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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로 바위 치기

- 교내 청소노동자와 함께 겨울을 난 기록

 

 

알록달록한 백양로의 기억


    , 가을이 되면 교정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 (저요~) 주접 조금 덧붙이자면, 원체 아름다운 교정이지만, , 가을의 학교는 특히 아름답다. 목련, 벚나무와 더불어 봄에는 파랗게,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백양로의 나무들은 주말에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아마 지난 2학기에 백양로를 따라 걷다 멈춰, 중도 앞 분수대 언저리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보자. 기억이 새록새록 나지 않는가? 백양로 나무 곳곳에 걸려 있던 새빨간 현수막, 검게 휘갈긴 글씨를 피해 사진을 찍었던 흐릿한 기억이. 중도 앞, 백양누리 지하 스타벅스 앞, 강의동 복도에서 코비 어쩌고, 청소노동 어쩌고하는 대자보를 보았던, 그 찰나의 기억이.


학관 앞에 걸려있던 현수막백양로 나무에 걸려있던 현수막



   '부당노동 행위 일삼는 코비는 연세대 일할 자격 없다! 도대체 평화로워 보이기만 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인지... 우선, 그 전에 코비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연세대학교는 고용주가 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맺는 직접 고용이 아니라, 복수의 용역업체를 통해 교내 청소노동자를 간접 고용해왔다. ‘코비컴퍼니(이하 코비)’는 그중 하나의 하청업체로, 2019년 기준 경영관, 백양누리, IBS, 4공학관의 청소 용역을 맡았다. 여기까지는 여느 대학의 여느 청소용역업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고, 과연 정말 이유 없이 코비가 백양로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을까?

 


조선 시대에 탐관오리가 백성들 착취하는 것도 아니고···”

: 노동시간 토막 내기, 업무 과중, 비인간적인 대우, 감시와 통제, 부당업무지시, 인원미충원


    대다수의 청소용역업체와 가장 차이가 나는 점은 코비 소속의 청소노동자들 대다수가 기존의 8시간의 전일제 노동이 아닌, 3~4시간으로 쪼개진 시간제 노동을 하였다는 부분이다.[각주:1] 코비는 단시간 내 최소한의 인원으로 청소가 이루어지게 함과 동시에 노동자들에게 식대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노동자들을 크게 오전 근무조와 오후 근무조로 나눴고, 구체적으로 이들의 노동시간을 7시부터 11, 13시부터 16, 16시부터 20시로 쪼갰다. 기존 전일제 노동환경과 비교했을 때, 출퇴근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3~4시간의 근로시간은 일을 하러 나서기도 애매하다. 이와 같은 코비의 업무시간 쪼개기는 같은 공간을 더 적은 시간 동안 청소하게 만듦으로써 업무 과중의 문제를 야기한다. 결국 노동자에게 고작 3~4시간 동안 하루 치 업무량을 부과하는 셈이다. ‘아코디언의 두 번째 기사에 실린 제4공학관 청소노동자분들의 말씀을 그대로 따오자면, “어떻게 이걸 4시간 만에 치우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쉴 짬도 없이 일하도록한다.[각주:2]


혹시 ‘아코디언’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알려주는 게 인지상정! (난 야옹이다 냐옹!)... 이지만 조금만 궁금증을 참고 글을 마저 읽어주시라!


