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2. 지금의 페미니즘 Q 요즘에는 메갈리아 등이 나오면서 페미니즘으로 엄청 시끌시끌한 것 같아요. 이처럼 치열하게 담론투쟁이 일어나는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죠. 원래는 남성만 말을 했어요. 그래서 덜 시끄러웠는데, 이제는 남녀 둘 다 말하니까 조금 더 시끄러워진 거죠.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우니까 그만하자고 말하는데, 사실 그건 여자가 말하니까 시끄럽다는 거예요. 여자가 하는 말은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럼 지금까지 있었던 여성혐오는 안 시끄러웠나요? 그리고 여성들이 하는 건 혐오가 아니라 분노에요. 때리는 애랑 때리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애랑 다른데, 그 둘을 뭉뚱그려 놓고는 시끄러우니 사이좋게 살자고 하는게 잘못이죠. 그리고 저는 메갈리아에..
가히 ‘페미니즘의 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수많은 여성 관련 이슈와 논란들이 일었던 작년 한 해의 분위기가 2016년에도 여전히 뜨겁다. 이와 같은 페미니즘 열풍은 지난 5월에 터진 ‘강남역 사건’ 이후로 한층 더 거세져 또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듯하다. 그 이슈에 가장 발 빠르게 반응하며 나온 것이 (이하 )이다. 이 책은 페미니즘을 둘러싼 갑론을박 속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자주 접하게 되는 ‘답답한’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인 매뉴얼을 제공한다. 동시에 페미니즘을 하면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고민에 대해 시원하게 답을 내려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역동적인 페미니즘 담론의 내부에 있는 당사자들이 처음으로 사회를 향해 힘있게 내놓은 목..
#들어가며페이스북은 자신의 일상을 나누며 소소한 재미를 추구하던 친목 공간에서 여러 페이지에 올라오는 텍스트 기사나 동영상 클립을 소비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페이스북뿐만이 아니다. SNS는 이제 젊은 세대들이 세상을 접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이에 발맞춰 기업들은 각종 뉴미디어를 통해 자기네들 사업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려가며 SNS 관리자나 뉴미디어 개발 엔지니어와 같은 직업을 탄생시켰다. 일반 기업들이 이런 상황인데, 언론사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SNS에서 자사의 기사 혹은 클립이 얼마나 노출되었는가가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 노출도만큼 중요해졌다. 또한, 언론사마다 신문이나 방송 외에SNS 플랫폼만을 위한 자체 콘텐츠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카드뉴스나 클립영상 형태의 뉴스가 ..
나보다 키는 커야지 말이야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21세기의 성평등주의자로 얼마나 굳게 착각하고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태교 받을 적부터 가부장적인 사회에 아주 자연스럽게 적응해온 ‘모태 가부장주의자’인 나는 내 생각과 생활 구석구석에서 스스로를 계몽시켜야 했다. 나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여자’ 혹은 ‘남자’가 아닌 ‘사람’으로 대하고 마음가짐을 고치는 일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시야를 선물해 주었다. 물론 나는 아직 다 계몽되지 못했다. 내 안에는 아직도 페미니스트와 섹시스트가 공존한다. 그 중 가장 고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나의 ‘이성’이 가장 작동하기 힘든 부분이다. 바로 연애와 섹스. 하악. 친구: 야, 남자 소개받을래? 학교는 어디고~ 직장은 어디고~ 나: 키 커? 특히..
마카롱집 아르바이트생의 발견저번 학기에는 주말 저녁마다 마카롱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다. 요즘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에 900원짜리 마카롱을 파는 곳이었는데, 일이 어렵지 않고 무엇보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나는 그토록 다양하고 많은 마카롱을 매주 볼 수 있어 즐거웠다. 딸기, 초코, 바닐라, 민트, 블루베리, 망고, 치즈, 모카, 녹차……. 기억나는 것만 그 정도인데 실제로는 훨씬 다양한 맛이 있었고 들어오는 마카롱의 종류도 매주 바뀌었다. 아직도 컬러풀한 마카롱들이 유리관 너머로 진열되어 있던 것을 상상하면 가슴이 설렌다. 그건 미각적으로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을 주는 광경이었다. 모든 아르바이트가 그렇듯이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사소한 패턴들을 발견할..
