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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대한 우주선들이 하늘에, 지구상의 모든 국가 위에 꼼짝 않고 떠 있었다.

그것들은 꼼짝 않고 떠 있었다거대하고, 묵직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지구인들이여, 주목하라.”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멋진 목소리였다.

용감한 남자도 울게 만들 정도로 소리의 일그러짐이 거의 없는 멋들어지고 완벽한 사방입체음향이었다.

나는 은하계 초공간 개발 위원회의 프로스테트닉 보곤 옐츠다.” 그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모두들 분명 잘 알고 있겠지만, 은하계 변두리 지역 개발 계획에 따라 너희 항성계를 관통하는 초공간 고속도로를 건설하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너희 행성은 철거 예정 행성 목록에 들어 있다. 이 과정은 너희 지구 시간으로 이 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경청해줘서 고맙다.”

확성 장치가 잠잠해졌다이를 지켜보는 지구인들의 마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내려앉았다.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공포가하지만 아무 데도 도망갈 곳은 없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보고인들이 다시 확성 장치를 켜고 말했다.

우리 말에 깜짝 놀라는 체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모든 계획 도면과 철거 명형은 알파 켄타우리 행성에 있는 지역 개발과에 너희 지구 시간으로 오십 년 동안 공지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는 공식적으로 민원을 제기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이제 와서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해봐야 이미 너무 늦은 일이다.

   



#2.

통장이 이걸 가져왔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 철거 계고장예요.”

기어코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집을 헐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이제 나온 셈이구나!”

어머니는 식사를 중단했다.

 


#3.

승강구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소름끼치는 정적이 흘렀다.

소름끼치는 소음이 흘렀다.

소름끼치는 정적이 흘렀다.

보고 행성의 공병 함대는 별이 총총한 새까만 공간 속으로 미끄러져 갔다.


  

  



초공간고속도로와 슬픈 난장이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앞부분에 나오는 장면이다. 외계 우주선이 지구를 철거한다는 설정부터 충격적이지만, 더 놀라운 건 그 이유다. 우주 개발을 위해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그 경로에 행성이 있으니까 지워버린다니! 소설의 재치는 한 번 더 발휘된다. 이전 장면에서 주인공의 집이 영국 정부의 우회로건설을 이유로 철거되는데, 이것이 지구의 운명과 너무도 닮아있는 것이다. 심지어 노란 포크레인과 노란 외계 우주선은 색깔마저 같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누군가의 터전이 위협받는 동안 그 누군가에게는 항의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소설 같은 일이 바로 여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동안, 우리는 애써 외면해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느 날 아침 동네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세입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포는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우주선 앞에 선 지구인처럼 무력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영희, 영수와 같은 난장이가 바로 그들의 이름이다.

 

<난쏘공>의 작중 배경, 낙원구 행복동

모든 것의 시작은 1960년대 후반이었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는 먼저 도시 경관을 우중충하게 만드는 판자촌이 없어져야 했다. 당시 청계천변의 판자촌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트럭에 실려 이주당하는광경은 흔한 것이었다.[각주:1] 70년대에 접어들어 재개발 열풍은 강남과 여의도를 금싸라기 땅으로 바꾸는 연금술을 선보였다. 정부, 서울시,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도시개발이 얼마나 큰 노다지인지를 알게 되었다. 서울의 돈이 강남으로 몰리는 동안, 땅을 미리 사놓은 권력자들은 부동산 열기를 이용해 이익을 챙겼다.[각주:2]

하지만 우리 사회는 부동산 시장의 밝은 면만 부각시키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철거와 재건축은 동네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새 아파트에 들어가기에는 집을 허문 대가로 받은 이주보상금이 너무 적었다. 아니, 재개발은 애초부터 땅값을 올리기 위한 사업일 뿐이었으니, 자기 동네에 계속 살게 해달라는 그들의 소망은 애초부터 헛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에서 철거재개발 압력에 시달린 사람의 수가 당시 서울 인구의 10%72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이었다.[각주:3]


그동안 한국 현대사에는 초공간 고속도로들이 수도 없이 뚫려왔다.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서울 올림픽, 청계천 개발 그리고 뉴타운은 모두 공익의 이름으로 난장이들의 희생을 강요한 사례다. 그리고 희생의 역사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핫한동네의 원주민들

 D.W.깁슨의 책 <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에 등장하는 브루클린의 한 미술 중개인은 "이 동네에는 자기 성공의 희생양이 되는 사람이 많아요"라고 말한다. 뉴욕 브루클린은 과거 슬럼가의 악명을 벗고 예술적이고 분위기 있는 거리로 탈바꿈한 곳이다. 뉴욕 시내 중심부임에도 열악한 환경으로 땅값이 낮게 유지되어 있었는데, 작업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동네를 아름답고 살기 좋게 꾸민 것이다. 그런데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들이 몰리자, 개발업자들과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몰려온다. 그들은 낡은 건물을 사들여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한 뒤에 그 동네에 살고 싶어 하는 중상류층에게 되판다. 시간이 흐를수록 땅값은 점점 오른다. 결국, 처음 이 지역에 들어왔던 예술가들은 그 가격을 도저히 부담할 수 없게 된다.[각주:4]

지역에 오래 거주한 토박이 주민들 역시 젠트리피케이션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앞서 말한 어린 시절부터 뉴욕 브루클린에서 살았던 한 세입자는 자신이 경험한 지역의 변화에 관해 설명한다.

