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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브래지어 했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브래지어는 일상 영역에서 는 것에 해당한다. 브래지어는 더는 단순히 특정한 의류를 칭하는 명사에 국한되지 않고, ‘브래지어 입기라는 동작 자체의 의미를 머금은 동사가 되어버렸다. 전체 여성 중 브래지어를 해본 적 있는 여성의 비율을 추산하는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여성이 브래지어를 해보았고, 했고, 하고 있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들에게 브래지어 하기란 일상의 영역이자, 당위의 차원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여성주의 명제에 따라, 브래지어를 해보았고, 했고, 하고 있고, 해야 하는 나 역시 개인적이고 내밀하지만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나의 브래지어 하기를 고백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 내게 브래지어는 하루빨리 입고 싶은 액세서리같았다. 대형 마트에 갈 때마다 유아용 장난감 판매대 옆, 마네킹 몸에 씌워진 스포츠 브래지어를 늘 곁눈질하면서 나는 언제 커서 저런 것을 입을 수 있는지를 상상하곤 했다. 이윽고 이차 성징을 겪어낸 나의 몸에는 그토록 고대하던 브래지어가 덧씌워졌지만, 그 기대가 무색하게 브래지어 하기에 대한 첫 감각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나의 몸에 하나의 천이 덧대어지는 것은 불편하기도 답답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후 브래지어는 줄자처럼 느껴졌다. 이따금 평소 입던 브래지어가 잘 맞지 않을 때마다 나는 강박적으로 살 빼기를 결심했다. 체중계에 올라가 체중을 확인하고, 줄자로 몸 둘레를 재면서 살을 빼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처럼, 나는 브래지어가 살을 조금이라도 누르거나 브래지어가 선사하는 압박감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질 때마다 극도의 불안감과 함께 체중 감량을 선언하곤 했다.

 

    무엇보다 불편했다. 티셔츠 한 장을 입는 것과 그 위로 브래지어를 입고 티셔츠 한 장을 입는 감각은 천지 차이였다. 아무리 편한 브래지어를 입어도 그러한 감각은 여전했다. 안 그래도 덥고 습한 여름날에, 브래지어를 한 겹 더 입고 길을 걸을 땐 왠지 모를 부아가 치밀었다. 상체를 움직일 때마다 어깨끈이 내려오길래 다음 날은 어깨끈을 짧게 했더니 또 너무 짧아 어깨에는 벌건 자국이 남았다. 숨을 크게 들이쉴 땐 브래지어 후크가 명치를 압박했다. 헐렁한 브래지어는 자꾸 나의 일상을 성가시게 했다. 공복 상태엔 편안했던 브래지어가 밥을 먹거나 앉아있으면 자꾸 내 몸을 눌러댔다. 숨을 얕게 쉬고 잘 움직이지 않으려는 일이 빈번해졌다. 맛있게 식사를 해도 명치 부근의 압박감 때문에 체하기에 십상이었다.

 


    그런데도 왜 벗지 못했을까?

 

