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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가을 발행한 연희관 015B 2호에 실린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1000일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걸어온 과정을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올리는 세월호 4부작의 첫 번째 글입니다.


1. 사회가 참사를 이해하는 방식

세월호 참사는 여지없이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사건 자체만으로는 어떤 말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사고가 있었다 사실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지금과 같이 한국사회를 집단적 외상에 빠뜨린 비극으로 받아들여질 있었을까. 사회가 외상적 사건을 받아들일 중요한 것은 실재했던 사건을 의미로 구성하는 과정, 서사화 과정이다. 사건들이 구슬이라면, 서사는 그것들을 꿰어내 구체적 의미로 만들어내는 실로 비유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회가 겪었던 외상적 사건의 의미는 즉시 투명하게 이해될 없으며, ‘서사라는 틀을 거쳐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된 후에야 이해 가능하다. 요약하자면, 서사는경험을 시간에 따라 유의미한 일화로 구성하는 방식이며, 이를 통해 이해 가능한 의미를 창출할 있는 것이다. 

사건의 인식에는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해석의 축이 전제되어 있고, 이에 따라 사건에 대한 사실들이 감성적, 인지적, 도덕적으로 조절된다. 다시 말해, 사건의 의미는 절대 자연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6개월이 흘렀고, 그동안 세월호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가-학생들의 죽음과 무책임한 선원들, 세모그룹 유병언의 죽음, 무능한 국가, 한국사회의 적폐들, 세월호특별법 논란 등- 터져 나왔다. 우리는 누군가를 추모했으며 추적하기도 했고, 탓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이야기들은 적대적 논란에 휩싸인 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어떠한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2. 한국사회의 외상으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의미의 정박

사건 스스로는 아무 말도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건을 이해하려면 흩어진 사실들을 코딩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이때는 사건을 어떻게 인식할지 결정하는 단계이며, 아직 사건이 어떠한 서사로도 구성되지 않은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재빠르게 정보를 접한 일부 매스미디어 주도로 배가 어디서, 왜 침몰했으며 어떤 종류의 배인지, 구조현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 전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가 전개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은 점차 밝혀지고 있었지만, 아직 사건이 비극 서사로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실은 사건의 의미가 완전히 정박하지 않은 상태에서 JTBC의 기자는 말실수를 하기도 했으며, 이 밖에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기자들의 적절치 못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각주:1] 시시각각 방영되는 침몰 영상으로 사고현장의 비참한 모습이 드러나고, 실종자와 사망자의 구체적인 수치가 발표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이 전 사회적으로 인지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재앙으로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침몰 자체에 대한 이슈가 소모된 후에는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들, 부모와 제주도로 이사를 갔던 5살 소녀, 환갑 기념으로 여행을 떠났던 동창생들,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 등 다양한 희생자들의 신원과 사연이 본격적으로 보도되는 한편, 본격적으로 배의 제원과 침몰 원인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도 올라왔다. 빠른 조류와 제한된 시계, 암초와 같은 자연현상부터 운전미숙, 과속, 과적으로 인한 균형 상실 등 무수히 많은 이유가 침몰의 원인으로 제기되었다.

때로는 이미지 하나 만으로도 많은 것을 전달한다. (출처 : 세계일보)

이처럼 사건 초기에는 사건의 정보를 주로 언론이 생산하면서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사실 매시간 마다 반복되는 침몰 영상과 완전히 잠겨 배꼬리만 모습을 드러낸 영상만으로도 참혹함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반면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에 생존자의 수를 시시각각 다르게 발표해 신뢰도를 잃었으며, SNS는 사건의 코딩 과정에서는 전문적인 정보의 부족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기사를 확산시키거나 조악한 소문을 자체적으로 생산했을 뿐이었다. 사고의 대략적인 전말이 밝혀진 후에 논점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일으킨 가해자를 누구로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옮겨갔다.


가해자 만들기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의미는 정해졌지만 사건을 집단적 외상으로 구성하는 작업은 완료되지 않았다. 참사를 유발한 가해자, 즉 이 끔찍한 사고를 초래한 악의 정체는 무엇인지, 나아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설명되어야 한다. 악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이후의 책임과 처벌, 구제 조치와 미래 행동에 있어 일정한 방향을 제시한다. 극단적인 악과 통상적인 악은 동일하게 처리될 수 없으며, 현재 세월호를 둘러싼 정치적 입장은 이 과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참사의 가해자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자연재해 : 정확한 침몰의 원인이 밝혀지기 이전에는 선박의 침몰이 자연재해의 결과로 추측되었다. 암초, 빠른 조류, 안개 등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각주:2] 만약 사고가 정말 자연적인 원인에서 비롯되었다면 침몰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이 끔찍한 사태에 화가 나고 하늘이 원망스럽지만, 자연현상에 어떤 인위적인 의도가 내재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것이다. 

