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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 이네, 응팡, 노랑, 베개, 나루, 두별, 말랑, 재찬

 

영화를 본 뒤 남은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 나 아닌 타인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할 때. 그 순간의 아쉬움을 모아 우리는 함께 영화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연희관 015B에서 다루고 싶은, 다뤄야 하는 작품을 고민한 끝에 청소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두 편 <미성년(2019)><죄 많은 소녀(2018)>를 골랐다. 두 영화 모두 관객에게 불편함을 던지지만 각자만의 색깔로 서사를 펼친다는 점에서 다르다. 불편함을 담아내는 서로 다른 그 미숙함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타짜, 추격자, 황해, 도둑들, 1987. ‘배우김윤석이 연기한 영화들이다. 그의 첫 감독 데뷔작인 영화 <미성년>을 두고 이런 영화가 김윤석에게서 나올 줄 몰랐다는 말이 영화계에 있었다고 한다. 아빠(대원/김윤석)의 불륜을 알게 된 주리(김혜준)가 불륜 상대인 미희(김소진)를 찾아갔다가 동급생인 윤아(박세진)를 만나며 <미성년>이 시작한다.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 <죄 많은 소녀>는 친구 경민(전소니)의 자살을 종용했다는 죄를 떠맡게 된 영희(전여빈)의 이야기를 다룬다. 감독이 자전적 영화라고 말했던 이 영화에서, 감독은 지금은 벗어나 버린 청소년 시기의 감정선을 어떻게 펼쳐냈을까.

 

느닷없는 감상을 풀어내고 심혈을 기울였던 생각을 주고받은 뒤 다시 본 영화엔, 일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고 고민하지 않았던 지점이 화두로 떠오른다. 그 기회를 독자에게도 선사한다.

 

 

   

 

 

     나루: 좌담회 진행은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되, 한번은 그냥 영화에 대해 짧게 소회를 이야기하고 이후엔 사전에 모았던 키워드를 중심으로 쭉 펼쳐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해도 좋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재찬: 일단 둘 다 기분이 안 좋아지는 영화였고, 영화의 주연배우 혹은 서사를 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 불리는 인물들보다는 그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방점을 찍고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주인공들 때문에 답답하고 짜증이 나기보다는, 어른들 그리고 거기서 학교폭력이라면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학생들이 너무 답답했어요. 왜 저러고 그럼 이걸 어떻게 내가 해야 하지? 나는 나중에 저런 어른이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뭐 일단 이런 생각들이 주로 들었고, 되게 답답했어요.

 

     두별 : 저는 미성년 먼저 보고 죄 많은 소녀를 봤어요. 미성년은 나왔을 때부터 보고 싶었는데 놓쳐서 못 봤거든요. 보게 돼서 다운받자마자 신나면서 봤는데 이게 마냥 신이 날 영화는 아니더라고요? 하하. 대원은 비중이나 서사가 가장 별로였고, 그리고 요즘 여성 캐릭터가 나오면 자꾸 그 캐릭터한테 감정이입을 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였죠? 윤아네 엄마?

 

     일동: 미희?

 

     말랑: 저는 미희 캐릭터가 짜증이 났어요. 감정이입을 어른들에게 안 하고 아이들에게 하다 보니까 미희에 이입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아요.

 

       두별: 미희가 너무 짜증이 나면서도 어릴 때부터 어떻게, 어떤 과정을 겪고 자라왔으면 딸에게마저 저렇게 철없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할까싶어서, 또 무작정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죄 많은 소녀는 스산한 느낌이 있었고 약간 무섭더라고요.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이 돌아온 뒤 친구들이 주인공에게 죄를 고백하고, 그 친구들을 주인공이 용서해 주는 듯한 모습? 친구를 때리고 그 다음엔 안아주는 장면도 있었잖아요? ‘감정선을 따라갈 수가 없다이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봤던 것 같아요.

 

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 속에 정박하지 못하고 부유하기 십상이다. 쉽사리 애정을 주거나 감정을 이입할 대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말과 행동은 어딘가 불편하고 왜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래도 자꾸만 마음이 가고 눈길을 끄는 존재들이 있었다. 영화 속 미성년들이다.

