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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사람

 2018년 1월. 최저임금이 6,470원에서 7,530원으로 상승했다. 나는 시급이 오른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2월. 서울의 모 아파트에서는 최저임금이 오르자 경영상의 이유로 근무하던 경비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해고 통지서를 보내 이슈가 되었다.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고, 일부 네티즌들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비인간적이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나 역시 뉴스를 보며,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해고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은 얼마나 매몰차고 이기적인 것이냐며 비난했다. 정작 우리 아파트 경비원의 상황은 모른 채였다.

 2018년 여름. 사상 최악의 폭염이 지속되었다. 에어컨을 자주 틀진 않던 우리 집도, 기록적인 더위에 못 이겨 에어컨을 거의 매일 틀며 지냈다. 잠깐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러 집 밖에 나가야 한다면, 엘리베이터를 눌러 놓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기다리다가 타고 내려가곤 했다. 어느 날, 후딱 분리수거를 하고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길에 문득 경비 아저씨를 보았다. 얼핏 봐도 티가 났을 만큼, 옅은 하늘색 유니폼이 짙은 파랑색이 될 정도로 온 등이 젖어 있었다. 그 뒤에 있는 경비실도 새삼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7월 내내 에어컨 없이 살 수 있었을까. 내가 6개월 만에 처음 해본 경비아저씨 생각이었다.

 내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청소 노동자, 서비스직 노동자와 더불어 경비 노동자도 그 중 하나이다. 대학교 캠퍼스 건물에서 돌아다닐 때마다, 살고 있는 아파트 1층을 나설 때마다, 혹은 아르바이트하는 건물에 출퇴근할 때마다 마주했으리라. 이 정도면 자주 마주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이제 경비 노동자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쉬는지 생각해보자. 혹시라도 경비 노동자의 업무로 택배의 ㅌ자라도 꺼내려 했다면, 땡이다! 자주 마주치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이 경비 노동자의 일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즉, 경비 노동자가 실제로 수행하는 노동들과 그들이 처한 노동환경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경비원은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가 월급 주는 사람이잖아. 내 차에 붙인 주차딱지 네가 떼”

: 경비원이 수행하는 감정노동

 경비 노동자에 대한 갑질을 다룬 뉴스는 잊을만하면 등장한다. 발레파킹을 요구하는 입주민도 있는가 하면, 베란다로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달라는 황당한 주민들도 있고, 떨어진 음식을 먹으라고 준다거나, 90도로 인사를 시키거나, 폭언 및 폭행을 일삼으며 비인격적 대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에는 안산의 아파트 단지의 주민이 주차 금지 구역에 주차를 해놓고, 경비 노동자가 주차 딱지를 붙이자 이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며 “우리가 월급 주는 사람 아니냐”, “야 네가 떼” 등의 폭언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각주:1] 동료 경비원들은 주민들이 주차 단속에 대해 불필요하게 과격한 항의를 해오는 일이 종종 있었고,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당해도 외부에 알리거나 대응하기 힘든 상태라 답했다. 정작 폭언을 들은 해당 경비원은 불이익이 두려워 인터뷰를 거절했다. 정작 잘못은 주민이 했는데, 눈치 보는 것은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인 경비 노동자의 몫이었다.

 실제로 경비 노동자가 체감하는 감정노동의 강도는 어느 정도일까? 2018년 경비 노동자 6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심층 인터뷰에 따르면, 그들은 “잡부취급을 받고, 업무 매뉴얼 없이 관리소나 주민이 지시하는 것은 거의 따라야 하기 때문에 경비 업무에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각주:2] 또한 2017년 경비 노동자 총 7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표1 참고[각주:3]), 고용 안정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업무에 비해 임금이 적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복리후생이 빈약하다”는 대답과 함께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가 발생한다”는 대답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고용 불안을 심하게 느낀다”는 답변과 “인격적으로 대우 받지 못한다”는 답변들도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주목할 점은 경비 노동자들이 감정노동에 대해 상당한 불만과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 1 - 대국민 감정노동 산재예방 캠페인 홍보 포스터)


