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집단적인 열망이나 목소리를 살피려면 무엇을 들여다봐야 할까? 우리는 여러 사람이 어떤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이는 집회를 들여다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상반기에 있었던 집회를 정계, 노동, 여성 등의 키워드로 추려보았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등 사람들이 그들의 생존을 걸고 광장으로 나와 거리를 행진하며 목소리를 낸 사건이 유난히 눈에 많이 보였다. 분명 특별히 올해만 그런 집회가 많은 것은 아닐 터이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되었을 뿐이다.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광장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수많은 목소리가 각자의 염원을 담은 슬로건을 광장에 모여 외치고는 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을 오늘도 어디선가 그런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을 것이다. (*사..
오로지 결혼관계가 아닌, 새로운 법적 관계에 대한 상상과 실현 꼭 ‘결혼’해서 ‘가족’이 되어야 하나요? 참 피곤한 세상이다. 젊은 여자들은 결혼을 안 하겠다고, 자기네들의 선택을 미혼이 아닌 ‘비혼’으로 부르란다. 동성애자들은 결혼에 미쳤는지 다들 동성혼 합법화를 외친다. 꼭 그 옆엔 십자가와 마이크, 앰프를 짊어진 사람이 동성애는 질병이고 우리 청소년들을 항문섹스로부터 지켜야 한다며 고래고래 화를 낸다. 기성세대는 자꾸 젊은 세대더러 “결혼은 언제 하니”, “때 놓치면 결혼 못 한다”라며 잔소리를 한다. 언론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N포세대’라고 칭하며 나날이 오르는 집값이나 교육비, 취업난 등등에 대해서는 입을 싹 닫는다. 애 하나 키우는데 드는 돈이 뭐어? 3억? 난 한 달에 백오십 버는데? 이..
2015년 5월 13일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최 모 씨가 훈련 도중 예비군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후 자살했다. “GOP때 다 죽여버릴 만큼 더 죽이고 자살할 껄”이라는 유서를 남긴 채였다. 김종대 의원실에 의하면 “한 해 9,500여 명의 병사가 복무부적응과 사건사고로 전역”한다. 또한 “‘군 피해자’는 그 가족을 포함하여 30,000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은 무사히 전역했지만, 괴롭힘의 도구였던 매미를 피해서 이사를 해야 했던 가족이 있다. 아들의 죽음을 떠올리다가 교통사고만 9번이 난 가족이 있다. 아들이 좋아했던 음식만 보면 눈물이 끊이지 않는 가족이 있다. 손자가 죽은 지 3년이 되었지만 가끔 손자가 언제 전역하느냐고 묻는 가족이 있다. 이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여태껏 전무하..
1. 구제역의 데자뷰 구제역과 조류독감. 몇 년 전만 해도 사회 전반에 큰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주었던 이 전염병들은, 더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속보에도 치킨과 삼겹살을 거리낌 없이 먹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구제역이 너무 ‘자주’ 일어나서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가축들이 가끔씩 병에 걸리면 놀랄 텐데, 그렇지 않아서 안심하고 먹는다니? 여기서 ‘자주’라는 말은 구제역이 2010년대 들어서만 5번째 발생했다는 의미다. 작년에는 김제와 홍성에서, 올해 2월부터는 전국적으로(충청북도, 전라북도, 경기도)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정부 역시도 구제역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정부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농가의 소들은 예전부터 ..
‘연희관 015B’는 45대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2016년 11월 24일) 지구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편집위원들과 참석자들은 트럼프 당선의 배경과 그것이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갖는 의미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글은 당시 발제문과 토론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지금 트럼프가 보여주는 충격적인 행보와 2016년의 우려들을 비교해보게 되는데, 그 작업은 흥미로웠습니다. 1부. 발제 트럼프, 혐오에서 답을 찾다 여러분은 트럼프를 뽑은 미국인들이 이해가 되시나요? 저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그러던 중 허핑턴포스트의 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트위터를 살펴보면 그 이유는 이렇다고 합니다. '평생 사기 치는 정치인들만 봐왔기 때문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 ’변화가 ..
