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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넷, SNS의 발달로 뉴스나 정보에 대한 접근이 숨쉬기만큼 쉬워진 시대하루에도 수십수백 번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넘실거리는 정보에 온몸을 적시는 세계. 2019년을 살아가는 이들 중 많은 이들그리고 이 글을 읽을 대부분의 독자는 그런 때와 장소를 살아가고 있다그렇다면 공기처럼공기 속 수분처럼 자연스러워진 그 수많은 정보는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단비일 뿐인가. SNS와 뉴스정보로 이어지는 단어들의 연결 속에서 어느 정도는 진부해져 버렸지만아주 조금은 고민해볼 만한 물음표를 잠시 붙잡아보자.

 

2019년 7월 10일 각종 매체는 배우 강지환이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로 체포됐다는 보도를 쏟아냈다.[각주:1] 자신의 집에서 회식을 하던 중 드라마 외주 여성 스태프 2명을 각기 성추행성폭행 한 혐의로 체포된 배우 강지환은 나름 인지도 있는 배우였고해당 사건은 연일 화제가 되어 이목을 집중시켰다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사건이 보도된 직후 각종 뉴스 기사나 SNS,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온갖 말들이 쏟아졌다정확히 밝혀지지 않는 사건의 틈새를 파고드는 악랄하고 비겁한 말들이무려 성추행과 성폭행이라는 성폭력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 사건과 용의자에 대해많은 이들이 어떠한 근거나 정확한 정보 없이 떠들어대고 있었다그들은 그 사건에 대해 단언하고 있었다.


 710일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달린 댓글들이다.


댓글들은 성폭력으로 신고한 이들이 남자가 사는 집에서 술을 먹었다는 이유, 1차 회식이 끝나고도 늦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이유, 경찰에 바로 신고한 것이 아니라 문자로 지인에게 신고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호소한 여성 2명을 소위 꽃뱀으로 몰았다. 그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가지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꽃뱀들이 강지환을 작업했다거나 그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발화를 뱉어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사건의 개요나 정보들이 정리되어있다는 듯이. 추리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범인을 특정하는 독자라도 된 듯이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위와 같은 댓글을 읽으며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강지환의 집은 통신 문제로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라 신고인들은 13차례나 경찰 신고에 실패했고, 강지환의 집에서 회식을 한 스태프는 2명이 아닌 10여 명이었으나 강지환이 신고인 2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집으로 보냈으며, 드라마의 주역 배우가 일개 외주 스태프를 잡아두는 일이 얼마나 쉬웠으리란 걸 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피해자나 약자에게 던져지는 단언이 잘못되었다는 감각은 점점 더 이야기되고 있다. 느리지만 조금씩 그 단언이 잘못되었다는 건 상식이 되어가고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봉준호, 박효신, 잔나비, 검정치마.

갑작스럽게 늘어놓은 4개의 이름을 보고 당신은 무엇이 떠올렸나? 단언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약자에게 혹독하고 잔인하게 작동하는지를 살피다 말고 난데없이 던져진 4개의 이름이 의아할 것이다. 진부하게도 4개의 단어, 4명의 인물은 모두 남성이다. 하지만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럽게도 앞서 댓글을 단 이들 중 상당수, 강지환이라는 인물을 4명의 인물과 함께 엮어 남성들의 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4명의 인물은 비교적 최근 논란을 만들어 낸 예술인, 혹은 대중문화인 이다. 글을 시작하며 밝힌 바와 같이 쫓아가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인터넷과 SNS 등의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2019년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중문화계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모두 가해자나 빻은이들로 지목되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굳이 비교하자면 앞서 등장한 사건의 강지환과 비슷한 위치로 단언된 이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가해지는 단언은 어떠한가. 그 단언은 잘못되었나?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하는 건 문제인가. 문제라면 왜 문제인가.

 

2.

나무꼬치 하나에 하얀 스티커가 붙어있고, 그 위에는 굵은 매직으로 한 단어가 쓰여 있다. ‘단언.’ 그 나무꼬치가 날아가 을이나 갑, 피해자나 가해자, 약자나 강자를 구분하지 않고 가슴에 박힌다. 나무꼬치는 계속 불어나고, 하루에도 수백 번 매일 매일 우리는 대중문화라는 이름, 연예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나무꼬치를 날리고 부러트리고 꽂고 찌른다. 그 나무꼬치가 어디에 뿌리를 내릴지, 어떤 상처로 곪을지, 도려내 태워버려야 할 환부患部를 붙들지 알지 못한 채로.

 

단언斷言. 거무스름한 글씨로 새겨진 글자, 스티커, 나무꼬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잠시 숨을 고르고 앞서 던진 4개의 이름에 대해 간단히 읽어보자.