 

 

# 미성년의 세계

a) 성년의 시선 속 미성년

     노랑: 두 영화를 보면서 미성년이라는 독자적인 세계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은데, 미성년이라는 레이블링부터가 어쨌든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존재로 어떤 집단을 정의해버리는 거잖아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 끊임없는 준비 과정으로 청소년들을 바라보고 그것을 어떤 독자적인 경험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부재한 게 폭력적이고, 이게 두 영화에서 잘 드러났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이 학생들하고 소통할 때 정말 빻은 남선생, 형사부터 되게 선량한 의도를 가진 어른들, 심지어는 영주까지도 계속 애들한테 지금이 니들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다, 흔들리면 안 된다.” 이런 말들을 하잖아요. ‘대학 가고 잘 살 준비를 하는 것이 청소년들의 제1의무라고 어른들이 동의를 하는 거죠. 동시에 형사가 영희한테 한 것처럼 아 나도 젊은 시절에 다 겪어 봐서 아는데하는 식의 말들이 나오잖아요. 어른들이 자신이 경험해 본 시절이라고 해서 너무 쉽게 청소년들의 인간관계나 일상생활에 침투해 버리는 거죠. 아주 작은 행동이나 표정부터 통제하려고 들고,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하고. 근데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선택이나 비밀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잖아요. 굉장히 일방향적인 침투와 힘의 관계가 잘 보인다고 생각했고, 두 영화는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청소년으로서의 경험을 강조하고자 한 것 같아요

 

     말랑: 저는 사람들이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루트로 정확하게 이래서 이랬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되었다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형사나 선생님, 경민이 엄마 다 자신의 수준으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영희가 이래서 경민이가 죽었다.’ 이렇게 영희라는 캐릭터를 입맛대로 끼워 넣어서, 그러니까 본인이 해석해야 하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영희가 희생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근데 저도 영화를 보면서 어느 순간 그래서 경민이는 왜 자살한 거지?, 걔네가 고등학생으로 나오는데 자살할 만큼 그렇게까지 뭐 힘든 일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생각을 한 1초 정도 했다가 아 잠시만이러면서. (웃음)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이구나이런 생각도 했어요.

 

     이네: 경민이가 실종됐다고 했을 때, 영희가 계속 경민이 안 죽었을 거라고 부정을 하잖아요. 한편으론 자기도 그 전날 경민이에게 자살에 대해 얘기를 했기 때문에 일종의 부채감도 있을 수 있고, 분명히 영희도 힘들었을 텐데 그런 게 다 무시당하죠. 영화 마지막에 영희가 자살을 하는 것 같은 암시가 있잖아요. 그게 영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자 어른들 엿먹이기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루: 말랑이 말한 것과 비슷한 장치로 처음에 제목인 <죄 많은 소녀>를 보면 꽂히잖아요. “죄인은 소녀들이고 감안해서 봐봐. 너희가 어떤 선입견을 품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소녀들을 죄 없다고 생각하고 볼 수 있어? 다른 어른들과 다르게?”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b) ‘학교라는 폭력적인 공간

     노랑: <죄 많은 소녀> 영화 내내 어른들은 너무 평면적이고 아이들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이 다면적이어서 재밌다고 생각하는데, 제일 인상 깊었던 건 학생사회의 논리들이었거든요. 진짜 논리랑 별개로 학생사회 내에서 통용되는 질서들. 영희가 경민이 장례식에서 형사랑 선생님한테 진술을 바꾸고 싶다면서 아주 작은 내용을 수정하고, 저희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말들을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성인인 어른 두 명도 들으면서 아무도 니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왜 굳이 말하냐고 짜증을 내고 귀찮아하는데, 사실 영희는 법적 진실 공방을 걱정한 게 아니라 학생사회에서 더 이상 처벌받고 싶지 않은 욕구에서 어른들이 정정해서 애들에게 그걸 말해주기를 바란 거죠. 어른들은 무죄라고 했지만 자기가 경험하는 건 무죄인 사람으로서의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고요.