브루클린은 점점 괜찮아졌어요. 마약 하는 사람들도 줄었고요 저는 마침내 사람들이 브루클린을 손보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대가로 원래 여기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어요. 원래 여기에는 라틴계 미국인하고 흑인이 엄청 많이 살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떠나고 없어요. 지금은 백인들이 많아요. 브루클린은 우리를 위해 변한 게 아니었어요.”[각주:5]

젠트리피케이션은 한 마디로 뜨는 동네의 비자발적 이주. 동네를 하게 만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어느 도시에서 어떤 사업을 벌이건 간에, 원주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도시개발의 공통점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한편으로는 놀랍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경제학이 그 희생들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이 강자의 편에 서는 이유

 주류 경제학은 대부분의 개발 사업에 찬성하는 입장을 취한다. 지역주민과 세입자들이 겪는 문제와 비자발적 이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불가피한 희생으로 명명된다. 시장논리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시장은 언제나 옳다.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모여 시장의 수요와 공급, 그리고 균형을 이룬다. 시장에서 내려진 결정은 모두가 함께 내린 것이기 때문에,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판자촌의 재개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보통 지역 개발을 결정할 때 쓰는 방법이 비용편익분석이다. 우선 개발로 발생하는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 보고, 비용보다 편익이 크면 실행하는 것이다.[각주:6] 이렇게 보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엄연히 벌어지는 문제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선 측정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검토해보자. ‘비용편익은 각각 원주민이 겪을 피해지역의 발전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역을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익은 나머지 사람들이 가져갈 테니, ‘비용은 소수인 너희가 부담하라는 말이 아닌가? 문제는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피해를 보냐는 것이다. 다수와 소수,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것은 단순한 크기 비교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누가 그 이익을 만들었는지도 중요하다. 앞서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에서 설명했듯이, 동네의 발전은 다름 아닌 (쫓겨나는) 원주민들이 만든 것이다. ‘핫플레이스가 된 지역의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올리겠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땅값이 오른 것이 건물주의 힘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간의 변화 과정에서 계속 공간을 꾸려가고 발전시킨 실점유자, 이용해온 수많은 사용자, 그 주변 거리를 조성하는 데 함께 기여한 수많은 사람, 공공의 시설투자 등이 합쳐진 결과다.[각주:7] 그러나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엉뚱한 놈이 가져간다는 속담처럼, 그 결과물은 건물주와 부동산 중개인이 가져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은 여전히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류의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한다. ‘주류경제학을 비판해 온 스티글리츠와 장하준 같은 학자들은 그것이 시장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시장의 구조 자체가 자본을 가진 쪽에 유리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주류 경제학의 주장이 결과적으로 강자의 편에 서게 되는 이유다.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는 ‘11인 반면, 시장의 규칙은 ‘11원칙이다. 이 한 글자 차이로 우리의 지위는 너무나 달라진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고 시장에 개입하지 말자는 말은, 결국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더 많이 주자는 반민주적인 주장이다.”[각주:8] 

시장에서 우리는 돈으로 권리를 산다. 돈이 있으면 편의점에 가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살 수도, 개발될 동네의 땅을 미리 사놓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경쟁의 승패는 자본력의 차이에서 결정된다. 평범한 자영업자가 대형 프랜차이즈를, 세입자가 건물주를 이길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평등한 경쟁도, 자유로운 경쟁도 아닐 것이다.

도시가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재주 부린 사람이 인정받는경제가 필요하다. ‘11가 아닌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경제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라는 실험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협동조합은 민주주의 원리인 ‘11를 채택하고 있기에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세계의 도시들은 어떤 방법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해결해나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런던과 파리 - ‘다른도시는 가능하다

 서구의 대도시들은 한국보다 먼저 도시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경험했고, 그 해결책으로서 사회적 경제가 대두하였다. 그중 하나가 런던의 해크니 개발협동조합처럼 주민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다. 파리의 경우는 공공, 민간의 협력으로 세워진 기관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시장경제와는 다른 새로운 경제가 더 나은 도시를 가능케 함을 알 수 있다.

