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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평

[읽어내기] Zelda

연희관공일오비 2019. 10. 4. 18:08

1차 세계대전 직후 1920년대, 미국은 소비와 쾌락의 시대를 맞이했다. 전쟁 특수에 따른 유례없는 호황 속에서 젊은이들은 재즈와 스포츠에 열광했고 여가, 섹스, 자유분방한 생활이 강조되며 1920년대를 소란하게 만들었다. 파티가 커지고 쇼는 대담해졌으며 빌딩들은 높아졌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은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채 방황했다. ‘재즈 시대(the Jazz age)'라 불린 이 시대는 그야말로 방종과 열광의 시대였다. 황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했고 도덕적 가치와 이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국의 시인 겸 평론가 말콤 카울리(Malcom Cowley)[각주:1]는 당시 젊은이들의 모습을 “우리 모두는 술에 취했다. 우리는 전쟁을 겪어냈고 살아남았다. 우리는 샴페인 병을 들고 거리에서 춤을 추었고 아무 데서나 잠들었다. 다음 날 술에서 깨어난 후에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또 마셨다.”[각주:2]고 기술하였다. 울려 퍼지는 재즈 음악과 함께 정신없이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젤다가 있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중

 

 

 

First American Flapper

 

젤다는 오랜 시간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정신이상자 아내'로 알려져 왔지만, 그 이야기는 여기서 굳이 하고 싶지 않다. 1920년대 신여성의 아이콘이자 유려한 표현을 구사하는 뛰어난 작가였던 젤다에 대해 소개하기에도 벅차다. 젤다는 어렸을 때부터 반항적 기질을 타고났고, 그런 그녀에게 무기력한 데뷔탕트[각주:3]의 삶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얌전하게 신부수업을 받고 남자의 청혼을 기다리는 일은 젤다에게 고역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루하고 평탄한 삶을 버렸다. 추파를 던지는 것이 재미있어서 추파를 던졌고, 체면이 필요 없었기에 얼굴을 분과 연지로 덮었고, 자신이 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일과 의식적으로 일치시켰다.[각주:4] 고등학교 때부터 남다른 댄스 실력으로 파티를 휘어잡았고 팬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녔으며 명문가 출신 대학생들과 숱하게 데이트를 즐겼다. 젤다는 단연코 재즈 시대 ‘미국의 원조 플래퍼[각주:5](First American Flapper)’였다. 플래퍼는 기성세대의 금기와 요조숙녀의 굴레를 마음껏 비웃으며 당시 문화, 예술, 패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플래퍼에게 치장은 ‘남자를 직접 선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여자도 마천루 못지않게 팔팔하고 생생한 존재라는 증표’였다. [각주:6]

 

 

 

 

 

플래퍼가 당시 얼마나 파격적인 여성상이었는지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깁슨 걸 스타일’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삽화가 찰스 깁슨이 잡지 표지에 그려 유행하기 시작한 ‘깁슨 걸 스타일’은 느슨하게 틀어 올린 긴 머리, 타이트한 웨이스트, 위로 추켜올린 듯한 S자형 실루엣이 특징이다. 깁슨 걸은 귀족 사회의 문화에 뿌리를 뒀던 이전의 여성상보다는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당시 여자들의 무릎을 볼 수 있다는 건 신문에서나 읽을 수 있었던 일이었으며 여성의 움직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가슴과 허리를 팽팽하게 당긴 부자연스러운 실루엣이 유행했다. 깁슨 걸은 우아하고 기품 있게 행동했으며 1890년경부터 미국의 전형적인 여성상으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플래퍼는 깁슨걸처럼 예의 바르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고 성에 자유로웠으며 남자들과 동등한 관계를 원했다. 플래퍼들은 가장 먼저 코르셋, 크리놀린, 버슬과 같은 인위적인 구조물을 벗어던졌고 머리를 단발로 잘라 활동성을 높였다. 여성적’이라 여겨지던 S라인 패션을 거부했고 가슴과 엉덩이가 강조되지 않는 헐렁한 H라인의 짧은 드레스나 짧은 주름 스커트를 입었다. 커트 길이가 점차 짧아지면서 여성들은 스타킹이나 구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여러 색상의 양말과 구두가 유행했다. 이처럼 편안하고 실용적인 기능주의 디자인은 코코 샤넬의 풀오버 스웨터, 샤넬 수트 등으로 이어져 현재까지도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젤다에게 있어 패션과 화장을 비롯한 치장은 시대에 저항하는 수단이자 플래퍼의 신조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플래퍼 붐의 선두에 있었던 젤다는 의복의 변화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녀만의 세련된 방식으로 이전에 없던 여성상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여성이 연애와 자기표현에 대한 욕망을 충분히 표출하고 거리낌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왼쪽부터 플래퍼 룩과 샤넬 수트를 입은 여성들.