 

봉준호는(이 글이 쓰인 잡지가 소속된 학교의 출신이고, 학교 전체를 이름 석 자로 덮어버릴 듯 맹렬한 기세로 펄럭이는 동문애() 가득 한 현수막의 주인공이며) 한국인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감독이다. 수상작인 <기생충>은 근 천만 명의 국내 관객을 모으며 예술성과 흥행 모두를 잡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각주:2] 하지만 영화의 흥행이나 영화제 수상 소식과 동시에 과거 봉준호가 연출한 영화 <마더>와 관련된 논란도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마더에 출연한 배우 김혜자가 해당 영화의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촬영 중 사전 합의 없이 상대 배우가 자신의 가슴을 만졌고, 그 연기는 봉준호 감독이 상대 배우에게만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발언했기 때문이었다.

 

영화계가 아닌 대중음악계에서도 최근 여러 사건, 사고가 보도되고 있다. 그중 최근 대중적으로 관심을 끈 사건으로 박효신의 사례를 들 수 있다. 현재 비슷한 나이대 가수들 중 가장 인정받는 가수 중 한 명인 박효신은 20196월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 기획사 계약을 구두로 합의하고 4억여 원의 금전적 이익을 취한 이후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였다.[각주:3] 본 잡지 연희관 015B의 편집위원 중 한 명은 어렵게 구한 박효신 콘서트 티켓을 해당 사건이 보도된 이후 타인에게 양도하기도 했다. 이전 소속사와의 전속 계약 분쟁으로 두어 차례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박효신이었기에 해당 사건은 더욱 빠르게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 실력파 밴드로 인기몰이를 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잔나비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사건들로 화제가 되었다. 20195월 멤버 한 명의 과거 학교 폭력이 피해 당사자에 의해 폭로되었고, 바로 다음 달인 6월 잔나비의 멤버인 최정훈의 부친이 성접대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학의라는 인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내용의 보도가 이어졌다. 이후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멤버가 폭력 사실을 인정하고 탈퇴하였고, 소속사는 최정훈이 김학의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냈지만 한 번 불붙은 논란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최정훈은 출연하던 예능프로그램 등에서 통편집되며 하차했고, 관련 광고 등도 올스톱됐다. 논란과 함께 한창 주가를 올리던 잔나비는 곤두박질쳤다.

 

음악과 논란 사이의 연결고리는 단순히 창작자의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디 밴드 중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검정치마는 20192월 발매한 3집 앨범의 가사로 여러 비판에 휩싸였다. 앨범 발매 직 후 “'사랑 빼고 다 해줄게 더 지껄여봐/ 내 여자는 멀리 있고 넌 그냥 그렇고'(광견일기), '넌 나를 좋아하는 천박한 계집아이'(빨간 나를)” 등의 가사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각주:4] 음악평론 웹진 weiv 등은 검정치마의 앨범에 10점 만점 중 2점의 평점을 매겼으며, 해당 웹진의 댓글 또한 관련된 논쟁으로 채워졌다.[각주:5] 검정치마가 이전 앨범에서 조금씩 드러내던 여성혐오, 성적 대상화가 노골적으로 터져 나온 앨범이라는 평가와 함께 검정치마는 여러 도마 위에 올랐다.


*


황금종려상이라는 후광, 봉준호라는 거장의 무게 때문인지 영화 마더와 관련한 논란은 기생충의 흥행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김혜자가 영화사 등을 통해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공식 입장을 밝히며 관련 논란은 일단락됐다. 또한 천만 영화에 등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예측이 무안할 정도로 기생충은 오랜 기간 상영관에 걸리며 천만 관객을 수월하게 돌파했다. 기생충과 봉준호에게 가해지는 단언의 효력은 길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콘서트 직전 보도된 해당 사건은 고소인의 주장과 박효신 소속사의 부인 이후 추가적 진행 상황이 보도되지 않은 채 답보 상태에 있다.[각주:6] 콘서트 이후 공식 입장을 내겠다는 소속사의 주장과는 달리 논란이 발생한 지 한 달, 콘서트를 마무리한 지 보름이 넘어가는 시점까지 공식 입장은 확인할 수 없다. 박효신 콘서트에 다녀온 블로그, SNS 후기는 빽빽하게 쏟아지는 양상과 대조적으로 해당 논란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박효시과 관련된 논란이 발생한 시기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의 매니저로 출연한 인물이 과거 지인에게 친구에게 60만 원을 빌렸다 늦게 갚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이에 몇몇 대중들은 유명 연예인의 4억여 원보다 연예인 매니저의 60만 원이 더 크다는 씁쓸한 댓글을 관련 기사에 달기도 했다.