 2016년에 시행되었던 대국민 감정노동 산재예방 캠페인 ‘풍선챌린지’의 마스코트에는 전화상담원, 유치원교사, 간호사와 더불어 경비 노동자 캐릭터(사진1 참고[각주:4])가 있다. 그만큼 경비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은 강도 높다. 그러나 경비 노동자의 감정노동으로 인한 피해가 그 동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차원에서 제대로 보상받기는커녕 피해 자체를 인정받은 적조차 매우 드물었다. 경비 노동자의 감정노동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적 차원에서 산업재해로 처음 인정된 적은 비교적 최근인 2014년이다. 압구정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근무하던 경비 노동자가 입주민의 폭언에 시달리다가 결국 분신을 시도했고,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한달 후 숨진 사건이었다. 결국 산업재해로 판정되었지만, 인과관계가 명확했음에도 산업재해 인정까지의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경비 노동자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각주:5]

 산업재해라는 말을 들으면 공장이나 건설현장을 떠올리기 쉽지, 상대적으로 경비실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보편적인 노동자(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의 이미지에 경비 노동자는 가려져있다. 여기에 노동은 물리적 영역에 국한된다는 고정관념이 더해져, 경비 노동자의 노동에는 ‘위험하지 않고, 수월하다’는 고정관념이 뒤따른다. 물론, 경비 노동자가 수행하는 일의 물리적 강도는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경비 노동자가 산업재해의 대상이 된다는 가능성을 지우는 것은 매우 편협한 시각이며 부당한 결론이다. 산업재해는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피해까지 포함함에도 불구하고 경비 노동자의 노동 환경과 노동자가 수행하는 감정노동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그 이전까지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업무상 질병은 입증이 쉽지 않아 기각되는 일이 빈번했었다. 그렇기에 2014년 당시 판정위원회의 판결은 감정노동자의 노동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변화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자, 이제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무엇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언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경비 노동자는 어떤 환경에서 알고 있을까?

: 휴게 영역과 노동 영역의 모호한 경계

다시 2018년 1월. 최저임금이 6,470원에서 7,530원으로 상승했다. 시급이 오른 덕에 웃던 나와 달리, 시급이 올랐음에도 이전과 같은 임금을 받으며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럴 새도 없이 일터를 잃었다. 2월. ‘경영상의 이유로’ 서울 모 아파트의 경비 노동자 94명은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측을 비난했다. 일부이긴 했지만, “우리 집 경비원은 경비실에 앉아 조는데, 애초에 하는 일도 별로 없어 보인다. 내가 왜 돈을 더 내야하느냐”는 댓글이 종종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서 “택배 받을 때 말고는 딱히 경비 아저씨의 필요성을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경비 노동자는 정말 그런 존재일까? 한 가지 짚고 넘겨야 할 점은, 택배를 받는 일은 경비 노동자의 본래 업무 영역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경비 노동자는 오히려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에 비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15년 경비 노동자 총 7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비 노동자 한 명에게 부과되는 업무 영역이 너무 포괄적이고 양이 많다는 문제점이 있었다.[각주:6] 경비 노동자의 본 업무는 치안 유지 및 범죄 예방을 위한 순찰돌기, 비상 상황 시 대처, 일지에 점검 내용 기록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경비 노동자는 고유의 업무 영역인 경비 업무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추가 업무인 택배 관리, 주차 관리, 청소 업무, 민원 업무(이삿짐 나르기, 우편배달 등)까지 맡는다. (표2 참고[각주:7]) 주거단지 내 청소, 분리수거, 택배 관리와 같은 업무는 사실상 경비 노동자의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들의 업무임이 당연하다고 여겨진지 오래되어, 이젠 어디까지가 경비 노동자의 일인지 경계가 모호해진 상태다.

