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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기억] 온칼로, 어긋난 욕망의 주소

연희관공일오비 2017. 1. 18. 11:23

1. 뭉크의 일기


해가 질 무렵, 나는 두 친구들과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말할 수 없는 피로를 느끼면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난간에 기대섰다. 피와 홍염이 도시와 검푸른 피오르드를 뒤덮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뒤쳐져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때, 나는 자연을 꿰뚫는 거대하고도 무한한 비명을 들었다.

-1892년 1월 22일, 니스에서-


유채화, 1892년



2. 문명의 기대수명


현재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1세쯤 된다. 지금의 20대는 100세까지 살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측도 있다. 넉넉히 잡아 현재 20대의 기대 수명이 100세라고 치자. 그럼 현재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대략 80년이 지난 후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건축은 다르다. 짧게는 몇십 년이지만,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처럼 문명의 상징적 역할을 했던 구조물은 이천 년은 버텼다. 운이 좋다면 앞으로 더 오랜 시간을 견뎌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엔 시간을 더 거대한 스케일로 잡아보자. 앞으로 10만 년을 견뎌야 한다면 인류의 문명이 건설한 구조물 중에 남아 있는 것이 있을까? 아니, 그 정도 단위라면 질문을 이렇게 바꾸는 게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10만 년이 지난 후라면, 남아 있는 문명이 있을까?


미래학자가 아닌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다만 이런저런 공상과학 영화를 보고, 이런저런 가능성을 말 그대로 공상해볼 뿐이다. (물론 과학은 없다) 희망적으로 생각하자면 인류가 정말 화성 또는 태양계를 개척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핵전쟁 같은 인류의 재앙으로, 또는 운석충돌이나 화산폭발, 빙하기 같은 자연재해로 문명이 한순간에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의 이야기도 가능은 하다. 10만 년이 기준이라면, 지금껏 티격태격 쌓아온 인류의 역사는 고작 2~3%의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3. Into Eternity[각주:1]


이 영겁의 시간에 도전하는 인간의 구조물이 있다. 바로 온칼로(ONKALO)다. 핀란드어로 “은폐된 장소”를 뜻하는 온칼로는 현재 핀란드에서 건설 중인 사용후핵연료[각주:2]의 영구처분시설이다. 핀란드 Olkiluoto섬의 18억년 된 지층을 건설부지로 선정하여 2004년에 착공하였고, 2020년부터 100년 동안 핀란드에서 배출된 9,000톤의 핵폐기물이 저장될 예정이다. 지하 5km에 있는 핵폐기물 저장고가 가득 찰 2100년 즈음,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쓰레기 묻은 채로 완전히 폐쇄된다. 그 후로 10만 년을 견뎌야 한다. 10만 년이 지나야 핵폐기물이 내뿜는 방사선이 환경방사선과 동일한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온칼로의 기획자들은 이 단단하고 안정된 화강암 지층이 아득한 미래에 이르러도 변동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 전망한다.


ONKALO 개념도

온칼로 입구

건설 중인 온칼로 내부


왜 이렇게까지 할까. 고준위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세계 어디에도 없으며,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현재 원자로를 사용하는 대다수 국가, 아니 핀란드를 제외한 모든 국가는 그나마 방사능 안전장치를 갖춘 기존의 원자로에 핵폐기물을 임시로 보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위기를 축적하고 있다. 이런 범세계적인 기만 행태를 두고 일본의 한 반핵 과학자는 화장실 없는 맨션에서 살 수 있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현재 전 세계가 생산한 고준위 폐기물의 총량은 240,000톤에 달하고, 매해 7,000톤씩 증가하고 있다.[각주:3] 인류의 존망이 달린 쓰레기가 매해 몇천 톤씩 쌓이는데, 아직도 처리할 방법 하나 없이 모르는 체 하는 현실이다. 


엄밀히 따져본다면 핀란드의 ‘영구’ 처분 시설도 ‘보관’의 기간을 극단으로 밀어붙였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욱 위태로워 보인다. 한 기획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최종적인 처분은 어떤 나라도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이 분야에서는 틀림없이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사능 폐기물의 최종처분시설은 극히 긴 세월의 사용을 상정해서 건설됩니다. 적어도 10만 년은 견디지 않으면 안 됩니다. … 10만 년간 핵폐기물을 인간이나 다른 생물로부터 안전하게 격리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각주:4] 이 발상에는 지금의 인류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미래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모두 죽고 없을 10만 년 후에, 이 과학자는 무엇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일까? 