2. 선박승무원 : 선장을 비롯한 선박승무원들이 승객 대피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누구보다 먼저 배를 탈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들이 세월호 참사의 명백한 가해자로 그려졌다. 운항 미숙에 관한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사고 발생 시 선박승무원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의무를 방기한데다가 여유롭게 옷까지 갈아입고 탈출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강력하게 일었다. 목숨을 바쳐 승객구조에 힘썼던 객실 승무원들과 비교되어 선박승무원들의 비도덕성은 더욱 주목을 받았고, 일부 언론에서는 그들을 ‘세월호의 악마’(evil of the sewol)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박승무원이 사건의 가해자로 구성될 때, 참사에 대한 책임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른다. 

3. 유병언 일가 :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선사인 청해진 해운의 선박 불법 증축 및 부실 관리, 횡령, 비자금 조성 문제 등이 밝혀지고 그 연결고리 끝에 구원파의 유병언이 막후에서 회사를 조종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후 유병언 개인에 대한 여러 추문과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청해진 해운을 포함한 유병언 일가가 악으로 구성된다면, 책임은 주로 탐욕스러운 회장에 귀속되지만, 그 범죄가 정관계와 연결되어 있다면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될 여지가 있다.

4. 국가 : 국가, 구체적으로 해경에 대한 의혹은 유병언 일가의 논란보다 이르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최초로 의혹을 제기했던 MBN 인터뷰 대상자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의혹은 설득력을 잃었고, 역으로 오로지 자극적인 정보만을 갈구하는 언론에 대한 전 사회적 비난이 가해졌다. 하지만 조사결과 실제로 해경이 세월호 침몰 당시에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언딘과의 유착관계, 관제센터의 관리 소홀 등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국가 또한 세월호 참사의 책임소재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국가조직인 해경이 참사의 가해자로 인식될 때, 책임은 단지 해경에게만 국한되지 않으며 하부조직을 관리할 책임이 있는 정부 전체, 즉 국가 차원의 문제로 확장된다. 책임소재가 확장되는 것을 경계했던 청와대는 급작스럽게 해경을 해체 시켜버렸다. 해경과 더불어 해수부 관피아에 대한 문제 제기나 대통령이 책임지라는 진술 역시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국가의 부패나 방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아가 국가가 악으로 규정된다면 그것은 통상적인 악의 차원을 넘어서는데, 국가는 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전할 의무를 갖기 때문이다. 


비극 서사로 가는 길

세월호 참사의 의미가 확정되고 악의 성격이 밝혀졌다 해도, 사건이 집단적 외상의 수준까지 발전한 것은 아니다. 남은 것은 정보의 생산자들이 널려진 사건들을 어떠한 서사 속에서 꿰어내며, 또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수용하는지에 대한 과정이다. 이 과정의 결과에 따라 참사는 집단적 외상을 일으키는 비극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단지 수많은 사건 사고 중의 하나로 기억될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의 비극적 연출을 강화했던 요인들은 곳곳에 있었다. 먼저, 파괴된 수학여행의 설렘이 있었다. 한국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억하는 ‘수학여행’의 이미지는 대체로 기대되거나, 즐겁거나 하는 것들이다. 수학여행을 위해 친구들과 새 옷을 사기도 하고, 밤에 있을 무대 공연에 대비해 장기자랑을 준비하기도 한다. 또는 밤새 친구들과의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침몰해버린 배가 이 모든 설렘을 비극으로 뒤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 밖에도 바다라는 공간이 가진 이미지들은-고립이나 단절 또는 차가움- 희생자의 죽음을 더욱 더 비극적으로 부각했다. 또한, 사람들은 보통 사고를 겪은 후에 시간을 사고 이전으로 되돌려보면서 ‘그것만 아니었다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요인들을 찾아내서 더욱 슬픔에 잠기곤 한다. 이 점에서 무엇보다도, 세월호는 열악한 기상 상황으로 4월 15일에 떠나지 말았어야 할 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인천항을 떠났던 유일한 배였다.