 더욱이 휴게 시간과 노동 시간 사이의 구분 역시 매우 불명확하다. 경비 노동자의 임금은 철저하게 휴게 시간을 제외한 노동 시간을 기준으로 계산되는데, 앞서 말한 추가 업무의 대부분은 경비 노동자의 휴게 시간과는 상관없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위와 동일한 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24시간 격일제 기준 하루 평균 휴게 시간은 평균 6.95시간이지만, 근무지를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답변이 76.9%로 가장 높았고, 근무지를 벗어나 자유롭게 쉬거나 나갈 수 있다는 답변은 고작 3.8%에 불과했다.[각주:8] 경비 노동자의 휴게 시간과 수면 시간은 여전히 노동하는 시간과 맞닿아 있다.

 한편,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업무의 영역이나 시간뿐만이 아니다. 경비 노동자가 일하고 휴식하는 장소도 마찬가지다. 당장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실만 떠올려 보아도, 경비 노동자의 근무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에어컨이 없어 여름엔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고, 겨울엔 냉기가 가득한 2평 남짓의 비좁은 공간. 야간 근무를 하는 날이면, 근무 공간은 취침 공간으로도 쓰인다. 앞선 자료에 따르면 야간 취침을 하는 경비 노동자의 경우 별도의 휴게 공간에서 취침하는 경우는 50%, 근무 장소에서 그대로 취침하는 경우가 46.4%로 거의 비슷한 수치였고, 휴게실이 있으나 이용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2.8%, 그리고 잠을 아예 자지 않는다는 응답도 존재했다.[각주:9]

 근로기준법 제 110조 제1호에 따르면, 사용자가 휴게를 주지 않는 경우 또는 휴게를 주더라도 자유롭게 이용하게 하지 않는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기준이 있음에도, 휴게 시간과 노동 시간, 경비 업무와 기타 업무 사이의 불분명한 구분들은 경비원 개인으로 하여금 24시간 내내 일하게 만든다.


휴게 시간과 수면 시간이 경비 노동자를 불친절하게 만든다고?

: 직접 들어본 노동 환경의 문제점들

 “내가 어제 밤에 알바 끝나고 택배 가지러 갔었거든? 근데 우리 집 경비 아저씨가 좀 짜증을 내더라. 난 아무 짓도 안했는데, 왜 그렇게 불친절한지들 몰라.” 언젠가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경비 아저씨가 불친절하다는 인식은 꽤나 보편적이다. 송도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기숙사 경비 아저씨의 굳어있는 표정과, 경비 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이고 와 화를 내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현재 송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동생에게 물어보니, 경비 아저씨들이 불편하다고 한다. 과연 처음부터 경비 노동자는 불친절했을까?

 경비 노동자에게 직접 그 이유를 듣기 위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의 경비원분(이후 반장님-한 단지를 총 책임지시는 경비원이라 동료 경비원들이 반장님이라 부른다고 하셨다.)을 찾아갔다. 택배 배달원들로부터 택배박스들을 받고 계셨기 때문에, 차가운 음료수들을 들고 옆에서 한참 기다렸다. 미지근해졌을 때쯤 조심스레 인터뷰 요청을 했고, 반장님께서는 이 곳(경비실)은 너무 비좁고 더우니 밖에서 하자고 하시며 나무 그늘 아래 벤치로 가셨다. 첫 질문으로 반장님께서는 익명으로 처리되느냐 물으셨는데, 혹시 모를 불이익을 걱정하시는 듯 했다. 연신 땀을 닦으시며 다른 손으로는 이미 미지근해진 음료수들 중에서도 시원한 것 두 병을 골라 꺼내시고는, 내게 하나 건네주셨다.


반장님 (67세, 동종업 종사 및 근속 기간 3년)


연자: 감사합니다. 어유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덥네요. 아까 보니, 에어컨이 경비실에 없는 것 같은데 힘드셨겠어요.

반장님: 그렇죠. 이 경비실이 애로사항이 많아요. 날이 이렇게 더운데도 휴게 시간에 어디 안에 들어가 있을 데가 없어요. 그러니 밤에도 어쩔 수 없이 여기(경비실) 들어가 있는 거야. 간혹 부자동네는 어디 뭐 에어컨 달아주는 데도 있다는데, 여긴 없어. 다 비슷해. 돈 벌러 와서 병 생겨서 가는 것 밖에 안돼요. 더위 먹지. 이게 뭐, 살 수나 있어요?

