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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쯤, 제가 중학생이던 때로 기억합니다. ‘화상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면 재택근무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수업을 들은 후에 저는 그 아름다운 미래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아니, 그럼 직장도 안가고 집에서 편하게 일할 수도 있단 말이야?

5년 전에는 기러기 아빠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무척 슬퍼졌습니다. 5년 전에 제가 꿈 꾼 미래가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으니까요. 화상 카메라는 재택근무가 아니라 가족과 떨어져 살아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기술로 쓰였습니다. 기술의 발달에 대해, 인류는 언제나 장밋빛 전망을 그리지만 늘 뒤통수를 맞네요. 

‘인터넷의 명암’이라는 뻔한 말을 한다는 게 사족이 길어졌습니다. 인터넷은 시작부터 많은 기대와 숱한 우려를 동시에 받아왔습니다. 미디어의 영역에 한하자면, 한편에서는 현실세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치적 잠재력을 가진 공간으로 인식되었고, 다른 편에서는 익명성을 빙자하여 쓰레기만 축적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인터넷을 규정하려고 애썼지만 인터넷은 그런 노력과는 무관하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어쩌면 그 둘이 사실 같은 현상이어서, 따로 구분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합니다. 밝아질수록 어두워지는, 요컨대 가능성이 커질수록 점점 쓰레기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있다는 말입니다. (현대문명의 아이러니일까요.)

구체적인 진화의 양상은 종잡을 수 없지만, (여전히 매체의 틀 안에서) 경향성 정도는 추측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조금 더 빠르게, 더 빠르게’입니다. 요컨대 매체로서의 인터넷은 자극과 반응 사이의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달해왔습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정보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상황이죠. 이러한 조건에서 개별적인 이슈들은 폭발력은 강하지만 지속력은 약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슈에는 몇 시간 이내에 수 만 개의 따봉과 댓글이 달리지만 내일이면 그게 정말 중요했던 일인지 의심스러워질 정도로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관심을 끄는 것 자체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요.

암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자면, 저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더 이상 깊이에 대한 추구를 실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유는 위탁하고, 말은 빌려 쓰며, 행동은 거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분노하는 즉각적인 평가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조리돌림과 신상털이는 이제 언제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일이 됐죠. 인터넷과 현실의 경계가 아니라, 사유와 표현과 행위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천하겠다는 인터뷰이의 비전을 읽으면서 공감과 우려를 같이 느끼게 됩니다. 생각의 시발점을 제공하는 것인지, 빌려 쓸 수 있는 언어를 쥐어주는 것인지, 행동을 촉구하게끔 만드는 것인지, 읽어보기도 전에 이런저런 궁금증만 많아지고 있네요. 이상입니다.

 

 

글 편집위원 real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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