세월호 참사가 사건을 직접 겪지 않았던 사람에게까지 강력한 외상으로 자리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은 ‘그것이 자신의 주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 즉, 심리적 동일 시 과정이었다. 사건 발생 초기 단계에서는 다양한 희생자들의 모습이 드러났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월호 사건이 점차 비극 서사로 구성되면서, 희생자의 의미는 단원고 학생과 학부모를 중심으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단원고 학생들의 사연은 제각기 개인화되어 이야기되었다. 부모님과의 마지막 통화 혹은 죽음이 임박한 순간 사랑한다 말하는 문자 메시지, 사고 직전 친구들과 서로를 위로했던 메시지까지 학생들의 이야기는 오직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일상적 차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소소한, 그래서 더 비극적인 사연들을 통해 참사의 희생자는 우리 주변에도 있을법한 보통의 친구들, 동생들, 자녀들이 될 수 있었다. 또한, 희생자들의 사연은 곧 부모-자식이라는 보편적 상징으로 일반화되어 직접 사고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다. 희생자가 겪었던 고통의 순간들이 극화되어서 많은 사람이 희생자의 이야기를 마치 제 일처럼 가슴 아파했던 것이다.

희생자들의 개인적 사연들이 극화되고 이에 따라 비극의 정서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와중에 가해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선박승무원’을 실제 침몰 사고의 가해자로 보는 관점에서 나아가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어른들’을 사고의 가해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때,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마주한 관객은 운명에 의해 희생당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동시에 실제 주인공의 운명을 파괴해버린 가해자가 된다. 어쩌면 이 끔찍한 참사를 불러일으킨 근원적 악이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죄의식과 죄책감이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짓누르는 것이다. 

외상의 보편적인 확장 과정, 즉 관객에게도 이 사건이 비극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 문화적 매개물은 ‘노란 리본’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8일이 지난 4월 23일에 노란 리본이 처음 등장했고, 많은 사람은 리본을 매달며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했다. 리본이 가진 상징적 의미는 ‘기다림’이었으며, 그 메시지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어구였다. 하지만 여전히 발견되지 못한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싸늘한 주검으로밖에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깊게 빠져있는 이 비극 앞에서, 사람들은 학생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노란 리본을 통해서나마 염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비극 서사의 영향력은 유가족에 대한 대처를 편향시킬 정도로 강력했는데, 단원고 학생을 중심으로 한 비극에서 제외되었던 일반인 희생자는 사회적 관심과 각종 세월호 담론에서는 물론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 대책에서조차 배제되었던 것이다. 안산에 설치했던 합동분향소에선 그들의 영정이 실리지 않았고, 각기 다른 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지원은 안산을 중심으로 마련되었다. 주검수습이나 장례절차, 세월호특별법의 합의 과정에서도 일반인 유가족은 무관심을 받아야 했다. 계속되는 배제에 일반인 유가족은 “우리가 원하는 건, 죽음과 고통을 차별하지 말라는 거다. 똑같은 배를 탔다가 죽음을 당하고 피해를 입었는데 왜 소외돼야 하느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각주:3] 


3. 비극서사와 진보서사의 대립

부모의 마음으로 응답하겠다는 새민련 (출처 : 새정치민주연합 홈페이지)

여기서 김진요는 ‘김영오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단체이다. (출처 : 클리앙 홈페이지)

주호영 의원의 교통사고 발언 (출처 : 민중의 소리)

극복할 수 없는 비극으로 극화된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많은 국민은 슬픔에 빠졌다. 수백 명의 학생이 수몰되었다는 것, 그들 중 누군가는 여전히 바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만큼의 부모가 20년이 채 못 자란 자녀를 그냥 떠내 보내야 했다는 것, 그 건조한 사실만으로도 전해지는 참사의 비극성에 압도되어 한동안 사람들은 참사를 두고도 어떤 말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한국사회를 덮친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불쌍하다거나, 안타깝다는 외마디 표현들도 꺼내기에 버거웠고, 경건함을 유지한 채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였다.

그러나 비극 서사의 흡입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죽은 학생들과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중심으로 참사의 비극성을 강조하던 진보진영, 대표적으로 새민련이 스스로 서사를 무너뜨렸던 것이다. 그들은 사건의 잠재적 가해자로 국가를 위치시킨 후에 연민에 빠진 국민들을 지지기반으로 삼아 승리하려 했고, 그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반복적으로 정권심판론을 꺼내 들었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관객이 비극에 압도되는 이유는 주인공이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거스를 수 없는 초월적인 운명의 흐름이, 혹은 부당한 세력이 주인공의 삶을 휩쓸고, 잠식해버리기 때문이다. 비극은 어떠한 구원도 제공하지 않는다. 실제로 주인공이 자신을 덮칠 운명에 대해 어떠한 통제도 행사하지 못했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비극은 비극적이다. 따라서 비극으로 극화된 세월호 참사는 새민련이 주장했던 것처럼 정권을 심판한다거나, 혹은 심판했다 하더라도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정말 정권을 심판하면 참사의 비극이 치유될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 그들은 국민의 연민을 정권심판이라는 정당의 현실적 목표에 이용하기보다는 치유될 수 없는 유가족의 슬픔을 더 가까이에서 돌보아야 했다.

