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커버스토리

[어떤 청년] 나는 아픈 사람이다

연희관공일오비 2017. 9. 12. 20:22

나는 아픈 사람이다

불면. 난 군대 시절 불면이 생겼다. 자유를 제약당한 데에서 온 스트레스부터 해서, 상관들의 암투 사이에서 받은 고통, 1년 위 선임의 고롭힘,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나를 갈구러 왔던 직속상관, 전역 4개월 전까지 막내였기에 감당해야 했던 과중한 업무부담 같은 것들이 나를 잠 못 이루게 했을 것이다. 그 군대 경험이 끝나고도 불면은 지속되었다.

불안. 불안이란 단어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불안은 불면과 함께 찾아왔다. 너무 시달리다 못해 불안해질까 불안에 떠는 지경에 이르렀다. 2개월 정도 폐쇄공포증이 있었다. 어느 순간 아침마다 헛구역질을 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 갑작스러움에 대한 불안이 나를 잡아매고 있다.

외로움. 군대에 갔다 오고 나니 대학교에 남은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내가 마음을 두던 공동체도 더 이상 나와는 연결고리가 없었다. 군필자가 누리는 특권이라는 게 있다지만 나에겐 친구도 없고 미래도 없다. 괴리감, 그 때문에 발생하는 불안은 불만이 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아프게 한다. 한 학기 동안은 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안 하고 학교에만 적응하려 했다. 아픔은 차도가 조금 있을 뿐 그대로였다. 내 아픔을 인정하고 무언가 해보고 싶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받아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금년도 3월부터 상담을 받아왔다. 나는 아픈 사람이다.

 

아무도 안 아프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아침에는 전근대이고 오후에는 근대이며 저녁에는 탈근대인 것은 무엇인가?” 물으며 정답은 한국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지는데, “이렇게 세 겹의 시간대가 착종되어 있는 곳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괴물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두 아픈데, 왜 아무도 병들지 않았는가.”[각주:1]하고 묻는다. 난 이렇게 다시 묻고 싶다. “모두 아픈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가.”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다. 청춘 담론 앞에서 청춘들이 하는 말이 아프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는가. 우리는 88만 원 세대이고, 헬조선에 태어났고, 흙수저라서 할 수 있는 게 없고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해서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의 목소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 사이에 아픔의 언어는 부재하다. 친구의 안부를 물어오면 대답은 주로 OO시험 준비라든가, 대학원이라든가, 취직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아니던가.

나도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야 내 주변에 상담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숫자로 따지면 상담받기 전보다 5-6배가 늘었다. 대부분이 내가 상담을 받으려 한다거나, 받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아팠었는지 몰랐다. 알아보니 20대 우울증 환자는 4년 사이에 24%가 늘었고(2015년 기준),[각주:2] 강박장애는 20대에 제일 많단다.[각주:3]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친구의 아픔을 아느냐 모르느냐보다 아픔이 발화될 수 있는 환경이냐 아니냐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너 스스로가 아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왜 힘든지. 대답은 이렇다. “말해봐야 좋은 소리 못 듣잖아. 너만 힘드냐? 나는 더 힘들어! 라는 소리 들을 텐데.” “힘든 얘기 누가 듣고 싶어 하냐.” “더 힘든 사람도 있는데 뭘.” “나약해 보이잖아.”

나부터도 상담 초창기에 상담을 받고 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생산성이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해서일까? 친구들의 반응이 두려워서? 아픈 이의 발화를 어떻게 들어주어야 할지 모르는 문화의 탓일까? 남자는 아프면 안 돼서? 청춘은 아프면 안 돼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상황들이 타인이 아픈지도 모르게 했고, 나 자신을 아픈 사람으로 정체화하는 것도 막아왔다. 심지어는 우리들의 입에서 너만 힘드냐? 나는 더 힘들어!”라는 말을 나오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픔은 유무 여부가 중요하지 정도가 중요한 개념이 아니다. 아픔이라는 명명은 비극의 주인공만 갖는 전유물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대체 누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고아로 태어나 장애를 얻고 희귀병을 앓으며 돈도 없고 친구도 없는 사람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보다 조건이 하나 더 붙은 사람이 생기면 아픔의 권좌는 박탈당하는가? 그리고 애초에 누가 고아라면 아프다고 했고 장애나 희귀병이 있으면 아프다고 했는가? 같은 상황에서도 아픔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결국, 아프다고 명명하는 문제는 명확한 기준을 가질 수 없고 결정권은 당사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아프다면 아픈 거다.

