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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둘러보기] 멈춰있는 학교에 학생은 없어도,

연희관공일오비 2020. 10. 6. 09:55

 

8, 오랜만의 교정. 동문에서 탄 셔틀버스에는 사람이 없다. 적어도 너댓 명은 늘 앉아있던 지난 방학이 떠오른다. 한동안 와보지 못했던 연희관 언덕은 풀이 많이 자라고 녹색 이끼가 나무 기둥을 뒤덮어 밀림같아 보인다. 가뜩이나 오르기 힘들었던 언덕길이 극성맞은 장마를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간 나뭇잎으로 뒤덮여 더욱 미끄럽다. 언덕을 오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회색빛 하늘 아래로 연세대학교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상경대학 건물, 대우관이 있다. 대우관 지하 1층 입구는 잠긴채 무언가가 유리창에 붙어있다. 입구 봉쇄 안내문이다. 어쩔 수 없이, 경사를 한번 더 넘어가기가 꺼려져 가지 않던 1층 정문으로 들어간다.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도 곳곳이 낯설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나무에는 녹색 이끼가 가득했다.


체온을 재고서야 그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대우관 로비는 확실히 변해 있었다. 새로 들인 듯한 나무 책상과 의자들이 아직 이곳에 녹아들지 못해 눈에 튄다. 인테리어 시공을 새로 하면 나는 특유의 냄새가 에어컨 바람을 타고 공기에 가득히 퍼져있다. 몇 달 전만 해도 아주 고리타분한 모양새의 회색 빛깔이었던 이 건물은 이제 나무판자를 빼면 벽부터 바닥까지 눈이 부시도록 새하얗다. 생기 없는건 여전하지만, 원래도 컸던 이 공간이 온통 새하얀 대리석으로 뒤덮이며 더욱 광활해보였다. 체온을 재는 학생과 경비원을 빼면, 사람은 한명도 없어 고요했기에 겉보기에는 막 개장한 박물관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런 달라진 모습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전후를 비교하는 사진이 얇은 판에 붙어 로비의 양쪽에 전시돼 있었다.



대우관 로비는 이전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완전히 새롭게 변했다.



광이 나는 엘리베이터 옆에는 새로운 층별 안내문이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지하 2층 상록샘, 동아리실, 학생회실, 복사실... 1층 서경배홀, 강의실, 네트워크실, 경비실... 정작 위치를 알고 싶었던 청소 노동자 휴게실은 보이지가 않았다. 여느 건물과 마찬가지로 지하에 있겠거니 하고 지하 여러층을 살폈지만 도통 찾을 수 없었다. 뵙기로 약속한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와 마음이 급해졌다. 고민은 시간을 늦출 뿐, 경비실의 창문을 열며 어디로 가야할지 여쭤보았다. 안내를 따라 지하 2층으로 내려가자, 방금과 마찬가지로 복도를 가득 매운 사물함들, 동아리 방, 복사실 밖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화장실의 안내 표지판 사이에도 휴게실은 없었다. 두리번 거리던 차에 복도 저 끝에서 조그맣게 말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구석진 곳에 있다니, 이곳을 한번에 찾을 수 있다는건 턱없는 소리다. 노동자 휴게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한 것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대우관은 유독 깊숙이 위치했다. 그렇게 대우관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지하 2층 휴게실 문을 두드렸다.



지하 2층 복도. 휴게실은 저 끝까지 들어가서 왼쪽을 돌아봐야 찾을 수 있다.



네 들어오세요.” 말소리가 들리고 문 앞에 있는 조그만 수납장에 든 신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집에서 신고온 신발을 벗어놓는듯 했다. 그 틈에 우리의 신발도 벗어두고 엉거주춤 인사를 하며 들어갔다. 처음에는 예상보다 넓다고 생각한 휴게실은 노동자 한명한명이 발을 들이고 8명이 모두 자리를 채우자 꽤 비좁아 보였다. 방은 갈색 계열로 가득해 따뜻하고 아늑했다. 난방이 틀어져있어 그리 느꼈나 싶기도 하다. 휴게실은 습기가 잘 차는지 냉장고와 수납장 위로 신문지 여러겹이 쌓여있었다. 수납장에는 냄비, 반찬통, 그릇, 수저 같은 식기가 있었고 가장 아래칸에는 쌀과 대야가 있었다. 식사를 이곳에서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동시에 밖으로 통하는 작은 창문 하나로 냄새가 잘 빠질지 의문을 가졌다. 휴게실은 색이 바래고 오래된 것들 투성이었지만, 먼지없이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8명의 대우관 청소 노동자들은 몸을 일으켜 벽 한쪽을 채운 나무 사물함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전화로 방문 일정을 잡아줬던, S씨가 마스크를 사물함에 넣어뒀던 사람들은 다시 쓰자는 말을 하자 각자 마스크를 꺼냈다. 꽤 낡아보이는 8개 사물함에는 하나둘 다른 모양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금이 다 벗겨져가지만 자물쇠를 감싸는 빨간 빛깔은 여전히 선명했다.