 

영희 본인이 잘 이해하고 있는 학생사회의 특수한 논리가 발현되는 또 다른 장면은, 영희가 나중에 병원에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애들이 , 얘가 경민이 죽으라고 매일 기도하던 걔야라면서 또 다른 희생양을 데려오는 장면이에요. 그때 영희가 그 애를 엄청나게 때리고 나서 안아주는데요. 저는 그걸 보고 이 자리에서 얘가 합당한 처벌을 받는 걸 애들이 못 보면 이 고통이 끝나지 않을 걸 영희가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서 우선 애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처벌을 이 죄 많은 소녀에게 해 준 다음, 자기는 얘가 죄가 없다는 걸 이해하니까 안아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보기엔 굉장히 비논리적이지만 그 사회에서는 꼭 이루어져야 하는 절박한 의례들이 너무 잘 담겨있다고 느꼈고 이 감독 변탠가?’ 이랬는데 자전적 영화라고 듣고, 그래서 그런 장면을 넣을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두별: 영화 볼 때 초반까지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공감이 잘 안 됐는데 고3 때 수능 끝나고 옥상에서 떨어진 친구가 있었거든요. 잘 모르는 친구였어요. 전 문과고 그 친구는 이과여서. 결국은 죽었는데 그 친구가 그렇게 되고 나서 걔 왜 그렇게 됐을까?” 얘기를 시작하면 말이 다 다른 거예요. “입시 스트레스다, 심지어 남자친구 때문이다, 부모님 때문이다, 친구들 때문이다뭐 이런 모든 소문이 도니까 저도 처음에는 애들이랑 같이 얘기를 하다가 이게 맞는 건가 싶은 거예요.

 

     이네  : 고등학교 돌아가는 방식이 그런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누가 그랬대?”, “그랬나 봐이런 식으로 얘기하면서 군중 속 한사람으로 숨는 게 그 좁은 사회 안에서 제일 안전한 위치인 거죠.

 

     노랑  :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많은 소문의 중심이었거든요. 그래서 영희에게 굉장히 이입하면서 봤는데, 영희 캐릭터가 한 일 중에 저는 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어요. 속으로 계속 진짜 독하게 마음만 먹고 못 하던 것들을 영희가 하는 데에서 오는 쾌감들이 분명히 있었어요.

 

     응팡: 노랑 말 들으니까, 학교 다닐 때 소문의 중심이 되지 않기 위해서 진짜 노력했던 것 같아요.

 

     노랑: <죄 많은 소녀>도 성인 경민, 성인 영희였으면 영희가 이렇게 자기가 잘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격을 받는 일은 절대 없었을 거예요. 학교 안에 있는 애들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이 있는 것 같고, <미성년>, <죄 많은 소녀> 이 두 영화가 학교나 학원이라는 밀폐된 청소년 밀집 공간의 특성을 아주 잘 보여주고 활용한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미성년>에서 두 아이가 서로가 신경이 쓰이고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끊임없이 마주치잖아요. 서로 만나지 말자!”라고 선언을 아무리 하고 피하고 싶어도 등굣길에서 마주치고 점심시간에 스치고 한 명이 다른 사람 반에 들어가면 언제든지 볼 수 있죠. <미성년>에서도 보이는,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내재한 폭력이 <죄 많은 소녀>에선 더욱 극적으로 잘 표현되었달까요. 대학에선 내가 새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으면 바로 잠적할 수 있잖아요. 자기가 활동 반경, 수업, 시간과 관계 등을 다 조정할 수 있는데 초, , 고등학교는 그게 전혀 안 되는 거죠. 내가 전혀 선택하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고 거기서 낙인이 찍히면 <죄 많은 소녀>처럼 끊임없는 시선을 감내해야 하고요. 모두가 옷까지 맞춰 입고 같은 진로를 향해 달려가는 일체감의 공간에서 영화 속 특수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게 어렵죠.