연자: 방금 휴게 시간과 밤에도 경비실에 들어와 계신다고 하셨는데 그럼 따로 휴식이나 수면을 위한 공간이 없는 거죠?

반장님: 없어요. 나도 그렇지만은, 말 들어보면 대부분이 경비실 의자에서 자는 경우가 많아요. 야간 시간에는 초소를 떠나서 편히 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지. 매일 저 의자에 쪼그려 앉아서 있고. 차라리 집에 가서 잠을 자게 하던지. 10시 이후에도 여기(경비실)에 있으니까 사실은 일하는 거랑 똑같아요. 피곤하지, 직장이, 직업이.

연자: 원래는 밤 10시에 업무가 끝나는 건가요?

반장님: 시간만 따지면 그런데, 매일 야간근무해요. 난 아침 6시에 와서 그 다음날 6시에 퇴근해. 휴게 시간 다 빼면 6시간은 돈을 안 주는데 사실은 일하고 있고. 이게 불만인거에요. 그러니 생활이 힘들지. 이렇게 벌어서는 가족들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요. 최저임금 지난번에도 올랐다고 하지만, 순 잔머리만 잘 돌아가지 실제로 변한 건 없어요.

연자: 잔머리요? 그럼 최저임금 인상 이후 임금이 오르지 않으셨나요?

반장님: 최저임금은 우리 단지 뿐만 아니라 각 아파트마다 달라요. 지자체 운영위원회, 동대표가 있어서. 여기서 운영하기에 따라 급여 차이도 나고 다른 건데. 우리는 최저임금 올렸으니까 사실 이것보다 봉급 더 타야 해요. 근데 휴게 시간으로 다 빼버렸어. 점심시간 1시간 하다가 2시간. 저녁시간도 1시간 하다가 2시간. 휴게 시간이 말로만 휴게 시간이지, 일하는 시간이라니까요. 그럼 계산 나오잖아요? 하루에 5,6만원 받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 봉급을 안 올려주기 위해서 시간을 다 빼버렸단 말이에요. 우린. 불만들 많지. 불만들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들 많아요. 처음엔 불평불만들 하더니 때가 지나니까 다 잊어버려. 아마 우리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다 그럴거에요. 최저임금 조금 올려준다는 것도 이런 식이면 도움 되지도 않아. 내년에도 또 오른다고 하는데, 그 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지.

연자: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월급이 어느 정도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반장님: 그 세금 제외하고 달 165만원에, 분리수거 5만원 더 받으니까 170만원 정도예요. 다른 데는 210, 220만원 받는 데도 있고, 다 달라요.

연자: 분리수거를 하시면 돈을 더 받으시네요?

반장님: 원래 우리 일이 아니니까. 우리가 경비 교육 받을 때에는 그렇게 교육 받지 않았어. 원칙이 이런 거 청소하고, 택배 업무보고 하는 건 우리 일이 아니라고. 우리는 주민들 안전 관리, 마을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일을 하는 건데, (이외의 업무는) 다 사실 서비스로 하는 거야. 그나마 분리수거는 돈 더 받지만, 택배는 그런 것도 없어요. 근데, 이거 원, 택배 때문에 힘들어서. 10시 넘으면 사실 법적으로 일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할 필요가 없어요. 뭐 12시 넘어서도 오고, 1시에 술 취해서도 오고, 짜증내고. 잠을 못자요. 제 때 찾아가면 말을 안 하죠. 스트레스 받고 그러지. 그래도 주민하고 싸울 수는 없고, 어떡해. 휴게 시간에도 택배 때문에 밖에 나가 잘 쉬지도 못해.

연자: 업무가 굉장히 포괄적이고, 애매하네요.