11월 12일 오후 여섯 시 경에 나는 경복궁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내 옆에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한 사람은 의경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옆 사람에게 한심하다는 말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위 나가는 사람 중에 자기가 왜 나왔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뭐 자랑이라고 과잠까지 챙겨 입고 나오느냐. 얼마 전에 한 어머니가 와서 우리 딸은 잘못이 없다, 놓아 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뭐가 잘못이 없어? 법을 어겼으니까 잘못한 거지. 참…고작해야 스무 살 스물한 살 돼 보이는 여자 애 더라.’ 그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이 빨개졌다. 과 점퍼에 이어 어려 보이는 여자 애까지 나오자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차마 한소리 하..
1. 폭력의 문제 : 2016년 겨울의 광장2016년 12월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분노한 시민들은 광장에 모였다. 봉건시대에나 가능할 것 같았던 전횡이 벌어졌다는 것만큼이나 놀라웠던 것은 100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도, 예측하지 못한 돌발사태나 공권력과의 폭력적인 대치, 혹은 진압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시민들은 시위 도중 경찰기동대에 붙인 항의 메시지 스티커를 스스로 떼기까지 했고, 경찰청장이 이를 ‘평화시위의 상징’이라며 만류하는 훈훈한(?) 광경도 연출되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이를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와 비교하며, ‘폭력을 유도하는 전문시위꾼’들이 없었다며 이번 시위의 순수성을 나름대로 추켜세웠다.집회가 거듭될수록..
바람개비 돌던 교정을 위하여 - 송도기숙사노동권 문제를 생각하다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신다면 각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세요!) 0. 천막의 봄 - 현장스케치 벚꽃 한가운데서 바람개비의 흔적을 떠올리다 지난 11월부터 시작된 국제캠퍼스 기숙사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저하 없는 고용승계”를 외치는 투쟁이 오늘로써 막을 내렸다. 싸움을 시작한 지 5개월, 농성을 시작한 지 108일 만이다. 이는 학생과 노동자들의 강한 연대, 그리고 안팎의 뜨거운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5. 05. 01.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기숙사 청소/경비노동자 기자회견 낭독문) 매일같이 백양로를 지나는 연세대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백양로 삼거리, 언더우드 앞에 있었던 비닐천막을 목격하거나 지나친 적이 있..
2015년 4월 한국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두 명의 장그래가 서로 싸우고 있다. 한 명은 아이돌 가수 겸 연기자 임시완의 얼굴이고, 다른 한 명은 웹툰 작가 윤태호 씨의 손에서 탄생한 2차원 캐릭터의 얼굴이다. 임시완이 연기한 드라마 의 장그래는 2014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의 별칭인 이른바 ‘장그래법’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윤태호 씨가 그린 원작 웹툰 [미생]의 장그래는 비정규직 노동자 3,400명의 모금으로 실린 한겨레 신문 광고에서, 또 다른 장그래를 향해 하이킥을 날리며 일갈했다. [사진1] 드라마 의 주인공으로서 호연한 임시완의 배역 장그래는, 드라마의 선풍적 인기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청년 노동, 또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화두를 이끌어내는 계기였다. 그러..
1. 왜 재일조선인인가한국 사회가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었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대는 지났다. 세계화의 물결에 힘입어(?) 다양한 문화권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살고 있다. 갑자기 다른 ‘그들’이 ‘우리’의 틈바구니에 끼어들어 살게 되면서 서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싸우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하고 마찰을 피할 것으로 추측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며 이러한 논의는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이에 관한 논의가 점차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같은 ‘우리’이면서 ‘우리’가 되지 못하고 다른 공간에서 소수로 사는 ‘그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해 보인다. 재일조선인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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