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by 강병준 (CC BY-NC 4.0)

 

창전동 사적인서점 북디렉터 정지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사적인서점’. 신촌에서 홍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한 건물의 계단을 올라가면 4층에 사적인서점이 있다. 그 이름처럼 사적이라 길 가다가 우연히 발견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방 하나를 가로질러 또 하나의 문을 열면 그곳에 서점이 펼쳐져 있다. 적당한 크기의 아늑한 공간 이곳 저곳에 진열된 흥미로운 책들이 쫄보들의 눈길을 끌었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사적인서점>을 운영하는 정지혜라고 합니다. 책과 사람 사이에 만남을 만드는 일을 하는 북디렉터라는 직업을 스스로 창직했고, 작년 10, 사적인 서점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Q. 먼저 장소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데, 홍대와 신촌의 중간 지점인 이곳에 서점을 열게 되신 이유가 있을까요?

요즘은 SNS를 보고 많이 찾아와주시니까 임대료가 저렴한 게 제일 중요했는데 마침 집과도 거리가 가까웠어요. 4층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보다는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길 원했거든요.

Q. 서점을 열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확실히 있었어요. 처음에는 편집자가 제일 맞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막상 일해보니 힘든 점들도 많았어요. 2년 정도 후에 퇴사하고 <땡스북스>에서 일하게 됐는데 원 없이 책을 읽고 일에 반영할 수 있는 점이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편집자로 일할 때와 달리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가 없으니 한 3년 정도 지나자 성취감에 대한 결핍이 느껴졌어요. 그 뒤로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고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서 책을 직접 전할 수 있는 저만의 책방을 갖고 싶단 생각이 들어 약 8개월 정도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이 장소를 알게 된 후 준비 끝에 드디어 서점을 오픈하게 되었어요.

Q. (쫄보2) 제가 사실 국문관데 저도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어요. 기회가 돼서 출판사에서 잠깐 인턴도 했었는데 야근이 많고 오히려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기대했던 것과 좀 다르기도 했고.

하지만 뭐든 경험해보는 것은 추천 드려요. 저도 처음부터 책방이 목표였고 책방주인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거든요. 저도 이러저러한 경험을 해보고 난 뒤에 제일 일을 즐겁고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게 이 방식(책방)이었던 거라서요. 사실 이게 처음부터 짠! 하고 나오지는 않아요. 저도 분명히 헤매는 과정이 있었고요. 헤매는 과정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지금도 완성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완벽한 직장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하나씩 알아간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Q. <사적인서점>은 책 처방, 북테라피라는 여타 다른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컨셉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테라피의 개념보다는 대화를 통해 지금 가장 나에게 필요하고 맞는 책을 제안해드리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책 처방을 하게 된 계기는 제가 한 분 한 분에게 제가 읽고 재미있었던 책을 설명해드리면, 그걸 읽고 나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 주실 때가 가장 성취감이 높았기 때문이에요. 특히 아예 책을 안 읽으시던 분들이 제가 SNS에 남긴 기록을 보시고 책을 읽게 되시는 경우는 정말 뿌듯했어요.

책처방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사적인서점 홈페이지를 참조. (http://sajeokinbookshop.com/)

Q. 피드백이 많이 오는 편인가요?

, 책을 받고 절반 정도는 해주시는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울산에서 오셨던 분이에요. 처방받으신 책이 비슷한 또래가 산티아고를 여행하는 이야기였는데,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분이었는데도 그걸 읽고 산티아고행 티켓을 끊었대요. 그리고 그 날 그 시간에 사적인서점에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자신이 어떤 환경에 있을지 모르겠다며 너무 감사하다고 손편지를 써주셨어요. 직접 뜬 책갈피와 함께요. 그걸 보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진 않지만, 변화의 씨앗이 될 수는 있잖아요. 제가 그 씨앗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고, 보람도 느껴지고 책임감도 느껴졌어요. 한 명, 한 명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요. 그 편지는 초심을 잃을 때마다 꺼내서 읽어보려고 잘 보관해두고 있어요.

Q. 책을 샀는데 북커버를 해주실 때, 이곳에서는 차별점을 두려고 많이 노력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작은 서점만의 메리트는 재방문을 통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많이 느끼는 게, 미용실이나 병원, 옷 가게 등이 나와 마음이 잘 통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삶의 질이 많이 올라간다는 거예요. 책방도 내가 샀던 리스트들이 한군데서 관리가 되고, 내 취향을 잘 알아서 주인이 있고 추천을 받으면 실패할 확률이 줄어드는, 그런 믿고 맡길 수 있는 책방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회성 이벤트보다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동네 주치의 같은 책방주인을 생각했거든요.

