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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영상이 있다. “나오라고 씨발년아.” 사람을 밀쳐 바닥에 쓰러뜨린다. 막으려는 사람들을 밀고 짓누른다. 그렇게 넘어진 사람들을 발로 밟는다. 깨진 유리가 바닥에 나뒹군다. 머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비명소리가 가득하다. “야 사람 죽는다. 사람 죽어.”, “그만 때리란 말이야.”, “경찰, 경찰”. 도움을 호소하지만 경찰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영화 속 이야기일까? 아니, 712일 노량진수산시장 신시장 이전을 거부하는 구시장 상인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을 담은 영상이다.[각주:1]

 

     노량진역 7번 출구로 나오면 깨끗하고 세련된 시장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온갖 계고장이 덕지덕지 붙은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이하 구시장)이 있다. “출입 시 형사 고소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위협은 구시장을 외부와 분리하기 용이하다. 수협은 구시장 밖에 콘크리트 벽을 세워 구시장을 완전히 바깥과 차단했다. 부서진 간판과 깨진 유리가 뒹구는 폐쇄된 구시장에 누구도 선뜻 들어서기 어렵다. 그런데 구시장에 아직 상인들이 남아있다.


c.응팡 c.은석

 

    건물주는 세입자가 퇴거에 응하지 않으면 명도소송을 걸어 법원에 판결을 구한다. 승소 판결을 받은 건물주가 강제집행을 신청하면 국가의 강제력을 빌려 퇴거를 집행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명도집행이다. 10차례에 걸친 구시장 명도집행이 89일 새벽, ‘완료됐다. 이제 철거작업을 시작해 구시장을 허물면 된다. 그러나 구시장에 남은 상인들이 구시장 명도집행은 완료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떼쟁이를 향한 분노


2009년 수협중앙회[각주:2](이하 수협새 부지에 신시장을 건축하고구시장 부지에는 수산복합테마파크를 조성한다는 골자의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계획을 발표해 상인들의 동의를 받았다. 2015년 신시장 건물이 완공됐지만 일부 상인들이 판매 공간이 협소해진다는 이유로 신시장 입주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그러자 수협이 2016 3월 구시장에 남아있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명도소송을 시작했다. 2018 8월 명도소송에서 수협중앙회 소유의 구시장 건물을 상인들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다는 주장의 수협에 대법원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수협은 2017 4월 첫 명도집행을 시작으로 총 10차례에 걸쳐 구시장 명도집행을 했다.



     구시장을 다룬 언론의 건조한 보도를 보고 있자면, 모든 게 법적 절차대로 진행되는데 보상을 바라는 구시장 상인들이 떼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협이 나가라면 나가는 게 당연하다. 법적제도적으로 세입자인 상인의 권리라고 할 만한 게 전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도소송에서 세입자가 승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면 임대차보호법에 보장된 기간 내에도 퇴거해야 한다. 법원은 개발이 적절한지 묻지 않고, 퇴거가 정당한지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퇴거를 정당화한다.[각주:3] 그러니 나가라는 데도 순순히 나가지 않고 남아있는 상인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세입자이지만 구시장의 상권을 일궈온 상인들이 시끄럽고 문제를 일으키는 떼쟁이가 된다. 수협이 명도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리고 명도소송에서 이긴 수협은 상인들에게 법이 보장하는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불법을 이야기하고 싶은 혹은 그래도 공간을 불법으로 점유하는 건 나쁜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1.

     명도소송에서 수협 승소 판결의 주요한 근거는 현대화사업계획 발표 뒤 상인들에게 받았던 동의다. 그런데 그 약속이 이전과 달라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날 다수결 아닌 다수결에 의해 평생을 일궈온 터전에서 나가야 한다면? 건물이 완공된 후에야 신시장 내부를 확인할 수 있던 상인들은 기존의 약속과 완전히 다른 구조로 신시장이 들어선 걸 알게 됐다.

 

상권은 한 치 앞을 다퉈요. 저희가 30년 넘게 영업을 해봤지만, 코너 안으로 들어가느냐 코너 밖으로 나오느냐 상권 차이가 어마어마해요. 근데 복층으로 올라가면 그만큼 영업이 안 돼요. 경매장도 전에는 한꺼번에 물류가 산지에서 와서 한꺼번에 경매했어요. 그러면 배송되는 것도 빠르고 상인들이 물품을 받아서 빨리 내보낼 수 있는데, 저기(신시장)는 한 차가 들어와서 경매하고 빠지면 다른 차가 들어오는 식으로 경매 자리가 잘못돼있어요.”