 

앞서 한창 주가를 올리다 곤두박질쳤다고표현한 잔나비는 사실 곤두박질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주가를 올리다 못해 밴드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2019년 여름 잔나비를 섭외하지 않은 락 페스티벌이나 공연을 찾기 힘들 정도이며, 단독공연은 오픈과 동시에 전석매진 되었을 정도로 여전히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아래의 갈무리에서도 올해 여름 잔나비라는 밴드가 유지하고 있는 인기를 대강 가늠할 수 있다. 논란을 야기한 보도가 이어지는 동안 잔나비 멤버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생했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잔나비는 대세 밴드.


주요 페스티벌에 초청되거나 단독 공연을 진행 중인 잔나비


사정은 검정치마도 다르지 않다. 논란이 된 정규 앨범을 발매한 올해 2월 이후에도 검정치마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당사자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활동에 비춰봤을 때 분명 검정치마라는 뮤지션은 활동에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있다.


검정치마는 5월부터 꾸준히 단독 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역시나 블로그나 SNS에서 다수의 후기나 감상 등을 확인할 수 있다논란이 된 앨범커버를 콘서트 포스터 전면에 내세울 정도로 일련의 논란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인다일부 불편러나 선비들만이 해당 앨범 수록곡의 가사와 내용을 지적한 것 마냥해당 비판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잠깐이라도 논란을 만든 연예인, 대중 문화인들을 모두 매장해야 한다는 말인가. 당연하게도 이 글은 그런 얼토당토하지 않은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이 글이 매장 따위의 단어를 운운한다고 해서 그것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도 미지수다. 손쉽게 소비자나 팬들의 둔감함을 지적하며 단언에 힘을 싣자고 촉구하는 거친 주장은 효과적이지 않다.

 

이 글은 4명의 영화감독과 뮤지션의 사례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가해자나 빻은인간, 그리고 그와 관련된 논란이 거칠게 단언되는 양상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됐다. 건강하고 효과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채 몇몇 대상에 대한 욕설 섞인 단언에서 논의가 끝나버리고 마는 답답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써 가며 끊임없이 접하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그 같은 초기 주제는 회의감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가해자나 빻은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던져지는 단언에 태클을 거는 작업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여성들이나 약자들이 그보다 훨씬 쉽게 단언의 칼날에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어떤 힘을 발휘할지 알 수 없어졌다. 글은 갈피를 잃어갔고 아득해졌다.

 

앞서 나열한 인물과 사건, 논란을 접하고 당신이 가장 먼저 한 생각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일 수도, 누군가는 처음 알게 된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위의 정보를 접한 후 어떠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반응 중 대부분은 단언이다. 그리고 그 단언은 마치 아가리를 벌리고 마을의 집과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전래동화의 괴물처럼 많은 가능성과 여지를 한 번에 집어삼킨다.

 

역시”, “저 새끼 빻은 새끼였네.”

 

독자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을 위의 말들은 필자에게도 너무나 익숙하다. 필자도 강지환 성폭력 사건을 제외한 4명의 인물, 4개의 사건을 접하자마자 그와 비스무리한 말을 뱉었다. 문제적인, 아니 문제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슈에 반사적으로 뱉어지는 이 문장들은 단언의 단적인 예 중 하나다. 최근 많은 이들에게서 이 같은 단언의 반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같은 양상을 단언이라 지적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가능성 삭제판단 중지라는 효과에 있다. 욕설로 채워진 단언이라는 글자, 스티커, 나무꼬치는 손쉽게 논의의 가능성을 삭제하고 판단을 중지하게 만드는 단언이 된다. , 나아가 말에 담길 고민과 논의, 판단을 지워버린 채로. 단언되는 순간, 거의 모든 말들은 가능성을 잃는다. 단언이라는 행위는 그 이후의 무게를 빼앗는다.

 

사실 위에서 살핀 사례들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들을 가지고 있다. 각기 다른 쟁점이 뒤섞여 있는 사례들을 쉽게 퉁 쳐버리는 논의는 분명 위험하다. 하지만 그 다양하고 어려운 측면들을 잠시 제쳐둔 채 단언이라는 글자, 글자가 쓰인 스티커, 스티커가 붙은 나무꼬치가 악화시키는 환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배우 강지환의 성폭력 사건에 있어 단언이 야기하는 부정적 결과는 가장 직관적이고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감정적이고 편향된 단언은 악취를 풍기며 피해 당사자의 삶을 공격한다. 가장 많은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 보도 초기 자신들의 발화가 지닌 무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쏟아지는 단언들은 피해 당사자들을 꽃뱀이라는 단어에 고정시키는 썩은 나무꼬치다. 보도 이후 관심이 식어버리고 난 후 단언을 뒤집을만한 정확한 정보와 사실관계가 보도되더라도 그 나무꼬치를 뽑아내기란 쉽지 않다. 피해를 정확히 포착할 가능성, 효과적으로 가해자를 두들겨 팰 판단에 대한 여지 또한 모두 증발한다.

