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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페미니즘의 라고 불러도 만큼 수많은 여성 관련 이슈와 논란들이 일었던 작년 해의 분위기가 2016년에도 여전히 뜨겁다. 이와 같은 페미니즘 열풍은 지난 5월에 터진강남역 사건이후로 한층 거세져 또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듯하다. 이슈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며 나온 것이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하 <입트페>)이다. 

  책은 페미니즘을 둘러싼 갑론을박 속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자주 접하게 되는답답한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인 매뉴얼을 제공한다. 동시에 페미니즘을 하면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고민에 대해 시원하게 답을 내려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입트페> 지금 순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역동적인 페미니즘 담론의 내부에 있는 당사자들이 처음으로 사회를 향해 힘있게 내놓은 목소리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며, 동시에 가장 시의성을 띠고 있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입트페> 인기는 정말 대단하다.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모금을 시작한 달이 4300 원이라는 거금이 모였다. 이렇게 발행한 초판 5,000 또한 5 만에 매진되었다. 현재는 새로운 독립출판사봄알람(baume à l'âme)'이라는 이름 아래 2쇄를 발행하여 알라딘 서점을 통해 판매되는 중이다. 그리고 알라딘에서는 예약판매 첫날 사회과학 분야 1, 종합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라고 외치며 세상에 나온 책이 이토록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통해서 여성들은 사회를 향해서, 각자를 향해서 무엇을 외치고 싶어 하는 것일까.


Q 안녕하세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안녕하세요. 지금은 대학원에서 통번역을 공부하고 있어요. 사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거 한다고 일이 커져서 하고 있네요(웃음). 요즘은 인터뷰와 모임이 많아서 친구를 만나고 있어요.

Q 어떤 모임이?

책방이요. 저희가 독립서점이랑 연계해서 출판했는데, 직접 가서 구매자분들을 만나는 행사가 있어요. 은평구에서도 파티를 했고, 다음 주에는 노원에서 파티가 있어요. 입트페 1쇄가 금방 소진돼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저희가 사람들을 모아서 대접하는 거예요. 각자 책을 가져와서 줄씩 좋아하는 부분을 읽고 축하하는 자리였어요. 다음 주에는 저자와의 모임이 있는데, 책을 읽고 나서 궁금하셨던 분들이 오셔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거예요.

Q 만드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특별한 에피소드랄 사실 없어요. 책을 아주 빨리 써냈거든요. 9 동안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학교도 하루를 갔어요. 학교에서도 수업 내내 계속 쓰고...최대한 강남역 이슈가 사그라지기 전에 빨리 내려고 했거든요. 말도 정해져 있었고. 그럼 미뤄서는 되거든요. 

민경 씨가 책의 내용을 구상하며 작성한 메모들. 실제로 <입트페>에 등장하는 그림과 도식이다.

Q 내용이 술술 나왔다는 대단한 같아요

계속해서 생각했고, 생각이 하루하루 발전해갔어요. 17일에 강남역 사건이 터지고, 후로 일주일 동안 데이터베이스를 쌓아서 그다음 9 동안은 그걸 정리하는 과정이었어요.

Q 그래도 그간 고민의 과정들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인 같아요.

저도 페미니즘을 했죠. 5년을 했으니까. 평생을 페미니즘의 렌즈로 의미화를 다시 했잖아요. 강남역은 하나의 사건이고, 일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훈련이 되어 있었어요. 항상 느껴온 부당함에 대한 감각이 있었고, 저는 9일간 이걸 어떻게 언어로 의미화할 것인가 생각하며 정리하는 작업을 거죠.


1. 책에 대하여

Q. 먼저 책을 쓰시게 된 계기부터 듣고 싶어요.

 저는 강남역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정신적으로 소진되어 있었어요. 나만 그런 건가 했는데 주변을 보니까 다 똑같더라고요. 애인, 친구, 가족과 싸우고 설명하다가 다들 지쳐있었어요. 그래서 저와 같은 상태인 사람들한테 책을 주고 싶었고, 찾아보니 그런 사람이 꽤 많았던 거죠. 

Q 왜 다들 그렇게 지쳐있었을까요?