 

     신시장은 구시장보다 좁은 데다가 임대료가 비싸다. 탁 트인 구시장과 달리 사방이 막혀 있어 장사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각주:4] 구시장 상인들은 신시장 이전을 거부하고 구시장 일부 존치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협은 문제가 생길 경우 재검토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2016년 구시장에 남아있는 상인 358명을 대상으로 명도소송을 시작했다. 동시에 구시장에 남아있는 상인들에게 39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각주:5]

 

     상인들에겐 언제까지 구시장에 남아있고 싶다거나 어떤 모양새의 신시장에서 얼마의 임대료를 내고 싶은지 협상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지금의 법으로는 건물과 토지를 소유한 수협이 마음만 먹으면 구시장 상인들을 몰아낼 수 있다. 오랫동안 구시장을 점유하여 사용하던 상인들이 수산시장에 관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애초에 없다. 이전을 거부하는 상인들과 효율적이고 간편한 집행을 원하는 수협 사이에서 법이 사실상 수협의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협과 상인 사이 불평등한 법과 제도가 도리어 강제퇴거를 폭력으로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장치가 됐다. 그뿐 아니라 구시장 상인들의 상황을 가리며 떼쟁이라는 규정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낸다.

 

c.은석


     UN 주거권 특별보고관 레일라니 파르하가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곤 한국 시민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주거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인식조차 없다는 것을 느꼈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서울 곳곳의 개발 사업지엔 투기꾼과 부동산 기업이 몰려들며 원주민과 세입자가 밀려나는 일이 반복되지만, 쫓겨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짐짝처럼 취급된다. 내가 선택한 이사에도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은 한순간에 생계가 파괴된 채 떠나야 하는 사람들에겐 냉정하다. 월세를 12배 올려 세입자를 쫓아내면서 시장가치운운하는 건물주 앞에, 권리 행사를 떼쓰기로 낙인찍는 사람들 앞에선 쓸려나가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그러나 구시장 상인들은 쓸려나가길 거부하며 자리를 지켰다. 그러자 이들에게 명도집행과 공실 관리를 명분으로 무차별적인 폭력이 가해졌다.

 

c.은석


 

2.

     ‘합법적인절차를 걸쳐 소유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불법적인 집행과 폭력까지 용납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강제집행 현장에서 철거폭력은 극심하다. 철거용역업체가 등장했던 80년대부터 08년 상도411구역, 09년 용산4구역, 16년 노원 인덕마을, 18년 개포8단지를 비롯한 서울 곳곳의 재개발, 재건축 현장 그리고 지금 구시장에서 자행되는 폭력은 우리가 발 딛는 세계의 정의를 의심케 한다. 수협 등 사업의 시행 주체는 건물의 경비나 철거 등을 이유로 용역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데, 강제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폭력은 대부분 이들에 의해 자행된다. 용역들은 세입자와 거주민에게 퇴거를 종용하거나 협박하기 위해 오물을 투척하고 영업을 방해하고 욕을 하며 이들을 모욕한다. 비둘기 사체를 건물 앞에 두거나, 여성을 향해 집에 찾아가서 가만두지 않겠다며 협박을 하거나, 사람을 향해 소화기를 뿌려대는 식이다. 괴롭힘에 지친 사람들을 쫓아내는 게 이들의 목적이다.

 

     명도집행은 공권력의 역할을 대신하는 명도집행관과 법원 용역들만 집행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철거 현장이 그렇듯, 구시장 명도집행도 집행관이 아닌 수협에서 고용한 용역 직원들에 의해 이뤄진다. 이들이 먼저 와서 가게를 부수고 상인들을 때리고 상인들에게 욕하고 가면, 집행관이 대충 훑어보다 집행완료 딱지만 붙이는 꼴이다. 강제퇴거는 삶과 터전을 파괴하는 강력하고 강제적인 조치다. 그 때문에 반드시 법원의 명령을 통해 시행되어야 하고 강제퇴거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강제퇴거 규정에서는 강제퇴거의 절차만을 규정할 뿐 강제퇴거를 위한 사전조치’, ‘강제퇴거를 방지하기 위한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각주:6]