 

영국 런던의 해크니 개발협동조합(HCD)

과거 영국 런던 북부의 해크니는 저소득층과 이민자의 주거지로 낙후된 곳이었다. ‘런던 내 강도 발생률 1’, ‘영국에서 가장 살기 나쁜 곳 1등 불명예를 얻었을 정도다. 이후 이곳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 덕분에 점차 환경이 개선되었지만, 이번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후 주민들이 설립한 해크니개발협동조합(HCD)은 지역이 하나가 되어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 우선 광장 옆에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컬처하우스를 짓고 그들이 중심이 되어 주민 모두를 위한 축제를 기획하게 했다. 협동조합의 자금으로 임대료 문제를 겪는 재즈클럽이나 예술가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신, 그들의 재능을 공공을 위해 쓰게 한 것이다. 실험은 성공했고, 광장은 임대료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활기찬 축제의 공간이 되어 지역의 단합에 기여하고 있다.[각주:9]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질레트 광장

 

HCD는 지역경제를 위해 임대 사업을 하고 있다.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사업자와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계약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 기획자, 지적장애인 전문 변호사 등이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다. HCD가 임대업을 위한 건물을 마련했던 방법이 자산화 전략이다. 자금을 모아 토지나 건물을 매입하거나 장기임대로 사실상 소유와 다름없게 운영하는 것이다. 소유권을 갖고 있으면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전쟁 때 폭격을 맞은 후 방치된 건물을 구청으로부터 100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예산 투입 없이 지역을 개발할 수 있기에 구청 입장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임대사업과 자산화 전략이 HCD1979년부터 30년 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기반이다.[각주:10]

 

프랑스 파리의 비탈 카르티에(Vital’ Quartier)


비탈 카르티에의 지역주민을 위한 식료품 상점

파리는 서울보다 먼저 젠트리피케이션을 경험했다. 1970년대까지 도시 발전을 위해 대규모 상가의 입주를 장려했지만, 그 결과로 소규모 상점들이 사라지면서 골목상권이 위기를 맞았다. 이에 골목상인들이 앞장서 상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 비탈 카르티에(Vital’ Quartier; 생기 있는 거리)’.

시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민간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영국과 유사했다. 민관이 함께 출자해서 세운 회사인 세마에스트(semaest)’는 시 정부로부터 총 11개의 사업지구에 있는 건물 1층 상점과 토지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았다. 이 토지와 건물은 세마에스트의 심사를 통과한 영세 상인들에게 임대된다. 심사의 기준은 합리적이다. 가진 자본금의 양에 상관없이, 경험과 능력, 그리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지만으로 판단된다.[각주:11]

이후 세마에스트는 2004년 이후 160여 개의 점포를 구입하여 지금까지 145곳의 지역 밀착형 가게로 이루어진 골목상권을 형성했다. 2004년 첫 번째 비탈 카르티에 사업에 5,750만 유로의 예산을 투여한 파리 시는 사업이 성공하자 2008년에 5개 구역을 추가로 선정하고 3,000만 유로의 예산을 투입했다.[각주:12]

 

 

행복한 도시를 향한 서울의 실험

 

마을 경제의 시행착오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 열풍이 불면서 다양한 조직들이 생겨났지만, 현재는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마주한 마을공동체의 모습은 새로운 경제학의 현실 적용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마을공동체는 마을주민을 위해, 마을주민에 의해 지탱되는 공동체다. 마을 내 관계망을 통해 만들어지며, 수익성보다 마을 공동의 필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기업과 다르다. 그런데 최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마을공동체의 존립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될수록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마을가게에 자주 갈수록 임대료도 오르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함께 키워가는 상생과 협동의 가치가 부동산 가치도 덩달아 올려주는 것이다. 마을기업이 일반 기업과 목적이 다르다고는 하나, 임대료를 내는 세입자라는 처지는 같다. 그래서 임대료의 상승은 마을공동체를 만든 주역들을 위기에 빠뜨린다.

성공한 마을공동체의 대표 격으로 불리는 성미산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거주민으로 이루어진 협동조합, 마을기업, 대안 교육, 공동육아, 주민커뮤니티 등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20년 넘게 공동체를 꾸려오면서 성미산마을의 공동자산은 100억 원이 넘지만, 세입자들로 구성된 마을공동체는 마을 공간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지 않다. 이미 여러 가게가 임대료를 못 이겨 문을 닫은 상황이다.[각주:13]

 

폐업 위기에 놓인 성미산마을의 한 카페

 

정원오 현 성동구청장은 마을만들기 사업이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왔다고 비판한다. 리모델링한 주택이 풍기는 미묘하고도 따뜻한 매력, 낙후했던 거리가 산뜻하게 변하면서 느껴지는 신선함 때문에 많은 외부인이 재생된 구도심과 마을로 몰려왔고, 그 결과 원주민들이 살기 버거울 정도로 지역의 집값, 건물값,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 재생,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의도하지 않은 역설이었다.”[각주:14]