2015년도 즈음부터 ‘여성혐오(Misogyny)’ 이슈가 대두되면서 많은 이름들이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혐오’라는 개념에 눈을 뜨게 되었고, 온라인 상에서는 여성혐오를 둘러싼 언쟁들이 격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유명인, 일반인을 막론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 이론에 무지하거나 여성혐오적인 언행을 대놓고 일삼는다는 이유로 ‘여혐종자’ 혹은 ‘여혐러’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나 또한 예전에는 그들처럼 젠더감수성이 부족해 보이는 이들을 ‘여혐종자’라고 부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페이스북에서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내게 똑같은 말과 질문을 해대는 것에 매우 지쳐있었기에 그런 사람들을 지칭할 단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언쟁을 해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사람에겐..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모두가 평등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향욱 前 교육부 정책관 1. 우리 안의 괴물 고백하건대 나는 내가 대외적으로 강력히 반대하는 엘리트주의에 찌든 채 살아왔다. 사실 이를 엘리트주의라 칭하는 것이 옳은 지도 모르겠는 것이, 엘리트주의는 내 안에 있는 이 치졸하고 비열한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이후에 좀 더 자세히 언급한다).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한 이것은 엘리트 집단에 속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그들에 대한 열등감의 산물이니 ‘왜곡된’ 엘리트주의라 하겠다. 내가 때 아닌 자기고백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삐뚤어진 엘리트주의를 들여다보기 이전에 우리 잠시 솔직해지자. 우리가 일..
무작정 크라쿠프로 *크라쿠프 :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고도 왜 하필 동유럽, 그중에서도 크라쿠프로 떠났나? 특별한 환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름에 여행하기에 덥지 않고(아시아 탈락), 내 비루한 통장 잔고가 감당할 수 있어야 하며(소위 ‘잘사는 동네’ 모조리 탈락) 동시에 무언가 새롭고 구미가 당기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하다 보니 나온 대안이 동유럽이었을 뿐이다. 동유럽은 막상 여행지로 결정해 놓고도 너무나 생경한 지역이라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막연한 궁금증을 끊임없이 유발하는 곳이었다. 가이드북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 하면 몸과 마음이 편했겠지만, 남들 하는대로 따라 하기는 싫은 괜한 고집이 생겨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작정 동유럽 지도를 펴 놓고 생소한 나라들의..
대학에 와서 내가 가장 특출하게 된 것이 있다면 ‘자아분열’과 ‘자의식 과잉’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면서도 혐오하고 특별하다고 믿고 싶어 하면서도 하찮은 사람으로 몰아가고, 이런 사실을 다 알면서도 내면의 평화를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분열을 만들어왔다. 그저 나 자신을 사랑하기만 하고 싶고 특별하게만 여기고 싶지만, 정신승리를 하기에 나의 성정은 원채 불온했다. 자기애와 자기혐오의 물고 물리는 싸움은 나를 자의식 과잉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이건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 반, 딸딸이 치는 마음 반으로 내 이야기를 나누는 바이다. SCENE 1 중학교 때 친구와 극장에 가는 것은 나에게 특별한 보상과도 같았다. 나의 일상은 대개 학원을 가는 날과 ..
아주 어린 시절, 편히 앉아있는 내게 엄마는 “여자가 그렇게 앉으면 안 돼요.”라고 가르쳤다. 조금 큰 후에는 “계집애가 다리 그렇게 벌리고 앉는 것 아니야!”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일상에 걸친 이 훈계는 이젠 귀를 통해 나의 온몸에 익어 버렸나 보다.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스스로가 어색하고 민망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반면 남동생은 줄곧 다리를 쩌억 벌리고 앉는데,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그 아이가 나와 같은 이유로 어른들에게 질타를 받은 일은 없다. 내가 “계집애가”로 시작하는 훈계를 들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나는 집에서 하의를 잘 걸치지 않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너는 여자애가 아빠, 남동생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니? 옷을 그렇게 훌렁훌렁 벗고 다니니?”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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