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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재활용 폐기물 보관실과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들이닥치는 매캐하고 독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코를 부여잡고 말았다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둘러본 두세 평 남짓 되는 공간은 각종 청소용품과 화학약품들이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었다창문은커녕 환풍기도 없는 공간을 빼곡히 채운 물품 옆으로줄 맞춰 놓인 몇 개의 의자와 커피가 놓인 책상이 위태롭게 자리했다지어진 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식 건물인 제4공학관 지하에는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이 있다. ‘재활용 폐기물 보관실이라는 명패를 버젓이 붙이고.



아코디언이 만난 3명의 노동자는 매일 아침 5시 30분 그곳으로 출근해 옷을 갈아입고 1사람당 약 1.5개 층의 건물을 청소한다지난 10월 2일부터 빨간 조끼를 입고 학관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 중인 코비 컴퍼니(이하 코비소속 노동자 3명을 만나 약 한 시간의 대화를 나눴다둑이 터지듯 쏟아지는 이야기를 모두 담기에 한 시간 남짓의 대화와 이 짧은 지면은 당연히 부족하지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연세대학교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인터뷰에 응해준 3명의 노동자 중 A는 현재 근무 3년 차로 제4공학관의 9층 전체 공간과 10층의 일부를 매일 오전 4시간 동안 청소한다. B는 근무 2년 차로 제4공학관의 지하와 2층 전체를 도맡아 청소한다마지막으로 C는 제4공학관이 완공된 후 곧바로 근무를 시작해 오전조의 반장으로 일 해왔다4공학관의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노동조합을 만들 때 주요한 역할을 한 C는 현재 정직 상태다인터뷰 중간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연세대분회 분회장인 D를 포함한 2명의 노동자들이 함께 자리 해 잠깐씩 서로의 말을 보충했다.

 

현재 제4공학관의 청소 업무를 맡은 코비 소속 노동자의 수는 총 11오전 조 9명과 오후 조 2명으로 나뉜다지난 7, 11명 전원이 가입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현재 사측의 회유와 차별 대우 등으로 6명만이 남은 상태이다.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자행된 코비 측의 폭력과 갑질 등 2019년 11월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비 사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파악하고자 하는 독자는 아래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아코디언 기획기사1] 백양로의 빨간 현수막들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https://brunch.co.kr/@yonseiji/26


[아코디언 기획기사2

https://blog.naver.com/yonmunu/221704888597


1. 청소 노동자들은 어디에그리고 어떻게

2017년 제4공학관 완공 시청소 노동자들에게 휴게실로 제공하기 위한 용도의 공간이 지하에 마련되었다하지만 계획과 달리 연세대학교 측은 노동자를 전일제가 아닌 반일제 형태로 고용하는 코비와 계약했고이전에 마련되었던 휴게 공간은 노동자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원래 전일제가 아닌 노동자들에게는 법적으로 휴게 공간을 마련해주지 않는 것 아니었냐고 씁쓸하지만 담담하게 되묻는 A의 모습 위로 공학관 이곳저곳을 채운 쾌적하고 넓은 공간들이 떠올랐다.

 

4공학관의 청소노동자들은 오전 4시경 일어나 5시 30분까지 출근해 오전 6시부터 10시까지 총 4시간 만에 연구실강의실세미나실화장실유리창출입문 등 건물 곳곳을 청소해야 한다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주어진 시간 안에 할당된 공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청소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공일오비: 그니까 전부 꼼꼼하게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군요.

A: 모자라요.

B: 그렇지 뭐.

C: 청소환경 좋게 하려면 한도 없어요사실은.

 

높은 강도의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은 사실 휴게 공간이 있더라도 활용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9, 10층에서 일하는 A 내려 못가요갈 시간이 없어요그냥 거기서 알아서 (쉬고), 갈 시간이 없다니깐” 이라며 휴게 공간에 상관없이 고된 노동 강도로 휴게할 여유가 없음을 강조했다.

 

A: 물 마시는 것도 그렇고처음에는 화장실 추접해서 (간식 등을못 먹었는데지금은 (시간이없어서 못 먹어요. (하하하처음에는 참 자존심 상했지그래가지고 계단에 가서 앉아서도 먹어보고 그랬는데 춥더라고 계단에서는.

 

공일오비 : (의자나 책상커피 등을 가리키며휴게실에 아무것도 없었던 거예요?

B: 아무것도 없었어요아무것도.