 

 

 

젤다는 예술과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을 부인하지 않았다. 발랄한 뺨과 알록달록한 옷, 연지와 분은 이전까지 남자에게 선택‘받기’만 했던 창백한 여성에게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마스카라와 붉은 연지는 그들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뤄 존재 자체가 예술이 되었다. “여자가 이웃보다 화장술에 능하다면 세상이 그녀 앞으로 경례하지 말란 법이 없다.”[각주:7] 패션과 화장은 여성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유용한 도구였고, 젤다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이를 통해 저마다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젤다는 여성에 대한 자신만의 이해를 바탕으로 여성캐릭터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중하게 하나하나 그려나갔다. 에세이를 몇 줄만 읽어봐도 알 수 있겠지만, 그녀의 공감각적 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명화 한 점을 그리듯, 소품 하나도 뭉뚱그려 넘어가지 않았다. 트렁크라는 사물 하나를 등장시켜도 ‘푸른 벨벳 트렁크’라고 짚고 넘어가 독자가 자신이 그린 풍경을 상상하고 소품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충분히 음미하게 했다. 성격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도 매력적인 상황과 디테일로 인물을 표현할 줄 알았고 한 공간에 놓인 소품이 만들어진 시기, 소품의 색, 재질, 공간 안의 사람들에 대한 묘사로 독자를 그 공간에 데려다 놓았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그런 젤다의 발언이나 표현을 틈틈이 적어두었다가 자신의 글에 활용하고 젤다의 글을 작품에 그대로 베껴 넣기도 했다고 한다. 한심한 남편은 잠시 뒤로 하고 이제, 젤다의 소설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여성들을 만나보자.

 

 

Short stories of The Greatest Writer

 

1 게이_<오리지널 폴리스 걸 (The Original Follies Girl)>

 

게이는 표연했다. 장식적이고 흥미로웠으며 어디로 튈지 몰랐다. 실내 장식에 돈을 많이 들였고 과거를 손에 넣으

려고 애썼다. 외로움을 달래려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고 미국적 삶에 뒤섞이지 않겠다고 작정한 듯했다. 파리에서 그녀의 부고 기사가 떴지만, 그녀는 모두의 마음 속에 살아 있었다.

 

“게이에게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녀가 가진 매너였다.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듯한 태도. 게이의 금발은 어떤 색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색, 빛의 반사체 자체였다. 그녀의 눈은 사이가 멀고 작았지만 한정되기보다 갈고 닦인 느낌이었다. 그녀는 만화경처럼 변화무쌍했다.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올랑데즈 소스를 부은 아스파라거스만 몇 쟁반씩 먹으며 수녀가 될 것을 맹세하는 날도 있었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요.” 그녀를 샹젤리제의 가로수 아래서 만났을 때 그녀는 한 떨기 수선화 같았다. 노란색 리넨 평상복 차림으로 바람을 쐬러 나온 그녀는 레몬 향수와 바카르디 칵테일 냄새를 풍겼다. 게이는 언제나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서 낭만이 달아날까 걱정했다.”

 

게이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를 떠오르게 한다. 새하얀 피부에 눈부시도록 화려하게 아름답지만 어딘가 위태롭고, 그녀가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영원히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닮았다. 바람을 쐬러 나온 게이가 입은 리넨 평상복은 꼭 레몬색에 가까운 노란색 민소매 점프수트여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이는 끝까지 표연하게 사라진다. 게이가 마지막까지 지독하게 좇았던 과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아름다움 속에는 분명 어떤 슬픔이 담겨 있었다.

 

 

 

2 루_<재능 있는 여자 (The Girl with Talent)>

 

루는 히트곡에 맞춰 추는 탭댄스로 무대를 날듯이 누볐다. 그녀의 모든 행동은 거대한 품위와 절제에 포개 놓은 듯했다. 공연계의 적들에게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고 보란 듯이 부유하고 유명한 남편을 뒀다. 그녀에게 가장 재미난 건 춤이었으며 남자들이 줄을 섰다. 어느 날 다시 소식을 접했을 때는 남편과 이혼한 후였으며 댄서로서 전례 없는 히트를 치다가도 영문의 남자와 중국으로 달아난다.

 

“그녀의 모든 제스처는 무의식적이었다. 세상 사람들뿐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도 놀라운 일이라는 듯이. 그녀는 피터팬 칼라가 달린 남색 드레스들과 카네이션 스커트의 선홍색 드레스들, 한쪽 눈을 덮으며 펄럭이는 커다란 모자들과 다른 쪽 눈을 반쯤 가리는 작은 모자들을 사들였다. 샴페인과 택시와 보아장 레스토랑의 커리 치킨과 바바니 상점 향수의 반은 그녀의 연인들이 값을 지불했다. 턱 뒤에서 나풀대는 검은 머리. 그녀에겐 차라리 낚싯대나 주머니칼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그녀는 식사와 술과 재미를 사주는 남자들을 최고로 좋아했다.”