강남역 이후에 여자들은 자기 트라우마 하나 다스리기 힘든데, 하나도 상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와서 설명해달라고 하잖아요. 그게 저만 해도 하루에 세 번이었어요. 안 그래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저에게 공감하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은근 시비를 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제 과거의 기억 하나하나가 떠올라서 그걸 다스리기도 힘든데 응대를 해 줘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저뿐만이 아녔던 거예요. 

 어쨌거나 다들 잘 대답해 줄 방법을 찾고 싶으니까 책을 찾아 읽더라고요. 그렇게 고민을 하는 건 또 여자 몫인 거예요. “다른 책을 하나 읽고 나면 대답을 더 잘할까?”, “이건 이렇게 말할 걸, 그런데 이건 어떻게 말했어야 하지?” 그런데 책을 읽는다고 해서 잘 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그게 아니다” 라고 말을 하고 싶었죠. 

Q 완벽하게 대답해줘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공감하게 만들어야겠다. 왜 이렇게 반응하게 될까요?

여성의 삶이랑 똑같은 거 같아요. 여성은 하나도 결점이 없어야 성원권을 딸까 말까예요. 남성은 뭔가 잘못할 때마다 100에서 깎이지만, 여자는 잘해야 0에서부터 올라가요. 그런데 여성이 실수하면 그건 또 여성 전체 집단으로 귀결이 돼요. “저러니까 여성은 뽑으면 안 돼, 저러니까 여성은 임금을 적게 받아도 싸.”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예요. 약자를 위한 학문이기 때문에 방어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가 마치 페미니즘을 대표하고, 내가 밉보이면 페미니즘이 밉보이는 것처럼 생각하게 돼요. 어떻게든 쉴드를 친다고 해야 하나. 페미니즘 말고 다른 학문은 안 그래요. 내가 물리학을 전공하는데 내가 그걸 백프로 모른다고 해서 물리학의 잘못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페미니즘은 내가 대답을 잘못하면 “페미니즘은 이래서 안 된다”라는 소리를 듣거든요. 그러니 내 상태와 기분에 상관없이 무조건 페미니즘 이야기 나오면 이겨야 하는 거에요. 마치 여성이 사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Q 그래서인지 내가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많은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전공이 사회학이었는데, 사회학을 공부하다 보면 이것저것 다 맞는 말 같아서 난 뭐하는 애일까 고민하고, 회의주의에 갇혀서 한 발짝도 못 나간 적도 있었어요. 그런 부분이 총여학생회를 하면서 많이 해소가 됐어요. 막상 활동하게 되면 사소한 고민은 별거 아니거든요. 그러면서 겁이 좀 사라진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내 입장들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취해야 옳은 것인가 생각하면서 힘들었어요.

Q 그게 실제 사람들이 많이 하는 고민인 것 같아요. 내 입장을 완벽히 정한 다음에 행동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성주의가 언어 같다고 이야기한 게 그 말이에요.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의 경험과 비슷해요. 저는 프랑스에서 말이 되게 많이 늘었는데, 책으로 공부 안 하고 무대뽀로 사람들과 이야기했어요. 언어는 아기가 그렇게 배우는 거잖아요. 엉뚱한 소리도 하고 틀리다가, 어쨌든 또 듣고 말하면서 감각으로 익히잖아요, 자유롭게. 그런데 그때 같이 있던 어떤 한국인 언니가 단어장을 추천해달라고, 자기는 단어장을 다 공부해야 집 밖으로 나가겠다는 거에요. 여성주의를 하던 사람들이 책 좀 추천해달라는 거랑 똑같더라구요. 준비가 완벽히 안 되었다고 생각하면 못 나가요. 

 그러면 우리가 책을 50권 읽고 나면 말할 자격이 주어지는 걸까요? 그것도 아니거든요. 그럼 우린 도대체 언제 말할 수 있을까요? 어느 이론가에게 물어봐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에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그런 날은 없어요! 사람들은 주저하죠. 난 진짜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해요. 하지만 저는 직접 부딪히며 감각으로 익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누구라도 먼저 말해서 ‘물꼬’를 트는 일이니까요. 