비극 서사가 힘을 잃어가는 한편, ‘단원고 대입 특례 논란’을 기점으로 비극 서사에 맞대응하는 희망의 서사, 즉 진보 서사가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서사 구성에 혼란이 가해졌다. 비극서사의 틀 안에서 세월호 참사라는 외상적 사건이 전례도 없으며, 극복할 수도 없는 재앙으로 상징화된다면, 진보 서사 아래서는 한국사회가 겪어왔던 수많은 재난 중 하나로 전형화되고 힘을 합쳐 사고를 극복할 수 있다는 구원의 희망을 제시한다. 진보 서사는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서사구조인 것이다. 보수진영의 언사는 하나같이 이 서사의 틀 안에 위치했다. 세월호의 침몰은 본질적으로 ‘교통사고’라는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의 발언과 세월호 참사 배상에 있어 ‘천안함 이상으로는 대우해 줄 수 없다’는 발언이 그러하고, 조선일보의 ‘세월호 딛고 부강한 나라로’ 기획 역시 마찬가지다. 사건의 심각성은 상대적으로 축소되며, 참사는 극복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희망적인 진보 서사가 갖는 함의는, 관객이 더는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므로 외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겪어내는 비극을 보며 연민에 빠져있던 관객들은 무대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그렇다면 왜 대학 특례입학 논란을 비롯한 각종 유가족 보상 문제를 계기로 서사가 양분되었던 것일까. ‘보상’한다는 것은 손실을 갚아준다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해나가자는 진보 서사의 틀에 속한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새민련의 유은혜 의원은 유가족이 겪었을 피해를 보전해 주려는 의도였겠지만, 이것은 세월호 참사를 온전한 비극으로 구성하는 데 방해를 했고, 여지없이 비극 서사와 진보 서사의 충돌은 현실에서 논란을 촉발했다. 실제로 이러한 결과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었던 유가족 대표는 유가족 대책위원회의 진상규명 요구가 보상논란으로 인해 가려질 수 있다며 중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미 촉발된 과잉 보상 논란은 쉽게 잠재울 수 없었고, 비극 서사 아래 유가족에게 연민을 느끼던 국민들도 같이 분열됨으로써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추동력은 힘을 잃고 말았다. 한편, 세월호 참사를 마주했던 대다수의 사람이 원했던 것이 정말 ‘진상의 규명’이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그들을 이 사건에 몰입시켰던 것은 진실이 아니라 비극이 전하는 슬픔과 고통, 그리고 카타르시스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그렇게나 아파했던 사람들이 왜 새삼스레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 되었든 비극 서사와 진보 서사는 세월호 참사 자체를 외상적 사건으로 인식한다는 데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참사의 인식에 동조하지 않는 일련의 흐름도 있었는데, 그들은 세월호 참사와 연이은 논란들 자체를 희극 장르로 변형시키고 무엇이든 조롱함으로써 이미 구성되었던 비극을 전 방위적으로 해체하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단원고 학생들이 sky에 많이 갔다는 등의 댓글을 달거나 혹은 노란 리본에 부여된 상징성을 희화화한다거나,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지는 유가족의 단식투쟁에 폭식투쟁으로 맞선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화화, 조롱의 방식이 세월호 참사와 연이은 논란에 내재했을 모순을 실제로 표면화시켰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들의 목적이 성취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현재 진행되는 논란의 기원이 수백 명의 사람이 죽은 ‘참사’라는 데 있다. 한국사회는 이러한 종류의 슬픔에 대처하는 나름의 애도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정치적 퍼포먼스는 국민 정서에 부합하기 어려운 것이다. 새누리당의 하태경 의원은 이 점을 명확히 지적했는데, 이른바 일베 회원들은 항의 방식을 조금 더 세련되고 교양 있게 구성해야 했으며, 그렇지 못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서사에 따른 인식을 바탕으로 세월호 논쟁의 흐름을 종합해보았을 때 각 진영이 가하는 서로에 대한 비판들, 즉 유가족이 겪는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식의 비판, 역으로 감성팔이하지 말라는 비판은 사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는 것이 힘이고, 모르는 것이 약인 것처럼’ 상식적인 수준의 담론은 어느 맥락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정반대로 뒤집힐 여지가 다분하다. 결국, 진보진영이든 보수진영이든 가릴 것 없이 언제나 필요한 때에 자신에게 유리한 서사를 적절히 구성해 호소할 뿐이다. 지난 천안함 사건과 비교했을 때 단적으로 드러나는데, 당시 보수진영은 죽은 장병들의 슬픔으로 비극으로 구성했으며, 진보진영은 작전에 실패하고 패전한 것은 무능력한 것이지 무슨 자랑거리이냐며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 이러한 이중성을 지켜보고 있자면 국회의 정당정치, 나아가 민주사회의 정치과정은 이성과 합리성을 기초로 하는 공론장이라기보다, 각자에게 필요한 대본을 구성하고 연기하며 관객을 감화시키는 공연 무대에 가깝다. 그들의 정치 과정에는 호소만 있었을 뿐 이성은 부재했다. 


