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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힌두스탄: 인도 북부 지역. 히말라야 산맥과 데칸고원 북쪽의 인도 반도지역. 인도 최대의 농업 지대로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와 교통이 발달. 힌디어가 널리 쓰인다. ※지명은 ‘힌두의 땅’이라는 뜻. 필자가 여행한 지역.
공항에 내려 처음 들이킨 델리의 공기는 습습했지만 어쩐지 메마른 냄새가 났다. 안개를 잔뜩 먹은 주황색 대기는 애써 흥분하지도 않고 굳이 주눅 들지도 않은 사람의 표정 같았다.
여행이 시작된 첫날의 일도 아니었건만, 인도에서 처음 마주했다고 느낀 ‘얼굴’은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향하는 기차 안에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동행하여 패키지 여행으로 인도에 왔고, 사람들은 일행이라는 무리로 움직였다. 모든 구성원이 같은 칸에 배정되지 않았지만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일행은 한 데 모여 있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했다. 자리의 주인은 중산층(외국 관광객이 이용하는 침대칸을 이용할 정도였으므로)의 현지인 4인 가족 이었다. 기차는 움직였고 시간이 한참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그들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뒤늦게 주인에게 제자리를 돌려주고 일행의 일부는 다른 객실로 퇴장했다. 두 개의 시간이 있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 가만히 웃으면서 옆자리에서 관광객들을 기다려 준 현지인 가족들의 시간과, 드러나지 않는 부드러운 배려를 눈치 챘지만 너무나도 가볍게 씹어 삼킨 시간. 번진 미소는 얼룩이 되어 남았다. 단순히 인간적인 친절과 호의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인도인들 특유의 시간관 때문이었을까. 타인의 온화함을 먹이삼아 ‘선진국’ 사람들은 웃음과 잡담을 던져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분노했다.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침묵했다.
인도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공간적 과거에 위치한다고 간주되었다. 수많은 길들과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은 그에 걸맞는 한국의 지난 시간들의 이름을 얻으면서 박제되었다. 수도인 델리와 낡은 도시 바라나시의 간극은 한국의 과거들 사이의 거리로(90년대 한국과 7/80년대 한국의 차이 정도가 되었다) 압축당했다. 이런 식의 세계관은 비단 관광객만의 것이 아니었다. 일행은 흔히 인도여행을 갔다 왔다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미지인 갠지스 강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종교의 도시 바라나시로 향했다. 명품으로 몸을 장식하고 틈만 나면 한국을 방문해 여행을 즐기는 인도인 가이드는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그는 근대화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바라나시의 거리들과 두 손을 모은 사람들에 대해 말을 아꼈다. 가이드는 바라나시를 부끄러워했고 우리들은 기다리던 ‘힐링 플레이스’의 도래에 신나서 셔터를 눌러댔다.
코드화 될 뻔한 숱한 순간들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다. 인도라는 이름 하에 연상되는 선입관들을 버리려고 노력하면서도 그에 부합하는 이미지들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의 광경이었지만 날 것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 관광지를 지날 때마다 인도에 대한 기존의 코드에 사로잡힌 것인지 고민하고, 코드화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무엇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말할 수 없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그려왔던 이미지를 이 땅에서 추려내어 재확인한 것인지, 그 파편이 사실 이 곳에 실재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면 여행을 왔다고 할 수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쯤 되면 부정적/교훈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며 불평하는 독자가 생길 것 같다. 그래서 여행기라는 이름 아래에서 궁금해 할 법할 인도의 단면들을 소개하고 싶다. 어디에 서야할지 수없이 흔들리던 시간 속에서도 주관적으로 확정적이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인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거대한 사원도, 갠지스 강의 일출도 아닌 시크교도들의 터번이었다. 무슬림들의 터번과는 또 다른 모양을 지닌, 좌우대칭이 완벽하고 채도가 높은 색으로 염색된 터번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각각의 모양새를 뽐냈다. 오랜 약속으로 머리를 기르고 작은 흉기를 지닌 그들에게서 시크교만의 서늘한 멋을 느낄 수 있었다. 1
단정하게 정돈된 단색의 터번 때문인지 시크 교도들은 언제 어느 장소에서 만나도 다른 인도인들 중에서 단연 돋보였다. 직급이 어떻든 간에 깔끔하게 차림새를 단장하는 그들의 겉모습에서 시크교도들은 늘 열심히 생활하고 결국 사회적 상위 계급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조금은 와 닿았다. 인도에 와서 현지 종교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단연 시크교를 고를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인도는 인구규모나 토지면적으로 보았을 때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나 미국에 비해 그런 이미지로 다가오지 않을 때가 많다. 중국이나 미국의 경우 해당 국가의 주류문화와 함께 비주류의 다양성도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지만 2인도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협소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도의 주요 비주류에 속하는 무슬림이 1억에 달한다든지 3하는 부분들이 한국에서는 부각되지 않는다). 막연한 위화감을 선명하게 만들어 준 곳은 자이푸르였다. 자이푸르의 건조하고 선선한 기후를 마주하며 우리는 ‘인도답지 않다’고 연신 말했다. 구시가지는 이슬람의 흔적이 강하게 배어있는 세련된 기하학적 문양들과 ‘핑크시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은은한 분홍빛을 띠고 있는 벽들로 가득했다. 자이푸르의 분위기는 경건하거나 떠들썩한 대신, 한층 차분하고 도시적인 색채를 띠었다. 나는 이곳에 매료되었고 인도에 가보지 못한 사람 앞에서 감추고 싶은 은밀한 부분을 얻은 것처럼 즐거워했다. 자이푸르에서의 시간은 북부 힌두교도들의 삶의 방식에 초점이 맞춰진 한국 안의 인도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여전히 남는 의문점도 있었다. 인도 사람들의 시간관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기차가 네다섯 시간 연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고,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삶에 대한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는 세계관은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위생의 문제에 있어서도 질문이 남아있다. 길가에 수북이 쌓인 쓰레기더미와 그 속의 야생 돼지들, 정리되지 않는 공중시설과 도로를 보며 아직 발전이 덜 되었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국가의 소득 수준과는 다른 이유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4 나는 단체 여행객이었고, 인도 사람들의 말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
패키지여행으로 출발했지만 혼자만의 여행이었던 때가 많았다. 일행 중 동년배가 거의 없었기에 말을 아꼈고, 가이드가 설명을 하고 있을 때면 저만치 멀찌감치 떨어져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을 사진기로 찍고 다녔다. 함께 웃고 떠들다가도 일행 집단이 한국인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것 마냥 설정해두고 거리를 두며 판단하는 우를 범했으며, 한편으로는 내가 그 일부라는 것도 알기에 괜히 움츠러들기도 했다. 단서 없이 허공에 뜬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렌즈를 들이대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 내 앞에서 힌두스탄은 침착했다. 어쨌거나 이 과정에서 빠진 것은 인도 사람들의 더 많은 표정들이었다. 그 표정들을 위한 자리는 내가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젠가 ‘더 비워놓고’ 그곳을 다시 방문하는 것 일 테다.
글/사진 편집위원 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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