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시시할지 몰라도, 바로 내 방이다. 내 방은 넓지도 않고, 채광이 좋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대부분의 경우 깨끗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난 내 방이 참 좋다. 이곳에서의 추억들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견할 수 있기는 한(find-able한) 장점들을 일일이 늘어놓으면 그 이유가 설명될까? 온갖 단점을 불사하고 여전히 좋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이 좋음이 인위적으로 구성되거나 해체되지 않기 때문도 있다. 내가 내 방에 느끼는 거의 무조건적인 이 좋음, 오랫동안 한 공간과 호흡을 함께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냥 거기 있는 이 좋음은 내게는 몇 없는 것이기에 더욱 특별하고 소중하다.


내가 내 방을 좋아한다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는 어쩌면 당신들도 공감할 내 오랜 고민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대수롭다. 그 오랜 고민은 신촌에서, 캠퍼스에서 느끼는 ‘정처 없음’이다. 국제 캠퍼스 생활을 마치고 입학 후 1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신촌에 입성한 나는 약 한 달 후에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새학기의 부산함이 사그라든 후에도 일과 중에는 공강 시간에 대체 어디를 가야 할지,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도 학교 근처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대체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던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학교와 근방의 지리를 잘 모르는 신촌 새내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것은 내가 ‘내 장소’ 부재의 공간을 처음 경험한 ‘내 장소 없음-새내기’였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신촌에서 생활하기 이전의 나는 적어도 내 주요한 활동 공간에서는 장소라고 할 만한 것을 항상 갖고 있었다. 집에서는 내 방,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내 책상과 사물함, 그리고 재작년의 국제캠퍼스 생활에는 내 기숙사 방이 그것이었다. 학창시절 학교 앞 ‘캔모아’와 우리 동네의 ‘스페이스 530’도 한 때 내 장소가 되어주었던 곳들이다. 이 장소들은 내 주요한 활동 공간에 고정적으로 존재하면서 오가거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고, 나는 이 장소들에서 특정 정도까지는 마음껏 재량을 부릴 수 있었다. 가거나 가지 않을 수 있었고, 포스터 붙이거나 낙서를 하고 어지를 수 있었다. 신촌은 이런 내 장소가 적어도 아직은 없는 공간이었고, 그 때문에 나는 혼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혼란의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낸 후에도 아직 그 혼란을 해결하지 못한 이유는 신촌에서 내 장소를 찾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촌에서 찾기 어려운 내 장소의 요건은, 막 떠오르는 여러 가지 중에서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것들을 몇 가지 적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시공간적 연속성을 갖는다. : 적어도 그 자리에 계속 있긴 해야 한다.

2. 심적/물적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 그곳에서 즐겁거나 편안해야 하고, 내가 그 곳에 존재하기 위해 큰 비용(심적: 짜증, 귀찮음, 물적: 이동, 돈)이 들면 안 된다.

3. 그 공간과 충분한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 추억을 만들거나(장소→나), 그 공간을 변조할 수 있어야(나→장소) 한다.