 

4. 불확실성과 싸우기 


여차하면 지구를 절망에 빠뜨릴 수 있는 온칼로는 자연환경의 변화라는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 온칼로를 설계한 과학자들은 앞으로 6만 년 이내에 빙하기가 도래할 것이라 예측하고, 그로 인해 현재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연에 관해선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온칼로는 18억 년이나 지속하여 온 안정된 지층 위에 건설되었고, 완전한 자기 완결형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 인간의 손이 필요하지 않아서다. 도리어 그들은 ‘은폐된 장소’라는 뜻처럼, 온칼로가 인류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가길 바란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 이것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들의 계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Into eternity”의 감독 Michael Madsen은 기획자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미래 인류’라는 위협 요소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대답은 낙관적이다. 방사선 측정 장치가 되었든 화학적 분석이 되었든 이것이 무엇을 위한 시설인지 이해한다면 수준 높은 과학기술을 가진 문명임이 분명하고, 혹여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지하 5km까지 파 내려갈 수 없다고 응답하는 식이다. 그러나 땅을 깊이 파는 일과 그 안에 묻힌 존재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일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파는 기술은 있어도 발견한 시설이 무엇인지 해명하는 기술은 부재한 문명이 언제든 존재할 수 있다. 


결국, 선택지는 불가피하게 두 가지뿐이다. (영원히) 망각하거나, (영원히) 기억하거나. 실제 핀란드 정부의 방침도 이중적이다. 사후관리가 전혀 필요 없도록(망각) 법으로 명시하는 한편, 핵폐기물의 처분이 끝난 뒤에 관리 책임을 국가가 지도록 하고, 관련 정보를 관리할 수 있도록(기억) 명시하고 있다. 잊게 만들어 시설을 찾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전자의 방식은 무책임하고(온칼로는 엄연히 미래 세대에게 부담스러운 짐이다), 시설의 위험성을 기억하게 만들겠다는 후자의 방식은 불안정하다. 기억이 왜곡되지 않도록 오랜 시간 지켜 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떠한 이유로 기억이 단절된다면, 그때는 정말 방법이 없다. 과학자들의 믿음과는 다르게, 어느 방식이든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어려워 보인다.


기획자들도 그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지, 미지의 미래 인류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이른바 ‘마커 시스템’으로, 먼 미래에 온칼로를 발견할지 모르는 생명체에게 시설의 위험성을 알릴 수 있도록 여러 표식을 설치하는 것이다. 비석에 온갖 언어로 온칼로에 대한 정보를 적어놓는가 하면, 언어적 한계를 고려하여 접근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픽토그램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가장 흥미로운 표식은 화가 뭉크의 “비명”이라는 회화였다. 그들은 언어로는 소통이 불가하더라도, 이미지로는 감정을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던 것 같다. 미래의 인류가 이 비명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지는 10만 년 두고 봐야 할 일이겠지만. 


온칼로에 사용될 픽토그램


6. 비명의 의미


다시 뭉크의 유명한 회화로 돌아와 보자. “비명”은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주제에 깊이 매료되었는지, 표현 방식을 바꾸어 여러 차례 다시 그리기도 했다. 1893년에는 캔버스에 파스텔로, 1893년에는 목판에 유채화로, 그러다가 1895년에는 아예 석판화로 제작해버렸다. 석판화에는 독일어로 “Ich fühlte das große Geschrei durch die Natur.”(나는 자연을 꿰뚫는 거대한 비명을 느꼈다)라는 작가의 말을 직접 새겨놓기도 했다. 연작이 그려지는 동안 표현법은 여러 번 바뀌었으나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뭉그러진 자연, 배경을 사선으로 가르며 곧게 뻗은 다리, 다리 끝에서 걷고 있는 두 친구와 정중앙에서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이 반복하여 등장한다.


초판, 파스텔, 1893

유화, 1893

석판화, 1895

템페라, 1910


좋은 작품은 독자가 해석을 멈추지 않도록 이끈다. 뭉크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 단순한 회화가 오래도록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이유 중 하나는, 불안에 질린 표정으로 절규하는 동기가 해명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답은 그림 밖에 그를 겁주는 실체(괴물?)가 있다는 가정일 것이다. 하지만 1892년 작에서 주인공이 취한 자세와 당시의 일기를 참조할 때, 화면 바깥에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실체가 있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는 다리를 건너다 불현듯 “자연을 꿰뚫는 비명”을 들었을 뿐이다. 


따라서 그림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답을 찾는 편이 더 타당해 보인다. 가장 중요한 단서는 일기에 언급된 자연이다. 자연은 (인간과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스스로(自) 그러한(然) 세계이며.[각주:5] 인간은 그 세계에서 분리되는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식을 갖는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자의식을 갖게 됨으로써 자연을 대상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또한, 자연과의 분리는 자연의 법칙을 위반하고 인간의 법칙을 세우는 일과 다름없다. 그림에도 등장하는 다리가 대표적이다. 다리는 물길을 거스르겠다는 목적에 맞춰 자연을 변형한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가진 비자연성이 응축된 상징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뭉크가 다리 위를 걷다가 불안감에 질려버린 일을 그저 우연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연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인위적 공간에서 인류가 겪었던 분열증상을 온몸으로 재-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분열을 통해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원하는 형상을 설계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자신을 자연 외부의 존재로 위치시킨 후, 인위적 목적에 따라 자연을 편집한다.[각주:6] 이러한 태도는 근대철학의 문을 열었던 경험주의자 프란시스 베이컨의 선언(“자연은 오로지 복종함으로써만 복종시킬 수 있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자신만만한 태도는 4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역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설계의 욕망이 극대화된 시기가 바로 근대라고 지적한다.