    코비 소속 노동자들의 근무 형태가 기존 업체의 형태와 다르다는 점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졌다.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긴 하지만, 일하는 당사자조차 고용 형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어 코비 소속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하 노조) 가입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어려움을 딛고 20197월 노조를 설립하자, 코비는 노조 설립에 동참한 괘씸한노동자들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노조 가입이 합법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학교 외부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노동강도가 높은 백양누리는 상황이 특히 더 심각했다. 담당 업무영역 밖인 백양누리 파리바게트 간판 청소 등 부당한 업무 지시가 내려왔다. 한 노동자께서는 오후 조 반장이 주도해서 (청소노동자분들이) 노조 가입을 하게 됐는데, 사람들이 노조 가입하고 나니까 코비 사장이 건물들 반장을 모아 놓고 무릎을 꿇게만든 적도 있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뿐만 아니라 코비 사장은 젊은 남성 6명으로 구성된 업무 지원반을 꾸려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일을 잘하는지 사진을 찍어 보낼 것을 지시했다. 실제로 (업무 지원반을 가장한) ‘감시단들은 노동자들을 쫓아다니며 근로시간과 쉬는시간을 틈틈이 쟀다. 1분이라도 지나면 반복적으로 시간 경과를 알려주며 심리적인 압박을 가했고, 커피라도 마시려 하면 커피 마실 시간이 어딨느냐며 눈치를 줬다. “조선 시대에 탐관오리가 백성들 착취하는 것도 아니고[각주:3]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악하게 통제하는 일들이 연세대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코비의 모든 갑질 행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는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혹시 크리스마스 시즌, 빨간 산타 모자를 쓴 청소노동자의 귀여운모습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코비는 성탄절이 있는 12월 내내 노동자들에게 산타 모자를 쓰게 강요했다. 고개를 숙이고 일을 하면 딱 맞지 않는 모자가 불편하기도 하고, 청소하다 보면 땀이 나 모자가 흘러내리기 쉬워 핀으로 고정을 하는 수고가 뒤따른다. 심지어 한 조합원분은 2017년도에 잠시 모자를 벗고 청소를 했다는 이유로 학생들도 드나드는 강의실 내부에서 사장한테 꿀밤을 맞았다고 토로했다. 인권과 관련한 논란이 일자, 코비는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한 이벤트였다고, 학교 측도 이를 알고 승인했다고 해명했다. 뒤늦게 노동자의 개인적인 불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노동자들은 언제 다시 그와 같은 지시가 내려올지 모른다며 불안해했다. 놀랍게도 2018년도까지 이어진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코비가 교내 청소노동자를 사람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품정도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멀쩡해 보이는 포장지를 벗겨놓고 보니, 코비컴퍼니는 부당노동행위로 가득한 벌칙선물과도 같았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 이외에도 월차, 연차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점, 공휴일에도 무임금으로 학교에 나와 청소하게 한 점, 유해한 성분의 청소제품을 교체해주지 않은 점, 유독가스가 나오는 폐기물 창고를 휴게 공간으로 쓰게 한 점, 안전장비를 제공하지 않고 정화조 청소를 지시한 점, 정년퇴직으로 빈 인력을 보충해주지 않은 점 등, 온갖 문제로 똘똘 뭉친 야무진 코비 종합세트. 바로 지난 가을과 겨울 내 나무 곳곳을 수놓은 빨간 현수막이, 검게 휘갈겨 쓴 코비 퇴출의 아우성이 백양로에 가득하던 이유다.

 


사실 유쾌한 승리의 역사가 존재했었다!


    처음 코비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을 때, 코비의 만행 그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그들이 교내에서 버젓이 활개치는 동안에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충격도 그에 못지않았다. 내가 매일같이 가던 스타벅스 앞 백양누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음은, 다시 말해, 학생인 나와 청소노동자의 거리가 굉장히 멀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지금은 청소노동자와 학생이 서로를 낯설게 느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실 처음부터 이런 데면데면한 관계가 자연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여기, 연세대학교에서도 노학연대가 꽤 끈끈하게 유지되던 때가 있었다. 노동자를 계몽하고 조직화하며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국가권력과 자본가를 대상으로 투쟁하고자 했던 7, 80년대의 노학연대[각주:4]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생략하고, 노동이 살맛나는 세상을 꿈꿨던 2007, 2008년도의 이야기부터 해보고자 한다.

