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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2. 지금의 페미니즘

Q 요즘에는 메갈리아 등이 나오면서 페미니즘으로 엄청 시끌시끌한 것 같아요. 이처럼 치열하게 담론투쟁이 일어나는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죠. 원래는 남성만 말을 했어요. 그래서 덜 시끄러웠는데, 이제는 남녀 둘 다 말하니까 조금 더 시끄러워진 거죠.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우니까 그만하자고 말하는데, 사실 그건 여자가 말하니까 시끄럽다는 거예요. 여자가 하는 말은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럼 지금까지 있었던 여성혐오는 안 시끄러웠나요? 그리고 여성들이 하는 건 혐오가 아니라 분노에요. 때리는 애랑 때리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애랑 다른데, 그 둘을 뭉뚱그려 놓고는 시끄러우니 사이좋게 살자고 하는게 잘못이죠.

그리고 저는 메갈리아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메갈리아는 아무 말이나 막 하잖아요. 전혀 도덕적이지도 않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죠.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은 오히려 그 때문에 편해진 거예요. “메갈리아도 있는데 내가 못할 게 뭐야? 쟤네는 저렇게까지 날뛰는데 난 이 정도도 못하나?” 저는 메갈리아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봐요. 남성을 미러링을 통해 계몽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여성들이 느끼기에 내가 쟤(메갈리아)보단 정제된 언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죠. 이전에는 내가 제일 극단적인 사람이었는데. 더 극단적이 사람들이 있어 주니 저는 부담감이 좀 덜해졌다고 해야 하나(웃음). 저도 공론장에서 말 못하고, 틀리거나 놓친 게 있을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는데 메갈리아가 등장하면서 내려놓게 된 거예요.

Q 한편으로는 시끄러운 와중에도 이야기되는 주제가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성폭력, 성적 대상화, 일상적인 차별 등 피부로 많이 느껴지는 지점들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여성 노동의 주변화라던가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잖아요.

사실 저는 각자가 알아서 하자는 주의에요. 보통 자기 이야기를 하자면 성폭력 등 내가 받아온 부당함을 이야기해요. 일단 자기 이야기를 다 해야 하는데, 사실 그것도 지금까지 잘 안 들어 줬잖아요. 

그리고 각자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다 보니 비로소 좀 더 많은 이야기가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고 봐요. 예전 같으면 전시상황에서의 여성인권 이야기가 찬밥신세였는데, 이제는 그나마 “맞아, 맞아” 하면서 말이 나오죠. 

그래서 사실 지금 당장 어떤 주제에 사람들이 관심 없어 보이면, 힘을 싣고 싶은 쪽에 본인이 힘을 실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여성은 사실 자기가 겪은 피해가 있기 때문에 다른 피해와 연결하려면 금방 연결하거든요. 자기 이야기가 실현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자기 옆의 이야기에도 힘을 실어주는 걸 배우고 있는 단계인 것 같아요. 별 관심 없던 이야기에도 함께 시위도 하고 난리도 치고. 그런 걸 경험하다 보면 다른 일에도 얼마든지 힘을 실어줄 거에요.

Q 말하자면 지금은 토양이 만들어지는 단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누가 무슨 이야기를 시작하면 기를 죽이지 말고 막지 말아야 해요.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린아이의 기를 죽이지 않아야 잘 클 수 있다는 거 모두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여자들은 항상 기를 죽였잖아요.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두면 다른 이야기로도 옮겨 갈 거라고 저는 믿어요. 예전에는 한 마디도 못했지만 이젠 뭐라도 한마디 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저는 제가 책을 낸 게 좋아요. 인간은 참조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디 가서 같은 소리 하는 사람 없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참고할만한 책이 있으니까 각자가 원래 하던 생각들이 힘있게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내놔도 이제는 덜 이상하게 된 거죠.

Q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뭐가 있을까요?

남성이 기득권자라고들 하지만 남성들은 그런 이야기 들으면 열 받아요. 기득권이라고 하면 무언가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어디서 백만 원씩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까요. 기득권이라는 말의 뜻은, 여성과는 달리 남성들이 삶의 과정을 무탈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는 뜻이에요. 여성들이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 토로하는 건 많이 보여 왔잖아요. 그처럼 여성들의 피해는 도드라져 있지만, 남성의 삶에는 그 부분이 없어요. 한번 되물어 보세요. ‘나는 밤길에 자꾸 뒤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외모로 줄 세우기 당해본 적이 있는가?’ ‘임신과 출산이 걱정되어 직장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있는가?’ 이처럼 내가 무엇을 겪지 않아도 되었는지, 혹은 겪을 일이 없는지 거꾸로 생각해보고 그 기억들을 복원하는 게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역할이에요.