 

     재찬: 저도 옛날 생각을 하면서 볼 수밖에 없었어요. 또래 문화가 엄청나게 절대적인 공간의 특수성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보는 내내 <죄 많은 소녀>는 특히 출구가 없는 느낌이었어요. 왜냐면 고등학교 3, 중학교 3년을 다니면서 직간접적으로 폭력을 경험할 때마다 해결책을 강구하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미성년>에서 강도 짓을 했던 학교 밖 청소년들? 이런 친구들을 되게 많이 보면서 컸거든요. <죄 많은 소녀>에서 영희 집에 찾아가서 신발 찢고 싸우는 장면이 너무 문제가 있다고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괴롭고 기분이 너무 안 좋은데, 그 이후엔 내 나름대로 어떤 결론으로 가야되잖아요. 그런데 이게 도착할 곳이 없는 거예요. 입시 제도를 바꾼다고 이게 나아지나? 학교폭력, 뭐 옛날보단 체벌도 없어지고. 지금의 학교가 제가 다녔던 근 10년 전의 학교 다르긴 하겠지만, 또 안 다를 텐데. 출구가 없고. 그 어른들도 너무 답답하고.

 

     응팡: 선생님들 그러잖아. “너희들이 더 이상 갈등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

 

     노랑 : 그래, 그 말이 누구한테 도움 돼.

 

 앞서 편집위원 말랑의 글 <어떤 미성년과의 조우>에서도 언급했듯 책임은 성년을 표현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 두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 지려는 사람, 남에게 지우려는 사람이 등장한다. 선과 악을 명쾌하게 나누어 보여주지 않는 영화를 보다 보면 책임을 적절한 사람이 떠맡고 있는지, 그 책임은 도무지 누구의 몫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 ‘책임을 묻다

     응팡: <죄 많은 소녀>를 보면서 내 주변에 누군가가 자살을 하면, 그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얼마까지 있을까. 나는 그 죽음에서, 내 주변인의 자살에서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럼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싶어 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처음에 책임이 영희에게 완전히 부여됐다가, 점점 영희의 책임이 아니라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잖아요? 근데 경민의 엄마는 끝까지 영희가 분명 자기 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내 딸의 죽음은 왜 왔는가?’라는 질문에, 한 명을 미워해야 자기가 책임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고 그 게 경민 엄마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이 아니었을까.

 

     말랑: <죄 많은 소녀> 마지막 밥 먹는 장면에서 경민이가 자기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했다는 말을 영희인가 한솔이 입으로 하잖아요. 그 게 경민이의 죽음에 어느 정도 엄마의 책임이 있다는 걸 암시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엄마가 너무 무관심했다든지. 경민이 엄마도 그걸 마음속으론 알고 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경민이가 죽고 나서야 (죽음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게) 뒤늦게 엄마로서의 책임이나 도리를 다하려고 하는 장면 같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내에서도 영희가 수술 끝나고 돌아오니까 애들 태도가 돌변하잖아요. 자기들이 과거에 영희를 죄인으로 몰아가고 괴롭혔던 게 잘못이란 걸 아는데, 그걸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아니라 또 누군가를 잡아서 얘가 진짜 범인이라는 식으로 몰아가고요. 진짜로 영희한테 사죄한다기보다 본인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그런 거겠죠. 학생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다 본인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어떤 걸 찾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베개: <죄 많은 소녀> 마지막 장면에서 영희가 경민 엄마한테 자기가 내일 죽을 거니까 뭐라고 말할지 생각해두라고 했을 때, 그 엄마가 칼로 자기를 찌르는 게 자기가 먼저 죽으려고 하는 느낌이잖아요. 자기도 자기가 한 짓이 뭔지는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 나오는 사람들이 (경민 죽음의 이유를) 다 영희 탓으로 돌리는데, 그 사람들이 사실은 약간의 부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랬지 않았을까. 실제로 경민이 죽은 이유가 뭐였든 간에 주변 사람이 죽은 거니까. <미성년>에서도 성년과 미성년의 문제가 책임의 문제라고 생각했을 때, 거기 나오는 어른들 중에 미희는 아이를 보러 가지도 않고 대원도 계속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잖아요. 아이를 낳기 전에 자기랑 미희만 자기 사이를 알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면서 자기가 만들어 낸 아이에게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모습만 계속 보여줬고요. 근데 애들은 솔직히 왜 그랬는지는 이해는 잘 안 되는데 아이를 자기가 맡아서 키우겠다고 하고 마지막에 뼛가루 마시고. 그 대비를 보여주려고 해서 굳이 넣은 게 아닐까요.