 

    10년 전 즈음에도 연세대학교는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의 방식으로 청소·경비노동자들을 고용하였다. 시설 관리와 미화업무를 맡는 노동자, 용역업체인 고용사업주,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학교인 사용사업주는 삼자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다면적 관계는 임금, 노동시간과 같은 차원에서의 근로조건 악화, 노동조합 등 단체교섭에 대한 구조적 제약, 열악한 노동자 대우와 같은 문제들을 내포하게 된다. 2007(에도) 교내 청소노동자에게 구조적 폭력과 억압이 가해졌고, 이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노동이 평등한 세상, 노동이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는 학생모임:살맛을 조직했다. ‘살맛은 정년축소와 부당노동행위 등에 반대하는 본관 점거 농성 현장에 함께했고, 체불임금을 받아내려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며 조금씩 승리를 쟁취해나갔다. 결국, 학생과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학내를 넘어 고용노동부에까지 전해져 체불임금 35천만 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단순히 투쟁 상황에서의 연대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글을 모르는 분들을 위한 한글 교실과 컴퓨터를 어려워하는 분들을 위한 컴퓨터 교실이 열렸다. 삼삼오오 모여 날씨 좋은 날에는 다 같이 야유회를 떠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김치를 담그는 등 일상의 가벼운 것들도 함께했다. 최저임금의 벽을 깬 연합투쟁이 끝난 날에는,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고기를 함께 준비해 노천극장에서 자축 파티를 벌였는데 당시 파티에 놀러 온 학생들이 100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분회사무실 한 귀퉁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한 이들의 사진이 여전히 선명한 빛을 띤 채 붙어 있고, 대동제 때 연세대학교 분회의 이름으로 주점 부스를 열어 왁자지껄 부쳐댔던 전들이 인기 만점이었더라는 이야기가 종종 회자 된다. 조합원들이 깔깔대며 전 부치던 이야기를 하면, 2016년 송도 대동제 때 분회 부스에서 겉바속촉의 전들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 어김없이 침을 꼴깍이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그때의 이야기들이 궁금하다면 살맛의 학생들이 직접 연대의 순간들을 엮어낸 책, 빗자루는 알고 있다[각주:5]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말을 살포시 덧붙인다.



    아무튼, 연세대학교 내의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함을 느꼈던 학생들은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2008비정규직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이하 공대위)’를 조직했고, 크고 작은 노동권 투쟁에 힘을 보탰다. 특히 2015년에는 공대위를 포함한 학생들 160여 명이, 송도캠퍼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인원 감축, 임금 삭감, 전환배치와 같은 실질적 해고에 문제의식을 느껴 기숙사노동권수비대를 결성했다. 이들은 천막을 치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믿기지 않는 숫자이지만, 사실이었다. 공일오비 3호의 <바람개비 돌던 교정을 위하여> 글에 그 기록이 생생히 담겨있으니 말이다. 80년대만큼 끈끈하지 않았어도 노동자와 학생이 서로를 나와 상관없는 타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가득하지는 않았다.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으로서 노동자와 학생은, 지금은 당연해진 근로 기준들을 쟁취한 동지였다.



그럼에도 노학연대는 현재진행형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아주 먼 옛날의 전설처럼 아득하다. 정말 10년 전에는 1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모여 파티를 했을까, 사진이 없다면 믿기 힘든 수준이지 않은가. 교내 노동자와 스쳐 지나가는 타인으로서 관계를 맺는 것은 그만큼 너무 익숙해졌다. 물론, 이런 상황을 개인의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우리와 노동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 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대학의 기업화, 취업난에 여유가 없어진 우리의 일상, 활동의 중심이 됐던 학생사회의 붕괴 등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공공운수노조 연세대학교 분회장님은 분명 공대위의 분위기, 학생들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다고 한다. 20201학기 공대위가 꾸려지기 이전의 몇 년은 학생들의 참여와 관심도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교내 청소경비 노동자를 타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보편적으로 변하자 눈에 띄는 변화들이 생겼다. 학교에서 서로 마주쳐도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은 없어졌고,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노동권 투쟁이 불편해진 학생들이 점차 많아졌다. 작년 2월 서울대학교에서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도서관 난방 중단 투쟁을 이어나갈 때,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서울대학교에는 온기가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냈다. 따뜻하게 공부를 해야 하니 도서관을 파업 범위에서 제외해달라는 내용이었다.[각주:6]