제공: 도서출판 봄알람

3. 페미니스트로서의 삶

Q 그동안 개인적으로 하셨던 페미니즘 공부를 하시거나 고민의 과정들도 궁금해요.

일단 저는 2015년도에 총여학생회를 했었어요. 목격자로만 있던 저에게는 처음으로 행위자가 되어보는 경험이었어요. 학생사회의 ‘총여’라는 욕먹는 최전방에서 학내 성폭력이 하루에도 어마어마하게 일어나는 현실을 봤어요. 그리고 학내에서 총여를 보는 부정적 시각도 더 정확히 느끼고, 그게 부당하다는 것도 느꼈어요. 그 전에는 인도에 성교육하러 봉사를 두 달 정도 갔었구요. 2012년에는 김현미 선생님의 성과문화 강의와 사회학 전공 강의를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강의를 들으며 ‘아 이걸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구나!’ 라고 깨달았죠. 그래서 그 이후로 열심히 탐구했어요.

Q 그럼 수업을 듣고 나서 페미니스트가 된 건가요?

언제부터 너는 페미니스트였냐고 물으면, 사실 그건 되게 어릴 때부터예요. 친가에 가면 엄마들을 보통 첫째 자식 이름으로 불렀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만 제 남동생 이름으로 “00 엄마” 라고 부르더라구요. 제 남동생이 장손이라서 그런가 봐요. 물론 사람을 사람 이름으로 불러야겠지만, 이왕 그 룰에서 평등하게 부르려면 민경이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아주 어렸을 때였음에도 ‘이게 뭐지?’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런 경험들이 살면서 계속 쌓여요. 비슷한 상황에서의 비슷한 느낌이라 범주화가 되거든요. 이런 경험들을 통해 페미니스트로서의 준비는 되어있었어요.

Q. 페미니즘 하면서 행복이나 희망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요즘이에요. 우선 책이 많이 팔렸고(웃음). 아마 이 책을 2010년에 냈으면 많이 관심을 못 받았을걸요? 그냥 어느 꼴페미의 비명이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런데 이젠 사람들이 돈을 막 실어주잖아요. 이런 약동하는 시대에 제가 이 나이로 존재하면서 적극적인 행위자로 있을 수 있어서 좋아요.

Q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세대 간 연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10대 페미니스트들을 찾아보려고 해요. 이 밑의 세대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으면 끊어지기 쉬운 게 페미니즘이거든요. 어떻게 찾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입트페를 학교로’라는 프로젝트를 해보려고 해요.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할 계획이에요. 저는 제가 겪은 경험들을 나누는 일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까지가 제 책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눠줬는데 잘못 쓰는 것까지 터치할 수 없겠지만요. 전 되게 개인적이면서도 연대를 생각해요. 연대하고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할 거에요. 책도 쓰고...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어요.

Q 그럼 페미니즘을 하면서 혼란이나 두려움을 느끼던 순간들은 없었나요?

매일 매일 느꼈죠. 어색하잖아요. 불청객 같고, 내가 잘못된 사람 같고. 너 혼자 잘못 알고 있다, 너는 너무 나댄다고 하는 말들을 다 저도 내면화했었고요. 진짜 내가 이상한가 생각도 했었고, 확신을 조금 가졌는데 그걸 바로 밟아버리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이젠 저를 지킬 정도가 되었지만 늘 힘들었죠.

Q 극복 방법은?

동지를 만났어요. 저는 대학에서 참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대학사회가 매우 주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이지만, 한편으론 또 특이한 생태계들이 많고 그걸 만들며 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끼리 잘 살았던 그런 느낌이 있거든요. 동아리와 총여, 과 친구들, 그렇게 생각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과정을 5년 동안 했으니까요.

Q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들이 되게 모순적이기도 하잖아요. 가부장제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이 지향하는 바와 실제 삶이나 생각이 많이 다를 때가 있죠. 남성이라면 더 그럴 것 같고요. 이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나요?