 

그러니까, 나는 아픈 사람이다

군대에서 아픔을 겪으며 가장 어려웠던 단계가, 나의 아픔을 인정하는 단계였다. 회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정도 아픔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싶었다. 찰나의 평온한 순간들 속에 그냥 머물고 싶었다. 이 아픔을 인정하는 순간, 현실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공간에서 어떠한 희망도 찾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프다고 인정하는 순간 남들 다 하는 군대 생활인데, 왜 나만 이럴까하며 자책할 것 같았다. 다른 이유로 힘들어하던 친구들이 상황을 벗어나면 질투하기도 했다. 아픔의 공간은 비정상이기 때문에 떠나야 하는 곳이고, 나는 떠나지 못해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전기나 수기를 많이 읽었다. 한 사람이 실제로 겪어낸 아픔들을 보면서 위안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홀로 아프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 주변에도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았다면 좀 더 편했을 것이다. 아프다는 발화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볼 수 있다면 세상 나 혼자 아프다는 고립감이 훨씬 덜 할 것이다.

아프다고 인정하고 발화하는 과정은 나에게도 좋다. 이번 년도 초부터 나의 상황을 아픈 상황으로 적극적으로 규정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전역 직후보다, 이번 년도가 상황이 더 낫다. 그것은 아픔이 없어지거나 옅어져서가 아니다. 삶의 주도권을 내게로 가져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픔을 인정하고 거기서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감해주고 함께 고민해주려는 친구들을 만난다. 그 친구들의 빛나는 눈을 보는 것은 항상 벅찬 순간이다.

그러니까 나는 발화한다. 나는 아픈 사람이다. 내 친구들도 아프단다. 당신이 아픈 것은 추한 것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니다.

 

노예의 앓음

아픔을 아픔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현실변화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글은 너무나 미안한 글일지도 모른다. 아픔을 인정하고 직시하라고 강요하는 글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기보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 필요했다. 그 시간들이 나의 일기장에 다양한 말들로 10권을 쌓았다. 눈물이기도 하고, 사색이기도 하고, 후회나 충만함이기도 한 말들. 그 모든 말들은 직시하거나 명명하는 것과는 또 다른 아픔과의 대화였다.[각주:4]

그런 나와, 그런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글이 있다. 다음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스티브 매퀸의 노예 12을 비평한 글의 한 문단이다.


솔로몬에게는 삶의 의미가 너무도 분명하지만 그는 노예이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은 계속 팽팽한 의미를 유지할 수 있고 그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주인으로 남는 반면, 주인 엡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지만 도무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이어서 그 환멸을 노예들에게 분출하느라 통제 불능의 폭력에 몸을 맡기는 것인데 이때의 그는 제 자신의 맹목적 충동의 노예인 것이다. 요컨대 엡스와 노섭의 관계에서 주인과 노예의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이를 통해 스티브 매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존재의 처지가 주인이냐 노예냐 하는 것이 그가 자기 삶에 대해 주인인지 노예인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 노예에게 주인인 자가 삶에 대해 노예일 수 있고, 주인에게 노예인 자가 삶에 대해 주인일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이렇게 뒤집어 말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솔로몬 노섭은 12년 동안 노예로 살아본 뒤에야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에드윈 엡스는 그가 한 번도 노예가 되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각주:5]


고통을 받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공부도 포기해야 했다. 잠도 포기해야 했다. 연애도 포기해야 했다. 기쁨이라는 감정도 포기해야 했다. 아픔이라는 주인이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 시기만큼 삶이 팽팽했던적도 많지 않았다. 매일 매시 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의 아픔에 대해 생각했다. 군대 시기 동안 쓴 10권의 일기장에는 필사적인 언어들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앓음으로부터 아름다움이 오고 있다.


글  편집위원 현욱


  1. 신형철, 「만유인력의 소설학」, 『몰락의 에티카』, 서울: 문학동네, 2008, 46p [본문으로]
  2. 유대근 기자, 이범수 기자 “[단독] [온라인 인터랙티브 뉴스] 우울증 앓는 20대… 4년새 환자 24% 늘어”, 『서울신문』, 17. 3. 6 [본문으로]
  3. “불안해서 아픈 청춘 20대, 강박장애 환자 가장 많아 “20대 남자 특히 압도적””, 『연합뉴스』, 16. 2. 9 [본문으로]
  4. 애초에 아픔은 직시하고, 발화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것인가? 단선적인 해결책만 존재하는 문제인가? 혹은 아픔은 문제인가? ‘그 시간이 필요했다’라는 것은 미래의 특정 시점에서만 가능한 발화가 아닌가? 내가 읽었던 책들에는 말해지지 못해왔던, 혹은 말하지 않았던, 혹은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본문으로]
  5. 신형철,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노예들에게」, 『정확한 사랑의 실험』, 서울: 마음산책, 2014, 223-224p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