숙명여대 노동자와 연대하는 만 명의 눈송이, 만년설홍익대학교 노동자와 학생들이 함께하는 모닥불


    하지, 정말 이러한 관계만이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 수가 과거에 비해 적어졌다고 하지만, 어떤 온기를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는 학생들도 분명 존재한다. 일각에서 서울대학교의 도서관 난방 중단 투쟁을 응급실 폐쇄에 비유하며 학생들을 인질로 삼아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비난을 퍼부을 때, 또 다른 학생들은 먹을 것을 사들고 기계실을 찾아 파업을 지지하는 마음을 전달했다. , 홍익대학교에서 20년 동안 일했던 경비노동자가 새벽 출근길에 교정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교내에 분향소를 세워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빈자리를 슬퍼하던 이들은 교직원, 교수도 아니었고, 그를 고용하던 학교나 용역업체도 아니었다. 바로 학생들이었다. 홍익대학교의 모닥불’, 숙명여자대학교의 만년설’, 서울대학교의 비정규직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 서강대학교의 맑음 등 교내 노동자의 노동권을 실현하기 위해 연대하는 학생단체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세대학교에서도 노동자와 학생의 녹슨 연결고리에 덕지덕지 용접 자국을 더하며, 관계를 이어가려는 노력들을 찾을 수 있다. 코비의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대우가 도를 넘자, 공일오비를 포함해 문과대학 자치언론 문우, 연세인터넷라디오방송국 엷(YIRB)[각주:7], 연세지의 학내 언론들이 ‘‘직도 반복되는 청소·경비노동자 문제와 비컴퍼니 사태의 해결에 딤돌이 되길 바라는 론 모임(이하 아코디언)’을 조직했다. 201911,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며 아코디언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코비의 만행을 고발하고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직접 노동자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획기사들을 냈다. 또한, 대자보를 작성하고, 학생과 노동자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개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코비사태에 대한 연대 활동을 이어나갔다.



    담회를 진행했던 날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자치도서관의 의자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좌식 테이블에까지 학생들이 모여, 함께 공간을 사용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대위의 도움을 통해 연락이 닿은 청소노동자들과 노조 직원들, 민주노총 상근자까지 총 열한 분이 짬을 내 자치도서관을 방문했다. 교내 청소노동자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부당한 대우와 치졸한 코비의 감시 및 업무방해의 경험을 풀었다. 자세한 내막을 들으며 종종 놀라 탄식을 내뱉고,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기도 하며, 조롱과 꼬투리 잡기식의 업무방해가 이루어진다는 대목에서는 학생과 노동자가 함께 분노를 느끼기도 하며, 그렇게 점심시간 1시간이 흘렀다.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 노동자 몇 분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아요.”, “이렇게 학생분들과 있어서 좋습니다.”, “무심히 지나가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귀를 기울여 주셨구나.” 하는 말씀을 전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어쩐지 그 말씀을 들으니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이후 코비컴퍼니의 계약이 2020년 초에 만료되고 학교를 떠난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코비가 사라져도 시간제 노동의 문제, 인력보충 및 안정적인 고용승계의 문제는 남아있을 테지만 그래도 일단 학교에서 코비가 나간다는 소식에 속으로 기쁨의 댄스를 춰댔다. 다 같이 얻어낸 소소한 승리의 맛을 보니, 더 크고 복잡한 문제들을 하나씩 바꿔나갈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201912, 아코디언의 공일오비와 엷은 2020년에도 공대위에 들어가 연대의 범위를 넓히고, 활동을 지속하기로 했다.


노학연대활동 타임라인!



기댈 언덕의 힘


    공일오비가 공대위에 단위로 참가하기를 결정한 후, 비공식적인 첫 회의가 있던 날이었다. 노천극장 앞 건물에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분회 사무실에서 회의가 진행된다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축제할 때마다 온 노천극장인데 분회 사무실의 도 본 기억이 없어, 한참 동안 길을 헤맸다. 결국, 함께 공대위 활동을 하게 된 친구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친구를 따라 쭈뼛거리며 들어간 분회 사무실은 어딘가 친숙한 노란 장판과 온풍기가 내뿜는 온기로 나를 맞이했다. 공대위 첫 회의는 결의로 가득하다 못해 투쟁 의지가 넘쳐흐를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따뜻하고 발랄한(!) 분위기였다. 지난 공개 간담회 때 인사를 나눴던 분회장님과 부분회장님이 어쩐지 반가웠다. 두 분은 여러 단위에서 학생들이 모여주어 훨씬 북적거리고 분위기가 산다, 들뜬 마음 숨기지 못하고 그날 저녁을 흔쾌히 쏘셨다.