 

의도하지 않은 여유로움을 풍기는 여성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젤다는 어딘가 신비롭고 알 수 없는 여성을 좋아했다. 젤다가 묘사한 인물들은 너무나 입체적이어서 도저히 하나로 규정할 수가 없다. 지금은 왜 모자의 디자인이 이렇게 단순해졌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그래서 더욱 루가 사들인 것과 같은 1920년대의 각양각색의 모자들이 낭만을 느끼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플래퍼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누렸다. 식사와 술과 재미를 사주는 남자라면 같이 다녀볼 만 하지 않겠는가!

 

 

3 미스 엘라 (Miss Ella)

 

미스 엘라는 부엌과 친하지 않았고 식사 후에는 새처럼 조잘댔다. 과거에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결혼식까지 올렸지만 다른 사람이 그녀의 마음에 자리 잡았고 남편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는다. 미스 엘라의 두 번째 결혼식 이후 그녀의 첫 남편은 그가 애용하던 엽총으로 자살한다.

 

“그녀는 우아했다. 화려한 장갑상자 뚜껑의 투톤 칼라 그림 속 귀부인이 그대로 걸어 나온 모습이었다. 일요일에 성가대 모자 밖으로 비어져 나온 붉은 머리도 그녀의 성격을 아로새긴 에칭화에 색을 더하는 효과를 냈다. 그녀는 레이스 양산을 들고 다녔고, 항상 새처럼 활기에 차 있어서 누군가와 말을 나눌 때도 두 발은 가만두지 못하고 종종거렸다. 세탁한 리넨을 벽장에 넣을 때처럼,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그들의 꿈들을 무심히 정리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미스 엘라는 더 이상 사랑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 그녀는 전보다 머리를 느슨하게 올렸고, 하얀 스커트와 잘록한 허리에 매년 점점 더 뻣뻣하게 풀을 먹였다.”

 

젤다는 패션을 외관의 표현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패션을 자유자재로 다듬어 때로는 착잡함으로, 때로는 상실감으로 요리해 낼 줄 알았다. 세탁한 리넨을 벽장에 넣는 장면은 얇고 건조해 들뜸 없이 접히는 리넨을 차곡차곡 접어 정리하는 감각을 불러온다. 옷감에 풀을 먹이면 뻣뻣하게 힘이 서 쉽게 하늘거리지 않는다. 남편과 사별한 후 희망을 잃은 엘라를 감정에 대한 단어를 일절 쓰지 않고 옷감으로만 표현하다니, 천재적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단어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이 여성들을 머릿속에 그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는 단순한 상상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궁금해하게 된다. 매력의 정의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각기 다른 인물 모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힘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젤다의 소설에 대단한 서사가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몇십 년이 지난 지금 훌륭한 작가로 재평가받는 이유는 그녀가 온갖 감각을 동원해 한 여성을 빚어내는 기술이 너무나도 정교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에드먼드 윌슨은 “그녀는 한 손에 기성품 구절들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대외효과용 포장을 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의 표현은 진부하지 않고 속이 비어있지도 않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녀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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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플래퍼로서 젤다는 ‘남성적’이라 여겨진 특성을 여성이 그대로 취하는 방식으로 자유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정면돌파였다. 여성을 꾸밈의 영역에서 분리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더 진하게 치장하면서도 말 그대로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켰다. 남성의 기준에 맞추던 치장의 스타일을 변주해 여성은 더욱 다채롭고 적극적인 존재가 되었고 고리타분한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면서도 매력은 지켜냈다. 진한 화장과 활동성 있는 의복은 여성들에게 금기시되었던 술과 유흥, 욕망 표현의 길을 열었다. 타의에 좌지우지되었던 연애에서 여성이 주도권을 잡아 원하는 남성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젤다는 그렇게 ‘놀이의 대상’이 아닌 ‘놀이의 주체’가 되었고 밤마다 나이트클럽(boite de nuit)에서 졸도 직전까지 놀았다.

 

‘노는 여자’에게 타락한 여자라는 낙인을 찍고 화장한 여자를 인형 취급하는 풍경은 100년 가까이 지난 2019년에도 그대로다. 여전히 유흥과 꾸밈은 여성이 쟁취해야 할 영역이다. 여기서 쟁취라 함은 유흥을 즐길지 즐기지 않을지, 겉모습을 꾸밀지 꾸미지 않을지, 그리고 어떻게 꾸밀지를 여성의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녀가 어떤 모습이든 다른 누군가에게 섣불리 판단되거나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술을 마시고 춤을 즐기는 여성은 위태로워 보인다. 실제로 이 사회에서 ‘노는 여자’는 안전하지 않고 그의 유흥은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되거나 ‘헤픈 여자’로 불리며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럼에도 여성은 ‘제 자신을 실험할 권리’가 있다. 심장을 울리는 음악과 오가는 술잔 속에서도 노는 여자가 안전한, 결국 유흥을 쟁취해 내는 날까지.