4. 세월호 안타깝지만..?

일상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주어진 관습에 따라 자신을 맞춰가고 익숙해진 습관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보낸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가치에 대한 고민은 사치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같이, 정신적 외상을 촉발하는 강력한 충격으로 삶을 지탱해왔던 것들이 무너질 때 일상의 평온함은 쉽게 깨어진다. 일상을 정지시켜버린 외상적 충격 상태가 가신 후에는 일종의 신성함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은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와 같은, 삶의 가치에 대한 고뇌에 휩싸인다. 가치의 설정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가치를 탐색하는 과정은 결코 편안할 수 없으며, 이 점에서 사회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 수단 합리성으로 일상화되어있던 사회도 마찬가지로 외상적 사건을 겪은 후에야, 사회를 지탱했던 보편적 가치들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개인이든 사회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간직해야 할 가치를 재확인한 뒤에야, 편안하지 못했던 비일상은 다시 편안한 일상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세월호 참사는 명백히 한국사회를 집단적 외상에 빠뜨린 사건이었다.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가 한국사회에 뿌리내렸던 적폐들을 돌아볼 기회였다며 ‘안타깝지만’ 필요했던 일이라 냉정하게 말했다. ‘참사가 필요했다’는 발언 자체의 적절성을 제쳐놓더라도 이 진술을 인정하기 어렵다. 이것이 유효한 문장이 되려면, 한국사회의 적폐를 단지 돌아보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해체되었다는 전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참사 이후 해체된 것은 수학여행과 해경뿐이었다. 생명이나 안전 혹은 소통과 신뢰 등 어떠한 가치를 어떻게 한국사회가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재했고, 서로를 이겨 누르려는 적대적 대립만을 반복했다. 정부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침묵할 때 특별법은 정당 싸움으로 변질되어 여야가 지리멸렬한 대결을 계속했고, 진실을 외치는 단식투쟁은 일상을 외치는 폭식투쟁과 맞서야 했다. ‘유가족은 더 이상 나대지 말라’는 포털 사이트의 댓글들을 보며 한국사회가 심각한 분열 상태에 직면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한국사회는 잠깐 뒤돌아보는 척하더니 아무것도 고쳐내지 못하면서 다시 민생을 외치고 경제 활성화를 외치며 일상화되어가는 중이다.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온갖 적대적 논란의 근원은 결국 참사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하는 서사의 대립이다. 비극인가? 이겨낼 수 있는 일인가? 그 어느 쪽으로든 인식의 화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는 그 어떠한 가치나 도덕적 기초를 합의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가치가 부재하다는 것은 곧 방향성을 잃은 것과 같다.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세월호 참사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길 잃은 채로는 어느 쪽으로 나아가든지 퇴보를 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글 편집위원 realstupid

  1. 이투데이는 “타이타닉, 포세이돈 등 선박사고 다룬 영화는?”를 제목으로 세월호와 선박사고영화를 비교하는 기사를 냈으며, 스포츠서울닷컴은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메리츠-동부화재 보상금은?”이라는 제목으로 보험금 규모를 파악하는 기사를 올렸다. 이밖에 조선일보, MBC도 보험금 관련 기사를 올려 언론의 보도행태에 큰 비판이 제기되었다. [본문으로]
  2. 물론 구조작업에서는 맹골수도의 빠른 조류가 잠수사들의 작업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본문으로]
  3. “세월호 일반인 생존자, 특별법에 가려져 ‘삼중고’”, 데일리안, 2014.09.13., http://www.dailian.co.kr/news/view/45805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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