    2016,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나를 둘러싼 세상에는 페미니즘의 물결이 일었다. 그 중, 나의 일상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움직임은 다름 아닌 탈코르셋 운동이었다. 탈코르셋 운동은 화장 등을 비롯한 여성의 일상적 미용 행위들이 사실은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가부장적 젠더 폭력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했다. 브래지어 역시 여성을, 그리고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코르셋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탈코르셋 운동은 나아가 여성들에게 브래지어 벗기를 제안했다. 이윽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노브라(No-Bra)’, 브래지어에서 벗어난다는 탈브라(-Bra)’ 등의 조어가 등장했다. 그러나 각종 조어와 움직임, ‘브래지어를 벗어도 된다는 여성주의적 명제가 등장했다고 해서 나의 일상이 즉각적으로 뒤흔들리지는 않았다. 여전히 거리에 나가 마주한 여성들은 브래지어를 입고 있었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공식 석상에 선 여성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무엇보다 브래지어 벗기를 시도할 만큼 브래지어 입은 상태가 불편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명치 압박, 어깨끈 등의 불편감은 그저 일상적인, 당연한 불편함처럼 느껴졌다. 브래지어를 입지 않아 젖꼭지가 드러난 몸을 비정상화하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나는 그저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성의 울타리 속에 편입되길 바랐다. 브래지어로 인한 불편은 그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내가 개인적으로 감내해야 할 것에 불과했다. 브래지어가 불편할 때마다 나는 끈을 조절하거나 후크를 한 칸 뒤로 할 뿐이었지, 브래지어를 벗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은 좀처럼 할 수 없었다. 살면서 내재화한 정상의 몸은 젖꼭지가 보이지 않는, ‘젖꼭지 없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릴 적 봐왔던 몸은 늘 젖꼭지 없는 몸이었다. TV 광고에서, 여성 잡지 화보에서, 대형 마트에 전시된 마네킹에게서 보아온 몸에선 늘 젖꼭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의 몸은 브래지어 끈이나 후크에 눌리지 않았고 군살 없이 매끈하면서도 볼륨 있는 가슴을 자랑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몸에서 젖꼭지를 찾을 수 없었다. 길에서 마주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 한 번도 타인과 특히 여성과 대면하면서 그들의 젖꼭지를 확인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내가 타인의 젖꼭지에 무신경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몸이 늘 젖꼭지 없는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의 몸 역시 젖꼭지 없는 몸이어야 했다. 어린 시절 내게 겨울에는 브래지어 하지 않아도 돼하고 속삭이던 엄마의 음성을 기억한다. ‘겨울에는 브래지어를 벗어도 된다는 말은 겨울에 입는 옷은 두꺼우니 너의 가슴 굴곡이나 젖꼭지가 옷 위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고 이는 곧 나의 브래지어 벗기, 혹은 젖꼭지를 들켜서는 안 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겨울에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아도 젖꼭지 없는 몸일 수 있었던 나는 여름에 나의 젖꼭지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거리를 걸었다. 그러니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날의 나는 젖꼭지가 보일 새라 몸을 한껏 숙이며 거리를 걸었다.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을 때 웅크려야 하는 것이 더 불편한 나머지 되려 브래지어 입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자는 젖꼭지 없는 몸이 남성에게도 주문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지적은 사실이다. 많은 여성이 브래지어의 대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니플 패치 역시 남성들이 상의를 입을 때 젖꼭지를 가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성 역시 자신의 몸에서 젖꼭지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한다. 따라서 젖꼭지 없는 몸은 성별을 막론하고 일종의 에티켓에 해당한다. 그러나 결코 남성의 젖꼭지와 여성의 젖꼭지가 동일한 사회적 맥락을 지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남성의 경우와 달리, 여성의 젖꼭지에는 매우 다층적인 성적 의도가 수식되기 때문이다. 내가 마주한 남성향 성인 웹툰 혹은 성인 소설의 줄거리를 떠올려 보면 그곳엔 항상 성적으로 미숙한 남자주인공이 등장했다. 그들은 우연히주변 여자 지인이 브래지어 하지 않은, 노브라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이내 그 지인이 성적으로 방종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결국, 그 남자주인공은 그 여성과 섹스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성의 저항 혹은 싫다는 언어는 해당 여성이 노브라였기 때문에 실효성을 잃는다.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브래지어를 벗은 것혹은 브래지어를 벗고 다닐 만큼 성적으로 방종한 여성이라고 단정한 상태에서 노브라는 동의 없는, 폭력적인 섹스의 실마리자 정당화 기제로 작용한다. 이렇듯, 남성의 몸과 달리, 여성의 젖꼭지 있는 몸문란한 몸이자 민망한 몸이라는 오명이 켜켜이 덧씌워진다.