*공간을 변조하는 것은 내가 신청한 노래가 매장에 울려 퍼지는 것부터 가게 주인에게 선물한 해외여행 기념품이 매장에 놓이는 것까지, 넓은 범위에서 그 공간을 바꾸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안타깝게도, 신촌은 위의 기준에 하나라도 부합하는 곳을 찾기 힘든 공간이다. 사실 위의 기준상으로는 최악의 환경에 가까울 정도다. 1. 주지하다시피 상권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교체되어 시공간적 연속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2. 다른 대학가와 비교했을 때 상향 평준화된 물가 때문에 꽤 큰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3. 그마저도 천편일률적인 상품, 서비스, 인테리어의 프랜차이즈 점포가 대부분이어서 그 규격들 사이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라곤 없으며 상호작용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신촌에서 내 장소를 찾는 것이 순진한 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포기하면 편한 ‘신촌에서 내 장소 찾기’에 나는 왜 굳이 이렇게 고집스럽게 매달리고 있는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앞서 언급한 ‘정처 없음’을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고집에는 개인적인 징징거림 이상의 명분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신촌에서 느끼는 이 집단적인 정처 없음이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내 장소가 없기 때문에 갈 곳이 없고,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신촌에 머물지 않거나 그러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머물지 않기 때문에 내 장소를 만들 여지가 아예 닫혀버린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누구도 내 장소를 찾을 수 없는 무장소성의 공간에는 장소뿐만 아니라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통과하거나 표류하는 존재들, 기껏해야 일시적으로 머물다 떠나는 존재들만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파편화된 경험이나 기억을 가질 수는 있어도 그것을 애착이나 공동의 문화와 같은 연속적인 무언가로 발전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카페가, 서점이, 음반 가게가 사라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아쉬움이나 의문이 생겨도 개인적인 수준에서 맴돌다 사그라지기 일쑤다. 이상하지 않은 것은 사실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장소도 사람도 감정도 문화도 없는 신촌은 이렇게 점점 더 취약해진다.


상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학가인 신촌은 애초에 불연속성을 숙명처럼 가진 공간이다. 가게들은 각자의 다양한 사정에 따라 수시로 들어오고 나가며, 대학가 특성상 구성원의 큰 부분이 일정한 주기로 유입되고, 또 떠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덮어두기엔 마음 한구석이 영 찝찝하다. 분명 변화를 꾀할 여지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애착이나 공동의 문화와 같은 연속적인 무언가에서부터 말이다. 이를테면 대규모 프랜차이즈 업체들에 잠식되어가는 신촌에 대해 고민하고 그런 잠식을 막기 위한 연대를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연속적인 무언가들을 창출해내는 데 내 장소가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나는 신촌에서 내 장소 찾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와 나눌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부터 일상을 풍요롭게 할 기발한 작당 모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들이 신촌에서 사라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내 장소가 가능하게 할 것들에 대한 상상 때문이다. 결국, 신촌에서 내 장소를 찾아 헤맨 것은 불연속의 공간에서 연속을 찾으려던 것이다.


그래도 1년 간 시도와 실망, 재도전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신촌에 내 장소라고 부를만한 곳들이 생겼다. 자주 가는 식당과 술집이 몇 군데 생겼고, 개중 몇 곳에는 벌써 정이 들었다. 여행 동호회 모임 장소를 매번 찾는 것에 질려서 그냥 장소를 하나 차려버렸다는 정문 근처의 한 카페도 그중 하나로, 어쩌다 보니 단골이 되어 스태프들과 아는 사이가 되었고 작년 연말에는 그곳을 대관해서 지인들과 파티를 하기도 했다. 요즘도 마땅히 갈 곳이 없을 때, 시간이 뜰 때, 그냥 심심할 때면 네댓 시간씩 그곳의 엄청나게 엄청난 빈백에 늘어져 있기 위해 종종 찾는다. 이렇게 내 장소를 하나둘 찾아가며 신촌에 애착이랄 것이 생기려던 중에 한때 매주 발 도장을 찍기도 했던 수제 파이 카페인 ‘파이홀’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회의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건물 주인과의 갈등에 대한 소문까지 돌면서 진짜 현실을 확인한 것 같아 새삼 씁쓸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문제가 학내 언론과 SNS 통해서 이야기되는 것을 지켜보며 변화가 일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잠깐 충격받거나 며칠 아쉬워하다 말았을 일을 궁금해하고 알리려는 이들이 생겼고,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며 안타까움을 나누었다. 내 주위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1인 시위를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파이홀의 독보적인 인기를 고려하더라도 하룻밤 사이에 가게가 사라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신촌에서 이것은 분명 새로운 일이다. 이것이 전환의 시작이기를 기대하며 내 장소 찾기는 계속된다. 쭉.

 

 

글 편집위원 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