반장님: 그렇지. 짜증나고 힘들지. 우린 경비원이 아니라 잡부야, 잡부. (마을 화단을 가리키며) 저기 풀이랑 나무 자른 거 저러고 놔둔 거 다 우리가 치워요. 잡초도 뽑아야 하고. 이게 대한민국 경비원들의 현실이에요. 다 따로따로 용역업체 둬서 업무 나눠주고 그러는 게 정상이라고. 그나마 다른 아파트는 한 사람이 한 동가지고 격일 근무 하는데, 여기는 한 사람이 두 동을 봐. 일도 두 배고, 택배도 두 배고. 그렇다고 뼈가 으스러질 만큼 힘들다는 것은 아니지만 (웃음) 밑에 식구 있고, 나이 먹어서 할 일은 없고... 뭐, 은퇴하고 나와 경제적인 것 때문에 와서 이러고 있지만, 사실 대우도 안 좋고 그래요.


 실제로 말씀을 들어보니 경비 노동자 개인에게 요구되는 택배, 청소 등의 추가적인 업무가 상당했다. 특히 택배 업무의 경우에는 휴게 시간은 물론이고 수면시간을 가리지 않고 경비 노동자에게 맡겨졌다. 그마저도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한 채였다.


반장님: 나는 반장이니까 민원 들어오면 전체를 다 보는데, 요즘은 시대가 별나서 젊은 애들이 밤만 되면 여기(놀이터)서 떠들고 시끄럽게 해. 그럼 주민들은 우리한테 민원을 넣는다고. 근데 우리 사법권이 걔네한테 닿지를 못하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언제는 민원이 (들어)와서 가보니 젊은 애들이 술 먹고는 지들끼리 병 깨고 싸워. 내가 싸우지 말라고 야단 좀 쳤더니 잠자는 시간에 경비실에 쳐들어와서 유리창을 다 깨부수고 가. 기절초풍 하는거지. 그런 일이 있었어요. 경비원 알기를 우습게 봐요, 애들이. 그래 (무서워서) 지금은 아예 터치를 못해. 야간 순찰 돌다가도 그냥 조용히 경찰에 신고만 해요. 금년에는 그래도 큰 사고는 없어.

연자: $#$^*@(심한 말) 아니, 그럼 그런 부당한 일을 당하셨을 때 말할 수 있는 기관이나 경비원분들을 보호하는 기관이 존재하나요? 어떻게 대처하세요?

반장님: 우리는 저기(아마 조합이나 보호기구로 추정됨.)가 없어. 그래도 이런 일이 일상은 아니야. 주차니 반말이니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가지. 우리도 그런 건 감안하고 다니니까 오히려 괜찮다고. 제일 필요한 것은 (노동)환경 개선이에요. 돈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 불만사항 많지만, 환경 개선이 제일 중요하다. 나뿐만 아니야. 우리 경비원들은 최저임금 조금 올려주는 것보다도 정부가 실질적으로 경비원들 잠자리는 어떻게 하나, 일하는 초소는 어떠한가, 또 휴게 시간은 어떻게 쓰이는지 다 조사해서 바꿔줬으면 해요. 여기 잠 제대로 자는 사람 하나 없어요.


 경비 노동자의 이러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과중된 업무의 분화, 경비 노동자를 하대하는 일부 주민들의 인식 변화, 수행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 지불, 최저임금의 실질적 보장 등 반드시 해결해야할 것들이 물론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바꾸면 됩니다~^^”라고 말하자니, 다소 비현실적이다. 반장님께서도 강조하셨 듯 휴게 공간과 노동 공간 사이의 분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공간분리가 전반적으로 실현된다면 휴게 시간과 수면 시간 동안에 노동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분리되어 있을 수 있게 된다. 휴게 장소와 노동 장소의 분리는 휴게 시간과 노동 시간의 분리로 이어질 수 있고, 수면의 질 향상을, 나아가 더 나은 노동환경을 이끌어낸다. 모든 노동자라면 누구나 일하는 시간이 아닌 시간에 쉴 권리가 있다. 경비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사진2 - 경비실 문 앞에 붙어있던 휴게시간 안내지)