 

     말랑: 두 편 다 청소년들이 주인공이잖아요. 저는 애들이 좀 못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영화 속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원망하면서도 결국 자기 자리를 지키고 딱히 일탈하지 않고 특유의 순수함이 계속 남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윤아가 어른들은 미워하지만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애지중지하면서 내가 키울 것이다고 하는데, 오히려 뭐 어쩔 거냐 내가 낳은 애도 아니고 나 상관없다 네가 낳은 애니까 네가 키워라했으면 좀 더 통쾌했을 것 같거든요. 근데 현실적으로 그 나이의 청소년들이 그러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서 납득이 됐고요.

 

     나루: <미성년>에서 전반적으로 대원의 무책임함을 계속 드러내잖아요. 한편으로 영주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고 극단적으로 대비시키죠. 사실 자기랑 별로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윤아도 마찬가지죠. 자기랑 상관없는데 그 책임을 끌어안으려고 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쩌면 아빠를 만나러 강원도에 갔다 와서 너무 화가 나지 않았을까? ‘아니 어떻게 저렇게까지 무책임할 수 있지?’ 전 오히려 윤아가 아빠한테 내 이름은 알아? 우리 이제 다시 보지 말자고 하고서는 거기에 대한 반대급부로 아 난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뭔가를 좀 붙잡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재찬: 사실 그 얘기도 해보고 싶었어요. 대원이 태안인가? 펜션 간 장면이 되게 뜬금없다 싶으면서 이렇게 이해를 했어요. 대원이 폭력배한테 강도를 당할 거면 강도가 어리든 나이가 많든 상관없잖아요. 근데 (대원을 때리고 대원의 돈을 뺏는) 그 친구들이 저는 되게 익숙하긴 하거든요. 우리 동네에는 그런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어쨌든 미성년이고, 성년이지 않은 존재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휘두르는 폭력과 대원이라는 사람이 어른이긴 하지만 거의 미성년에 가깝다-는 거에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되게 오버랩됐거든요. 대원이 어른이긴 하지만 책임을 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휘두르는 폭력과 오토바이 타는 실제로 미성년인 청소년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휘두르는 폭력이 사실 뭐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걸 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네요.

 

     노랑: 솔직히 남녀대비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성년-미성년의 관계도 다르지만, 남성-여성을 대비하는 것도 많은데 우선 <미성년>에 나오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한심한 존재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자꾸 끼어들고 애들과의 소통에 실패하는 남선생 1이고. 또 저는 남자끼리의 만남이 나오는 게 재찬이 말한 태안씬이라고 생각해요. 대원이 갈 곳이 없어졌을 때 자기 친구가 펜션을 한다고 초대를 해서 태안까지 갔더니 친구가 펜션 닫았다”, “네가 오라고 해서 왔는데 닫으면 어떡하냐”, “아이고 모른다하고 그냥 끝나잖아요. 그래서 갈 곳 없는 존재가 됐더니 청소년 남자들에게 완전히 두들겨 맞고 차까지 뺏기는 게, 남성 사회에서 보살핌이나 연민이 전혀 부재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미성년>, <죄 많은 소녀>에서 남성들은 무례하거나 무심하거나 무책임하다. 영화는 한심한 그치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이 그들을 이해할 수도 애정할 수도 없다. 반면 <미성년>에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여성들은 서로에게 개입하고, 서로를 돌보고 살핀다. 그 만남과 대응이 경쾌하고 따뜻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 여성들의 마주침

      노랑: 주리와 윤아의 만남과 상호작용이 <미성년>의 핵심이기도 하고 저에게는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생각해보면 이 공통된 사건 하나를 제외하면 정말 겹치는 게 없는 아이들이잖아요. 문과고 이과고, 성적도 다르고, 경제적 계층도 다르고, 어머니 직업이나 성격, 꿈꾸는 미래, 서로에게 가능한 미래도 아주 달라 보이고, 그냥 아무리 뜯어봐도 겹치는 구석이 없는 아이들인데.