     경찰은 대부분의 경우 용역의 폭력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본다. 법이 보호하지 않는 떼쟁이들에겐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명도집행 과정에서 수협 직원에게 끌려나가던 구시장 상인이 끓여둔 해장국을 용역에게 뿌렸다. 어느 날 용역이 1m짜리 해머를 들고 구시장을 다니며, 차를 부수고 상인을 때려 이를 부러뜨렸다. 앞의 상인은 직원을 특정해 해장국을 뿌렸다며 구속됐고 뒤의 용역은 개인을 특정하지 않고 해머를 휘둘렀다는 이유로 불구속 처분을 받았다. 구속된 상인은 여전히 나오지 못하고 있는 반면 용역은 수협직원이 되어 구시장을 활보한다. 법과 경찰은 용역과 수협 직원의 폭력은 묵인하거나 혹은 그들을 보호하지만 생존과 주거권을 요구하는 상인들은 강경하게 진압한다.

 

3.

     중앙도매시장인 노량진수산시장은 수협이 지금처럼 관리하고 운영할 수 없다. 노량진수산시장의 시장개설자는 서울시다. 그런데 서울시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인수를 거부한 노량진수산시장 부지와 건물을, 2002년 수협이 단돈 50억 원에 인수했다. 서울시의 말이 무색하게도 수협이 나머지 1,450억 원은 정책금융[각주:7]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시장개설자인 서울시는 수협의 자회사 수협노량진수산으로부터 건물과 부지를 무상임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수협노량진수산에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을 무상으로 넘기는 특혜를 부여했다.[각주:8] 수협노량진수산을 도매시장법인으로 지정하고, “도매시장을 관리운영하도록 하는 시설사용대차계약서를 체결한 것이다. 위에 언급한 일들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농안법 제21(도매시장의 관리) 를 살펴보자.



① 도매시장 개설자는 소속 공무원으로 구성된 도매시장 관리사무소(이하 "관리사무소"라 한다)를 두거나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공사(이하 "관리공사"라 한다), 24조의 공공출자법인 또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중에서 시장관리자를 지정할 수 있다.

⇒ 도매시장법인에 불과한 수협노량진수산은 이 조항에서 명시한 시장관리자가 될 수 없다.

 

② 도매시장 개설자는 관리사무소 또는 시장관리자로 하여금 시설물관리거래질서 유지유통 종사자에 대한 지도감독 등에 관한 업무 범위를 정하여 해당 도매시장 또는 그 개설구역에 있는 도매시장의 관리업무를 수행하게 할 수 있다.

⇒ 시장관리자가 될 수 없는 수협노량진수산에 도매시장을 관리운영할 권한을 부여한 시설사용대차계약서를 체결했다수협이 지금껏 서울시로부터 지위를 넘겨받아 실질적 시장개설자가 되어 노량진수산시장의 관리와 운영 업무 전반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불법 시설사용대차계약서 때문이다.


    농안법이 중앙도매시장의 개설권을 수협이나 농협 같은 생산자협동조합이 아니라 특별시광역시 등 광역자치단체에 부여하는 이유는, 중앙도매시장이 전국의 농수산물 시장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중앙도매시장의 개설자가 되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 지금 서울시는 시장개설자로서 노량진수산시장의 관리와 운영의 최종 책임자라는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구시장에 남은 사람들

     수협의 명도집행이 예정되어있던 82, 구시장에서 곳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상인 중 30~45년 동안 어패류 장사를 해 온 여성상인 세 분을 만났다. 장사해온 세월만큼이나 이들에게 구시장은 의미가 남다르다. 장사 초기에는 단골이 없어 개시도 못한 채 온종일 자리만 지켰던 적도 있지만, 열심히 일했고 그 덕에 먹고 살만했다. 그런 이들에게 구시장은 일터이자 생활터.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수결에 의해장사하던 가게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금 구시장에서 소매 장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입구에 명도집행 경고 플랑이 붙은 깜깜한 구시장에 수산물을 사러 회를 먹으러 오는 손님은 없다. 그래도 납품할 도매 단골이 있는 상인들은 물건을 맞추기 위해 새벽 2-3시에 출근한다. 그런데 수협 직원들이 경매장에 들어선 구시장 상인들을 내쫓는다. 소매시장에서 물건을 사려고 해도 신시장 상인들 앞에서 나가라며 망신을 주고 욕을 한다. 모욕과 폭력. 지금 구시장 상인들을 향해 빈번하게 가해지는 일이다.