S씨는 혈색이 좋고 쾌활해 보였다. 나이를 듣기 전까지는 그가 60대 중반이라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는 노동자들 중 우리를 가장 반갑게 맞이해주고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노동 현장을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짧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그는 결코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되려 계속 우리가 알고싶은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집에서 가져온 옥수수와 떡을 우리에게 나눠주고, 음료수나 차를 마시지 않겠냐고 물었던 기억도 선명히 난다. 인터뷰와 별도로 대우관에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도 그는 강의실이나 강당마다 어떤지를 세세히 알려주었다. 어떤 식으로 청소를 하고 자신은 어느 구역을 맡고있는지를 말해줬고, 그러다 이번 리모델링을 거치며 대우관에 여럿 문제가 생겼다며 한숨 쉬었다. “위에서 자꾸 물이 새서 대리석이 누렇게 착색됐어. 새하얗게 바꾸면 뭐해. 다 착색이 되는데. (리모델링)해서 좋아진건 매일 떼야했던 (공모전·공채) 포스터가 더 안 붙는거 밖에 없어.” 실제로 바닥과 기둥을 가리지않고 빗물이 흐른 길을 따라 착색되었고, 물이 새는걸 막기 위해 노동자들이 깔고 받쳐둔 신문지와 플라스틱 통이 계단과 복도에 여럿 있었다



이곳저곳을 드나드는데, 어쩌다 한번씩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이야기는 휴게실 대화에서 마저 엿들을 수 있었다. 대우관은 작년 겨울방학부터 비대면 강의가 이루어진 상반기에 걸쳐 리모델링 공사를 하였다. 코로나도 코로나인데, 대우관 공사를 하면서 업무에도 바뀐게 많았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를 가만히 안 놔두는 거에요. 소장님이 계속 총무과의 지시다 무슨 지시다 해가지고 맨날 문자가 와요.” 비대면 강의에 이어서 방학을 맞이해 학생들이 없으니, 치울 쓰레기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지난 수년간 하지 않던 영역까지 청소하게 된 것이다. 대우관에 있는 4개의 계단은 꼭대기층부터 지하주차장의 것까지 신주 하나 하나를 다 닦아내는 것처럼 꼼꼼히 청소했야만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위에서 더 깨끗하게 하라는 지적이 들어오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줄어든 김에 대규모 청소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 청소를 하던 영역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또 교수들과 교직원은 계속해 출퇴근을 하니 사람이 아예 없다는 것도 틀린 소리였다. 또 다른 청소노동자 H씨의 말처럼 청소라는 게 사람이 없다고 먼지가 안 쌓이는 게 아닌법이니,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양의 일을 하게 된 셈이었다.

 

그런 와중에 공사 기간에 대우관 청소 노동자들은 다른 건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대우관) 식구들끼리 1/N로 나눠 광복관, 빌링슬리관, 유억겸 기념관, 별관 이런 데 다 나눠나가 일을 한 것이었다. 그때 평소와는 다른 장소에서 일을 하던게 어땠느냐 묻자, S씨는 남의 집살이가 서러워요. 그래도 우리 식구끼리 있어야 좋지 남의 집 가면 그렇잖아요. 다 어설프고 눈치도 보이고라며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광복관으로 일을 나갔다. 그곳의 휴게실은 조그마했는데, 원래는 셋이 쓰는 곳에 자기까지 들어가 앉아 있어야해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봄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 입고 온 기다란 코트를 휴게실 옷걸이에 걸어뒀는데 광복관의 한 청소 노동자가 왜 이리 기냐며 손으로 툭툭 쳤다고. 박정한 대우에 속상했지만, 큰맘 먹고 그들에게 무어라 말한들 공사가 끝나는대로 그는 광복관을 떠나기에 부질없는 일일 터였다. S씨는 대우관 식구끼리 있을 때에 비하면 마음이 너무 불편해, 그렇게 광복관에서 일을 할때에도 점심은 시간이 되는 식구들끼리 모여 식사했다.