 인터뷰를 위해 준비해간 질문을 마치고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익명으로 기록되느냐 물으시며 조심스레 말씀을 시작한 반장님은, 인터뷰를 마칠 때쯤에는 “꼭 좀 널리 알려달라”고 하셨다. 경비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문제들 혹은 보여도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을 직접 경비 노동자의 입을 통해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이셨다. 같은 동네에 살아가는 아저씨와 가볍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경비실 문에 붙어 있는 휴게 시간 안내지가 새삼 씁쓸했다. 그 동안에는 글자 그대로 읽히던 것들이, 휴식할 수 없는 휴게 시간 4시간, 잘 수 없는 수면 시간 6시간으로 보였다. “여기 잠 제대로 자는 사람 하나 없다.”는 반장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도 수많은 반장님들이 있다

(사진 3 - 경비실 초소를 지키는 곰돌이)


 경비원을 해고한 이후 아파트 주민들은 여전히 일상생활을 잘 살고 있을까? 김포의 한 아파트는 관리비 감축을 이유로 주민들의 찬반 투표를 통해 경비원을 없앴다. 처음에 불이 꺼져 있던 초소에 불이 들어왔고, 이제 비어있던 경비초소에는 인건비가 들어가지 않는 곰 인형이 앉아있다.(사진3 참고[각주:10]) 깜깜하고 텅 빈 경비실을 그냥 두기 무서웠나보다. 집 앞에 있던 경비 노동자가 없어지니 부모들은 학원 끝나고 귀가하는 자녀가 걱정되고, 늦은 밤 퇴근하는 주민은 한 번 더 뒤를 돌아보며 들어간다. 비상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하고, 눈이나 비가 오기라도 하면 주민들은 불편함에 애를 먹는다. 경비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해당 아파트 주민은 “10,000원(경비 노동자의 인상된 임금에 대해 각 세대 별로 부담하는 비용)은 아꼈지만, 그와 함께 일상생활 속 불편함과 불안감을 얻었다”고 했다.

 2019년, 최저임금이 또 오른다고 한다. 누군가는 임금이 올라 기뻐하겠으나,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누군가는 해고를, 인원감축을, 혹은 멋대로 늘어난 휴게 시간을 걱정할 것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하물며, 기계도 오래 일하면 열을 받아 식히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경비 노동자들이 경비실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발견했다면, 경비 노동자가 ‘나태하고 한가로워서라기’보다는, ‘그 시간이 경비 노동자의 휴게 시간이고 그에게 허락된 휴게 공간이 근무하는 공간뿐이어서’였지 않았을까? 여기, 내 주변, 보이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도 수많은 반장님들이 있다. 

글  편집위원 연자 (candella96@naver.com)

  1. 함초롱, 「“우리가 월급 주는 사람이잖아” 경비원에게 욕설한 주민」, 『YTN』, 2018.05.14 http://www.ytn.co.kr/_ln/0103_201805140931067721 (2018.08.27) [본문으로]
  2. 이수연,「아파트경비근로자 근로실태와 근로조건 개선방향」,한국사회법학회. 2014, p.126 [본문으로]
  3. 김준우, 「파트 경비근로자 실태와 개선방안」,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17, p.321 [본문으로]
  4. 윤평호, 「“감정노동자에 활기 불어 넣어 주세요”」, 『대전일보』, 2016.09.06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229517&r_key=6536536744 (2018.08.27) [본문으로]
  5. 유제훈, 「분신 사망 경비원 산재 인정...경비직 ‘감정노동’인정 첫 사례」, 『아시아경제』, 2014.12.02.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120121133580223 (2018.08.27) [본문으로]
  6. 김준우,「아파트 경비근로자 실태와 개선방안」,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17. p.317-318 [본문으로]
  7. 위와 같은 논문, p.318 [본문으로]
  8. 위와 같은 논문, p.318-319 [본문으로]
  9. 위와 같은 논문, p.322 [본문으로]
  10. 명현주, 「고작 만 원 때문에...경비실 자리 지키는 ‘곰인형’」, 『오마이뉴스』, 2018.04.29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27593&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2018.08.2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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