 

단언으로 인해 곪아 터지는 환부 중 강지환 성폭력 사건의 사례는 그나마 직관적이고 납득하기 쉽다. 이처럼 쉬운 제안이 없기 때문이다. 불분명한 어중이떠중이 정보로 판단을 쉽게 내리지 말자는, 당신의 그 신중하지 못한 세 치 혀가 누군가의 삶을 산산조각 낼 거라는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없다고 믿고 싶다. 제발 좀 없었으면 좋겠다.[각주:7]

 

그렇다면 4명의 인물과 관련된 사례는 어떠한가. 그들을 향한 단언, ‘나쁜 새끼들을 향한 판단 중지는 왜 문제적인가. 결코 역차별이 횡행하고, 억울한 이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다. 판단을 잠시 멈추자는 주장은 쉽사리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런 주장을 내놓는 이는 올바르지 못하거나, ‘빻은이의 편을 드는 공범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분노와 슬픔 등의 감정은 분명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같은 감정만으로 급하게 단언하는 행위는 오히려 사건과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대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위의 사례를 보라. 사실 가해자나 빻은 이들은 잠깐의 단언으로 생겨나는 불편함을 금방 넘겨버리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그들을 보이콧하거나 거부하겠다는 거친 단언도 그들의 삶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단기적이고 단순한 자극으로 작동해 자숙이나 반성 등의 단어와 함께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나무꼬치를 모아 좀 더 효과적으로 두들겨 팰 수 있는 방망이를 쥐어야 한다. 쉽게 지치거나 나자빠질 정도로 많은 사건과 논란들이 생겨나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장기적이고 효과적으로 논란을 파헤치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그 새끼두들길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단언이라는 글자가 쓰인 스티커가 붙은 나무꼬치를 이리저리 꽂는 작업만으로는 별다른 효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을 단순히 빻은 이를 옹호하거나 판단과 실천을 늦추는 존재로 치부해버리지 않아야만, 더 나은 무기를 쥘 수 있다.

 

방망이를 손에 쥔 당신을 상상한다. 당신이 쥔 건 표면이 매끄럽고 둥그스름한 평범한 방망이가 아니다. 수백, 수천 개의 나무꼬치를 묶어 둥글게 말아 만든 심상치 않은 방망이가 당신 손에 있다. 빈약하고 불안한 나무꼬치를 들고 있던 많은 이들이 그 방망이를 공유한다. 방망이를 휘두를 때마다 생겨날 윙윙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당신이 좀 더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외롭지 않게 함께 쥘 방망이가 낼 소리다. 각기 다른 나무꼬치는 그렇게 나무 방망이가 된다. 천천히 모여든 나무꼬치에 담긴 각기 다른 의지와 마음들이 단언을 넘어서며 힘을 가진다. 그 힘, 그 방망이와 나무꼬치들을 감히 바라본다.

 

그들이 쥔 나무 방망이, 그 속의 나무꼬치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러나 방향이 같다면 조금 다른 형태의 나무꼬치를 쥔 이들끼리 싸우지 않은 채, 서로에게 불필요한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금씩 함께 나아갈 수 있다. 각자가 가진 나무꼬치를 하나씩 꽂는 것이 별다른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면 서로가 가진 나무꼬치를 모아 튼튼하고 큰 방망이를 만들자. 제대로 무언가를 두들겨 반죽을 만들어 낼 좀 더 크고 강한 나무 방망이를 기대하면서.


편집위원 재찬 paperlifer@naver.com


  1. 「"강지환 집에 감금당했다" 성폭행 신고여성, 친구에 SOS문자」,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520630 (검색일자 : 2019년 8월 4일) [본문으로]
  2. 2019년 7월 11일 기준 누적 영화 관람객은 985만 5571명이다. https://www.ytn.co.kr/_ln/0117_201907120940152311 YTN 뉴스 (검색일자 : 2019년 7월 14일) [본문으로]
  3. 「박효신, 전속계약 사기 혐의로 피소···“차·시계 등 4억 이상 편취”」, 연합뉴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281048001&code=940202 (검색일자 : 2019년 8월 4일) [본문으로]
  4. 「[N이슈] '사랑빼고 다줄게, 천박한 계집’ 검정치마 노래 논란」, 뉴스1, http://news1.kr/articles/?3548513 (검색일자 : 2019년 7월 14일) [본문으로]
  5. 「검정치마 – THIRSTY (2019)」, 정구원, 2019.02.28., weiv http://www.weiv.co.kr/archives/23995 (검색일자 : 2019년 7월 14일) [본문으로]
  6. 2019년 7월 29일 시점 포탈 등을 통해 관련된 추가적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본문으로]
  7. 강지환 성폭력 사건 보도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갈무리하며 진심으로 바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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