 

성동구의 실험

분명 마을 경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시험대 앞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그 실험이 실패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이르다. 마을 경제의 역사가 아직은 짧은 탓에 급격한 상업화와 대규모 자본의 유입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시작된 협동조합에게 HCD나 세마에스트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 프랑스보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으로서 성동구청을 주목해볼 만하다. 성동구는 지역 상권 보호를 위해 구청이 직접 나선다. HCD와 세마에스트 역시 시 정부의 지원 위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공공 부문의 노력은 긍정적인 신호다.

성동구청이 추진하안심 상가 사업은 구청이 용지를 확보한 뒤 지역의 소상공인들에게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HCD와 같은 전략이나, 차이점은 공공이 직접 재정을 투입하는 공공 자산화 전략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재정 등의 문제로 민간 조직이 HCD처럼 부동산을 매입/임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015년 하반기에만 약 120평을 확보한 상황이고, 매년 5백 평 확보를 목표로 한다. 장기적으로는 프랑스의 세마에스트와 같은 민관 합자회사의 설립을 검토하는 상황이다.[각주:15]

안심 상가의 용지 확보는 기업 사회공헌을 유도하는 동시에 기업에도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15년 말 성동구에 들어온 관광호텔에 법 규정에 따라 추가적인 용적률[각주:16]을 제공하는 대신 그중 절반을 성동구청에 기부하게끔 한 것이다.[각주:17] 결과적으로 구청은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성동구는 이를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기초자치단체가 따를 수 있는 선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후 성동구의 정책을 모범사례로 삼아 마포구, 해방촌 등 여러 지역이 임차인의 보호를 강화하는 개입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은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구청장의 정책 의지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는 물론, 확보한 공간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쓰여야 한다. 앞으로 지속적인 시민의 감시와 참여가 중요해 보인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해결 과정에서 공공 부문의 모범사례를 보여주는 정원오 성동구청장


  


나가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각주:18] 도둑을 도둑으로, 바보를 바보로 만드는 사회에서, 학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현실의 모순에 침묵하는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는 동시에, 지금 시도되고 있는 실험들에 주목해야 한다. 남들이 할 수 없다고 했던 일을 밀고 나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런던과 파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굴뚝 위에 올라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던 아버지 난장이처럼 말이다. 난쏘공이 더는 읽히지 않으면 좋겠다던 작가의 바람과 달리, 지난 2007년에 소설은 기념비적인 100만 부 발간을 달성했다. 그리 머지 않은 미래, 난쏘공이 더는 읽히지 않는 사회를 상상해본다.





글 편집위원 transverso


* 서두의 작품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1, #3),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2)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



  1. 국가기록원 홈페이지, ‘판자촌’ 문서 [본문으로]
  2. 정원오, 후마니타스, 2016,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본문으로]
  3. 테이크아웃드로잉, 2016, 『한남포럼』 [본문으로]
  4. 정원오, 후마니타스, 2016,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본문으로]
  5. 정원오, 같은 책 [본문으로]
  6. 다음 국어사전 [본문으로]
  7. 테이크아웃드로잉, 2016, 『한남포럼』 [본문으로]
  8. 장하준, 부키, 2014,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본문으로]
  9. 조선일보, 2016.01.26. 「[더 나은 미래] 런던 대표 슬럼가였던 '해크니'…10년간 가장 낮은 범죄율 유지한 비결은?」 [본문으로]
  10. 정원오, 후마니타스, 2016,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본문으로]
  11. MNB, 2016.07.18. 「[2016 도시난민] 파리·몬트리올에서 배운다」 [본문으로]
  12. 오마이뉴스, 2011.05.22. 「권리금 한 푼 없이 개업, 비법을 알려드립니다」 [본문으로]
  13. 경향신문 기획취재팀, 시대의 창, 2016, 『이 도시에 살고 싶다』 [본문으로]
  14. 정원오, 후마니타스, 2016,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본문으로]
  15. 정원오, 같은 책 [본문으로]
  16.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전체면적의 비율로, 용적률의 증가는 건물 규모를 더 크게 지을 수 있다는 허가를 말한다. (출처 : 매경시사용어사전) [본문으로]
  17. 서울시에 용적률 105% 증가를 요청했고, <관광 숙박 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서울시가 이를 승인했다. 이후 증가한 용적률 105% 중 41.5%를 구청이 기부받는 형식으로 부지를 확보했다. [본문으로]
  18. 프레시안, 2008.12.05. 「조세희 “행복한가? 당신은 ‘도둑’ 아니면 ‘바보’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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