 


    미국에서 마주한, ‘젖꼭지 있는나의 몸

 

    그러던 어느 날, 2019년 한 해 동안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지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캘리포니아하면 으레 떠오르는 맑고 화창한 날씨가 늘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그곳은 한국보다 쾌청했다. 남자아이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속 등장인물처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길거리를 질주했고, 여자아이들은 엘르, 코스모폴리탄 같은 여성 상업 잡지 화보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만 같은 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수업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바닥에 앉아 끄적끄적 노트필기를 하기도 하고 밖에서 사 온 햄버거를 먹으며 노트북을 두드리기도 했다. 교수님의 말씀에 가차 없이 손을 들기도 하고 수업이 끝나면 우르르 앞으로 나가 뭐라뭐라 떠들고는 이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정신없는 일정과 낯선 문화에 더해진 피로로 공허해진 얼굴을 들어 앞을 바라보는데 발표하고 있는 여학생의 젖꼭지와 눈이 마주쳤다. ? 못 본 척 다시 봤다. 틀림없는 젖꼭지였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의 젖꼭지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옷 위로 드러나는 젖꼭지와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색하던 내게 단상에 올라가 발표를 하던 학생의 젖꼭지를 발견한 심정은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이었을 테다.

 

    이후로 수많은 여성의 젖꼭지를 발견했다.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강의실에서, 상점에서, 그냥 어디에서든 말이다.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몸이 이곳에서는 당연했다. 이거다, 싶었다. 생각해보면 여름이 오는 것이 싫었던 이유에는 땀내 나는 공기와 금세 척척해지는 몸뚱아리도 있었지만, 다시 브래지어를 입어야 하는 계절이 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덥고 습한 여름 공기에 길을 걷는 것도 부아가 치미는데, 브래지어를 입고 브래지어를 신경 쓰며 일상을 영위하는 것은 내게 꽤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그날로 나는 브래지어를 벗어 던졌다. 레깅스와 그 위 나시 브라탑. 브래지어를 벗고 즐기는 간편한 복장은 그 자체로 편안했다. 티셔츠나 나시 위로 드러나는 젖꼭지에 누구도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그렇게 젖꼭지가 드러나는 것이 두렵던 한국에서의 내 몸은 미국에 와서 젖꼭지가 있는, 젖꼭지가 보이는 몸이 되었다.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내가 미국에서 브래지어를 벗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그곳이 미국혹은 캘리포니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될 수 없다. 한국에 돌아와 이렇게 글을 쓰고 되돌아보면서 내가 왜 그곳에서 브래지어를 벗을 수 있었는지를 고민해보았다. 무엇보다 나는 브래지어를 벗고 공식 석상에 서거나 길거리를 거니는 여성들을 비로소 그곳에서야 충분히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페미니즘과 탈코르셋 운동을 통해 여성들의 브래지어 벗기를 충분히 상상하고 그것의 여성주의적 함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브래지어를 실제로 벗지 못한 이유는 단지 브래지어 벗는 여성을 실제로 보지 못해서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모스는 각 사회 내 규범적인 행동 양식인 몸 기술(body technique)’이 존재하는데 이는 사회가 정상화하는, 기득권의 몸, 행동이 무엇인가에 따라 한 사회 전체가 그러한 행동 양식을 습관화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각주:1] 즉 나는 길거리를 걷는, 수업에서 마주치는, 강단에서 발표하는 수많은 여성의 몸을 확인하면서 정상적인 몸, 규범 속 존재하는 몸이 무엇인지를 체득했다는 것이다. 브래지어 벗은 여성을, 그러니까 젖꼭지 있는 여성을 쉬이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에서의 나는 캘리포니아라는 상당히 다른 문화양식을 지닌 공간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마주했던, 브래지어를 벗고 젖꼭지를 드러낸 여성들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나의 브래지어 벗기에 주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내가 미국에서 젖꼭지 있는 몸이 될 수 있던 이유는 그곳에서 내가 경험한 시선의 특성과 연결된다. 나는 미국에서 브래지어를 벗으면서 이렇다 할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따뜻한 캘리포니아 기후에 발맞추어 나의 젖꼭지가 훤히 보이는 민소매 상의를 입고 다녔는데도 말이다. 누구도 내게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다고, 당장 브래지어를 입으라고 말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타인의 몸 상태나 옷차림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미국 문화의 특성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의 나는 시선이 있지만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상태에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고작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살고 떠날 외지인이었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가 규정한 사회 규범에서 이탈했을 때 발생하는 먼 미래의 손실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내 가슴께에 닿는 시선이 부재했다고 느꼈다기보다, 시선의 존재 여부를 상관하지 않았다. 시선을 느낀다고 해서 나의 몸을 시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는 그러한 시선들이 나와 알지 못하고, 나와 알지 못할 타인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가슴을 쳐다볼까 두려워 움츠리고 다녔던 한국에서와 달리, 미국에서 나는 내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시선들 속에서 자유로이 브래지어를 벗을 수 있었다.