시장이 잘 운영되고 영업이 잘되면 우리가 힘든 싸움을 왜 하겠어요, 들어가지. 이 고생을 하고. 엄마들이 조인트 까지고 머리 깨지고, 봐 봐요 여기 멀쩡한 데 있는가. 지금 이게 다 나은 거예요.”


어저께는 용역이 나보고, 손가락질하면서 야 너 조심해그래. ‘너 집에 칼 꽂아 내가’”


그런 말은 일상이고요. 귀에다 대고 쌍욕을 합니다. 얼마나 저희가 수치심을 느끼고 이거는 인간 모독. 기가 막힙니다.”


무슨 말만 하면 씨발년아’. 너무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존치가 안 돼도 포기를 해도 저기(신시장)는 안 갑니다.”



     구시장 자리엔 호텔, 컨벤션, 워터파크 등이 포함된 노량진수협 복합리조트가 계획되어 있다. 빨리 구시장을 철거해야 서둘러 임대료를 받고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강제집행이 무리하게 진행된다. 매일 2. 오전 8시 반에서 9시 사이, 오후 4시 이후 수협 직원들이 공실 관리를 명분으로 구시장을 휩쓸며 일상적인 폭력을 자행한다. 경찰의 방조 아래 폭행, 협박, 성희롱, 괴롭힘 등 각종 폭력과 모욕이 구시장에 난무한다. 그런데 구시장 안이 지옥이라는 사실보다 상인들이 돈만 바라는 나쁜 떼쟁이라는 게 더 많이 그려진다.


c.은석  c.최인기

 

오늘 수협이 기자회견을 했던데 댓글을 읽어보니까 그만 떼 부리고 나가라, 꺼져라.’ 그런 댓글이 많이 달리고 우리가 응원해주는 댓글은 하나도 안 올라와요.”

 

     구시장에 남은 상인들을 향한 떼쟁이라는 낙인은 상인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데 크게 영향을 끼친다. 불평등한 법 집행, 수협의 폭력, 경찰과 서울시의 방관에는 목소리 높여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주변 시민들이 떼쟁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상처를 입고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상인들은 보상을 바라서 남아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해야 했다. 용산참사가 있었던 그 날, 용산의 모 주상복합에 사는 부녀회장은 이번 일로 재개발이 미뤄져서는 안 된다라는 서명을 받으러 다니며 수선을 떨었다고 한다.[각주:9] 지금 구시장 상인들을 향한 시선도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심 곳곳에서 공사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뉴타운을 비롯한 재개발 사업으로 낡고 더러운 상가와 집이 허물어진다. 새 건물에 걸맞지 않은 거주민과 세입자를 치워버린 그 자리에 세련되고 깨끗한 건물들이 들어선다.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적절한 비용으로 바다의 그것과 비슷한 수산식품을 구입하려고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았다. 특정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복합리조트에 입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 민간기관에 불과한 수협이 주도한 현대화사업에 1540억 원에 달하는 국고보조금, 그러니까 세금이 투입된 이유도 수산물 유통과정을 선진화해 수산인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수산시장 거래량은 줄어드는 반면 임대료만 높아지고 있는 지금, 현대화사업이 만들어낸 노량진수산시장에선 상인들이 도려내진다. 그렇게 상인들을 지운 자리는 자본이 차지한다.

 

     사람들이 용산4구역 철거 현장을 찾았던 이유는 단순히 용산 철거민에게 동정심을 느껴서가 아니다.[각주:10] 이윤을 이유로 사람과 삶을 내몰아냈던 용산참사가 어떻게 해결되느냐가 잘못된 개발과 퇴거를 반복하지 않게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장소를 통해서 안정적이고 인간다운삶을 살 수 있다. 제도적으로 주소를 가지고 있어야 국민으로 인정되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공간은 시민의 자격을 의미한다. 거주민의 삶을 파괴하고 생겨난 공원, 홈리스를 내쫓고 깨끗해진 역사, 구시장 상인들의 생계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호텔. 도시는 점점 더 윤택하고 깨끗해지지만 누군가 발 딛고 입장할 수 있는 공간은 협소해진다.