    두 번의 공식 회의를 거치고 여러 번의 저녁 자리를 함께하는 동안, 학교 측에서는 정년퇴직한 교내 경비노동자 13명은 전원 미충원하고, 청소노동자의 경우 정년퇴직한 8명 중 6명의 인원만 보충하겠다는 신년계획을 내놓았다. 청소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건물은 줄지 않고, 임금은 오르지도 않는데, 인원만 줄어드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우리는 빗자루를 쳐들고 백양로에 나가기로 했다. 202019. ‘인원충원, 임금인상 2020년 집단교섭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가 진행되었다.

 

무려 4월에 제작 완료된 비정규 공대위 로고이다!

    

    결의대회 당일, 노동자 400여 분과 학생들이 모여 학관 앞을 가득 채웠다. 재학생들의 발언 중간중간에는 아이고, 그 학생 맞는 말만 골라 하네!”, “그렇지!”와 같은 조합원들의 맞장구가 기분 좋게 끼어들었다. 구호 제창, 조합원들의 발언 시간 등으로 채워진 집회 일정표에서 특히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노래 안동역에서를 개사한 총장실에서를 배워보는 시간이었다. 이내 어딘가 익숙한 뽕짝 반주가 쿵짝쿵짝 울려 퍼졌다. (자칭) 꺾기의 달인인 조합원이 선창하면 몇백 명의 사람들이 열심히 따라부르는 식이었다.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대답 없는 총장님~ 안타까운 우리 마음 녹는다~ 투쟁 소리 울려진 밤에~사뭇 진지하고 딱딱한 시간일 것이라 생각하고 집회에 나간 나로서는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송해 아저씨만 안 계셨을 뿐이지, 전국노래자랑을 방불케 하는 흥겨움에 몇 조합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들썩들썩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또 다른 이들은 꽹과리와 북을 들쳐 맸다.

 

    이 여세를 몰아 학생들과 조합원들은 총장실로, 다시 백양로를 돌아 총무팀 사무실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이때 행진의 선두에 선 5인의 조합원, 1인의 학생의 손에는 빗자루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각각에 종이가 하나씩 붙어 있길래 뭐지 싶어 보니 인원감축반대의 한 글자씩이었다. (나는 그 중 무려 를 맡았다! 크크) 기사 사진을 위한 카메라가 눈에 들어오면, 예쁘게 잘 찍어달라는 우스갯소리도 자연스레 나오는 시끌벅적함이 백양로에 가득 찼다.



(※ 술 마신 상태 아닙니다)'대'를 찾아보세요.. 킄킄



    해산할 시간이 다가오자, 조합원 몇 분이 자리를 함께하던 학생들에게 슬쩍 오셨다. 함께 목소리를 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빗자루를 들고 학교를 한 바퀴 행진하며 느낀 것은, 교내 노동권 투쟁에서 학생들이 실질적인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분회장님이 교직원들에게 이게 학생들도 원하는 바라며 당당하게 발언하신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실제로 학교 총무팀에서도 학생들이 함께하는 것을 의식하는 듯했다. 집회에 학생들이 있으면, 지금까지 학교가 책임을 회피하며 앞세웠던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면 등록금이 오르기 때문에 학생들이 싫어한다는 논리가 힘을 잃기 때문이다. 학교 안의 내 생활반경에 청소노동자의 비질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나의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교내 노동자에게 내가 기댈 언덕이 될 수 있다는 것. 확실히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빗자루로 바위 치기