 

그가 말을 이어 가는 차에, 옆에 앉은 H씨는 일을 수십년 했는데도 파견을 나가보니 일터의 분위기가 희한하고 생소했다고 이야기했다. 거기에 J씨가 말을 거들었다. 그는 한마디로 텃세 비슷하게 그런게 있었어. 그 건물도 달라지고, 인간관계도 달라지고, 노조가 다르다 보니까 그런 게 생기는 것 같다고 자신이 겪었던 바를 이어 부연했다. 대우관 청소 노동자들은 모두 민주노총[각주:1] 소속이다. 대우관 리모델링 기간 동안 파견나갔던 건물들은 모두 한국노총[각주:2] 소속 조합원들이 담당하는 구역이었으니 미묘하게 생소한분위기 속에서 일하게 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 사이에서 노동조합이 다르다는건, 일터와 작업을 떠나서 몸담은 공동체와 함께하는 일상 상당부분이 겹치지 않는다는걸 의미한다. 그러다보니 서로를 꽤 다르다 여기고 거의 소통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H씨는 파견을 나가 한 일은 그렇게 고되지 않았는데, 몸과 달리 마음이 괴롭고 힘이 들어 일과 중에도 식구들 얼굴이 보고싶었다고 말했다. “김치 한쪽을 먹더라도 (함께 먹어야) 편했으니까모였던 이들은 서로를 따뜻한 식구로 여겼다.



신설된 야외테라스 아래로 물이 새어 계단은 흥건히 젖어있었다.



학교는 대우관 리모델링을 여러 공사 업체에 구역을 나누어 맡겼다. 그러자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현장을 뒷정리해야 될 시점이 다가오자 업체들은 각자의 구역 경계가 모호해 치울 수 없다고 말하며 정리는 뒷전으로 미뤘다. 리모델링이 얼추 마무리되던 3월 초, 대우관에 모인 청소 노동자 8명은 공사로 안이 엉망진창이 된 광경을 보았다. 청소 노동자들이 책임을 물을 때마다, 공사업체들은 저쪽 업체에 물어볼 일이라고 답하며 책임을 전가하다 완전히 발을 빼버렸다. 정리 비용까지 학교가 업체에 지불했는데, 거기까지 책임을 지지 않고 일터를 떠난 건 H씨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공사 잔해와 쓰레기로 가득했던 곳은 여덟 명이 모여 겨우 치웠다. 너저분한 바닥을 치우고나서도 한참을 닦아내야만 했다. 몹시 지저분했던 현장을 치우는게 당시에 얼마나 고된 일이었던지, 이들 중 여럿이 그때를 이야기하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익숙한 일이었다면 쉬이 했을만도 하나, 교수와 학생들이 쓰는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해주는 평소의 일과 대규모 공사 현장을 뒷정리하는 일은 많이 달랐다. 대우관의 화려한 변신 뒤로는 이들이 그렇게 흘린 땀이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올 여름 길고 길었던 장마가 쏟아지고 공사를 막 마친 대우관 곳곳에서는 물이 새기 시작했다. 새로 만들어진 야외 테라스를 통해 아래층으로 물이 새 물길따라 누렇게 변한 대리석 계단이 보였다. 나무와 풀이 자라나는 공간을 만들 요량이라면, 화분의 물받침처럼 그 아래로 빠져나갈 물길을 제대로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는지 물이 그 아래로 새나가 벽면과 기둥 곳곳이 누렇게 착색되었고, 천장 아래로는 물을 받기 위해 플라스틱 통 서너개를 놓아야만 했다. 잘못된건 리모델링 공사였지만 바빠진건 청소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자 몇은 입을 모아 오늘 여기 앞에 들여다봤지만 (새로 리모델링한 실내가) 훤하기만 하지 바닥은 다 타일인지 싸구련지 해서 물만 묻으면 속이 시꺼멓게 썩어 들어가.”라 말했다. “아픈데 안 고치고 화장만 하려는 꼴이라던 H씨의 비유가 들어맞는 듯했다.