 

     나루: 이전에 <써니>처럼 여성들의 끈끈하고 예쁠 것 같은 그런 식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미성년>에서 윤아와 주리는 계속 싸우고 우린 다시 보지 말자!”라고 선언하는데 계속 다시 보게 되고. 성격도 다르고. 사실 영주와 미희도 서로 만나서 위로하는 게 아니라 계속 왜 왔어요라고 말하고. 하하.

 

     재찬: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성년>좋은 평가를 받으면 좋겠다 혹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라고 생각되는 지점은 캐릭터가 평면적이지 않게 계속 대비되잖아요. 거의 투명하다시피 한 대원을 사이에 두고 여성들의 대응 구도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역할의 미희랑 영주 사이의 관계 맺음도 특이했고요. 어떤 부분에선 닮았고, 한 남자가 둘 사이에 연결지점이 된 거잖아요. 청소년으로 나오는 주리와 윤아의 경우도 아까 노랑이 얘기해준 것처럼 어떤 면에서 아주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 아주 다르잖아요. 엄마와 딸 사이의 대립 구도도 되게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고요. 꼬북칩 먹는 씬 있잖아요. 미희 옆에서 주리가 이 아줌마 뭐야라는 식으로 앉아있고, 돈 갚으러 가는 장면에서는 윤아와 영주가 만나고. 저는 이 영화가 여성들끼리 대응될 수 있는 방식은 다 보여준 게 아닌가싶을 만큼 아주 복합적으로 느껴졌고, 감독이 뭘 연결하고 계속 대응 구도를 만드는지가 되게 인상 깊은 것 같아요. 영화가 메시지를 잘 전달했던 것만큼, 영화 자체의 장치도 아주 훌륭하지 않았나.

 

 

   

     응팡    : 지금까지는 불륜이 자극적으로 분노의 감정만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였다면, <미성년>에서는 불륜이란 상황에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매우 많잖아요.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이며 아이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이며 하는 것 등 실제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대원은 찌질하게 책임을 안 지고 네 명의 여성들이 각자 책임을 맡아서 해결하려고 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노랑 : 영주가 대원하고 결혼한 당사자로서 미희에게 느낀 책임감이나 죄책감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결혼한 사이인데 네가 바람을 피웠으니까 미운 것도 있는 동시에, 내 남편이 너를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고 나도 거기에 일조했다는 거에 대한 미안함도 동시에 있는? 주리도 윤아가 왜 자기 엄마한테 그런 얘기를 했는지에서 시작해서 윤아를 많이 증오하고 결국엔 먼저 패기까지 하지만 끊임없이 윤아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하고 있잖아요. 그니까 네가 중졸 상태로는 애도 못 키운다부터 해서 너 왜 오늘 수업은 안 왔냐그런 거 계속 물어보고요. 두 엄마 다 애들을 보면 계속 하는 말이 너네 밥은 먹었니?”인데, 이 말이 영화 속에서 한 6번은 나오거든요. 그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연대를 잘 보여주는 말인 것 같은? 그런 인간애를 안 잃고 아픈 상황을 잘 다룬 것 같아서 되게 좋았어요.

 

     나루: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미성년은 교복 색깔이 약간 자주색이었고 죄 많은 소녀는 어두운 녹색이었죠. 교복 색깔로도 영화 전체의 이미지를 드러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영화 모두 잔상이 남는 선명한 이미지의 영화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달라지는 인상을 나눌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편집/ 편집위원 나루(qeq0822@gmail.com), 편집위원 응팡(mate5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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