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뭉크의 일기 해가 질 무렵, 나는 두 친구들과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말할 수 없는 피로를 느끼면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난간에 기대섰다. 피와 홍염이 도시와 검푸른 피오르드를 뒤덮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뒤쳐져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때, 나는 자연을 꿰뚫는 거대하고도 무한한 비명을 들었다.-1892년 1월 22일, 니스에서- 2. 문명의 기대수명 현재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1세쯤 된다. 지금의 20대는 100세까지 살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측도 있다. 넉넉히 잡아 현재 20대의 기대 수명이 100세라고 치자. 그럼 현재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대략 80년이 지난 후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건축은 다르다. 짧게는 몇십 년이지만..
“문화적 가치", "규범", "복종", "어른에 대한 존중", "서양과는 다르게", "한국인.” 위는 한 외신이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며 반복적으로 언급한 단어들이다. 왜 학생들이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지 않았냐는 앵커의 질문에, 기자는 ‘서양, 특히 미국에선 도저히 상상도 못할’ 행동이라는 말까지 덧붙여가며 어른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존중이라는 한국 문화가 이와 같은 비극을 초래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Lha, 2014). 위 사건을 철저히 ‘문화’의 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설명은 타당하지도 않을뿐더러,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사건을 발생시킨 구조적 문제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위험시에 질서를 지키는 것이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걸 배웠다면, ‘한국’ 아이..
잃어버린 OO을/를 찾아서 누구에게나 한번쯤, 책장 서랍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떤 물건을 보다가 오랫동안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한 번 시선을 뺏기는 순간 그것과 연결된 무수한 기억의 고리들이 머릿 속에 영화 장면처럼 떠오르게 된다. 그때 그랬었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나를 마주하게 되면서 그 시간을 둘러싼 행복, 슬픔, 그리움, 그리고 때론 놀라움에 휩싸인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를 경험하며 현재와 과거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된다. 프루스트의 시간여행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느날 추운 겨울날, 집에 돌아온 그에게 어머니는..
미얀마에서 얻은 깨달음, 새 학기를 준비하며나는 올해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지만 처음으로 사회과학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공부하게 되었다. 아직 사회과학을 공부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동안 초보 사회과학대 학생으로서 느꼈던 고민들과 그것을 해결하려던 나의 노력을 적어보려 한다.고등학교 때에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신경을 끄고 당장의 내 일에만 집중하는 게 편했던 적이 많았다. 이다음에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지금은 내게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일단 대학교에만 들어가면 나는 사회를 탐구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사회에 보탬이 될 만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했다.그리..
지난 1년 간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7월 인터넷 상의 여성혐오 표현들에 대한 미러링을 표방하며 등장한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등장, 12월 국내 최대의 음란물 공유 사이트 ‘소라넷’ 관련 범죄 공론화와 사이트 폐쇄, 지난 5월 강남역 살인사건과 대규모로 주최된 추모행사, 최근 정의당 당원들의 집단 탈당으로까지 비화된 메갈리아 티셔츠 인증사진 사건까지 굵직한 이슈들이 지속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8월 둘째 주 알라딘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면 10위 내에 7권의 페미니즘 도서들이 올라있습니다. 진보언론들은 ‘페미니즘’ 특집 기사를 연이어 보도하면서 여성인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페미..
10년 전 쯤, 제가 중학생이던 때로 기억합니다. ‘화상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면 재택근무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수업을 들은 후에 저는 그 아름다운 미래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아니, 그럼 직장도 안가고 집에서 편하게 일할 수도 있단 말이야? 5년 전에는 기러기 아빠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무척 슬퍼졌습니다. 5년 전에 제가 꿈 꾼 미래가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으니까요. 화상 카메라는 재택근무가 아니라 가족과 떨어져 살아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기술로 쓰였습니다. 기술의 발달에 대해, 인류는 언제나 장밋빛 전망을 그리지만 늘 뒤통수를 맞네요. ‘인터넷의 명암’이라는 뻔한 말을 한다는 게 사족이 길어졌습니다. 인터넷은 시작부터 많은 기대와 숱한 우려를 동시에 받아왔습..
대한민국에서의 ‘정치혐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 대한 반복된 실망과 환멸이 무관심을 낳았고, 그것이 다시 정치인들의 기득권 강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공공연히 반복됐다. 하지만 그와 같은 정치 혐오를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마주치게 되는 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사회이다. 우리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모순과 마주치게 되고 급기야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판단 자체를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페미니즘 이슈, 사드 배치, 이슬람 테러와 같은 사안에 무엇이 옳은지 한 번이라도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했던 적 있다면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심지어 온라인에서나마 치열하게 정치적 활동을 하는 사..
※ 2014년 가을 발행한 연희관 015B 2호에 실린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1000일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걸어온 과정을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올리는 세월호 4부작의 두 번째 글입니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 나해 - 자우림, Set me free 만약 사람들이 질서에서 집단적으로 이탈한다면 어떨까? 만약 모두가 갑자기 ‘질서를 따르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신호등? 따르지 않는다. 정지선? 지키지 않으련다. 군대? 가지 않는다. 결혼? 그게 뭐야. 국가? 그거 꼭 필요한거야?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정신건강에 그럭저럭 도움이 될 것이다. 이..
※ 2014년 가을 발행한 연희관 015B 2호에 실린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1000일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걸어온 과정을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올리는 세월호 4부작의 첫 번째 글입니다. 1. 사회가 참사를 이해하는 방식세월호 참사는 여지없이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사건 자체만으로는 어떤 말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지금과 같이 한국사회를 집단적 외상에 빠뜨린 비극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한 사회가 외상적 사건을 받아들일 때 중요한 것은 실재했던 사건을 의미로 구성하는 과정, 즉 서사화 과정이다. 사건들이 구슬이라면, 서사는 그것들을 꿰어내 구체적 의미로 만들어내는 실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스웨덴 최초로 27세에 장관(고등교육 및 성인교육 담당 장관)이 된 사람이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 2년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그는 무슬림 출신이고 여성이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음주운전’ 사실보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27살 여성이 장관이 될 수 있는 스웨덴의 정치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아이다 하드지알릭(Aida Hadzialic)이라는 이 여성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녀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태어났고, 5살에 내전을 피해 스웨덴으로 이주한 이민자 출신이었다. 그녀는 16세에 스웨덴 사회민주당에 입당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 23살에 할름스타드(Halmstad)라는 도시의 부시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27살에 장관이 된 것이다. 그녀는 권력자에 의해 발탁된 것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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