 

탈코르셋 운동이 아닌 나의 점토-몸 긍정하기

 

    1년 간의 노브라 생활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브래지어를 입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속이 상했다. 아주아주 많이. 미국에서의 한 해가 나를 어떻게 바꾸었나, 나는 2019년으로 얼마나 더 멋진 인간이 되었나를 가늠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진정한 나를 찾았다는 성취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편한 레깅스와 조거 팬츠, 또는 와이드 팬츠를 입고 브래지어 없이 티셔츠를 걸치던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다시 브래지어를 입기 전 한숨을 쉬고 겨울이 오기만을 기대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브래지어라는 오브젝트로부터 벗어난다는 감각을 느낀 과거는 모두 씻은 듯이 사라졌다. 몸도 불편했다. 한 번 제대로 벗어보고 나니 다시 입는 것은 더욱더 고역이었다. 그전에는 어떻게 일상적으로 입었나를 상상하면 그 기억은 마치 전생인 양 어렴풋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은 페미니스트라는 나의 정체성과 브래지어를 입고 있는 나의 몸의 불일치성이었다. ‘나는 브래지어가 코르셋이라는 명제에 동의하는 페미니스트인데 왜 브래지어를 입고 있지?’와 같은 생각들이 마구 떠오를 때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게 브래지어는 악의 근원, 당장 사라져야 할 적폐의 산물 그쯤이었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 브래지어를 입을 땐 마치 내가 변절자가 된 것만 같고,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

 

    하지만 과연 브래지어를 벗는 사람은 페미니스트이고, 브래지어를 입는 사람은 가부장제에 순응한 보잘것없는 개인일까? 20201학기, 브래지어와 관련된 문화기술지를 작성하면서 다양한 20대 여성들의 브래지어 입고 벗기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한 친구는 자신이 브래지어를 벗는 이유를 말하면서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페미니스트인 또래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낼 땐 페미니스트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 위해 브래지어를 벗고, 때론 편하게 생활하기 위해 브래지어를 벗었다고 말했다. 어떤 날은 애인과 산책하러 나가면서 브래지어를 벗고 자신이 노브라차림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성적 함의를 담아 고백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이처럼 하나의 단일한 몸 상태, 브래지어 벗음은 결코 정지되어 일방향적 지향을 드러내지 않으며, 그 개인의 수많은 의도를 싣고 생동한다. 그러니, 브래지어를 입고 벗는 개인의 몸 상태는 그의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또한,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 지점도 아니다.

 

    어떤 이에게 브래지어는 탈코르셋 운동을 지지한다고 해서 무조건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이 더 편안한 몸 상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때때로 브래지어가 필요하기도 했다. 호르몬 주기의 변화와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같은 계단을 내려가더라도 가슴이 느끼는 통증은 천차만별이었다. 평상시에는 브래지어를 벗고 있을 때 더 편안한 것처럼, 가슴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생리 직전에는 브래지어 하는 것이 더 편안하다고 느낀 것이다. 전날 먹은 음식의 염분량, 그날의 호르몬 분비량, 몸컨디션 그리고 이 외에도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해 사람의 몸은 변화하고 몸이 느끼는 감각 역시 변화한다.