“근대적인 심성은 세계는 변화 가능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탄생했다. 근대(성)는 지금까지 존재해온 세계를 거부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결의와 관련되어 있다. 근대적 존재 방식은 강제적이고 강박적인 변화에 있다. '단지 존재하기만 하는 현실'을 거부하고 될 수 있는 것과 되어야 하는 것을 모색하는 것이다.  … 자기를 지금과 다르게 만들고, 고쳐 만들고, 계속해서 다시 만들려는 욕망이 그것이다. … 따라서 근대사는 설계하기의 역사이자, 자연에 맞서 진행된 꾸준한 정복전/소모전에서 시도되고, 퇴속되고, 폐기되고, 버려진 설계도의 박물관/묘지였다.”


바우만은 분열로 시작된 인간의 역사가 근대에 이르면, 강박적인 설계하기의 욕망과 맞물려 ‘자연과의 정복전’ 양상을 띤다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비명”으로 알려진 작품의 원제는 “Der Schrei der Natur(자연의 절규)”다. [하지만 단지 자연이 문제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정복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제1세계로 퍼지고,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철도가 깔렸으며, 고도로 산업화된 거대도시가 등장했다.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친구들처럼, 당대 사람들은 자연을 연료로 하는 이 세계가 끊임없이 진보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 믿음은 오래지 않아 부서졌다. 자연의 은밀한 복수 같은 것 때문이 아니고, 인간이 문제였다. 뭉크는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이 건재했던 19세기 후반, 곧 근대의 전성기에 때아닌 비명을 들었다. 그는 예술가의 민감한 감각으로 반성 없는 설계하기의 욕망이 가져올 비극을 이미 포착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마지막 그림이 그려진 시점으로부터 4년 후에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가차 없이 비웃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다시 그로부터 25년 후에는 성찰 없는 이성이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했던 2차 세계대전이 있었다.[각주:7] 이후로도 같은 연유로 발생한 불행이 세계 곳곳에서 다른 모습을 띠고 되풀이되고 있다. 뭉크의 이른 절규가 10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건, 맹목적인 설계의 욕망이 초래할 비극을 분명하게 직시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7. 비명(悲鳴) 기록한 비명(碑銘)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살아가는 이상 설계하기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생존을 지속하기 어려운 탓이다. 따라서 문제의 초점을 설계 자체에 두기보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쓰레기, 그 쓰레기를 못 본 체하는 인간의 위선에 두는 것이 옳을 것이다. “쓰레기는 아마 우리 시대의 가장 괴로운 문제인 동시에 가장 철저하게 지켜지는 비밀이다.” 라고 바우만은 말한다. 그 위선의 극단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매해 몇천 톤의 쓰레기를 배출하면서도 처리에 대해서는 모르는 체하기 급급한 위선 말이다. 


온칼로의 기획자들은 핵폐기물을 지하에 쌓아두고는 미래의 인류에게 쓰레기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한 메시지로 뭉크의 회화를 선택했다. 이 선택은 명백하게 틀렸다. 뭉크의 절규가 의미하는 바는 이성의 쇠우리에 갇힐지 모르는 우리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절망에 가깝지, 그 무슨 타자에 대한 경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한 일이겠지만 이 빗나간 판단이 도리어 온칼로에 담긴 욕망의 진실을 정확하게 드러낼 것이라 믿는다. 뭉크의 비명(悲鳴)을 품은 온칼로가, 근대인이 낳은 합리적 부조리를 증언하는 비명(碑銘)으로 파묻혀있는 한, 그럴 것이다.




글 편집위원 realstupid



  1. ONKALO를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이다. 한국에선 “영원한 봉인”이라는 이름으로 13회 EBS국제다큐영화제에 소개된 바 있다. [본문으로]
  2. 원자로에서 연료로 사용된 뒤 배출되는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이다. 참고로 방사능 폐기물에는 저준위 폐기물(Low Level Waste), 중준위 폐기물(Intermediate Level Waste), 고준위 폐기물(High Level Waste)이 있다. [본문으로]
  3. world nuclear association, “Radioactive Waste Management”, 2015. http://www.world-nuclear.org/information-library/nuclear-fuel-cycle/nuclear-wastes/radioactive-waste-management.aspx [본문으로]
  4. Michael Madsen, “Into eternity”, 2010, 19분 54초. [본문으로]
  5. Nature의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다. Nature is all the animals, plants, and other things in the world that are not made by people, and all the events and processes that are not caused by people. [본문으로]
  6. 동물도 도구를 사용한다. 하지만 인간처럼 형상을 개념화하고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문으로]
  7. 바우만은 나치가 저질렀던 ‘인종 청소’라는 무자비한 행동에도 “설계”의 사고방식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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