Q.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책에서 남자들이 하는 ‘고구마 질문’과 ‘좋은 질문’을 나누던데 이 기준이 궁금해요.

좋은 질문은, 자기가 뭔가를 열심히 배운 다음에 저한테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질문이에요. 나쁜 질문은, 주로 ‘어설프게 착하고 싶은’ 질문들이에요. 예를 들어, “난 평등은 좋은데 페미니즘은 싫어.” 이건 자기가 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순된 질문을 하는 거죠. 가부장제의 틀에서 한 발짝도 안 벗어나면서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은 거예요. 이런 사람들은 어떤 논의를 시작하면 다 걸러 듣고 자기 생각이 맞다는 것만 확인해버려요.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메갈리아 이야기를 꺼내면 저도 제가 느끼는 비판점을 이야기해 주고 그걸 인정할 수도 있어요. 그때 그 사람은 “맞아, 그것 봐. 잘못됐지?” 하고 그냥 가버리거든요. 

Q 그럼 그렇게 질문만 던지고 깊이 관심 갖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이 차별주의자라는 낙인을 꼭 찍어야 해요. 그걸 되게 수치스러워하거든요. 사실 우리는 한때 다 차별주의자였어요. 그걸 인정해야 페미니스트가 되는 거예요. 저도 여자 되게 차별하고 여성혐오도 했었어요. 이게 모든 페미니스트의 흑역사거든요. 심지어 페미니스트들도 인정하는 부분인데 그들은 아닌 척해요.

Q 책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매번 질문받고 평가당하는 대상이 될 필요가 없으며, 그 반대의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점도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여성이 사회에서 그렇듯이, 페미니스트도 항상 평가를 받고 그들을 향한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요. 사회의 영점이 기울어져서 질문이 약자에게 밀려 내려오거든요. 그런데 사실 질문을 누가 해야 하나요? 피해받은 사람이 해명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따져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끊임없이 평가당하는 대신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요. 우선은 내 주위의 친구들 중 기미가 있는 사람을 찾아요. 그렇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생기면 판도를 뒤집을 수 있죠. 내 친구 5명 중의 3명이 페미니스트면 다른 2명이 소수가 되어서 눈치를 보거든요. 나 혼자면 난 꼴페미가 되는데(웃음). 인터넷에서도, 예전에는 딱 한 명만 이야기하니까 금방 다수의 폭격을 맞고 사라졌는데 이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으니 비등비등하게 되었잖아요. 

Q.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라는 이 책의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해요.

여성들의 경험은 실제로 존재해요. 그동안 의미화되지 않았을 뿐이죠. 그 경험들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언어이고, 페미니즘이에요. 예를 들어 ‘성희롱’이라는 언어가 있기 전에는 피해자 한 명이 혼자 기분이 나쁘고 끝이에요. 이제는 그 상황을 지칭하는 카테고리가 있으니까 우리가 ‘성희롱’이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강남역 사건도 그래요. 이 사건을 ‘여성혐오범죄’라고 부르고 공론화했기 때문에, 만약 100년 뒤에 혐오범죄에 대한 처벌규정이 신설된다면 강남역 사건이 효시에요. 그게 의미가 있는 거고, 그렇게 의미화하는 것이 필요해요. 우리나라가 엄청 가부장사회니까 이게 금방 신설되진 않겠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이 한 번씩은 혐오범죄에 대해 들어 본 거죠. 혐오범죄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람들도 앞으로는 비슷한 사건이 터졌을 때 그 경험들에 기반을 둬서 이야기하게 되겠죠.

Q 이런 책이 나올 만큼 그동안 페미니즘을 주제로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일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무엇이 가장 힘든 요소일까요?

사실 가까운 친구예요.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나를 막는 사람. 이건 “너 꼴페미냐?” 보다 더 어려워요. 성폭행을 당해서 신고해야 하는데, “이거 안 좋지 않을까?”,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라고 하면 의도가 어쨌든 나를 막거든요. 필요한 건 지지지, 막는 게 아니에요. 네가 잘 말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2. 지금의 페미니즘과 3.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이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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