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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는 연대’가 더욱 중요해지는 나날입니다. 지난 호 막바지 작업 때부터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켰던 코로나는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에도 떠날 기미 없이 곳곳에 서려있습니다. 코로나가 잠시 잠잠해진 동안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장마가 두려울 정도로 창을 때리고 다시금 우리를 집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브레이크 없이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듯한 세상의 모습에 숨이 덜컥 막히는 날도 많았지요.
이번 연희관 015B 13호도 편집위원들끼리 각자의 생활공간에 흩어진 채, 동시에 이어질 수 있는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하며 펴내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흩날리는 손글씨 대신 정갈한 폰트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는 가만히 밖을 내다보다가, 지긋지긋하고 피곤한 일들을 목도하고 또 눈을 질끈 감다가.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을 곱씹은 후 다시 주변의 이야기들을 넌지시 둘러보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시선에 맞춰 이번 13호를 찬찬히 풀어봅니다.
첫 번째 카테고리인 ‘내다보기’는 우리를 둘러싼 사회로 시선을 던집니다. 먼저 빙봉은 ‘나와 우리에 대한 상처 없는 글쓰기’에서 부주의하게 타인의 삶을 자신의 작품의 질료로 사용한 김봉곤 작가의 글쓰기와 태도를 비판하고 각자가 지닌 서사의 편집권을 존중하는 방식의 글쓰기를 고민합니다. 두별은 ‘여의도 약팔이를 조심하세요’에서 소수자성을 단순히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오목조목 꼬집어냅니다. 그리고 ‘텔레그램 내 성폭력 × 영화좌담회’에서 경하, 노랑, 두별, 빙봉은 올해 코로나만큼이나 큰 사회적 재난으로 다가왔던 텔레그램 내 성폭력, 그리고 그 사태가 배치된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톺아봅니다.
이번에는 몸을 끌어안아 ‘나’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볼’까요. 일상이 고요해지니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에 시선이 머물고는 했습니다. 생각을 제쳐두었던 ‘나’의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기도 했지요. 그래서일까요, 이번 호에서 가장 많은 양의 글이 두 번째 카테고리인 ‘들여다보기’에 실렸습니다. ‘장애의 사정’에서 희는 자신의 장애에서 비롯된, 오랜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타인을 섣불리 오해하기에 앞서, 저마다의 사정을 헤아려보기를 부탁합니다. 빙봉은 사회가 정상적으로 규정하는 몸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에 반해 말랑말랑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우리 몸에 대한 관찰의 흔적을 ‘노브라, 탈브라도 아닌 종종브라합니다.’에 녹여냅니다. 연자는 ‘가족 꾸리고 싶어요, 근데 그 가족 말고’에서 가부장제 속에서 살아온 K-장녀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상상해봅니다. 베개의 ‘온라인에서 만났습니다’는 어플을 이용해 맺고 끊어지는 만남 속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마음들을 드러내는가 하면, 운령은 ‘사랑에 관한 소고’에서 반려묘와 서로 스미는 모습과 사랑을 꾹꾹 눌러 담습니다.
다시금 가까운 주변을 ‘둘러보며’, 타인의 이야기나 작업물을 통해 서로 손을 맞잡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마지막 카테고리 ‘둘러보기’의 첫 글, ‘스톱모션: 그림자와 함께 춤을,’에서 노랑은 죽음과 고통을 중심에 품은 채 삶을 노래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유영합니다. ‘멈춰있는 학교에 학생은 없어도,’에서 연자와 희는 대우관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방문해 노동자들과 이야기하며 모은 조각들을 르포르타주로 엮어내고, 빙봉은 ‘여성, 글쓰기’에서 영화 <작은 아씨들>과 소설 <붕대 감기>를 통해 '쓸 수 있기 위해 써야 하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되새깁니다.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는 바람에 지난 호 독자모임은 진행할 수 없었지만, 다섯 독자 분들이 정성스러운 리뷰를 써주었습니다. 오래오래 함께하자고, 계속되는 ‘우리’를 꿈꾼다고 하는 그 말들이, 분리될수록 더욱 정성스럽고 세심하게 서로를 잡고 싶은 저희의 간절한 마음과도 맞닿아있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을 거쳐 차곡차곡 쌓은 글들이 또 한 번 독자 분들의 마음에 무사히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소 선선한 가을의 초입에서, 연희관 015B 13호를 시작합니다.
편집장 노랑 (raryoo613@gmail.com), 연자 (candella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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