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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대학에 들어왔다

연희관공일오비 2018. 4. 30. 23:01

 대학에 들어왔다. 그러나 대학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학점을 딴다. 1학년 때는 조금 놀다가 2학년 때부터 동아리, 공모전, 어학공부를 한다. 그러다가 학교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온다. 그러면 대학이 얼마 안 남아있다. 4년이라는 시간이 긴 듯 짧다. 졸업을 목전에 두고 남은 시간은 취업과 고시 준비 혹은 대학원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시간이다. 마냥 사회에 던져지는 게 두려워서 100만원짜리 체육수업을 듣는 일도 생기지만 일단 졸업을 미루고 본다. 그렇게 해서 기대하는 것은 돈을 벌 수 있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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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각 개인은 인간으로서 개별적 의지를 갖고 있지만, 이는 그가 시민으로서 갖고 있는 보편적 의지와는 상반되거나 다른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이익은 공동의 이익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그에게 말할 수 있다.[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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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이 너무 많다. 언뜻 보면 멀쩡해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힘들다. 과외를 하고 근로를 하고 알바를 하면서 학교를 다닌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다. 멀리 떨어져 서울에서 산다는 게, 쉽지 않다. 남들 다 하는 연애를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간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을 보기가 싫어진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태어나기는 했지만 나이만 찬 백수가 되기는 두렵다고 얘기들의 반복. 대학을 다니는 것조차 버거운데 이 긴 터널을 지나 졸업을 하면 무엇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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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이며 태어나면서부터 독립적인 그의 존재는 자신이 공동의 이익에 대해 갖는 의무를 무상의 기여 행위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무상의 기여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들이 입을 수 있는 손실은, 그것을 위해 자신이 치러야 하는 부담보다는 가벼울 것이다.[각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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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다니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다들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사냐는 질문을 꺼내기조차 미안할 만큼. 또 하나는, 다들 은근히 잘 산다는 것이다. 그냥 돈이 많다는 얘기도 되지만 번듯하게 혹은 당당하게 사는 친구들이 많다. 서로 비슷한 듯 다른 처지에서 바쁘게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이들에게 삶의 문제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주변 사람들이 가진 삶의 문제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이유는 문제 자체에 대한 궁금증도 있지만, 이 사람들의 문제가 나의 문제와 얼마나 연관되어 있나 혹은 내가 이 문제들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의 끝에는 문제해결이라는 목표가 있다. 주거문제, 젠더문제, 취업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문제화시킬 때의 전제는, 이것이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해결은 안 하겠다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이다. 여기서, 문제들이 공유되고 해결에 접근하는 과정, 거기에 이것이 문제다라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과정을 정치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렇다면 앞의 인용문을 생각했을 때, 연세대학교 구성원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보편적 의지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존재할까?

△ 루소의 사회 계약론


 루소는 보편적 의지와 결부된 공동의 이익을 얘기한다. 하지만 공동의 이익은 그 자체로 개인의 이익과 거리가 생길 수 있다. 보편적 의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연세인의 보편적인 의지입니다, 라고 설득해야 되는 위치이다. 여기서 빠진 주어는 연세인들이 이뤄야 할 보편적인 의지를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존재일 것이다.

 총학생회가 2년째 부재하게 되었다. 연세대학교가 세워진 지 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구성원들의 대학생으로서의 문제와 보편적 의지를 실현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져 온 기구 중 가장 유효했던 것은 총학생회가 아닐까 싶다. ‘연세대학생이라는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그룹의 이익을 추구해온 단체가 2년째 빈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총학생회라는 기구가 더 학생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도, 보편적 의지를 제시할 수도 없는 시스템임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일까.

 정치는 곧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이다. 학생들에게는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의 문제가 존재한다. 문제 해결에 대한 루소의 시각에 따르면, 연세인은 분명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놓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몇 십 년간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가능성을 보여왔던 기구는 그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보편적 의지를 실현하는 주체에 대한 의문이며 다른 하나는 보편적 의지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이다. 만약 두 번째 질문이 유효하지 않은 질문이라 가정한다면 결국 문제는 실현의 주체이다.

 2018년 연세대 학생들에게 놓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총학생회가 맞는가? 나의 문제, 너의 문제, 나아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올 봄에 있을 보궐 선거의 결과가 이러한 의문에 조금이나마 해답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문제는 계속 있을 것이고 총학생회라는 답이 그 해결의 능사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총학생회만이 아닌 열린 가능성으로 계속 찾아봐야 할 것이다.


글 편집위원 쑤쑤

  1. 장 자크 루소, 김중현 역, 『사회 계약론』, (펭귄 클래식 코리아, 2015), p.50. [본문으로]
  2. 위와 동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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