누렇게 물든 자국은 어떤 세제를 써봐도 깨끗하게 지울 수가 없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휴게실에 하나 있는 창문 너머로 잠시 멎었던 비가 다시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닫아 잠그며 별관 가는 쪽은 얼마나 물이 새던지 타일이 전부 다 썩게 생겼다고, 해당 영역의 청소를 담당하는 I씨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여기서 가장 늦게 대우관에 들어온 노동자였다. 계단까지 물이 스며들어 깔아둔 신문지를 발로 밟으니 찌걱찌걱거릴 정도이고, 그 때문에 걸레를 자주 짜러 가야만 해서 맡고 있는 다른 곳을 청소할 수 없을 정도라며 장마가 끝날 때까지 그 곳에 가서 살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청소 위주로 돌아가던 동선이, 리모델링 이후에는 물샘을 막기위해 요란하게 변한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끼리 그럼 가서 살지 뭐가 걱정이느냐.”며 농담을 주고받던 것도 잠시, 이들은 물새는 모양새가 어떻냐고, 팀장에게 말은 해보았냐며 걱정어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이들은 물이 위쪽 창문으로 새지않고 아래 카페트 바닥으로 물이 스며드는 것으로 보아서는 방수 마감처리가 부실하게 된게 분명하다며 웅성거렸다. 조용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던 이곳이, 그 아래로는 곯아 들어가고 있었다. 물이 새는 곳이 더 이상 착색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닦아주고 신문지를 갈아줘야 하는데, 이 작업을 매일같이 청소하는 일과와 병행하는게 얼마나 힘든지는 이들의 한숨섞인 토로만 들어봐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대우관 공사비용은, 대우관 팀장님의 이야기로는 100억 조금 덜 되게, 80억이 들어갔다고 한다. 여기에 쓰레기와 부실공사 뒷처리를 위한 인건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타일이 전부 썩어들어간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대우관은 지하로 3, 지상으로는 6층의 건물이다. 드넓은 강의동을 8명의 청소 노동자가 나누어 한명이 약 80여평을 맡아 청소한다. 두 달마다 구역을 돌아가며 청소하는 학생회관과는 달리, 이곳 대우관 청소는 한 사람이 한 층을 책임지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개인은 임의로 한 층을 맡지 않고, 정년이 되어 퇴사한 노동자가 맡았던 층을 새로 입사한 자가 이어서 도맡는다. S씨는 지하 1·2층 일자리가 비어있을 때 입사해 줄곧 그 두 개의 층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 지하 1층은 청소해야할 면적이 너무 넓어 다른 노동자들이 셋, 넷씩 더 붙어 청소를 해야한다. 각 층마다 평수가 다르고, 시설물도 다르고, 쓰는 사람들도 제각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노동을 조금 더 하는 사람이 있고 그보다 덜 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서로 일하는 양과 시간을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서, 이들은 일이 보다 수월한 층을 담당하는 사람은 일이 많은 층을 좀더 돕기로 했다. K씨는 이번에 리모델링을 하면서 테라스도 생겨서 이 언니가 일이 너무 많아졌다며 그에게 애틋한 시선을 보냈다. 청소 구역을 나누는 방식을 이야기를 하다가, 대우관은 왜 돌아가며 자리를 맡지 않는지 묻자 S씨는 대답으로 화합을 얘기했다. “각 층마다 특성이 있어 각자 오래 한층을 맡고 서로 조금씩 도우며 일하면 화합이 절로 생겨요. 제 생각에는 그래요.” 그래도 모두에게는 돌아가며 일하는게 합리적이지 않나하는 의문이 떠오르는 순간, S씨가 이어 말했다. “(내가 맡는 층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어요. 내 얼굴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 자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무를 다하게 돼요.” 내가 맡은 자리만큼은 보기 좋게 만들어야겠다는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그 말이 맞다며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여기서 일이 왜 이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잠시 벗어나, 어쩌면 학교의 주인은 매일같이 자기구역을 아끼는 마음으로 닦아내는 이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S씨는 어찌 됐든 잘 지내는 게 최고죠, (다같이) 화합해서 잘 지내는 게. 나를 위해서 상대를 위해서 조금 배려하면 된다라 얘기했다. 식구끼리 조화롭게 뭉쳐지내는 순간이 이들에게는 고단한 노동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확연한 행복감이자 일종의 목표로 다가오는 듯했다.



