, 그 어딘가에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백양로에 길고양이가 느긋하게 누워있고, 연희관 처마 위에 비둘기가 둥지를 트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상적인 결론을 내놓은 까닭은 결국 ‘공존’이라는 유순한 단어를 뱉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시가 비인간 동물에게 ‘유해’한 장면들은 너무나도 많다. 어둡지 않은 밤으로 인해 많은 동물이 생체시간을 잃어버렸지만, 인간은 이제 어두운 밤에서만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만약, 도시의 삶에서 파생되는 ‘유해’를 하나하나 지적하다가는 도시에서 그 무엇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폭력을 둘러싼 무감각・무감정・무관계 속에서 합리적 모순이나 시혜적 한계를 지적하기보다도, 이들과 관계 맺음을 통해 우선 감정을 가졌으면 한다. 시혜적인 연민이어도 괜찮다. 애완에서 반려로, 감정이 권리 담론에 선행한 경우는 넘쳐난다. 도시감이 여러 경합하는 감정의 집합이라면, 그 감정을 해체하여 당신이 취할만한 감정을 채택해나가자. 이 글은 그런 글이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노찬성의 글이다. 17
공존은 당위 이전에 현상이다. 도시에는 이미 인간과 비둘기가 존재한다. 나는 인간이 자신에게 유해한 존재와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종이라고 믿는다. 우리 역시 유해하므로.
글 : 편집위원 나루(qeq0822@gmail.com)
-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본문으로]
- [야생동・식물보호법]은 과거의 [자연환경보전법]과 [조수보호 및수렵에관한법률]이 통합되어 제정된 법으로 현재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약칭 야생생물법)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본문으로]
- 나머지 4개 항목은 군사작전, 분묘 훼손, 전력 훼손, 맹수의 위협에 관한 내용이다. [본문으로]
- 「대형 행사마다 ‘비둘기떼 축하비행’... 聖火에 타 죽고... 길 잃어 難民 되고」, 조선일보, 2016. 12. 07. [본문으로]
- 김준수, “한국의 발전주의 도시화와 ‘국가-자연’ 관계의 재조정: 감응의 통치를 통해 바라본 도시 비둘기”, 공간과 사회 제28권 1호, (2012): 55-100. [본문으로]
- 「경희궁 비둘기 애처로운 죽음」, 경향신문, 1996. 04. 28. 「비둘기 ‘의문의 떼죽음’ 공항터미널 일대 3일째」, 경향신문, 1996. 04. 06. 「비둘기 수백마리 다리 아래서 ‘떼죽음’」, KBS, 2006. 12. 27. [본문으로]
- 「원각사지 10층석탑에 철골유리 보호막 설치」, 중앙일보, 1997. 11. 08. [본문으로]
- 「되살아나는 ‘조류 인플루엔자 악몽’」, 서울신문, 2010. 12. 08. [본문으로]
- 남동하, 이두표, 구태회, “비둘기 깃털을 이용한 납 오염 모니터링”,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제16권 3호(2002): 233-238; 김정수, 이두표, 구태회. “서울지역에 서식하는 집비둘기 Columba livia의 깃털을 이용한 중금속오염 모니터링”, 한국생태학회지 제26권 3호(2003):.91-96. [본문으로]
-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서럽다」, 한겨레, 2009. 05. 18. [본문으로]
- 환경부에서 발표하는 폐기물은 ①생활계폐기물, ②사업장배출시설폐기물, ③건설폐기물로 분류되어 있다. 서울특별시의 1인당 폐기물 발생량은 4.66kg/일이며 경기도는 5.90kg/일, 인천광역시는 7.73kg/일이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다른 시・도와 비교해 건설폐기물 배출량이 많다. 건설폐기물을 제외한 1인당 생활폐기물 발생량을 계산하면 1.12kg/일까지 내려간다. 한편, 서울의 단위면적별 폐기물 발생량은 75.86kg/일이며, 인천은 21.37kg/일, 전국 평균은 4.13kg/일이다. 건설폐기물을 제외한 서울의 단위면적별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18.26kg/일이다. 위 수치는 환경부에서 발표한 <2017년도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에 근거하여 필자가 작성하였으며, 인구통계와 면적은 DATAKOREA 자료를 참고하였다. 환경부의 폐기물 통계는 서울의 폐기물의 상당수가 서울 이외의 지역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확한 집계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는 1993년 난지도매립지가 폐쇄된 이후, 수도권매립지에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 [본문으로]
- 재활용 업체들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재활용 쓰레기들을 중국에 수출해 왔으나, 2018년 중국이 폐자원 수입 규제를 이유로 재활용품 수입을 중단하면서 폐자원 가격이 급락했다. 업체들은 이윤이 나지 않아 재활용품을 수거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수도권의 주택가, 아파트 단지 등에서 재활용 쓰레기가 처리되지 않고 쌓여 큰 혼란을 낳았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를 참고. 「재활용 쓰레기 대란… 中, 24種 수입제한 ‘직격탄’, 국내 發電用 수요도 줄어」, 문화일보, 2018. 04. 06. [본문으로]
- 메리 셸리 저, 현혜진 역, 「프랑켄슈타인」, 부북스, 2015. [본문으로]
- 박숙자, “괴물의 탄생: 무감정, 반윤리, 비죽음”,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18권 4호(2014): 133-155. [본문으로]
- Trap-Neuter-Return. 길고양이를 포획하여 중성화 수술을 한 뒤 방생하는 것으로, 도시 지역 길고양이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제도적 방안으로 자리 잡았다. 길고양이에 대한 감정과 TNR에 관해서는 이종찬,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통해 본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과 공존의 정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를 참고했다. TNR이 과연 성공한 공존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논쟁적이겠지만, 공존이냐 박해냐를 묻는다는 비교적 공존에 가깝다고 본다. [본문으로]
- 한국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냥튜브 “크림히어로즈”의 구독자 수. 2019년 8월 기준. [본문으로]
- 김애란의 단편소설 「노찬성과 에반」의 주인공을 인용. 김애란,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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