페미니스트라고 하는데 실제로 가부장적인 사람이 있어요. 이미 자신이 충분히 성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난 페미니스트인데 내가 왜 가부장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똑같이 권력을 행사하기 쉬워요. 페미니스트라도 끊임없이 권력에 대해 성찰하고 그걸 멈추면 안 돼요. 저도 당연히 그래야겠죠.  

사실 이런 사람들보다는 자기 안의 모순을 깨닫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에요. 되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우린 모순에 길들었거든요. 성녀이자 창녀이고, 유약하지만 모든 걸 할 수 있고, 임금은 조금 받지만, 더치페이는 하고, 엄마이지만 섹시한 아내고. 쌩얼은 안 되지만 화장 안 한거처럼 예뻐야 하고, 잘 먹지만 날씬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주어진 모순을 계속 경험하는데, 동시에 내가 지향하는 페미니즘과의 모순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모순을 경험하면서 하나씩 벗어나가는 거죠.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해서 한큐에 극복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페미니스트들은 남아있는 모순들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벗어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Q 사실 모순적인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정작 가부장제가 무엇인지 정의내리기는 참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민경 씨는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저도 잘 몰라요.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는 것은 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제 삶에서의 가부장제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설명할 수 있죠. 저에게 가부장제란 여성에게 자리를 주고 거기서 벗어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여기서 벗어나면 매퇘지나 꼴페미가 되는 거죠. 메갈리아 얼굴을 사람들이 돼지로 그려놓거든요? 여자가 아니라는 상징적인 표현이에요. 처음 메갈리아가 미러링을 할 때, 남자들이 그게 여자가 하는 거라고 생각을 못 했대요. 여자는 그런 격한 말을 못 한다고 생각한 거죠. 여성은 그렇게 딱 정해진 모습일 때만 인정받아요. 앞서 말했던 모순들을 모두 수행하면서도 젊은, 가임기의 여성. 그 틀을 못 벗어나게 하는 게 가부장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끊임없이 틀을 벗어나는 사람이고(웃음)

그런데 여성은 그 자리를 결국엔 벗어나게끔 설계가 되어있어요.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밀려나죠. 여성이 아주 철저히 가사를 해도 맞을 일은 생겨요. 여자가 아이를 낳고 몸매관리를 처녀처럼 하면서 아이를 돌보고, 또 돈을 나가서 벌어오며 가사를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흠 잡힐 데가 무조건 생기거든요. 그래서 매 맞는 아내가 한때 2분의 1이나 넘었던 거고. 한국 여성의전화 활동가들이 데이터베이스가 없어서 신문에 난 자료들만 수기로 모아서 통계를 냈는데도 말이에요. 

그러니 여성은 생사여탈권이 남성에게 있어요. 여기에는 비난도 포함되죠. 여성이 조심한다고 안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 언젠가 벗어나도록 설계가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페미니스트들은 벗어나고, 아닌 사람은 안 벗어나는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이 벗어나게 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점이 있다면, 페미니스트들은 제 발로 벗어나는 것뿐이에요. 그게 좀 더 해방감이 있겠죠. 

페미니즘을 몰랐으면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행복하면서도 그만큼 보이는 게 있으니 화나는 순간들도 많잖아요. 그런데 페미니스트가 되든 안 되는 여성이 자리를 벗어나는 건 똑같아요. 하지만 이건 가정 내로 여성이 사라진 뒤의 이야기라서 잘 몰라요. 대학에서야 개념녀가 안전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녀가 가정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아무도 모르거든요. 그렇다고 여자가 결혼을 안 하면 또 그것대로 끊임없이 밀려나요. 필연적으로 결론이 밀려나는 것 하나라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민경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대략 한 달 남짓 지나자 입트페 2권인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1권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텀블벅 출간 프로젝트를 통해 모금이 진행 중이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에서는 흩어져 있는 우리-‘여성’-들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힘이 있음을 강조했다면,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은 사실 그 흩어진 목소리들에도 ‘계보’가 있었음을, 그 잊힌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하는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 자취를 찾고, 또 현재의 이야기들을 새로 쓰는 과정에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의 연대를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제공: 도서출판 봄알람

 

 

글 편집위원 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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