    학교는 노동자 없이 존재해왔던 적 없다. 쾌적한 시설, 안전한 강의동, 청결한 교실, 빛이 나는 복도와 계절에 따라 달리 아름다운 교정은 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이들이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엮임으로써 잘 굴러갈 수 있다. “하나의 덩어리로서 서로 연결되는 것[각주:8], 연대. 다수의 사회운동이 그러하듯 교내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성공과 지속 역시 이 연대에 있다. 누군가는 이미 많이 끊긴 노학연대의 움직임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했을지라도, 특히 교내 노동문제의 경우 학생의 목소리가 실린 외침이 실제로 훨씬 힘있게 울려 퍼진다는 점에서 노동자와 학생 간 연대의 필요성과 의의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랬을 때 지금의 노학연대는 어떤 문제를 맞닥뜨리고 있는지 진단하고, 앞으로의 관계성을 새롭고 유연하게 상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촘촘한 연대까지는 무리더라도, ‘느슨한 연대부터 시작하는 것이 지금 현실적으로 가능한 연대의 모습이 아닐까.

 

    지난 겨울, 학교 내외에서 목소리를 내며 같이 투쟁함과 동시에 우리는 영화도 보고, 책도 같이 읽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저녁을 먹을 때는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지금까지 이 글에 숱하게 등장한 투쟁의 단어가 어렵고 무섭고 딱딱하게 다가오는가. 여전히 기본적인 노조 가입 권리가 억압받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쟁취하려면 과격해질 수밖에 없는 투쟁이 분명 존재할 테다. 첨탑 위에 올라가야, 출퇴근 시간 도로 위를 막아서야, 시끄럽게 외쳐대야, 천막을 치고 들어서야, 머리를 깎고 웃통을 벗어야 기울어진 무언가가 문제적이라 여겨지고, 그제야 보이는 그늘이 있고 들리는 목소리가 있고 바뀌는 것들이 있으니. 그러나 때로는 집회에 웃음꽃이 피고 결연한 구호 사이에 뽕짝 노래가 끼어들 듯, 모든 운동의 매 순간이 묵직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빗자루는 알고있다의 문장을 인용하며, “누군가의 입장에 서보는 것역시 운동일 수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2008년의 모습처럼 100명의 학생이 모여 노동자와 밥을 먹는 상상이 아주 쉽게 그려진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유쾌한 공대위의 순간들만 담았지만 때로는 여력을 잠시 잃고 주춤하기도 하고, 고민이 많아 어려운 순간도 있다. 하지만 분명 지난 겨울은 포근했던 기온만큼 그리 춥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뚜렷하게는 아니지만, 우리 함께 할 봄과 여름의 나날이 어렴풋하게 손끝에 잡히는 듯하다. 계란처럼 바위보다 힘없는 무언가가 바위를 치는 것은 무의미할까. 그래도 빗자루는 계란보다는 단단하니까, 강철로 만든 빗자루도 있으니까, 나 혼자 들고 있던 빗자루가 우리가 함께 드는 빗자루가 될 때 빗자루로 바위 치기는 언젠가 빗자루로 바위 깨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편집위원 연자 (candella96@naver.com)



  1. “[아코디언 기획기사1] 백양로의 빨간 현수막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이해일, 연세지, 2019.11.08, https://brunch.co.kr/@yonseiji/26 [본문으로]
  2. “[아코디언 기획기사2]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청소노동자들이 직접 들려드립니다”, 문우편집위원회, 문우, 2019.11.11, https://m.blog.naver.com/yonmunu/221704888597 [본문으로]
  3. 위의 글 [본문으로]
  4. “학생.노동자, 다시 손 잡다...대학가 잇단 노학연대 눈길”, 뉴시스, 2019.06.09,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607_0000674780&cID=10201&pID=10200 [본문으로]
  5. 김세현, 오수빈, 용락, 2012, 『빗자루는 알고 있다』, 실천문학사 [본문으로]
  6. “서울대 노조 파업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인질'로 잡았나”, 경향신문, 2019.02.1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131651001 [본문으로]
  7. 엷은 간담회가 진행된 이후 아코디언에 합류했다. [본문으로]
  8. “연대”, 『표준국어대사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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