D: 반장님이 주워다 놓은 거는 잠시라도 앉자그래서 의자 같은 거 주워다 놓은 거지



사진을 찍느라 그 공간에 머물렀던 2~3분의 시간 동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여기 있으면 진짜 큰일 난다였다그만큼 휴게실아니 재활용 폐기물 보관실의 상태는 열악했다B는 현재 다른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건물이 세워질 때만 해도 청소 노동자 휴게실이라는 명패를 붙인 공간을 몰래 들여다보며 기웃거렸다고 했다. “와 이렇게나 넓어몇십 명도 누울 수 있겠다라던 그에게 결국 주어진 건 정수기는커녕 의자도 없이 독한 냄새만이 가득 찬 좁디 좁은 공간이었다그들은 운이 좋을지도 모른다매일 그 같은 강도의 노동을 수행하느라열악하다는 표현도 턱없이 모자랄 휴게실을 자주 사용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그러니 병에 걸리지 않았거나, ‘큰일 나지’ 않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2. 노조 조합원이 된 이유

노조에 가입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지금의 노동환경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 일을 부당하게 많이 시키잖아짧은 시간에 한 층에 하나씩 해도 벅찬데 한 개 반씩 하라 그러고또 연차수당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줬어요우리는 4시간짜리라 아예 연차 없는 줄 알았어.

B: 논술 같은 거 할 때 토요일일요일에도 나와서 일했거든요근데 그냥 최저시급만 줬지그리고 현수막 뒤 먼지를 안 닦았다는 둥 트집 잡아서 사람들 앞에서 망신 주는 거그런 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노조에 가입했다는 걸 알린 바로 다음 날부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사측의 노골적인 괴롭힘이 시작됐다젊은 남성 6명으로 구성된 감시단이 만들어졌고노조를 탈퇴하는 사람이 생겼다감시단은 조합원들과 비조합원들을 다르게 대했다조합원들을 쫓아다니며 괴롭히거나 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반면 비조합원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보호해주는 식이다비조합원 몇 명에게만 포상금을 지급하거나 비조합원의 쓰레기만 치워주는 등 악의적인 행동이 계속됐다인터뷰한 조합원들은 청소하는 일보다 노조를 들었다고 탄압받는 게 더 힘들다고 답했다.

 

A: 졸졸졸 쫓아다녀 계속그냥 혼자서 알아서 하다가누가 옆에 쫓아다니면 그게 신경이 쓰이잖아요나는 최선을 다해서 한다고 해도 괜히 트집 잡고. (출근한 지) 2년도 넘었는데 인제 와서 쫓아다니는 건 (노조탈퇴시키려고 쫓아다니는 거지스트레스 줄라고괴롭히려고.

 

4공학관 노동자 중 5명이 노조를 탈퇴했고, 6명이 남아있다그리고 감시단은 지금도 매일 제4공학관으로 출근한다. A씨는 노조 탈퇴를 회유하는 이에게 노조에서 사주를 받은 거냐는 말을 듣자 무슨 사주나 위해서 나 보호하려고 그러는 건데라고 답했다고 한다그런데 이들이 처음부터 노조에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노조 활동이 나의 일이 된 건, “나만 열심히 한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A: 집에서 버스 타고 출근하는데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다른 분들을 매일 차에서 만나요근데 코비를 자꾸 뭐라고 하는 거야. ‘알바 코비’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다는 둥노조 안 들어서 어쨌다는 둥 내가 다니는 코비에 대해서 쑥덕쑥덕하는 소리가 들려그래서 왜 저런 소리를 자꾸 하지나만 열심히 하면 되지 하고 그냥 무시해버렸어그랬더니 지금 알고 보니까 그거 때문에 그런 거야. (...) 9층에서 보면 (투쟁하는 모습이다 보여요. 어머 저 사람들은 추운데 새벽부터 왜 저러고 있나나 혼자 생각해사장님은 쳐다도 보지 말고관심도 두지 말라고 그랬어근데 나는 9층에 올라가면 사방이 다 보이니까그때 그래서 그랬다는 걸 이제서 안 거지그때는 눈을 뜨질 못했어.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사측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는 게 더 쉬운 일일지 모른다그러나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코비의 행위와 부당한 노동조건을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다화학약품 가득한 휴게실연차수당추가수당도 주지 않는 일자리노조가입을 악의적으로 방해하는 코비가 학내에 더는 용인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11월 13일 11시 30분 청소경비노동자 간담회가 자치도서관에서 열린다그 자리가 학생회관 앞, SNS 속의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로 아무렇지 않게 치부됐던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마주할 기회이길 기대한다코피 컴퍼니 사태를학내 청소경비노동자 실태를노동자의 투쟁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에서 또다시 당신을 만나길 기다린다.

 

연희관 015B 편집위원 응팡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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