 

by 강병준 (CC BY-NC 4.0)

 

Q. 혹시 지금까지 책방 운영하시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을까요?

힘들었던 점은 일단은 금전적인 부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시작을 하긴 했지만 3개월 정도 정산을 해보니까 제가 들인 노력에 비해서 너무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어요. 또 한 가지는 아직 우리나라에는 책 큐레이션을 존중하는 문화가 없는 것 같아요.

Q. 저희와 같은 책방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제가 그때 쫄보1께 책 처방할 때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인터뷰 전, 책처방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했다), 지금 내 자리에서 손만 뻗으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꾸준하게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극단적인 변화를 하는 건 용기 내기도 힘들고, 했을 때 실패할 확률도 되게 높아요. 저 같은 경우는 SNS에 제가 읽었던 책에 대한 기록을 올리는 거랑 일본 책방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게 제자리에서 했던 일들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지금 내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영향력을 갖기 시작하고, 그걸 보고 외부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기회나 제안이 들어오기도 하고, 그럼 그 제안을 받아서 다음 스텝으로 가고 그러다 보면 정말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책방 주인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드는 때가 와요. 저는 이게 모든 일에 다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너무 먼 미래의 꿈 때문에 현재를 희생하는 것보다는, 그냥 내가 지금 현재에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즐겁게 하다 보면 좋은 미래가 온다고 믿거든요. 여러 가지 경험들을 많이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많이 해보시고 뭐가 더 나한테 잘 맞고 뭐가 나한테 안 맞는지는 사실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거라서, 저도 7년 전에 지금의 제가 서점주인이 되어있을 줄 몰랐거든요. 그런 걸 좀 열어두고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Q. 근래에 작은 서점들이 많이 생기고 있잖아요. 여기서 서점이 더 늘어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시나요?

저는 책방이 더 많이 생기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부족하니까요. 그렇지만 언론이나 이런 데서는 좋고 낭만적인 것만 다루다 보니,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책방에 갖고 있는 환상이 너무 큰 것 같아요. 겉으로만 봤을 때는 서점만큼 평화로운 곳이 없지만 사실 쉬운 일이 절대 아니거든요. 사람 대하는 거나 금전적인 것부터 해서 여기서는 책 읽을 시간이 전혀 없다고 할 만큼 제가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요. 이미 상황이 힘들다는 걸 이해하고,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니 나는 뭔가 차별화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하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를 꼭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두 분이 저를 보셨을 때는 어 너무 멋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어떻게 아셨죠?!) (웃음) 제 나잇대가 됐을 때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치로 저보다 더 뭔가 뛰어난 일을 하고 계실 수도 있는 거니까 그걸 가지고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가 아니라 나는 지금 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간다라고 생각하시면 지치지 않고 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은 달라진 쫄보들 : 취재탐방 후기


쫄보1 : 크지 않은 공간책장에 채울 책 한 권 한 권을 직접 고르고진열하는 것부터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손님들과 소통하는 방식까지 오롯이 홀로 채워나간 책방은 그 주인을 꼭 닮았다책방이란 공통점으로 묶기엔 각자가 너무 달라 지면 한계상 더 많은 이야기를 싣지 못해 아쉬웠다항상 망설이다 책만 사기 일쑤였던 터라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지만 예상했던 대로 막막함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그러나 자신이 온전히 투영되는 공간을 꾸리기 위해 가져야 하는 무게감을 느낌으로써 오히려 조급함을 덜어냈다지금 당장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뭐괜찮다 싶다지금 당장 손에 잡히는 일부터 차근차근 하고언제라도 (시작을할 테면 해보는 거다젊은 감각으로 말이다.  


쫄보2 : 같은 독립서점’ ‘소규모 책방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면서도 책방마다 그 주인들의 개성이 묻어 나오는 게 신기했다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배울 수 있는 점들도 전부 달랐다. ‘미스터리 유니온에서는 당장 손님이 적어도 조바심내지 않고 느긋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를, ‘퇴근길책한잔에서는 책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사적인서점에서는 다른 서점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끊임없는 고찰의 자세를 배웠다.

책방 탐방을 다니고 주인분들께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당장 책방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사라졌다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면서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역시 나는 책을 좋아해도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로 남아있는 게 좋을 성싶다마치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에서 모모코가 애용하던 옷 브랜드에서 자수를 놓아달란 요청을 받고 고심하다결국 완성해놓고도 역시 나는 만드는 것보단 입는 게 좋아라고 한 것처럼다만 사적인서점에서 배운 것처럼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부터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그러면 언젠간 뭐라도 되어있겠지. ()


퇴근길책한잔, by 강병준 (CC BY-NC 4.0)




글 편집위원 오늘, 단단




<책방이 하고 싶은 두 쫄보의 신촌 책방 취재탐방기> 바로가기

1. 쫄보 소개 및 서문

2. 미스터리 유니온

3. 퇴근길 책 한잔

4. 사적인 서점, 조금은 달라진 쫄보들 : 취재탐방 후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