선반에 라면, 쌀, 그릇, 식기, 냄비가 정돈돼있다. 이들은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반찬거리를 모아 점심식사를 한다.



이런 저런 말들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벽에 걸린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우관 청소 노동자들은 새벽 6시에 출근하는게 원칙이지만, 학생들과 교수, 교직원이 대우관에 오기 전까지 마쳐야하는 일이 적지않아 다들 그보다 한두시간은 이르게 와 일과를 시작한다. 대우관의 그 거대한 면적을 단 8명이서 9시간 안에 제대로 청소한다는건 턱도 없는 일이다. “나의 층을 청소하다 보통 12시부터 점심시간을 맞이한다. 식사할 시간이 다 되어가니 슬슬 인사를 드리고 일어나려는 그때, S씨가 팔을 붙잡았다. “() 있다가 가요. 같이 냉면 비벼 먹으려고 더 사다놨어요. 안 바쁘죠?” 일부러 재료도 더 챙겨 왔다는 말에 놀랐는데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움직인다. “언니 오이 좀 씻자.” “겨란은 내 가방에 있어. 아침에 쪄왔어.” “잘했어. 면은 몇 개 삶을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S씨가 삶아온 계란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 옆에서 A씨는 대우관의 요리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주방에서 사람들에게 전두지휘를 내리며 식사를 준비했다. A씨는 요리를 잘하는 편인데, 특히 찌개와 국을 맛있게 잘 끓인다.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씩 특기와 그에 맞는 별명이 있었다. B씨는 말을 재치있게 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니 개그맨”, I씨는 얼굴이 곱고 정성스레 옷을 갖춰 입으니 미모 담당”, C씨는 여기서 일 잘하기로는 1등이다. K씨는 여럿 사람들을 알뜰살뜰 잘 챙겨서 엄마”, 나머지는 그의 딸이다. 식구를 유쾌히 훑고는 한바탕 웃더니, B씨가 K씨 더러 엄마씨, 엄마씨농담 어조로 불렀다. 그럼 S씨는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있냐 물으니, “나는 아빠. 투쟁할 때도 앞에서 목소리 제일 크게 하고 밖에다가 말도 많이 하고 그러니까 아빠.”



담소를 나누며 먹은 비빔냉면은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난다.



냉면에 후식으로 사과까지 먹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복작했던 대우관 휴게실서 나왔다. 발걸음을 뒤로 하며, 조심히 잘 가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한명 한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짧았던 만남의 시간 속에서 각자가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을 되새겨본다. 성격도, 말투도, 잘하는 것도, 자신있어 하는 것도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나와 당신이 다르듯, 이들 역시 한명 한명 다를지언데 대우관 청소노동자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어버릴 수는 없다. 오늘 미처 묻지 못한 질문과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다닌다. 다음번 대우관을 찾을 때는 각자의 취미가 무언지, 어떤 젊은 시절을 보냈는지,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지, 일은 어떻게 하고,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는지 물어봐야지. 처음 대우관을 들어올 때 눈에 든 광활한 로비가, 커다란 유리 대문이 새삼 다르게 보인다. 손가락 자국 하나 없는 이 깨끗한 형상 뒤에는 숱한 걸레질과 짙은 땀이 있겠지.

 

멈춰있는 학교에 학생은 없어도, 이들이 있다. 조리한 냉면을 나눠먹고, 일은 나누어 돕는 식구가 있다. 엄마, 아빠, 개그맨, 요리사그 누구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해준 말이 있다. 이곳에서 다같이 함께 일하는 낙에 행복하다고, “우리 관은 여덟이서 다 같이 마음이 맞으니까 그게 제일 편하고 좋다.”. 그중에는 대우관에 잠시 파견 근무를 왔다가, 화목한 분위기가 좋아 회사에 근무지를 바꾸어 달라고 직접 요청해 그길로 이곳에 쭉 머무르며 일하는 사람도 있다. 그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고 큰 힘이 되어주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때로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대우관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떨쳐내, 그렇게 노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해야 하는 고단한 노동을 버텨낸다. 오늘도, 내일도.



글 편집위원 연자 (candella96@naver.com), 편집위원 희 (woddlwodl2@naver.com)



해당 글은 제2회 상생연대 대학 동아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준말 [본문으로]
  2.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준말. 교내 청소 노동자는 대부분 민주노총 혹은 한국노총에 소속돼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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