 

    20201학기, 20대 여성의 브래지어 입기와 벗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친구들과 나는 우리 몸이 이렇듯 점토-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각주:2] 우리가 고안한 점토-몸이 무엇인지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는 사회가 주문하는 마네킹-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백화점에서 흔히 보았던 마네킹을 떠올려 보자. 마네킹은 모두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그 형태와 사이즈는 규격화되어 있다. 그러한 마네킹들은 실제 인간 몸의 다양한 형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개인에 따라 다른 몸의 크기뿐만 아니라 근육량의 차이나 상·하체 지방 분포의 차이 등과 같은 세밀한 개개인 몸의 차이를 마네킹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마네킹은 우리가 몸을 만질 때 느끼는 감각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손으로 쥐거나 꼬집을 수 있지만, 그와 달리 마네킹의 재질은 딱딱하고 탄력성이 없는 플라스틱이다. 마지막으로 마네킹은 틀에서 찍어낸 것 같은 몸을 한 채 변함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 브래지어는 이러한 마네킹 위에 진열되어 있고 브래지어 광고를 하는 모델들 역시 마네킹을 빼닮은 몸을 하고 있기를 요구받는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그러한 마네킹 또는 마네킹을 빼닮은 몸을 마주하며 그것의 정상성을 되새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을 마네킹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마네킹이 드러내고 있는 몸은 어떠한 몸인가? 위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하고 있는 마네킹의 몸은 가슴골이 있는 비교적 커다란 가슴, 이와 대비되는 잘록한 허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쇄골과 복근이 보이는 딱딱한 재질의 마네킹은 브래지어를 입었을 때 단단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브래지어를 꽉 조여 가슴골을 만들어야 한다는 마케팅 역시 우리의 자연스러운 몸의 형태를 부정하고 마네킹-몸의 정상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마네킹 위에 입혀진 브래지어 혹은 마네킹 같은 몸을 가진 모델의 몸 위에서 광고되는 브래지어를 보면서 자연스레 우리 몸이 저들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자신의 몸이 마네킹과 비슷하지 않을 때마다 좌절하거나 불안을 느끼며 자신의 몸을 부정하고 마네킹과 비슷한 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마네킹과는 확연히 다른, 우리의 자연스러운 몸이 바로 점토-몸에 해당한다. 먼저, 우리 몸은 금방 꺼낸 점토처럼 말랑말랑하다. 브래지어를 입어보았다면 브래지어에 의해 살이 구획되거나 브래지어를 입고 몸을 뒤틀었을 때 그에 따라 살이 접히고 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꼿꼿이 서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마네킹은 우리의 말랑한 몸을 부정한다. 내가 나의 몸에 대해 느꼈던 가장 커다란 상실감 역시 거울로 보는 나의 몸이 미디어에서 보아온 몸과는 다르다는 데서 기인했다. 나의 몸은 미디어에서 보아온 몸들과 달리 취하는 자세에 따라 이리저리 접히기도 하고, 후크나 브래지어 끈에 의해 눌리기도 했다.

 

    두 번째로 우리 몸은 점토를 주무를 때처럼 시시각각 변한다. 앞서 설명한 나의 몸처럼, 많은 여성의 몸들은 생리 주기에 따라 감각의 변이를 체험한다. 어제는 아무렇지 않았던 동작이 오늘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운동을 했는지에 따라서도 몸이 느끼는 것들은 크게 달라진다. 이처럼 우리 몸은 언제든지 변화하며, 우리 몸의 고정 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브래지어를 하는 것 역시 어느 날엔 귀찮다가 어느 날엔 간절해지고 또다시 불편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몸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연구에 참여한 한 친구는 어렸을 적 목욕탕에 갔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잡지나 백화점 진열대에서 보았던, 모두 똑같이 생긴 몸과 달리 목욕탕에 등장한 여성의 몸은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의 몸은 결코 타인의 몸과 동일할 수 없다. 비슷해 보이는 몸들도 반드시 골격근량, 체지방량 등이 다를 것이고 피부의 색과 질감, 점의 위치 역시 다를 것이며 일상생활을 느끼는 몸의 감각 또한 현저하게 다를 것이다. 동일한 형태의 몸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모든 개인은 같은 동작, 같은 상태를 다르게 느낀다. 브래지어 입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고, 심지어 거추장스럽다고 느껴지는 브래지어가 누군가에게는 일상품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브래지어가 여성의 미용용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필수품일 수 있다.