 

     수협직원이 돌아가면 상인들은 쏟아지는 빗물을 받아 난장판이 된 점포를 닦고 치운다. 상인들을 지워진 자리를 복합리조트가 차지하는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더는 상인들이 아니라, 상인들의 삶의 자리를 빼앗는 그 법이, 법 집행을 이유로 휘두르는 폭력과 폭언이, 삶의 자리를 치우고 들어선 자본이 불법이어야 한다. 공사 소리만큼이나 반복되는 퇴거를 더 이상 목도할 수 없다. 명도집행은 완료됐지만 상인들은 여전히 구시장에 남아있다.

 

c.최인기  c.최인기



편집위원 응팡(mate517@naver.com)

 

  1.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은석 감독의 영상이다. Youtube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똑똑히 보세요 | 노량진수산시장 폭력의 순간들’이라고 검색해 볼 수 있다. [본문으로]
  2. 수산업협동조합, 어민과 수산물 가공업자 등 생산자협동조합. “수협은 '수협의 이익'이 '어민의 이익'이라고 강변하지만 수협 직원만큼 월수입을(2018년 국정감사 결과 수협은 3명 중 1명이 억대 연봉자로 드러났다) 얻는 어민들이 과반수나 될 때나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염치가 있을 것이다.” 김상철, 「‘잠정적인’ 신시장 3년 평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 평가와 대안 찾기 국회공청회 자료집, 2019, p.21. [본문으로]
  3. 미류, 「삶의 장소에 대한 권리」, 인권운동사랑방, 2013. 06. 15. https://www.sarangbang.or.kr/writing/54084, (검색일자: 2019. 08. 05) [본문으로]
  4. 현대화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2년부터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거래되는 수산물의 양은 2002년을 기준으로 60% 수준으로 감소했다. 2018년도 노량진수산시장 수입을 살피면 도매 수수료보다 임대 수수료로 벌어들인 수익이 10억가량 많다. 노량진수산시장의 수익구조가 도매를 통한 수산물 유통보다, 상인들이 부담하는 임대료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의 자료집, 2019, p.24. [본문으로]
  5. 2018년 11월 항소심에서 수협이 패소했다. [본문으로]
  6. 영국은 ‘강제퇴거에 있는 그 절차’와 ‘퇴거대상자의 대항력’을 자세히 규정하고 부당한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쉽게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퇴거 대상자들에게 강제 퇴거로 인한 주거권 침해와 관련해서 법적인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이용하기 쉬운 절차 및 상담 등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필리핀의 ‘도시개발 및 주택법(Urban Development & Housing Act)’ 제28조를 살피면 철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적절한 신원증명을 요구하고 있고 퇴거에 응하지 않는 가구가 있는 경우 월요일부터 금요일 정규 근무시간 동안 날씨가 좋을 때에만 퇴거나 철거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닌 경우 중장비를 사용한 철거가 금지된다. 벼리 외, 「주거권 침해의 사법심사 가능성」, 인권운동사랑방, 2009. 09. 09. https://www.sarangbang.or.kr/oreum/70150 (검색일자 2019. 08. 18) [본문으로]
  7. 정책적인 필요에 의해 정부가 특정 산업과 업종 등에 일반금융의 시중금리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중장기에 걸쳐 자금을 대출해주는 일 [본문으로]
  8. “노량진수산시장의 운영권은 예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보장하는 '황금방석'으로 불리기까지 한 알짜 중의 알짜였다. 그런 도매시장 운영권을 서울시는 단돈 1원 한 푼 받지 않고 2003년 이래 지금까지 수협에 무료로 넘긴 것이다. 서울시를 (갑)으로 ㈜수협노량진수산을 (을)로 하여 체결한 시설사용대차계약서에 따른 필연적 귀결이었다.” 이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아래의 기사 참고. 김학규, 「노량진수산시장 사태, 서울시 예전부터 이상했다」, 오마이뉴스, 2019. 06. 29.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49231&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검색일자 2019. 07. 20) [본문으로]
  9. 조혜원 외, 『여기 사람이 있다』, 삶창, 2009, p.268. [본문으로]
  10. 조문영 외,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2019, p.3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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