 

여성이 꾸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여성의 치장을 단순히 남을 위한 불필요한 노동으로 치부해버리면 안 된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특정한 방식의 꾸밈과 완벽함이 요구되는 결과물, 그리고 그에 따라 기대되는 ‘여성스러움’이라는 연결고리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나의 꾸밈에는 내가 없었다. 조금만 옷을 심플하게 입으면 너무 ‘남자같이’ 입은 게 아닌가 생각했고, 남자친구가 연한 색의 립을 좋아해 내가 좋아하던 진한 빨강을 피했고, 다이어트 어플을 깔고 다이어트 후기를 찾으며 끊임없이 체중감량을 시도했다. 올해가 되어서야 십수 년간 나에게 주어졌던 스트레스가 얼마나 무용했는지를 깨닫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야를 넓히자 너무나 다채로운 패션의 세계, 옷과 메이크업에 쓸 수 있는 풍부한 색들이 보였다. 그 후로 다양한 패션과 메이크업을 시도해보며 나의 취향을 찾았고 나아가 내가 남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나의 이미지까지도 알게 되었다. 나를 이해하게 되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활력이 생겼고 바닥을 치던 자존감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이전과 달리 꾸밈의 의미를 결과물의 완벽함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데에서 찾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여성의 규범이라 하여 화장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여성의 의무로 만들면서도 여성의 외모 가꾸기를 남성을 성적으로 도발하려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이러든지 저러든지 비난받기 쉽다.[각주:8] 과거의 플래퍼처럼 ‘꾸미지만 말 안 듣는 여성’들은 인형으로 상상되는 꾸민 여성과 섹슈얼하지 않은 존재로 상상되는 꾸미지 않은 여성 간 이분법을 깨부순다. 즉, 아내와 엄마로 고정된 여성의 역할을 단조롭지 않게 만들어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길 원했던 플래퍼를 향해 1920년대에도 찬사와 비난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일부 젊은 여성들은 플래퍼 스타일과 행동양식에 매료되었지만 몇몇은 플래퍼의 등장을 “사회가 타락하는” 징조라고 비난했으며 무엇보다 당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을 다루는 방식은 다르지 않다. 외모를 가꾸는 여성은 ‘여성인권을 퇴보시키는 존재’로 지목되고 그 여성이 꾸밈에 부여하는 의미나 여성 개개인이 가지는 자기표현의 자유는 무시된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한번쯤 한심하게 바라봤을 지도 모르는, 꾸미는 여성들은 그런 시선을 받을 이유가 없다. 여성이 여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어쩌면 여성이기에 강요받았을지 모르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랑하게 되어버린 여성들을 사랑한다.

 

 

편집위원 이네 (xiunnu@gmail.com)

 

 

  1. 유럽으로 망명한 젊은 문학가의 한 사람으로서 유럽에서는 전위적(前衛的) 잡지 창간에 힘썼다. 흔히 ‘잃어버린 세대(로스트 제너레이션)’라 불리는 이들의 심적 상황을 연구한《추방인의 귀국》은 명저로 알려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울리 [Malcolm Cowley] (두산백과) [본문으로]
  2. “Memoranda of a Decade,” American Heritage (August 1965), 33. [본문으로]
  3. debutante; 처음 사교계로 나가는 16~20세의 상류층 여성. 당시 여성의 사교계 데뷔는 그동안 신부수업으로 닦은 매너와 외모를 혼인 시장에 정식으로 선보이는 것을 뜻했다. [본문으로]
  4. 젤다 피츠제럴드, 「젤다」, HB PRESS, 2019, p.123. [본문으로]
  5. ‘플래퍼’는 어린 오리가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덜렁대는 왈가닥을 표현한 단어다. 미국의 ‘플래퍼 붐’은 기존의 조신한 여성상과 억압적 규범을 거부하는 당대 여성들의 저항 정신을 대변했다. [본문으로]
  6. 젤다 피츠제럴드, 「젤다」, HB PRESS, 2019, p.149-150. [본문으로]
  7. 젤다 피츠제럴드, 「젤다」, HB PRESS, 2019, p.149. [본문으로]
  8. 이박혜경,「섹시함의 페미니즘적 전유는 가능한가, 여성과 사회(10), 1999, p.109-11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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