 


종종 브라하는 나의 점토-

 

 

    편안함을 강조하는 브래지어 기업인 비브비브의 유튜브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사진을 클릭해보세요!) 광고에 등장하는 여성의 몸은 마네킹의 몸처럼 가슴골을 가지고 있지도, 허리가 잘록하지도 않다. 심지어 브래지어의 후크 주변부에는 살이 튀어나와 있기도 하다. 이러한 여성의 몸은 플라스틱으로 된 마네킹과 달리 점토로 조물조물 한것 같은 형태로 묘사된다. 영상 내내 브래지어를 한 여성들은 웃고 떠들며 운동을 하고 걷는다. 그러한 몸에 매달린 살들은 움직이기도 하고 어딘가로 쏠렸다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도 한다. 플라스틱이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몸의 재질을 가진 여성들은 브래지어를 입고 함께 모여 몸을 움직이고 웃는다.

 

    일 년간의 교환학생 이후, 한국에 도착하여 브래지어를 다시 입었을 때 이걸 옛날엔 어떻게 입었지?’하고 한숨 쉬었다는 나의 경험을 다시 떠올려 보자. 뇌과학과 신경학 등에서는 과학의 논리로 우리의 몸을 함수라고 가정한다. 마치 일정한 값을 넣으면 언제나 동일한 값을 산출하는 함수처럼, 인간의 몸은 일정한 자극을 받았을 때 늘 일정하게 느낀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한 번 브래지어를 벗고 거닐어 본 경험의 감각은 나의 몸에 인처럼 박였다. 브래지어를 벗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체험한 몸은 더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똑같은 몸으로 똑같은 브래지어를 입는 것이 전혀 다른 감각으로 와닿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몸은 세계가 우리에게 쥐여주는 상상의 폭과 넓이에 따라 다르게 감각하고 다르게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몸을 점토처럼 상상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몸이, 같은 모양을 하고 일렬로 서있는 마네킹이 아닌, 말랑하고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개개인에 따라 다른 점토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지금껏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의 몸 그 자체를 긍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는 우리는 브래지어를 입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어깨와 등, 배 주위의 살에 혐오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어제는 브래지어 입기가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은 극도로 피로하고, 내일은 오히려 입은 것이 더 편안한 나의 몸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다른 이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몸의 상태가 나에게는 편안하지 않다는 사실, 혹은 내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것이 타인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노브라도, 탈브라도 아닌 종종브라하고 있다. 그것은 그저 내가 나의 몸의 고유함을 긍정하면서 그때그때의 상황을 고려한 나의 선택에 불과하다. 그러니 종종브라하는 나의 몸은 슬쩍슬쩍 젖꼭지가 드러나도 개의치 않는 나의 소소한 일탈에 의한 것도, 여성 인권을 후퇴시키는 가부장제 부역의 징표도 아니다. 오히려 나의 몸이 말하는 바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그때그때 내 몸을 둘러싼 상황에 발맞추어 살아가는 살아있는 몸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 브래지어를 입었건 벗었건 상관하지 말자. ‘브래지어를 입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명제에 대항하여 등장한 브래지어를 벗을 수도 있다는 제안이 브래지어를 벗어야 한다는 또 다른 몸의 규범을 산출한 것에 그저 안타까워하자. 브래지어 입기와 벗기에 따라 나의 여성주의적 정체성을, 진단하지 말자. 그저 내가 지금 당장 감각하고 있는 것이 진정 편안한지 생각하고 판단하자.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 사회에 빼앗긴 내 몸 주도권을 되찾자는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탄생했다. 단순히 누군가의 다그침에 의해 기계적으로 브래지어 벗기만을 노력하는 것보다 나의 점토 같은 몸을 직시하고 그에 따라 브래지어를 종종 입고 종종 벗는 것이 진정한 몸 주도권을 되찾는 일일 것이다.



글 편집위원 빙봉(soobinlee@yonsei.ac.kr)



  1. Mauss, Marcel. 1973. Techniques of the Body. Economy and Society 2: 70-88 [본문으로]
  2. 서주은·정수연·이수빈, 2020, 「점토-몸: 메를로-퐁티의 몸 현상학으로 본 20대 여성의 브래지어 입고 벗기」, 2020-1 ANT2101 문화기술지 제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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